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1 회)

 

상 편

 

8. 거란의 1차침공을 물리치다

 

8

 

기치창검을 추켜든 군사행렬이 얼어붙은 청천수를 건너 거란군진영으로 들어가고있었다.

동방의 청룡기, 서방의 백호기, 남방의 주작기, 북방의 현무기가 펄럭이는 한가운데에 중앙의 구진기, 등사기와 함께 《고려군 중군사 서희》라는 글씨가 씌여진 지휘기가 우뚝 솟구쳐 때마침 불어오는 갈바람에 기세좋게 기폭을 드날렸다.

바로 그 지휘기를 든 기마수앞에 새 갑옷을 떨쳐입은 서희가 앉아가고있었다.

합문사 장영의 보고를 받은 임금은 그 즉시 박량유와 서희를 개경으로 호출하였다. 그리고 어전회의를 열고 론의를 거듭한 끝에 서희를 화통사로 내세운것이였다.

이틀전 일이였다.

《적장은 아직 우리가 화친서신을 자기 왕에게 보낸줄을 모르고있노라. 거란조정에서 아직 우리 서신을 받지 못하였거나 서신을 받고 자기측 수장에게 화친담판을 하라고 소식을 띄웠으나 미처 닿지 않고있는것 같다. 아무랬거나 적장과의 담판은 조금도 지체할수 없는것이라 그가 마침 담판을 요구한 이 기회를 놓쳐서는 아니된다만 그가 문사가 아니라 무사를 요구하니 이를 맞추기가 조련치 않구나.

군 수장을 나오라 하며 정전담판을 하자 함은 필시 싸움에서 진 분풀이를 하며 시간을 끌자는 속심같은데… 혹시나 거란왕이 싸움을 계속하라 일러오면 싫든 좋든 또 붙어보려는게 분명하다.

우리는 박시중과 서희시랑이 어렵사리 마련한 이번 싸움의 승리를 허사로 돌아가게 해서는 안될지어다.

적군 수괴가 음흉하기 이를데 없는데다 오만방자하기 짝이 없어 감히 짐에게 항복하러 나오라 하였던 사실을 그대들도 알것이로되 그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분이 치밀어 진정할수 없노라.

하늘 무서운줄 모르는 되지 못한 그놈의 버릇을 고쳐주는 겸 적군을 언변으로 몰아내여 만대에 공을 세울 생각이 있는 사람은 나서라!》

임금이 이렇게 호소하였는데도 감히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어 한동안 침묵이 흐르고있는 때에 불쑥 서희가 한발 나섰다.

《소신이 적군과 직접 싸운 부수장이라 장수 대 장수의 담판을 제기한 적장의 요구에 들어맞사옵고 저의 기본관직이 내의시랑이라 페하의 측근보좌벼슬로서 화통사의 직함에도 능히 어울리는것이니 제가 한번 어명을 받들가하나이다.》

《그대는 엊그제까지 전장에 부대낀 몸인데 견디여낼수 있을가?》

임금은 내심 반가와하면서도 겉으로는 반신반의하는 흉내를 내였다.

《수장급담판이라 신이 나감이 마땅하나 나이탓인지 심신이 예전같지 않사와…》

박량유가 미안한듯 보태고 나서는것을 서희는 가볍게 밀막아버렸다.

《상군사나리는 고려국의 시중이라 페하 다음가는 지체여서 격에 닿지 않소이다. 적장이 아무리 흰소리쳐도 그는 료국 동경류수로 우리로 말하면 일개 지방장관에 불과한자올시다. 그러고보면 내가 나가는것도 황송하게 여겨야 할것이오이다.》

《그대 말에도 일리가 있소. 그대는 수장급군사담판과 이 나라 임금의 전권을 가진 화통사로서의 외교담판을 겸하여 치르어야 하는 중임을 명심하고 성공하기 바란다.》

이렇게 되여 지금의 이 담판에 수석으로 나선 서희였다.

일단 담판수석이 락착되자 비로소 안도의 숨을 내쉬며 대신 반렬 이곳저곳에서 제나름의 훈수질이 튀여나왔다.

《이기기는 우리가 이겼는데 적장에게 찾아가는 모양새가 한수 지고 들어가는것 같은게 마음에 안 드오니 적장더러 청천수를 넘어오라 함이 어떨는지…》

《적장이 저희 왕의 어지를 받고난 뒤에 그가 다시금 통지해오기를 기다렸다 나감이 어떨는지…》

《적측에서 어떤 조건부를 내놓을지 모르는 상황이니 거란왕이 우리의 서신을 받고 어떤 최종결심을 내렸는지 파악한 뒤에 그에 대한 대처안을 가지고 감이 더 좋지 않을는지…》

등등…

하지만 대신들의 그런 제의는 즉시에 무시되고말았다.

