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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7 회)

 

하 편

 

10. 새로운 싸움을 준비하다

 

3

 

중대문앞 담장사이로 줄줄이 서있는 감나무들에서 누런 떡잎이 하나, 둘 떨어져내리고있었다. 올해에는 웬일인지 감알도 몇알 안 열렸다.

은천은 머리도 쉬울겸 틀었던 올방자를 풀고 일어나 뜨락을 내려섰다.

마당에 한벌 쭈욱 깔려있는 검누런 감나무잎들을 밟으며 몇걸음 옮기다보니 저편에 또 한사람이 팔을 운동삼아 휘저으며 마주오고있다.

형부에서 랑중으로 있는 양규였다.

(저 사람도 나처럼 전방으로 보내달라 임금에게 청하였다가 퇴짜를 맞았겠다. )

생각이 이에 미친 은천은 스적스적 그에게로 마주 다가갔다.

은천은 강조가 서경으로 떠나간 뒤 모든것이 귀찮아지고 손에 일이 잡히지 않아 전전긍긍하던중 서경을 한번 다녀오겠다 임금에게 제의했었다. 하지만 임금은 즉시 거절해버렸다. 자꾸 자리를 뜨면 정사는 누가 보느냐며…

그때 임금이 형부랑중인 양규를 떠올리면서 자기곁에 있어야 할 사람들이 자꾸 그러면 안된다고 꾸중절반, 사정절반 하였었다.

은천은 양규의 심사가 여간 뒤틀려있지 않으리라 짐작이 갔다. 일처리가 대쪽같아 형부의 체면을 그런대로 세워주는이로 꼽히고있는 그였지만 나라안팎에 소문난 김치양일파의 비행을 어느것 하나 건드려본것이 없는 그가 무슨 낯으로 얼굴을 들고 다니랴, 고민이 많을것이였다. 그가 오죽했으면 변방으로 나가겠다 하였으랴.

《올해엔 감알이 별로 적게 열렸소이다.》

은천이 먼저 말을 건네자 양규는 기다렸다는듯 대꾸했다.

《우리네 충효하는 마음이 기운을 잃었는데 감나무라고 어찌 따르지 아니하겠소이까.》

양규는 허리를 굽혀 떨어진 감나무잎 하나를 주어들고 중얼거렸다.

문무충효절이라…

잎은 서당애들 글씨쓰기에 제격이고

가지는 활로 쓰이여 군사일에 보탬하고

열매는 붉고붉어 충성의 상징이요

늙은이도 쉽게 먹으니 효성 또한 으뜸이라

잎은 떨어져도 열매는 그냥 달려 눈서리를 이겨내니

절개 또한 당할자가 없으리니

감나무야 네 본 따서 문무충효절 지니고싶었더니

세월따라 너마저 그 빛을 잃는거냐

무인인 양규의 입에서 이런 시구가 흘러나올줄이야. …

은천은 양규가 꼭 자기를 비웃어 하는 말로 들려와 얼굴이 저절로 붉어졌다.

《그만하시오, 랑중! 내 얼굴이 감알보다 더 붉어지는듯 하오.》

《시랑나리! 나리께서도 이 사람을 비웃을테지요?》

《피차 같은 처지라 그런 말은 그만둡시다.》 은천은 양규에게 손을 내저었다. 《힘이 들긴 랑중도 마찬가지일테지요. 그래도 랑중께선 그럭저럭 소일거리라도 만들어 일을 하시는가본데…》

은천은 양규가 얼마전에 경주일판을 휘젓고 올라온것을 빗대고 넌지시 말문을 틔워준다. 김치양일파의 본거지인 경주일대 고을아전나부랭이들을 볼기짝이나마 치고 올라온것인데 탐관오리들을 엄벌할데 대한 임금의 어명을 시행한것으로써 그런대로 형부의 면목은 세운 꼴이였다. 김치양일파의 엉덩이를 조금은 쑤셔놓은셈인것이였다.

