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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8 회)

 

하 편

 

10. 새로운 싸움을 준비하다

 

4

 

《나리님! 그간 무고하셨소이까?》

《너 강쇠가 아니냐? 어떻게 불쑥 나타났느냐?》

은천은 강쇠의 출현에 어지간히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나를 영 잊어버린줄 알았더니… 저를 알아보시겠소이까?》

《아닌게 아니라 감감 잊고있었구나. 용서해라!》

《이제부턴 나리님곁을 뜨지 않겠소이다.》

《네 소임은 어떻게 하고 내곁에 있겠다는거냐?》

《강조어른의 승낙을 받았소이다. 서경군영에 적은 그냥두고 나리를 모시라고요.》

《강조가? …》

《중추사나리의 편지를 가져왔소이다.》

강쇠는 벙글거리며 봉서 한개를 꺼내준다.

은천은 서둘러 종이말이를 펼쳤다. 편지에는 임금께서 최근 몇해째 서경순행을 아니하니 이는 태조의 유훈에도 어긋남이요 거란을 의식해서라도 이해에는 꼭 행차하도록 함이 마땅하리라고 씌여있었다.

은천은 아차, 하는 생각에 이마를 쳤다. 조정일은 난 모른다 하고 한발 뽑고있은즉은 이런 실책을 범하고도 모르고있는 지경에 이른것이였다.

은천은 서둘러 임금에게 서경순행을 간청했다.

《내가 자리를 떠도 되는것이요?》

임금은 머리를 기웃했다. 조정일을 안심할수 없다는 뜻이였다. 찍어 말하지는 않지만 김치양이네를 의식하고있는것이였다.

《서경 역시 우리 고려의 도읍이라 태조께서 년중 봄과 가을의 중간달에 어김없이 서경을 순행함이 고려국의 만년대업을 도모하는 길이라 하신것을 잊어서는 아니될줄 아옵니다.》

은천의 간언에 임금은 머리를 끄덕였다.

《내가 서경으로 거동하면 거란이 반발할수 있으니 자제함이 좋으리라 태후께서 간청하더라니… 다 내 불찰이요, 선조의 유언을 잊다니. 그럼 서둘러 가도록 합시다.》

임금은 응해나섰다.

서경에 들어간 임금은 손수 말을 타고 달리면서 활쏘기시범을 보이고 군사들의 훈련도 보아주면서 보름가까이 체류하고 돌아왔다.

《중추사어른은 그만 돌아가지 않으시려오? 도순검사소임은 짬짬이 해도 될 일인줄 아오.》

임금은 떠나는 시각에 강조더러 개경에 돌아가자고 권유했다. 강조가 조정의 직무는 아예 손털고 나앉은것이 잘된 일이 아니라는 소리였다. 사실을 말하면 임금은 강조에게 중추사직은 그대로 둔채로 도순검사직을 겸임시킨것이였기때문이였다.

《중추부사 채충순이 소신보다 일을 더 잘하는것 같사와 전 그냥 있으려 하나이다.》

강조는 속에 없는 빈소리는 하지 말라는듯 비양기가 가득한 어투로 퉁명스레 대꾸했다.

《좋을대로 하시오만… 난 중추사어른을 믿소이다. 실은 여기도 개경 못지 않게 중요한 곳이니 어른이 여기 있으면 내가 한결 마음을 놓을것이요.》

임금은 떠나갔다.

은천은 임금에게 간청하여 며칠 더 머물러있기로 승낙을 받았다.

《페하를 아예 눌러앉히실걸 그랬소. 생각같아선 아예 서경이 기본도읍이다 하고 콱 선포해버리고싶은걸 겨우 참았다니.》

강조는 은천에게 기고만장해서 말했다.