은천이 나서서 《얼핏 보면 우리가 적군영에 머리숙이고 찾아가는것으로 보일수 있으나 실은 그 반대이로소이다. 적의 군영이라는 곳이 다름아닌 우리 고려땅이라 주인이 제 집마당을 오가는셈이니 그게 낯 깎이울 일이 아니라는것이옵고 우리는 도적을 쫓는셈으로 문밖에서 일을 보아야지 도적을 문안으로 들어오라 할수는 없는것이오이다. 더우기 적을 청천수계선에서 막자 함이 당초의 목적이였고 그걸 성취한 후에 와서 청천수너머로 적 수괴를 끌어들이는것은 허용할 일이 아니오이다.

상처투성이인 적에게 바투 가서 어서 떠나라 독촉하는 의미에서도 우리가 적을 찾아감이 마땅한것이오이다.》라고 말한 뒤에 이어서 《거란왕이 우리의 서신을 받고 어떤 결심을 하는가 하는것도 우리는 크게 상관할바가 아니라 보오이다. 서신에는 거란의 이번 침공이 화친을 표방하던 종래의 립장과는 정반대의 무례한 행동이라고 단죄하였고 화친의 담보로 국교는 수립할수 있으되 우선 고려지경을 범한 군사행동을 철회하고 고려출병군 수장에게 퇴군령을 내리게 한 뒤에 그 결과를 보아가며 차후에 결심할것이라 하였은즉 거란왕이 어떻게 결심했든 우리는 승자가 패자를 대하는 고자세로 림하면 되리라 보오이다.》 하였기때문이였다.

서희는 적의 군영이 바라보이는 등성이에 이르자 행렬을 멈추고 군막을 치게 한 뒤 전령을 띄웠다. 적측에서 마중나오라 통지한것이였다.

얼마간 지체한 뒤에 전령이 저만 달랑 되돌아왔다.

그가 내여민 종이말이를 펴본즉 《회견절차를 알리건대 나 소손녕은 대국의 귀인이라 고려 수장은 나를 귀인으로 대하되 우선 말에서 내려 걸어와 뜰에서 절하고 당상에 올라서도 북남으로 방향을 잡고 그대가 남쪽에 낮추 앉도록 함이로다.》라고 씌여있었다.

서희는 별로 성을 내지 않고 빙긋이 웃고나서 몇글자 써주기를 《당하에서 절함은 신하가 임금에게 하는 인사법이요, 나와 그대는 량국의 대신격이라 그에 해당한 례법을 알아서 다시 알려오라.》 하였다.

적장은 모르는척 다시 같은 내용의 종이말이를 곱씹어 보내고 서희 역시 같은 글자를 써서 보내니 적장은 아예 영문을 닫아매고 기척을 하지 않았다.

그러거나말거나 서희 역시 군막으로 들어가 바둑을 두고앉아 태평스레 머리쉼만 하였다.

그렇게 하루밤을 보내고 다시 또 하루낮, 하루밤을 보내고나서야 사흘째되는 날 아침 적장은 하는수 없었던지 자기가 정하였던 회견방식과 절차를 취소한다 알리고 영접군사가 서희를 안내하게 하였다.

적장 소손녕이 서희의 주장에 응한것은 자기 왕으로부터 받은 추궁도 있는데다 자기 등뒤에 전개해있는 후속부대들이 밤사이에 고려군으로부터 또 한차례 급습을 받았기때문이였다. 그것만이 아니라 고려군의 대부대가 흥화진을 우회하여 압록강대안에 계속 집결하고있고 압록강하류와 닿은 서해우에 고려군 수군이 집결하고있다는 급보가 뒤따라 날아왔기때문이였다.

