(제 33 회)

 

하 편

 

12. 거란의 2차침공을 물리치다

 

1

 

백운봉에 흘러내리는 한줄기 물

만경창파 멀고먼 바다로 향하누나

바위밑을 스며흐르는 물 적다고 하지 말아

룡궁에 도달할 날 그리 멀지 않으리

 

이 시는 새 임금이 신혈사에 은거해있을 때 지은것이다.

김치양과 천추태후의 미움을 받아 머리를 깎고 중이 되여 속세에 파묻혀있으면서도 의기만은 잃지 않은채 세월을 이겨낸 임금이였다.

나흘만에 자리를 털고 일어난 임금은 강조를 중대사(중대성의 책임자, 궁중호위, 군기업무를 총괄하는 기관으로서 중추원을 확장한것이였다.)로 임명하였다가 한달이 지나 리부상서 참지정사로 다시 임명하였다.

참지정사란 시중, 평장사 다음가는 세번째 서렬의 벼슬로서 품계는 종2품이고 임금과 나라일을 수시로 의논하는 막중한 자리였다. 거기에 일체 관리임면을 주관하는 리부의 우두머리인 상서(정3품)직을 겸하였으니 조정안에서 강조의 지위는 막강하다 할수 있었다.

조정에 닥쳤던 위기를 면하게 한 공로를 새 임금은 응당하게 평가해준것이다.

임금은 궁녀의 수를 솎아내여 100여명을 평민으로 환속시켜주고 궁성안의 놀이터를 조절하여 진귀한 조류, 어류, 짐승들을 산과 늪으로 놓아주는 등 사치를 줄이고 랑비를 제한하는것으로 자기 일을 시작하였다.

궁성숙위군사들에게 비단천을 내주어 위무하고 문무관료들의 품계를 한급씩 높여주었으며 인재를 적극 찾아내게 하고 모든 진(성)과 변방의 장수들과 군사들이 군무에 전념하도록 조처하였다.

강은천은 새 임금대에 와서도 여전히 례부의 시랑으로 거란과의 외교문서를 다루는 일에 전념하였다. 거란에 보내는 고려국의 새 임금 등극에 관한 통고문을 만드는 일로 시작을 떼였는데 임금으로부터 고려국의 체모가 잘 안겨오게 문장을 잘 지었다는 치하를 들은 뒤로는 일체 거란에 보내는 문서는 은천의 몫이 되고말았다.

임금은 거란과의 관계에서 이전 임금과는 대조되게 강경자세를 취함으로써 은천을 기쁘게 해주었다. 전 임금과는 시시때때로 줄다리기를 하면서 의견일치가 되지 않아 고심이 많았으나 지금 임금과는 별로 벌어지는 일이 없이 흘러갔다. 한해 가까이 지내오면서 본즉 지금 임금은 자질구레한 서신교환을 장려하지 않았을뿐아니라 가물에 콩나듯 두어번 거란에 사신교환을 한것마저도 구차스러운 봉물짐따위는 일체 거들지도 못하게 하는 등으로 시종 고자세를 취하면서 대단히 여유있게 대처하였다.

조정이 태조때의 모습으로 돌아갔다며 기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년초에 들이닥쳤던 내란의 소용돌이는 언제 그런 일이 있었던가싶게 잦아들고말았다.

새해 1010년에 들어서면서 서북방정세는 예상외로 평온해졌다.

웬일인지 거란측에서는 이전과는 달리 고려와의 충돌을 자제하는 모습이였다.

은천은 거란의 최근동향이 어쩐지 미타하여 강조에게 넌지시 물어보았다.

강조의 대답은 간단하였다.

《그것들이 내가 대문을 지켜서고있는줄 아는가보이.》

은천은 이런 때 거란내속을 잘 아는 하공진이 없는것이 안타까왔다.

그가 곁에 있었더라면 놈들의 속내를 좀더 자세히 물어볼수 있었을것이였다.

하지만 그 시각 하공진은 동북변방에 가있었다.

동녀진의 잦은 출몰로 동북방정세가 불안해진때문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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