《그 작자들이 요즘은 꽤 량순해진 모양이더군.》

《웬걸요. 그네들의 속이야 알 재간이 있더라구요. 얼굴에 노상 화색을 그려붙이고 맴돌이를 하는것들이니…》

《그래도 그자들이 강시랑은 곱게 보는가보이.》

《웬걸요. 내가 저들에게 위험한 존재는 아니라고 보니까 그런대로 현상유지나 하는 꼴이지요. 페하께서 마음고생이 많으십니다. 그속에서도 균형을 맞추어가고있지요. 그네들 말만 듣지는 않으니까요.》

《그럼 누구의 말을 또 듣소?》

《평장사 한린경어른과 중추부사 채충순, 리부시랑 김락 그리고 형부상서 최사위와 형부랑중 양규 등 적지 않은 대신들의 말을 들어보고 결심을 내립니다. 천추태후가 섭정한다는 소린 더는 들려오지 않소이다.》

《모를 소리! 대량원군을 신혈사로 쫓아버리는것도 막지 못한 임금이 섭정을 안 당한다고 볼수 있소? 중추부사 채충순이 그놈은 내가 그만큼 당부를 하였는데도 속대없이 치양이 그 작자가 하라는대로 해? 숙위군(궁성내부호위군)을 치양이 아들놈이 거느리게 했다면서?》

강조의 이 말에 은천은 말문이 막혔다. 그러고보면 임금이 대신들의 조언을 적극 받아들이면서 자체로 정사를 보는듯 하나 요진통은 여전히 치양일당이 쥐고 흔드는것이 분명했기때문이였다.

《이 강조가 괜히 서경에 틀고앉아있는줄 아는가. 여차하면 페하를 이곳으로 모셔다놓고 이 서경을 기본도읍으로 선포해치울 작정이란 말이요. 난 이 서경에 단단히 뿌리를 내렸소. 대도수장수가 나와 배짱이 잘 맞소.

그리고 말이요, 이번에 페하께 승낙을 받아내였지만 난 하공진이도 여기로 올려오려 하오. 상서성 좌사랑중으로 등용하여 조정일에 눈을 틔운 다음 나의 외교보좌역으로 써먹을 작정이요. 물론 페하를 여기에 모시는 조건에서 말이요.》

강조는 마치도 자기가 문하시중이나 되는것처럼 임금아래 제 일인자인양 말하고있었다.

《중추사어른! 거 개경쪽에서 그 말을 들었다간 당장에 반역을 꾀한다 걸고들것이오이다.》

《아, 지금 반역을 하고있는 작자들이 되려 날 반역한다 해? 어림없는 소리! 군사는 내 손에 쥐여있네. 례성강에서 압록수까지 내 손탁에 들었는데 그자들이 개경에나 틀고앉아서 나를 어째볼수 있을가?! 흥, 참새 소뿔쫏기야.》

강조는 코웃음쳤다.

《나라를 지키자면 내치(나라안의 정치)를 먼저 해야 하느니. 내환을 막고서야 외환을 막을수 있고말고. 두고보오만 내 치양이 그 일당을 가만두지 않을테요. 이게 바로 지금의 이 나라를 지키는 길이요. 내 말이 틀리오? 강시랑!》

《내환을 막아야 함이 순서인건 옳소이다. 김치양, 아무리 따져봐야 그 사람은 있어서는 아니될 사람이오이다.》

《그렇단 말이요.》

강조는 은천의 대답에 만족한듯 끙 소리를 내며 한무릎 다가앉았다.

《형부랑중 양규 그 사람을 눈여겨봐두시오. 그 사람이 재목이요. 하공진의 말에 의하면 양규 그 사람이 하공진에게 은밀히 부탁을 하나 하였는데 말이요, 압록강너머 고구려 옛 성들을 잘 보수해달라 하였다는거요. 그러고보면 양규 그 사람이 고구려때 안시성 성주였던 양만춘 장수의 후손이란 말이 틀리지 않는것 같소.》

《아마도 그런것 같소이다.》

《그런 사람은 유사시에 진짜로 자기 몫을 할거요. 내 인츰 그 사람을 병부로 돌려달라 상주할테요. 하긴 싸워야 할 때 가서 제꺽 등용시키면 될 일이오만… 그리고 참, 유방 그 사람도 앞날의 장수감이요.》