서희는 개경을 떠나오면서 룡당포(내미홀)와 부포(강령), 월포(은률), 진남포(남포), 철산포(철산) 등지의 수초군(고려수군관하의 해안 경비력량)들을 압록강하류와 면한 룡포(룡주)해안에 도착시키도록 하였었다. 한편으론 안북부성에 련락하여 하군사 최량으로 하여금 흥화진과 그아래 여러곳의 성들에서 기마습격대를 파하여 거란군 후속부대들을 다시한번 두들겨패게 하였다. 적장이 잔꾀를 부리지 못하게 한번 더 뒤통수를 후려친것이였다. 그리고 일부 군사를 압록강대안까지 이동시켜 10여리구간에 점점이 벌려서서 불을 피우게 하여 대부대가 전개한것처럼 보이게 했다. 정 시간을 끌면 압록강쪽에서 고려륙군이 내리몰고 서해로부터 고려수군을 올리몰아 거란군의 퇴로를 전면차단하고 싹 쓸어 격멸해버릴터이니 알아서 결심을 하라는 독촉이였다.

저희 임금으로부터 패전에 대한 책임을 지라는 추궁을 받은데다 밤사이에 등허리가 시큰하게 또 한번 얻어맞아 기가 쑥 움츠러든 소손녕으로서는 이제 퇴로까지 막히면 끝장이라는 생각에 더는 시간을 끌 배심이 없었고 앞서 겪은 전투들에서 서희의 비범함을 알고난 뒤여서 그의 담을 시험해보려던 장난질을 서둘러 그만둔것이였다. 사실 소손녕이 저희 왕으로부터 받은 서신에는 더 손실을 당하기 전에 적당히 체면유지를 해놓고 돌아오라는 내용이 찍어 밝혀있었던것이다.

소손녕은 서희를 맞아들여 그가 요구한대로 동서방향으로 나란히 마주앉았다.

총이 굵은 검붉은 수염발이 귀밑에서부터 물결쳐 흘러내린 소손녕은 척 보기에는 우직해보였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글깨나 읽어본 선비형의 모상이 배여있었다. 버릇처럼 깃털붓을 만지작거리는것이라든지 포개앉은 두다리의 꺾임새가 정바른것이라든지 적장으로보다는 동경류수라는 문인관리직에 더 들어맞는 모양새였다.

하지만 겉모양과는 달리 소손녕의 입에서는 무지한 말마디들이 튀여나왔다.

《당신네 고려는 옛 신라땅에서 건국하였고 고구려의 옛 땅은 우리 나라가 차지하였는데 어찌하여 당신들은 우리 땅을 침범하였는가? 그리고 우리와는 국경이 린접되여있으면서도 왜 바다건너 송나라와만 친교하는가? 이런 까닭으로 이번에 징벌하러 온것이니 먼저 고구려땅을 내놓겠다 약속하고 이어서 국교를 수립하면 무사할것이고…》

《그게 아니면?!》

《무사치 못할것이다.》

《하하하… 왓하하하…》

서희는 앙천대소하지 않을수 없었다.

《앞서 내가 례법을 다시 알고서 대면하라 하였거니와 당신은 력사를 다시 깨치고 와서 나와 상면하는게 좋을것 같소.》

《내가 력사를 모른다고?…》

《내 말을 똑똑히 들으라. 우리 고려는 바로 고구려의 후계자이다. 그러기에 나라이름도 고려라 부르고 고구려의 도읍이던 평양을 국도로 정한것이다. 그러니 경계를 말한다면 귀국의 동경도 우리 고려의 국토이고 그뒤로 썩 더 가서 연경 못미처 료하까지가 우리 경계로 되는것이다. 침범은 당신들이 하고서 우리 보고 침범이라니 이 무슨 해괴망측한 궤변인가?》

《?!…》

소손녕은 무슨 말인가 하려 했으나 당연한 력사적사실을 까밝힘에 할 말이 없었다. 아예 무지막지한 놈이면 그따위 소린 나는 모른다고 내뻗칠것이나 리치를 따지는데 익히 버릇되여있는 놈인것으로 해서 그만 가을뻐꾸기가 되고만것이였다.

《국교문제도 그렇다. 우리 고려는 거란과의 국교를 반대하는것이 아니다.

물론 우리 태조께서는 동족의 나라 발해를 해친 거란과는 백년숙적으로 화친할수 없다 하셨지만 세월이 흘러 오늘 와서 생각해보면 거란이 그간에 지극히 진심으로 친교를 요청해온바에는 이를 더는 외면할수 없다 인정하고 국교를 맺자는 립장을 취하고있다. 물론 그것은 두나라간의 동등한 지위에서의 국교이다. 제후국이니 조공국이니 하는따위 가소로운 낱말들이 이따금 들려오는데 바로 그것이 우리 고려가 거란과의 국교를 보류하게 하는 근본요인으로 된다는것을 사전에 상기시키는바이다.

