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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6 회)

 

하 편

 

10. 새로운 싸움을 준비하다

 

2

 

강조는 임금에게 상소문을 올리는것으로 자기의 첫 목소리를 내였다.

《현재 조정과 지방관아를 통털어 정사에는 관심이 없고 자기 일신만 추구하는자들이 득세하고있으니 이를 바로잡는것이 급선무라 아뢰오.》

임금은 강조의 상소문을 심중히 대하였다.

《밤낮으로 짐의 주위에서 떠나지 아니하는 중추사어른께서 할말이 있으면 직접 할것이지 이토록 글을 내여 례의를 차릴 까닭이 무엇이오?》

《페하의 주변에 이 강조의 언행을 노려보는 눈과 귀가 너무도 많사와 신은 부득불 이 방법을 쓴것이오이다.》

강조를 내려다보는 임금의 눈길은 몹시 긴장해지고있었다.

《자기 집 정원에 못을 파고 정각을 세우느라 군사들까지 동원한단 말이 정말이겠소?》

《참으로 그러하오이다. 소신은 군사업무로 개경과 지방관아를 두루 돌아보았사온데 실로 한심하기 그지없었소이다.》

《그런자들이 대체 뉘들이요?》

《선대임금을 받든이들에게서는 그런 일이 없사옵고 페하께서 등극하신이래 새로 요직에 오른자들속에 주로 있는 상태임을 아뢰는바옵니다.》

《찍어서 말하오. 내가 등극해서 등용된자들이라 함은…》

임금의 목소리가 그만에 잦아들고말았다. 강조가 말하는 새로 요직에 오른자들이란 다름아닌 자기의 외촌숙계렬 사람들을 두고 하는 말인것을 알아들은것이다.

이 사람이 설마 김치양을 겨누고 상소하는것일가?

임금은 더듬거리며 말을 이었다.

《그대는 우복야 김치양대감을 말하는것이오?》

《그러하오이다. 상소문에도 언급하였거니와 우복야대감을 위시한 그의 친인척계렬 관리들이 국고, 지방고를 마구 털어 제 입치레와 옷치레에 집치레에까지 무서운줄 모르고 사치와 랑비가 랑자하니 민심과 군심이 여간 소란하지 않사와 나라기강이 념려되오니 속히 알아서 조처해야 할줄 아오이다.》

말을 마친 강조가 넌지시 임금을 바라보니 임금의 이마엔 어느새 진땀이 배여있었다.

자극이 되신가본데?! 강조는 으험, 헛기침을 하며 임금의 대응을 기다렸다.

임금은 강조자신도 자기의 은총으로 벼락출세를 한셈인데 같은 처지인 김치양을 너무 꼬집는것만 같아 속이 알알한 모양 같았다. 하지만 높은 자리를 차지하였으면 그만큼 나라일에 힘을 넣어야지 일신의 사치와 향락이라니 그건 되여먹은 처사가 아니였다.

강조자신은 일찍부터 지방호족이라 자기 손을 놀려 누리는 부귀영화를 누가 흠잡아볼것도 없는것이였다.

반면에 외숙 김치양은 땡중노릇이나 하던 돌팔이난봉군인지라 권욕을 채우고나자 색욕은 말할것도 없고 금욕, 치부욕에 눈이 뒤집혀 돌아가는줄을 모를리 없는 목종이였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김치양대감이야 지체가 그러하니 그쯤은 무리한게 아니지 않소?》

임금은 잦아드는 목소리로 그래도 김치양의 흠만은 덮어두려는 의향을 내비친다.

《그를 본따는자가 너무도 무수하여 그 페단이 너무 심하기에 하는 말이오이다. 나라에서 관리들을 등급을 따져가며 찍어준 한계가 있는데 분수에 닿지 않게 아홉칸 쓰게 된자가 열여덟칸, 스물두칸 쓰고있지 않으면 종을 다섯명 두게 되여있는자가 열명, 스무명 이상 사노를 두고있는자가 셀수 없으니 이게 어찌 흘려보낼 일이오이까.》

아닌게 아니라 이즈음에 김치양이 개경거리 한가운데에 정말인지는 몰라라 300칸이나 된다는 대궐맞잡이 집을 짓고 사는것을 임금은 모르지 않았다. 그 300칸이란것이 뒤간, 마구간 다 합한것이라 할지라도 아흔아홉칸이라면 또 몰라라 그 세네배인 300칸이라니 지나쳐도 여간 지나친것이 아니였다.

외켠족속들이 너도나도 그 본을 따서 개경안팎과 멀리 지방고을에 이르기까지 더덩실 고대광실을 짓고서 밤낮으로 뚱땅거리는줄 어이 모르랴.

하지만 심지가 나약한 임금은 그런것을 꼬집어 훈계할 위인이 못되였다.

나이가 어린탓도 있겠지만 그래도 저 사람들이 나를 받드는 대들보들이다 하는 생각에 그르다 욕할 용기를 내지 못하는것이였다. 그럭저럭 눈감고 외면하며 지나쳐버리고있었는데 그만에 강조 이 사람이 입을 열고 나선것이였다.

임금은 강조를 뒤에서 훈수하는 사람이 은천일것이라는것도 즉시에 직감했다. 궁중안에서 자기의 처사를 놓고 내놓고 불만을 표시하는 사람은 그외에 몇사람 안되였던것이다.