《유방이라니?》

《참, 강시랑은 모르시오? 유방이 살아돌아온걸!》

《안융진에서 싸운 랑장을 말하는것이오니까?》

《그렇소. 우린 그가 죽은줄만 알고있었으니… 그때 부상을 입고 정신까지 잃은 유방은 거란군의 시체무지에 뒤섞여 청천강물에 던져졌다오. 그는 적군무리속으로 깊이 들어가 싸우다보니 쓰러지면서 적 시체속에 함께 묻혀버렸던거라더군. 청천강하구는 바다물이 드나드는 곳이라 거기서 떠내려가다가 기슭에 걸렸던거요. 마침 조개캐러 나왔던 조무래기들이 발견하고서 마을에 알려 실어다 살렸다더군. 동리사람들이 그가 숨이 붙어있는것을 보고서 지켜앉아 죽물만 먹이면서 보름만에 끝내 정신을 차리게 하였는데 전신동상이여서 언독을 빼는데 한해가 걸리고 팔다리를 움직이게 하는데는 무려 삼년이 걸렸다질 않소, 삼년이.》

《그 바다가 마을사람들이 정말 용소이다.》

《은인들이지요.》

《하늘이 두번다시 명을 주었군요.》

《대도수 그 사람은 왕왕 울면서 붙안고 뒹굴고 야단이였소. 난 평양성에서 좋다는 약은 다 구해다주었소. 이젠 예전 그대로요. 완전히 회복되였소. 룡강에 온천물이 나온다 하기에 지금 거기에 보냈소. 내 이제 그를 궁성호위군사로 보낼테요. 페하께 상주해서 김치양이 아들놈을 갈아치우고 그자리에 앉히겠소. 김치양이따위한데 페하의 안전을 맡길수 없단 말이요.》

《그건 정말이지 좋은 생각이오이다.》

은천은 강조의 결심을 지지했다.

《강시랑! 오늘 밤 우리 바지끈을 풀어놓고 량껏 마셔보세.》

《오늘 한턱 내시려나이까?》

《내 서경의 특산을 대접하리다.》

군사 넷이 맞들고들어온 음식상엔 구운 오리와 조개가 더미지여 놓여있었다.

《자, 이건 대동강물오리를 잡아 튄것이고 이건 대동강얼음을 까고 작살로 찍어잡은 가막조개요. 노루고기, 사슴고기가 제아무리 고소한들 이 대동강오리에 비기며 해삼, 전복이 달다 한들 이 가막조개에 비길손가.》

강조가 가리키는 대동강물오리는 기러기만큼 크고 살이 진것들이였고 대동강가막조개는 한개가 놋밥바리뚜껑만큼씩 한것들이였다.

《술은 평양성의 특산인 문배주요. 우리 태조께서도 평양성에 왔다 하면 이 문배주외에 다른 술은 안드셨다 하더이다. 개경의 송화주나 인삼주보다 나으면 나았지 결코 못하지 않다오. 자, 어서!》

강조는 대접이 넘쳐나게 술을 부어 은천에게 권하고는 자기도 꿀꺽꿀꺽 걸탐스레 들이켰다. 그리고는 손바닥 두개 합친것만 한 가막조개 하나를 들어 벌어진 사이로 손을 넣어 뚝 뜯어내서는 단번에 입안으로 쓸어넣고 몇번 우물우물 씹는둥마는둥하다가 두눈을 부릅뜨며 꿀꺽 삼켜버렸다.

그는 은천이 가막조개살 한쪽귀때기를 칼로 저며내여 초장에 찍어먹는것을 보고는 눈을 찡그리며 나무랐다.

《대궐그늘안에만 앉아있더니 사람이 영 못쓰게 되였군. 내가 알기로는 강시랑도 무인이라 들었는데 이제 보니 먹물에 쏙 빠진 약골샌님이야, 쯧쯧…》

은천은 은천이대로 강조를 힐난했다.

