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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4 회)

 

상 편

 

9. 변방을 다지다

 

3

 

또 한해가 흘러갔다. 때는 996년 봄.

강은천은 임금의 분부를 좇아 다시금 서북쪽 변방 료해길에 올랐다.

《평장사 서희어른을 잘 살펴주고 오라. 그가 제 몸을 전혀 돌보지 않아 내 걱정하더라고 전하라.》

은천이 할 일을 분부하고나서 마감에 덧붙여 당부한 임금의 이 말은 은천의 가슴을 더 저리게 했다.

서희는 립춘을 며칠 앞두고 서둘러 북방으로 떠나갔다. 금년에는 선주(선천)와 맹주(박천 맹중리) 두 고을에 성을 새로 쌓기로 작정하였다. 이 두곳 역시 거란의 침공을 막는데 더없는 요충지였다.

서희는 앞서 거란과의 싸움과정을 통하여 청천강과 압록강사이 200리구간이 적의 침공을 막는데서 결정적사활지대라는것을 통절히 느끼였었다.

얼핏 보기에는 이 구간이 그닥 중요시할 지대가 아닌것처럼 보인다.

앞서 진행한 싸움에서 보다싶이 적군은 이 구간의 성들을 다치지 않고 내처 청천강까지 무혈침공해나왔었다. 하지만 적들은 청천강계선도 싸움을 피하고 그냥 건너내려갈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봉산(구성)계선에서 성 하나를 깨뜨려놓으려 하였던것이다.

그것은 적들이 퇴로의 안전을 생각한때문이였다. 종심깊이 들어갔다가 력량손실이 많아지는 경우 퇴각한다 하여도 고려군이 우세한 력량으로 퇴로를 차단하면 위기에 빠질수 있었다. 실지로 거란군은 흥화진을 위시한 압록강대안의 여러 성들이 그대로 남아있는것을 알고있었기에 등뒤로 타격을 받을가보아 여간 불안해하지 않았고 또 적잖게 손실을 보았었다. 그때 거란군이 늦게나마 퇴각을 하였기망정이지 그냥 싸웠다 하면 진짜 된맛을 보았을것이였다. 실은 이 구간의 성들이 있음으로 해서 거란군은 보다 적극적인 남하를 기도할수 없었던것이다.

이제 이 구간에 보다 조밀하게 성들을 쌓아놓고 군사를 증강해놓으면 다음번싸움에서는 적들이 결코 그냥 지나갈수 없게 될것이고 첫걸음부터 발목이 잡혀 맥을 뽑는 꼴을 보이게 될것이였다. 또 종심깊이 들어간다 해도 되돌아가는 길에 최종적으로 결정적타격을 받고 아예 숨이 끊어질수도 있게 될것이였다.

거란군의 침공을 시초에 막아버려 서경과 개경의 안전을 멀리서부터 지킬수 있어 좋고 퇴각하는 적을 기다렸다가 쳐서 마지막 한놈까지 때려잡아 다시는 기여들 엄두를 못내게 할수 있어 좋았다.

첫 싸움의 경험에 비추어 취해진 서희의 이 서북방 성 신축 및 개축보강안은 만장일치로 통과되였고 지금 그 실행단계를 거치고있는중이였다.

서희가 발기하고 한몸 내대여 실행한 이 구간의 성 구축공사가 성공리에 결속된것으로 하여 이후에 고려는 재차 침입한 거란군을 결정적으로 타승할수 있게 된다.

《이보라구, 은천동생! 내가 동생에게 물려줄것은 이곳 성들뿐일세. 하지만 이거면 난 모든걸 준거나 같으이. 이제 이 성들이 은을 낼 때가 꼭 있을거네.》

서희는 은천에게 이렇게 장담했다.

《이번 걸음에 자네 압록수에 발이나 한번 잠가보고 가게.》

선주(선천)고을에서 성 쌓는 일을 돌아보고난 뒤에 서희는 은천을 압록강가로 이끌었다. 선주에서 압록강까지는 100리안팎으로 말을 타고 달리면 반나절전에 가닿는다.

