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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9 회)

 

하 편

 

11. 조정이 위기에 처하다

 

1

 

만월대의 오른쪽둔덕우에 더덩실 네귀를 쳐들고 선 천추전(일명 천추태후전이다. ) 지붕마루 귀때기에 빛을 잃은 하현달이 삐뚤서 걸려있는 오밤중이였다.

한낮에도 이 천추전근방으로는 심부름하는 궁녀 몇을 내놓고는 발길질하는 사람이 별로 없어 소를 까도 모를만큼 그 속내를 알수 없는 바로 이곳이 실지로는 개경도성밖 장거리 따기군, 개평돌이 애들까지 다 알고있는 얼굴뜨거운 헌애왕태후 황보씨의 수청각, 사창골이다.

삼태성이 기울기 시작한 오밤중이 되였는데도 천추전 서쪽 장지문짬으로는 한줄기 불빛이 새여나왔다.

바로 그 시각에 이 천추전 내실안에서는 김치양과 천추태후가 속옷가지를 대충 걸친 알몸을 해가지고 초불아래 이마를 맞대고 수군거리고있었다.

《너무 속썩일것 없어. 첫술에 배부를텐가. 다음번엔 실수없이 해치울테니까.》

《들통이 났으니 문제가 아니요? 그 주지인지 하는것을 입을 봉해놓아야 할것인데…》

둘의 수작인즉은 무언가 죄되는짓을 하려던것이 틀어지고 그 사실이 알려질가 두려워 그 내속을 아는 주지인가 하는 사람을 죽이든 살리든 해야 한다는 소리였다.

김치양은 사흘전에 천추태후와 사전작당을 하고 자객을 파하여 신혈사에 은거해있는 대량원군 왕순을 죽이려 했다가 실패한것이였다.

일인즉은 이렇게 되였다.

김치양은 자기 졸개들을 시켜 천추태후가 제 이름으로 보내는 음식들에 독을 넣어 대량원군에게 먹이려 하였다.

그런데 로회한 신혈사 주지로인은 대량원군을 움속에 숨어있게 하고는 잠시잠간 소풍하러 뒤산 바위터에 올라갔다 둘러치며 모르쇠를 쳤다. 자객들이 으르딱딱거리며 강짜로 나오자 주지는 인생륜회요, 인과응보요 하며 전생에 죄를 지은터에 현세에까지 죄를 지으면 래세에 극락이 아니라 지옥에 가서 두벌죽음을 하게 된다는 불교교리를 일사천리로 강설하여 놈팽이들을 그 자리에서 무릎굽힘해버리고말았다.

돌아가서 이러이러하게 말하면 죽이지는 않으리라 말해서 돌려보내고난 뒤에 음식거리들을 절뜨락에 내뜨려 까마귀들이 주어먹게 한즉은 령험한 새라 일컫는 이 까마귀들이 몇번 주둥이를 대보고는 먹지를 아니하고 날아나버리고 조금 있다가 뒤미처 날아온 산까치들이 좋아라 주어먹고는 그 자리에서 죽어버리는지라 음식에 독이 든것을 알고 대경실색한 주지가 당장에 만백성에게 고변을 하겠다 길길이 뛰는것을 대량원군이 달려나와 간신히 눌러앉혀놓고 세상에 이 사실만은 절대 새여나가지 않게 해달라 빌고 또 빌었다.

대량원군은 위기를 넘겼으나 절간에 있지를 못하고 뒤산 바위굴에 몸을 피하지 않을수 없었다. 자객들이 돌아가서 대량원군이 음식을 먹는것을 보고 왔다 하였으므로(죽는것은 보지 못하고 급히 돌아섰다고 하였다. ) 죽은것을 확인하러 다른 놈팽이들이 또 왔다갔던것이다.

두번째 왔던 놈팽이들도 주지의 강설에 감화되여 무릎굽힘을 하기는 매일반이요, 돌아가서 이실직고하기를 주지는 침통한 얼굴로 입에 빗장 지르고 함구무언인것으로 보아 필경 죽은것 같다며 맺고 자름이 없이 애매몽롱한 소리라 치양이 두밤을 넘기고 짐작하기를 케가 틀린것으로 판단하고 하는 수작질이였다.

《걱정말어, 그 애(대량원군)는 죽은 몸이야. 며칠 더 살펴보고 아니 죽었으면 기어코 찾아내서 절간과 함께 통채로 불살라버릴터이니.》

치양은 이렇게 씨벌여대고는 살인거사는 못했어도 인육거사는 해야겠다는듯 성급히 태후의 몸을 덮쳐눌렀다.

《싹 걷어치워, 불한당같은것!》

태후는 고함을 지르며 치양의 얼굴을 후비다가 그의 배허벅을 올려찼다.

느닷없이 반격하는 태후의 발길질에 거시기를 채이며 뒤로 벌렁 나자빠진 치양은 한참동안 숨이 막혀 꺽꺽거리다가 그대로 양탄자우에 퍼더버린채 허거픈 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부… 불한당?! 흐흣…》

엉거주춤 일어서며 넘어진 초대를 바로세운 치양은 입을 삐쭉했다.

《속절없이 썩어가던것을 고이 품어 피워주었더니 한다는 소리 보아. 그래도 이 오래비덕에 젊은 시절 즐거이 보내고 자손까지 보게 된줄 알고나 그런 소리여? 이제 그 아들이 룡상에까지 오를 판인데!》

《개떡같다.》

발딱 일어선 태후는 음란한 춘화도가 그려진 탱화병풍을 휘장으로 획 당겨 가리워놓고 다시 침대에 올라앉아 홀짝홀짝 울기 시작했다.