임금은 긴 한숨을 토해냈다.

《이들이 페하의 선성을 빗대고 분별을 잃고 이마를 쳐드는것이 문제오이다. 백성들은 이자들보다 페하를 더 욕할것이 아니오이까.

오늘 소신은 실로 하기 힘든 말을 하였소이다. 나를 믿어 중임을 맡겨주신 페하이신지라 페하 손에 목이 잘리운다 해도 한이 없다 생각하고 이런 상소를 한것이니 신을 처분해주시오이다.》

말을 마친 강조는 머리를 깊이 숙이였다.

《머리를 드오, 중추사어른! 나를 돕는 일이란걸 리해하고도 남음이 있으니 어른은 마음을 조이지 마오. 내 어지를 내리리다.》

《황은이 망극하오이다. 페하!》

강조는 다시한번 머리를 깊숙이 숙이였다.

《교서의 원본은 강시랑이 초잡는게 좋을것이지요?》

임금은 강조에게 의논조로 다시 물었다.

《페하의 분부라고 전하여 인츰 꾸며오겠소이다.》

강조는 급히 일어나 돌아섰다.

임금이 나이는 어려도 총기는 여간 아니였다.

선대임금 성종께서 사람을 헛보지는 않으셨구나!

강조는 이런 생각을 하며 의기양양해서 은천에게로 갔다.

이튿날 강조는 은천이 밤새 쓰고 다듬은 장문의 어지초안을 임금에게 바치였다. 그날 정오시간에 임금은 자기의 이름으로 된 교서를 비준하고 서둘러 하달하게 하였다.

《고려사》세가 3권 목종편 임인5년(1002) 여름 5월 기록에는 《…토목사업을 광범히 일으켜 군사들과 장정들에게 로력을 내게 하고 높은 루대를 세우고 깊은 못을 파서 노는 장소를 마련하여 민호들을 괴롭게 하는… 함부로 쓸데 없는 일들을 하였다. 이런 일들은 비록 신하들의 요구에 의한것이라 하지만 역시 나의 잘못이 아니겠는가. 그것은 다만 군사들의 원망을 일으켰을뿐아니라 또한 전체 백성들의 고난으로 되였다. 이러한 때에 만일 군대를 모아 훈련할 일이나 적국이 침입하고 우리가 징벌해야 할 일들이 생긴다면 장차 어디서 용사를 구하며 어디서 사람을 얻겠는가.

…부족하나마 기왕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고 지난 경험을 장래의 교훈으로 삼는데 더욱 힘쓰려고 한다. 특히 나의 뜻을 군대내에 선전할것이며 모든 관청들에서는 각각 6위군영을 형성하고 직원과 장수들을 배치하며 군사들에게는 잡역을 면제하여줄것이다.》라는 임금의 교서가 내렸음을 기록하고있다.

임금의 이러한 교서에 김치양일당은 처음에는 찔끔 놀라 목을 움츠리였다. 하지만 형조의 칼날은 날아오지 않았다. 그도 그럴것이 김치양이 나라의 통치일반을 장악하고있는데야 누가 감히 저네들을 겨눌것인가.

저들이 한짓이 죄로 다스려질리 만무일뿐더러 자제하라는 호소에 불과한것임을 알아차린 이 일당들은 얼마동안 움츠렸던 앞목을 다시금 빼여들었다. 소리치며 뻐젓이 하던짓을 소리를 내지 않고 은밀히 계속했다.

그뿐이면 작히나 좋으랴. 이 패당들은 안방에 모여 꿍꿍이끝에 저들의 비행을 상소한 강조를 고사(말리워죽인다는 뜻)하려들었다.

하지만 강조는 그렇게 호락호락 넘어질 존재가 아니였다.

김치양일당은 날을 넘기고 해를 보내며 퍼그나 품을 들인 끝에 기회를 타서 강조를 중추사직에서 해임시키는데 성공했다. 때마침 서북방 군사일이 뒤진다는 상소문이 올라온 기회를 타서 강조가 적임자라 꼬드기여 그를 서북면 도순검사로 좌천시킨것이다. 저들의 비위를 건드리는자를 제거해서 궁성밖 한지로 밀어내친것이였다.

강조는 쓴웃음을 머금고 궁성밖을 나섰다.

에잇, 씨원히 잘되였다. 그따위 좀스러운 작자들의 뒤구녕이나 쑤실바에는 시원히 말을 달려 전방을 누비는 수다. 사나이 장부로 나서 변방을 지키는 일 말고 그 어디서 장한 일을 찾을소냐!

강조는 은천에게 잘있으라 인사하고 흔연히 떠나버렸다.

강조를 바래우는 은천의 마음은 답답하고 우울하기만 했다.

강조는 도순검사가 아니라도 중추사의 직분만으로도 나라의 어느곳이든 군사일로 제 내킬 때 돌아볼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있었다. 그에게 부디 서북면을 돌아보라 하는것은 바꿔말하면 서북면만 보고있으라는 소리였던것이다.

임금이 외척의 입김에 손을 든것이 뻔하였다.

강조가 이를 모를리 없었다. 그도 그만에 손을 든 꼴이였다.

갈수록 첩경이로구나!

은천은 또다시 의기소침해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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