《압록수나루터 구당사로 하공진이 와있네. 자네도 그 사람을 알테지?》

《예, 그가 거란과의 접객업무를 전담하도록 령을 받았다고 들었소이다.》

《내가 천거했네. 그 사람은 최승로대감께서 살아계실 때 긴히 쓰라 부탁하신적이 있었네. 과거에 장원에는 못 들고 맨 꼬리였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최승로대감은 그를 제일 상등으로 배치하였었지. 상서 리부에 원외랑으로 앉혔댔으니까.》

《나는 그와 직접교제는 없었사온데… 사람이 좀 소심한편이라 들었소이다.》

《많이 재는편이지. 하지만 그런 사람은 실수가 적지. 말썽많은 거란과의 교제를 그만하면 무난히 처리하는편이네.》

《거란문턱을 어지간히 드나든 사람이니 접객소 관장으로는 제격인셈입니다.》

《보기와는 달리 주대가 여간 아니네. 일전에 거란사신이 우리 페하께 보내는 서신을 들고오면서 그더러 허리를 굽히라 하였다가 코만 떼웠다네. 〈내가 너희 나라 사람이냐? 내가 한개 나라 지방장관이고 외국인을 단속하는 지경 총관일진대 어떻게 너한테 절을 해야 한단 말이냐? 너희 나라에선 품계를 따져 절하는 모양이다만 우리 고려문턱에선 품계가 아니라 사신으로만 대하는 법도를 세웠으니 너는 그저 사신에게 하는 례의만 받으라.〉 하고는 목만 까딱해보이고말았다네.》

《그런 일이 있었군요. 우리 례부에선 그런 세부일화까진 모르고있었소이다.》

《자네가 모르고있었지. 알만 한 사람은 다 아는 일일세. 뚱딴지같이 형부에서 그 일을 거들면서 거란과의 관계를 악화시킬수 있는 언동이라 상소하였으나 페하께서 함구무언하시와 제풀에 잦아들고만 꼴이야.》

《참, 그 거란사신이 가지고온 서신에 우리 페하께 거란의 1등벼슬품계를 봉하였다 하는 구절이 있었사온데… 생각할수록 어이가 없어 말이 다 안 나갑니다.》

《나도 알고있네. 료국의 벼슬품계 1등급을 정히 드리오니 이 경사를 함께 축수하는바이다 이렇게 씌여있었지.》

《그런 어불성설이 어디 있소이까. 저희들이 내리는 벼슬을 받으라는건 자기 아래사람이 되라는것이 아니오이까?》

《그게 문제는 문제일세. 말로는 임금이 줄수 있는 최고의 포상(표창)은 임금아래 관직이지 임금 그자체는 줄수 없는 일이여서 그런다 하는건데…》

《그렇다면 우리도 대방에게 임금아래 제일 관직인 시중벼슬을 주던가 아니면 그에 따르는 정1품을 주던가 해야 리치에 맞는것 아니오이까?》

《선대때부터 내려오는 관례라서 그저 적당히 덮어두는것일세. 일이 바로 되려면 태조께서 후주임금이 〈고려국왕에게 최고의 경의로 정1품을 봉해드린다.〉 하여왔을 때 똑바로 빠개놓았어야 할 일인데 그때 대범하게 넘겨버리신것이 그대로 오늘까지 이어오고있네그려. 거란이 중원나라의 그 본을 또 따고있는 꼴이야. 자기네는 송나라가 하는것만큼 한다는거지.》

《나라의 권위를 지키는 일이 정말이지 힘이 드는 일이오이다.》

《사소한 양보나 타협이 후세에 미치는 후과는 참으로 크네.

까짓 너무 신경쓰지 맙세. 외유내강이라고 겉으론 부드럽게 보이고 안을 잘 다져서 속대만 든든하게 세워두면 되는것일세. 최고품계를 주는것이 최고의 경의라니 웃어넘기는수밖에. 우리 고려는 그런 법도가 없거니와 구태여 만들어낼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생각하면 그만일세. 문제는 거란이 우리 고려를 더는 깔볼수 없게 진짜 된맛을 보여주는것이야. 그게 중요한것 아닌가?!》

《물론이지요.》

서희와 은천은 중낮무렵에 압록강나루터에 가닿았다.

《중랑장! 그새 편안하셨소?》

서희는 총총히 마중나와 허리를 굽히는 하공진을 정겹게 마주보며 인사를 건네였다.

하공진은 이곳 요새를 책임진 중랑장을 겸하고있었다. 고을 관장에 접객소 총관에 수비군까지 틀어쥔 문무겸직의 전권대표였다. 그가 이곳에 부임되여온 이후에 일처리가 모가 나서 고을전체가 어지간히 맵시가 잡혀졌다.

《평장사나으리! 얼굴이 퍼그나 축가셨소이다.》

《일없네. 우리 례부시랑께 하공진 중랑장의 일본새를 뵈드리고싶어 뫼시고 왔소.》

서희는 자연스럽게 은천을 대면시켰다.