《내 덕에 호사나 하면 되였지 그 잘난 종자를 룡상에까지? 흥, 망상도 분수에 닿는 망상을 했어야지. … 아, 이년이 혼이 나갔지, 나갔어!…》

《그러지 말게. 사람이 무서운게 없게 되니… 천하가 내 차지다 생각되매 그런 꿈도 꾸는거여. 어찌겠어, 이제는 쒀놓은 죽이라 쓰든달든 먹고봐야 할것이구만그래.》

치양은 풀어진 머리칼을 걷어쥐고 옹쳐매며 씨벌였다.

《보기엔 만만한것들인데 정작 손을 대볼라치면 풀쐐기 쏘듯 톡 내쏜단 말이야.》

치양이 하는 수작인즉은 조정의 관료들을 끌어당기려 했다가 거절당한것을 두고 하는 소리였다.

《제 족속들이나 잘 채근해요. 임금께서 하도 무던하시니 그런대로 견뎌배기는줄 알고 처신하라고.》라고 퉁을 준 태후는 《생각할수록 미안쩍기 그지없어. 이 에미 허물을 한번도 나무라지 않고 이날 이때까지 말없이 공경하는 그 애 정상을 생각하면…》라면서 다시금 눈물을 줄줄이 흘리였다.

《아, 그래서 나도 이러는것 아니여? 같은 값이면 제 동생에게 자리를 물려주게 하자고 말이여.》

치양은 제 종자를 받은것은 생각지도 않고 태후의 몸에서 난 아들이니 임금의 동생이라고 당치 않은 억지를 써대고있었다. 치양자신이 왕가의 사둔갈래이니 영 남남은 아니라고 자부하는 측면도 은연중 작용하는것이였다.

임금의 에미인 천추태후는 대종(왕욱- 태조 왕건의 넷째아들)의 딸이니 왕가의 직계혈족이나 치양은 대종의 처4촌조카이므로 왕가의 사둔계렬이 된다. 하지만 치양은 왕가의 인척일뿐인 자기의 처지를 굉장히 큰 존재로 스스로 올려추어가지고 제 아들을 얼마든지 룡상에 올려앉힐수 있다고 생각하는것이였다.

마침 임금이 두 녀인을 거쳤으나 아직은 자손을 보지 못하고있는것이 치양이 이런 허황한 꿈을 꾸게 하는 좋은 계기로 되게 하는 측면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전 임금인 성종은 이런 경우까지 다 예견한듯 안종(태조 왕건의 다섯째아들)의 아들 왕순을 제 손으로 고이 길러(왕순의 어머니 효숙왕후 황보씨는 아들을 낳고서 인차 죽었다. ) 왕송에게 넘겨주면서 이 애가 12살이 되는 해까지 아들을 낳지 못하면 이 애(왕순)를 일찌감치 태자후보로 책봉해두라고 죽기 전에 유언하고 그에게서 맹약을 받아놓았었다. 결국 왕송은 임기 일곱번째 해에 왕순을 태자로 내정함을 선포하였었다. 그런데도 치양은 감히 친계혈족의 씨를 몰아내고 인척의 씨를 앉히려고 작당하고나선것이다.

사람이 자고자대하면 과대망상에 빠지기 쉬운 경우가 바로 이들의 처사를 놓고서도 알수 있게 한다. 망상 그자체는 벌써 리성을 잃은데서 오는것이다. 리성을 잃은 망상가들의 운명은 대체로 비참한 결말을 보기십상이다.

이들의 과대망상이 기포처럼 부풀게 된데는 임금의 잘못도 없지 않다.

나이가 어리다고 할말이야 못하랴. 임금은 어미건 외숙이건 그른것은 그르다 꼬집어놓았어야 할것이나 그 일을 하지 않았었다.

임금인 왕송의 왕비인 신정왕후 류씨는 몇달 같이 살아보지도 못하고 원인 모를 병에 걸려 맥없이 죽고 그다음에 침전에 불러들인 궁녀 김씨는 임금의 총애를 빗대고 교만하게 치마바람을 일구다가 온전한 신하들만 못쓰게 만들어버리고말았다.

융대라고 하는 상인인 경주사람이 빚진자들을 자기 노비로 삼았다가 궁녀 김씨에게 바쳤는데 김씨는 이 노비들을 평장사 한린경과 시랑 김락에게 주면서 자기의 후원자가 되여달라 하였다. 왕비로 책봉하도록 상주시켜달라 부탁한것이였다.

이들은 임금과 잠자리를 같이하는 궁녀가 선사하는지라 안 받겠다고 하면 실례되는것 같아 노비들을 받아두었는데 어사대에서 이 사실을 캐여내여 임금에게 보고했다.

임금은 이 사실을 보고받은 즉시 궁녀 김씨는 벌금을 내게 하고(기록에는 구리 100근을 내게 하였다고 되여있다. ) 평장사 한린경과 리부시랑 김락은 귀양을 보내게 하였다. 조정의 기강을 바로잡는다는 명분에서였다.

아낙의 오지랖 넓은짓에 얼떨결에 걸려들어 쓸만 한 관리 두명이 졸지에 궁성밖으로 내쳐지였다.

하지만 칠 놈은 치지 못하고 변두리를 쳐서 기둥을 놀래워보려는 얼떨떨한 처벌에 치양의 족속들이 띠끔할리 만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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