《곱게 볼기를 맞는 꼴이 여간 간특하지 않더이다. 속으론 그것들이 벼르고있을겁니다.》

《벼른들 어쩔것이요? 죄진 놈 뒤 가려웁다고 찍소리도 못하는것 보오. 그깟놈들 한짓에 비하면 그쯤한 벌은 약과요. 그래도 형부에선 상서나리가 목을 곧추 세우고있는지라 한결 편할거요.》

형부상서 최사위를 념두에 두고 하는 말이였다. 그가 그런대로 김치양일당을 내놓고 타매하는데는 조정에서 일인자였다. 강조가 자리를 피하니 그가 대신 맡고나선것이였다.

《에둘러치든 곧추 치든 그자들의 꼭뒤를 어떻게든 눌러놓아야 하겠기에 나도 페하께 교서를 하나 내려달라 상주하려고 초안을 하나 잡아 보았소만…》 은천이 스치듯 한마디 하자 《어떤 교서를 내리게 하려나이까?》 하고 양규가 되물었다.

《궁성과 지방고을들에 학풍을 장려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례의를 알고 분수에 닿게 처신하는 풍속을 살려보자는것이온데…》

《백성들과 일반 서생들의 눈을 틔워 민심으로 그자들을 억제한다는건가요?》

《딴은 그러하온데… 말귀에 경읽기가 되지 말아야 할것이지요.》

《지각이 있는 놈들이면 자극을 받을것이지요. 그런 일도 여간 중요한게 아니옵지요, 》

양규는 긍정하는 립장이였다.

이후에 은천이 상주한 이 교서초안은 한동안 묻혀있다가 이듬해인 1003년 정월초에 내려졌다.

《옛날 우리 태조는 전쟁이 끝난 뒤에 대소학교들을 광범히 창설하여 왕실자손들은 경서를 끼고 도를 배웠으며 민간자제들은 책상자를 메고 선생을 찾아갔으므로 여러 왕대를 내려오면서 인재가 결핍되지 않았었다. 나는 어진 사람으로서 어렵고 중대한 국사를 계승하여 진실한 유학의 도를 널리 선전하고 옛날 성인의 계획을 존중하려고 한다. 그러나 아직 사람을 열심히 가르치는 선생도 많지 않고 옛것을 좋아하여 알뜰히 배우려는자도 적은듯 하다. …

이제 현명한 인재들을 등용하고 선량한 사람들을 승진시키는 길을 넓히려고 하노니 3경 10도의 모든 관료들은 나의 타이르는 뜻을 체득하고 학업을… 장려하고 그중 특히 부지런한자가 있거든 이름을 기록하여 나에게 보고하라.》

은천은 그동안 생각해두었던 교서초안을 련이어 상주하여 한달이 지나 이와 비슷한 교서를 또 내려보내도록 하였다.

나라에 3강5륜의 도와 례가 지배하고 각자는 지나친 욕심으로 자기자신의 정신과 육체를 해되게 하지 말라는 등의 내용으로 김치양일파의 흐린 물이 민심의 지탄속에 가셔지게 하려는 소박한 기대를 피력하였었다. 좋은 말로 타일러서 어떻게든 바로잡아보려는 눈물겨운 호소였다.

하지만 김치양일파의 비행은 끊기지 않고 계속되였다. 김치양의 뒤에 임금의 어미인 천추태후가 있어 교서따위에는 띠끔도 안하고 전횡을 일삼은탓이였다. 이해에 천추태후 황보씨는 김치양과 간통중에 아들까지 낳았으니 더 말해 무엇하랴.

천추태후는 김치양의 꼬드김에 넘어가 그와 자기사이에 난 아들을 태자로 삼을 어벌 큰 룡꿈까지 꾸는 정도에 이르렀다.

급기야 대량원군 왕순은 머리를 깎고 삼각산 신혈사로 쫓겨가는 신세가 되고말았다.

이 일을 장차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은천은 펄썩 주저앉고말았다. 더이상 모지름을 쓸 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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