《중임을 맡고 바쁘시겠소이다.》

은천은 하공진에게 머리를 숙여보였다.

《무슨 말씀을… 내 소임을 조정의 일에 대겠소이까.》

하공진은 서희와 은천을 관사로 안내하려 하였다.

《아니, 곧장 나루터로 나가보세.》

서희는 하공진을 나루터로 이끌었다.

유유히 흐르는 압록강의 장관이 눈앞에 펼쳐졌다. 마치 바다를 보는 느낌이다. 이들은 나루터잔교가 빤드름히 내려다보이는 절벽우에 운치있는 합각지붕을 떠이고선 루정으로 올라갔다. 이 루정에서 왼쪽으로 비껴돌며 접객소가 외랑으로 련결되여있었다.

강 대안 맞은편은 안개발에 가리워 희미하게 보이였다.

《중낮에 무슨 안개가 이리도 오래 끼여있소. 아리숭한게 잘 보이지 않소그려.》

눈을 쪼프리고 강대안너머를 바라보던 서희가 아쉬운듯 한마디 건네자 하공진은 대답했다.

《저 아리숭한 안개속에서 더 아리숭한 일들이 벌어지고있더이다.》

《거란측에서 색다른 기미라도 보인것이 있나?》

《거란군 기마대가 몇차례 또 휘젓고 돌아갔다는 보고입니다. 우리측 경계병들에게는 녀진인들을 추적하는중이라 하였다는데 믿어지지 않는 소리입니다. 우리 경계병들의 말에 따르면 자기들은 최근어간에 그곳에서 녀진인들을 한번도 본적이 없었다는겁니다.》

《모름지기 정찰을 한것일거네. 지난해에도 토산물교류를 구실삼아 몇차례 사신왕래를 오고가며 숱한 병졸들을 도중도중에 떨구어놓았다가 거둬가는짓을 하였었지. 그것도 알고보면 다 지형정찰을 한거야. 말은 녀진인들의 습격을 방비하기 위한것이라 하였지만 실은 길을 닦고있는거지. 침공로를 사전확정하는거라고.》

서희는 짐작이 간다는듯 끄덕였다.

《다그쳐야겠네. 서북방 요새구축에 전력을 다해야 할것이야.》

《옳은 말씀이로소이다.》

서희의 말에 강은천과 하공진은 동시에 머리를 숙이며 긍정했다.

은천은 서희와 함께 하공진의 숙소에서 하루밤을 쉬고 다음날 지척인 흥화진에 들려 군사들을 고무해준 다음 방향을 뒤로 돌려 통주성(동림)으로 내려왔다.

통주성은 흥화진에서 선주(선천)성으로 내려오는 사이의 중간에 위치하고있다. 통주고을을 옆에 끼고 한절반 평지성을 이루다가 비교적 가파로운 산봉우리와 련결되여 산지성으로 이루어진 덩지 큰 성이였다.

이 성에서 남쪽으로 삼십리 못미처 이웃고을의 운암성과 녀산성, 서북쪽으로 또 그만한 거리에 있는 서림성, 동북쪽으로 삼십리 가서 있는 신시성은 모두 통주성 성주의 지휘를 받게 되여있었다. 유사시에는 통주성이 흥화진성, 룡골산성과 함께 이 계선(압록강하류방어계선)의 중심지휘처가 될것이였다.

이 일대의 성들은 모두 척 보기엔 평지성이여서 냠냠하게 보이나 정작 싸움이 붙고보면 산지를 끼고있어 쉽게 까고들어갈 성이 아니라는것을 깨닫게 되는 그런 성들이였다. 산지전을 싫어하는 거란군이 쉽게 유혹될수 있는 성이고 일단 말려든 다음에는 포기하고싶지 않아 계속 매달리게 되는 묘한 지세를 이루고있다.

은천은 이 일대가 거란군의 기본공격로로 될수밖에 없으리란것을 다시금 깨달았고 서희가 그토록 이 일대를 중시하는 리유를 알수 있었다.

《거란군은 반드시 이곳을 주공로로 정할것이니 우린 이곳에서 적의 발목을 붙잡아놓고 부단한 소모전을 벌려야 할거네. 여기서 삼할이나 오할쯤만 소멸해도 싸움은 이긴거네. 나머지는 통과시켜도 서경까지만 내려가면 잘 내려갈것이고 거기서 물고늘어져 장기전으로 들이대면 반드시 손을 들것이네.》

서희는 지도를 펴놓고 은천에게 차근차근 설명했다. 그의 손가락은 청천강과 대동강 두곳에서 동그라미가 그어졌다.