《가마솥만한 조개 한짝이면 배가 차고도 남겠는데 이 많은 조개를 둘이서 먹자고 무져들여왔소?》

《둘이 먹지 않으면? 먹은 소가 힘쓴다구 사람도 먹는만큼 힘을 쓴단 말이요. 난 콜짝콜짝 먹는 놈을 보면 귀통을 답새겨놓소. 싸움을 하자는 놈이냐 말자는 놈이냐 하면서 말이요.》

《중추사어른! 마음이 놓이오이다. 어른께서 기세가 충천하신걸 보니 내 시름이 말끔히 풀리오이다.》

《내 강시랑이 소식가라는걸 몰라서 그러는게 아니요. 기가 죽지 말라고 그러는거요, 기가 죽지 말라고.》

《잘 알아들었소이다, 중추사어른!》

은천은 마음이 한결 풀려나며 기분마저 상쾌해졌다.

확실히 여기 서경분위기는 개경과 달랐다. 서경사람들에게서는 옴츠리고 꽁꽁 싸매두고 속통을 감추고 오물거리는 개경벼슬아치들의 행색을 꼬물만큼도 찾아볼수 없었다. 말을 해도 탁 트인 소리를 하고 행동을 해도 씨원하게 결패가 있게 하였다. 싸움군들이 모여사는 맛이 한눈에 안겨왔다. 고구려 옛 도읍의 기상이 사람들의 체취에 그대로 슴배여있는것이였다.

은천은 한결 거뜬해진 기분으로 개경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은천의 개운해졌던 기분은 얼마 가지 못하였다.

궁성에 돌아와 설을 쇠고나자바람으로 정초부터 동녀진의 침습으로 동해안의 등주(안변)에 군사를 파하는 소동이 벌어지더니 조금 지나 이번엔 지방관리들을 급작스레 교체하는 소동이 또 벌어져 나라가 어수선해진때문이였다.

군사를 파하는 일은 병부의 몫이고 관리교체는 리부의 일이라 례부의 시랑인 은천에게는 이 복닥소동이 자기 신상에 무관계한것처럼 생각될테지만 나라전반을 생각하는 은천으로서는 여간 골아픈 상황이 아니였던것이다.

등주에 파견한 군사는 굼뜨게 기동한탓에 제할짓을 다하고 도망치는 녀진인들을 잘 가라 배웅하는 환송행렬모양이 되여버렸고 그곳 민심을 안정시키기는 고사하고 한만 더 사게 하고 돌아왔다. 불타버린 집들을 다시 지어야 할 백성들을 목책공사에 내몰아 엄동설한에 떨면서 부역에 치우게 하다나니 숱한 동상자들을 낸때문이였다.

지방관리교체로 인한 후과는 더 한심했다. 옛 신라땅의 고을들은 말할것도 없고 로령, 죽령, 리화령, 추풍령너머 한수(한강)까지 어간의 꼴꼴한 고을들은 모조리 김치양일당의 차지가 되여버렸다. 한수너머에서 림진강까지 어간의 터가 좋은 고을들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김치양일파는 부임하자바람에 관청을 보수한다, 개축한다 란잡한 부역소동을 일으켜 온 한해 들에서 고역을 치른 농군들이 그나마 기대했던 겨울잠도 못 자고 들볶이우게 했고 농번기에 들어서면서부터는 춘궁에 허덕이게 만들었다.

이로 해서 혼란된 민심이 나라방비에 등을 돌리는 후과를 가져온것이 더우기 문제였다. 군역대신에 내는 군포를 감당하자 해도 백성들의 집들에는 여유가 없었다. 쌀독에서 인심난다고 깔고있는것이 있어야 낼것도 있겠는데 관가에 뜯기우고 나머지로 당장의 코밑 구제도 힘든 판에 어떻게 조세를 낸단 말인가.

이해따라 가물과 장마가 련속으로 겹치여 곳곳에서 한재와 수재가 나고 류랑걸식자가 길을 메웠다.

그렇게 한해를 보내고나서 조금 가라앉는듯 하던 민심이 이번엔 느닷없이 휩쓸어온 원인모를 전염병으로 해서 또다시 뒤죽박죽이 되여버렸다.

