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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2 회)

 

하 편

 

11. 조정이 위기에 처하다

 

4

 

개경 도성은 짙은 안개속에 잠겨있었다.

동쪽 산허리에 떠오른 아침해는 안개발에 가리워져 마치 달이 뜬것처럼 보이였다.

초당뜨락에 우두커니 선채 하염없이 도성을 내려다보고있는 은천의 심중은 착잡하기 그지없었다.

치양일당의 반정기도를 좌절진압해버리고 새 임금을 등극시켰으니 일단 위기는 넘긴셈이라 마음이 편해야 할것이나 오히려 더 불안하기만 한 까닭이 과연 무엇일가.

강은천은 최근 며칠사이에 벌어진 일들을 꼼꼼히 되짚어보면서 그 불안한 심리의 동기가 무엇일가 하고 생각하고있는것이였다.

새 임금은 아직 정무에 림하지 않고있었다.

등극을 선포한 다음 모든 일을 대신들에게 맡긴다 한마디 하고 침전에 든 뒤로 사흘째 일어나지 않고있는것이였다.

대신관료들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통 갈피를 잡을수 없어 전전긍긍하고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강조가 하라는대로 이리저리 끌려다니고있었다.

채충순 너는 침전밖에서 대기하고있다가 페하께서 일어나시면 즉시 분부를 내려달라 여쭈도록 하라, 유방 너는 이미 하던대로 내전 숙위를 탈없이 하라 등등으로 강조가 이르는대로 움직이는 판이였다.

치양일당을 치고 궁성을 장악하고 임금의 페위를 선포하고 새 임금의 등극을 선포하고 하며 국가의 중대사를 주관한 강조인지라 그 여세로 뒤처리를 련결하고있는것은 응당한것이라 생각되면서도 아직은 새 임금의 어지가 없는 속에서 제잡담하고 제 생각나는대로 정무처리를 하는것이 무언가 석연치 않고 도무지 안심치 않다.

그도 그럴것이 다른것은 그런대로 넘겨버릴수 있다치더라도 본래 임금의 뒤처리를 하는 모양이 썩 안겨오지 않기때문이였다. 태후와 함께 귀법사로 가있으라 하였는데 사실 이런 문제는 새 임금의 윤허를 받아해야 할 일이지 제 혼자 결심으로 할 일이 아닌것이다.

강조는 중추원사 최항을 페위된 임금에게 보내면서 궁성밖 멀리 적당히 내키는 곳을 정하고 그곳으로 가도록 하되 잘 시중들어주고 오라하였다. 먼저는 귀법사로 가있으라 하고는 또 하루밤 자고나서 생각을 고쳐서 아예 멀찌감치 보이지 않는 곳으로 가라 한것이다.

선대임금을 이렇게 무례하게 대할수 있는가?

은천은 이 점이 못마땅하여 강조에게 단도직입 의견을 주었다가 대번에 퉁을 맞았다.

강시랑은 외교정사를 전문하였다는 사람이 그렇게도 앞을 내다볼줄 모르는가? 그를 궁성 가까이에 그냥 눌러앉아있게 하였다가 어떤 환난을 겪게 될지 생각을 해보았는가? 하면서 벌컥 역증을 내였던것이다.

아니, 상왕으로 모실터이니 새 임금을 잘 도우라 한건 무언가? 라고 되물었더니 강조는 이렇게 말했었다.

《상왕으로 모신다 함은 선대임금에 대한 형식상의 례의일뿐이고 잘 도와주라 함은 이런저런 참녜를 하지 않는것이 진짜로 새 임금을 돕는거라는 뜻일진대 그걸 알아들었으면 멀찌감치 보이지 않는 곳으로 가서 은둔하는것이 적실한 처신이 아니겠는가.》

그다음에 한 말은 은천으로서도 전혀 생각해보지 못한것이였다.

《그가 그냥 자리지킴을 하고있으면 거란것들이 그걸 언질 잡아 우리가 새 임금을 모신걸 부정해나올수 있다는걸 생각해보았소? 그것들이 우릴 훼방놀자 접어들수 있단 말이요. 새로 모신 페하가 삼일천하로 될수 있다 그 말이요.》

얼핏 들어보면 엉뚱한 넘겨짚기요 다시 생각해보면 십분 그럴수 있는 일이였다. 아니, 어떤 모양으로든 거란은 꼭 시비를 걸어올것이 분명하였다.

은천은 더 다른 말을 해볼수가 없었다. 일이 어떻게 번져질는지는 누구도 아직은 알수 없기때문이였다.

새 임금께선 왜 아직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있을가?

은천은 안타깝기만 하였다.

은천자신도 알수 없었던것은 새 임금은 그사이 한지에서 여파를 겪는중에 몸에 무리가 와서 앓고있는중이였다. 치양일당의 끈질긴 습격과 포위속에서 보름이 넘도록 신고를 하였으니 몸이 견디여낼리 만무였던것이다.

사흘을 미음 몇모금으로 굼때면서 내처 잘 정도로 피곤이 몰려있었던것이다.

그 사흘간의 시간을 성미 급한 강조는 참아내지 못하고 제 내키는대로 일을 벌려나갔다.

목종은 강조의 말뜻을 알아차리고 거처지를 충주로 정하고 귀법사를 벗어났다.

일행이 길을 떠나 이틀째 되는 날, 강조는 사람을 파하여 적성현 고을의 주막에서 잠시 다리쉼을 하고있는 목종을 죽이는 엄청난짓을 저질렀다. 리유는 거란이 목종을 다시 룡상에 앉히자고 할수 있으므로 그 근원을 사전에 없애버린다는것이였다.

《전 임금 왕송은 나를 총애하였고 나 또한 그를 어릴 때부터 극진히 귀해하고 지금껏 받들어온바로 그를 죽이는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였노라. 하지만 고려국의 안녕과 번영을 위해 그가 존재하지 않는것이 마땅하다 생각되여 그리 한 일이니 후세에 역적이라 해도 할수 없는 일이노라.》

강조는 이렇게 자신을 정당화하였다. 새 임금에게는 전 임금이 자살했다고 보고하기로 했다며 누구든 이 일을 발설말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이후에 대신관료 누구도 이 사실을 함구무언하고있은탓에 새 임금은 거란이 고려를 침공하는 명분으로 강조의 죄목을 통고해서야 알게 되였다.

강조는 자기가 저지른 이 무엄한짓으로 해서 력사에 역적의 오명을 기록하였다. (《고려사》를 편찬한 궁정사가들은 강조를 역신의 반렬에 올리였던것이다. )

은천은 초당으로 나온지 이틀만에 강조가 전 임금을 죽이였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깜짝 놀랐다. 그는 강조의 이 엄청난 실수에 아연해져 말도 할수 없었다. 꼭 그렇게 극단으로밖에 일을 처리할수 없었단 말인가.

은천은 기가 막혀 망연자실한채 하루해를 보내다가 그만 자리에 눕고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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