《청천강계선은 싸움이 시작되고 끝나는 곳이 될것이고 대동강계선은 적을 되돌려세우는 최종적인 반격계선이 되여야 될 곳이네.》

은천은 서희가 확신성있게 예견하는 미구에 닥칠 두 계선의 지형도를 묵묵히 굽어보았다.

(이곳이 내가 누벼야 할 전장이다. 서희형님은 병세가 심상치 않거니와 또다시 전장에 내보낼수 없다. 다음은 내 차례다. 내가 나가서 반드시 이겨야 한다. )

은천은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다음날 은천은 통주성에서 서희와 헤여졌다.

서희는 몸이 허락하는 한 서북방방비를 더 살펴야 하겠다며 떨어졌다.

그러나 서희의 병세는 서서히 악화되여갔다.

이해가 저물무렵, 서희는 끝내 쓰러졌다. 개경에 실려온 서희는 몸져눕고말았다.

이듬해인 997년에 가서도 서희의 병세는 호전되지 않았다.

서희는 이해 가을 임금의 죽음도 자리에 누운채로 조상할수밖에 없었다.

997년 10월 무오일에 임금은 개령군 왕송에게 왕위를 넘겨주고 서른아홉살 젊은 나이에 세상을 하직하였다.

스물두살의 애젊은 나이에 룡상에 올라 16년간 나라의 기강을 추세우고 거란대군의 침공을 막아낸 그의 공적은 태조이래 고려임금들가운데서 웃자리에 올려세워 찬양해야 할것이였다.

거란군의 침공초기에 서둘러 서경을 내여주자 하는 일부 배심 얄팍한 간신들의 감언리설에 귀를 기울이며 대동강에 량식을 처넣으라 실언을 하였다가 거둔 흠은 있었지만 그는 임기 전기간 군력을 다지고 군사를 늘이는 등 나라방비에 소홀하지 않았고 끝내는 거란의 침공을 막아내게 하였다.

그가 거란군을 맞받아 군사의 선봉에 서서 전방으로 나갔던 사실 하나만으로도 나라를 책임진 임금으로서의 그의 됨됨이를 잘 알수 있는것이였다.

란시에 임금의 위치가 백성들에게 주는 심리적영향은 자못 큰것이다. 그의 전방진출은 고려군민의 반거란항전을 고취하는데 적지 않은 힘을 보태였다.

하지만 나라를 지키는 일이 어찌 임금 하나의 일로 되는것이랴.

귀한 자식들을 서슴없이 싸움터로 떠밀어 내보낸 이 나라의 성실한 부모들이 없었다면, 한몸바쳐 적진에 뛰여든 유명무명의 이 나라 군사들이 없었다면 이 나라는 결코 지켜낼수 없었을것이였다.

그리고 임금이 바른 방략을 펴도록 보필을 옳바로 해올리는 측근신하들이 있어야 한다.

은천은 성종의 령전에서 이런 생각을 하고있었다. 아울러 서희가 하루빨리 자리를 털고 일어나 새 임금을 받들어 정사를 돕기를 간절히 바라마지 않았다.

그러나 서희는 끝내 자리를 일지 못하였다.

이듬해인 998년 7월 경오일에 서희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새 임금 왕송은 몇차례나 서희를 문병하고 태보 대사령벼슬을 내리면서 고무하였건만 서희는 그의 기대에 보답하지 못하였다.

임금은 서희의 죽음을 몹시 애석해하며 베 1 000필과 보리 300석, 쌀 500석과 기타 여러가지 귀물들을 희사하고 례식을 갖추어 국장으로 치르게 하였다. 그리고 장위라는 시호를 주었다. (이후에 서희는 성종묘에 배향되였다.)

애국의 일념 안고 고려의 부흥과 안전을 위해 헌신분투한 서희의 한생은 57살을 일기로 끝을 맺었다.

하지만 그의 생이 어찌 끝났다고 하랴.

이후에 거란의 재침공을 물리치는 고려군의 항전의 걸음마다에서 은천은 서희의 발자취를 걸음걸음 따르며 그가 넘겨준 지혜와 경험을 실전에 적용하여 승리를 거두었다.

(서희는 죽지 않았다. 내 마음속에 아니, 고려국 력사에 길이 살아있다.)

은천은 서희의 령전에서 이렇게 부르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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