장마 초엽에 벼락이 하필이면 임금이 거처하는 천성전뜨락의 해태돌상을 내리쳐 기절초풍한 임금이 자기의 허물을 반성한다, 죄수들을 놓아준다, 효자, 순손(착한 손자), 의부(의로운 남편), 렬녀들에게 상을 준다, 명산대천에 제사를 지내고 훈호(땅귀신, 물귀신들에게 이름을 지어올리는것)를 붙인다 하며 온 한해를 궁성밖으로 떠돌아다니였다.

다음해인 1007년에는 순행차로 서경에 가서 저녁수라를 들다가 갑자기 땅이 진동하는통에 기겁해서 그밤으로 개경으로 황황히 돌아오고말았다.

또 한해가 지나서 바로 전해의 그무렵(10월)이 될즈음에는 서경의 지신을 찾아뵈워야 한다며 서경으로 가서 요란한 제사를 지내여 국고를 축내였다.

10대에는 장대한 기골에 문무를 겸한 상이요, 온몸에 천기를 꿰뚫는 기상이 뻗쳤으니 룡상을 타고난 운수요 하는따위의 칭찬만 받으며 자라온 임금이건만 정작 왕위에 오르고난 뒤에는 하늘도 땅도 한껏 조롱만 일삼는듯 천재지변까지 겹씌워주니 임금의 그 지친 얼굴을 보고서는 서른전의 젊은 나이라고는 믿어지지 않게끔 되였다.

임금은 제사를 지내기 위해서 서경에 간 기회에 궁성호위대장을 유방과 바꾸라는 강조의 제의를 군말없이 수락했다.

그도 그럴것이 최근 몇해사이에 한재, 수재에 천재까지 입는 이 모든것이 바로 김치양일당의 전횡으로 말미암아 빚어진 인재라는것을 임금은 어렴풋이나마 느끼고있는것이였다.

어제는 김치양과 어미 천추태후의 압력에 못이겨 강조를 궁밖으로 내친 처지이지만 지금 와서 보면 그래도 강조를 위시한 앞서 임금때의 대신들이 더 믿음성이 있다는것을 늦게나마 깨닫기 시작한것이였다.

임금의 정상이 너무도 처량한지라 은천은 그러다가 임금이 아예 쓰러지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불쑥 들었다. 임금이 강심을 먹고 버티고 일어서게 만들어야 했다.

은천은 기회를 만들어 임금을 찾아갔다. 그 자리에서 은천은 임금에게 선대임금앞에 맹세했던 조항을 다시금 상기시켜올렸다.

태조의 유훈을 받들고 선대임금들의 경험을 참작하며 특히 군사를 최우선 첫 자리에 놓으며 성종임금이 총애하던 신하들을 믿고 아끼며 그들에게 의지하라는 내용이였다.

임금은 말없이 머리를 끄덕이였다. 그자신도 외척에게 롱락당하는 자기 권위를 알고있는것이였다.

《강시랑은 어려울 때 나를 진심으로 받드는 고마운 충신이요. 그런데 선대임금때부터 내 대에 이르기까지 십수년을 한자리에 고스란히 머물러있게 했구려. 이제라도 등급을 올려정합시다.》

《그러지 마시오이다. 내가 겪어보니 이 자리가 페하를 보필하기에는 제일 맞춤한 자리오이다. 신은 이 자리를 지키고있겠소이다.》

은천은 임금의 제의를 극력 사양하였다.

《페하께서 심신을 정히 가다듬으시고 강잉히 견디여내시면 모든것이 순조로이 풀릴것이오이다. 너무 상심마소서.》

은천은 임금을 위로하고 나섰다.

은천을 만난 뒤 임금은 얼마간 마음을 진정하고 정사에 주력하였다.

유방을 친종장군으로 명하여 궁성숙위를 담당케 하고 하공진을 상서 좌사랑중으로 임명하고 병부일을 협조하게 하면서 중앙군의 한개 위를 거느리게 하였으며 형부랑중 양규에게도 중앙군의 개경주둔부대를 직접 지휘하게 하였다.

그러나 새해에 들어서면서 임금은 끝내 쓰러지고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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