그리고 지금 압록수 안팎이 우리 고려의 경내이지만 녀진이 타고앉으려 하므로 그를 막는데 품이 적지 않게 들고있다. 그대들도 녀진에게 해를 입기는 마찬가지일진대 그들을 멀리로 쫓아버리면 통로가 수월히 열릴것이 아닌가. 이제 우리 고려가 그들을 불함산너머로 쫓아버리고나서 그 일대의 옛 땅을 정리하고 성을 쌓아 안전한 통로를 마련한 다음에야 어찌 국교를 맺지 않겠는가.

당신은 나의 이 말이 우리 고려황제의 말이라는것을 알고서 속히 전달하여 차후 량국간에 화친의 관계를 도모하게 함이 좋을것이다.》

사리가 정연하고 론리가 당당한 서희의 열변에 소손녕은 저도모르게 감심하는 표정을 짓고있었다.

한참만에야 제정신으로 돌아온 소손녕은 급기야 앞목을 높이 세우며 큰소리쳤다.

《그대는 나를 화통사로 아는게 아니요?》

《처음에 우리 보고 화친하러 왔다 하지 않았는가? 그러니 화통사가 아니면 무엇인가?》

《나는 당초에 고려보고 항복하라 하였지 화친하잔 소리는 한적이 없소.》

《물론 고려국 지경을 침범해들어오면서 화친이 어쩌고 한것은 어울리지도 않았소. 하지만 당신은 싸움을 걸기 전에 분명 항복하면 화친할수 있다 하였소. 우리가 말을 안 들으니까 칼부림으로 붙어본거고 결국 지고나니까 말로 해서 이겨보려 하는것인데 그건 어리석은짓이요. 정 아수하면 이제라도 다시한번 붙어봅시다. 우린 준비되여있소. 그렇게 되면 당신은 집으로 돌아가기가 헐치 않을것이요.》

《그러니 지금은 수장으로서 통첩하는것이요?》

《그렇소.》

《방금전에는 화통사로 행세한것 같은데?!…》

《난 고려군 수장이면서 고려국 황제의 어명을 받은 화통사요. 당신이 화친을 표방하였었기에 화통사로 와준것이오만 계속 싸우자 하면 수장의 직무만을 수행하는것이요. 이에 대해 정식으로 통첩하는바요.》

서희는 단호하게 선을 긋고 움쭉 일어섰다.

《아아…》 소손녕은 다급히 두손을 내저었다. 《싸우자는 소린 그만해둡시다. 난 우리 임금의 지시를 이미 받고있었소. 고려가 화친을 요청하였으므로 무조건 정화하고 돌아서라 하였소.》

소손녕은 황급히 서희를 멈춰세웠다.

《아직 자리를 일기는 이르오. 어떻게 그냥 헤여지겠소. 내 이제 연회를 베풀어 그대를 환대할것이니 조금 기다리시오.》

《그러지 마시오. 이번에 우리 고려는 잘못한것이 없으면서도 귀측에서 대군을 일으켜온 까닭에 몹시 긴장되여있소. 그런 판국에 연회라니 분수에 닿지 않는다 생각되오.》

서희가 이렇게 사양해나서자 소손녕은 허둥지둥 일어나며 황황히 주어대기를 《모처럼 량국 대신들이 마주앉았는데 어찌 친목하는 례식을 거행하지 않으리오.》라며 서희를 붙잡고 놓아줄 잡도리가 아니였다.

《생각이 정 그러하다면…》

서희는 마지못한듯 주저앉았다.

하지만 서희는 소손녕이 《화친례식을 어물쩍해서 간단히 해버릴수는 없다》며 일정을 열흘 넘게 잡는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 밤사이에 련락을 띄워 다음날에 흥화진부근에 주둔해있는 적을 또 한번 답새기게 하였다.

《량측이 화친례식을 하려고 하는 때에 귀측에서는 어인 일로 우리 뒤꼭지를 계속 괴롭히는것이오니까?》

저녁상을 마주하고 술을 권하며 짐짓 노여운 표정을 짓는 소손녕의 얼굴에는 불안한 기색이 력력했다.

《방금전까지도 서로 싸우던 사이인지라 우리 군사들의 경계심이 풀리지 않은듯 하니 귀측에서는 자기 군사들의 불필요한 거동을 삼가케 함이 좋을듯 하오.》

서희의 이 말에 소손녕은 꿀꺽 마른침을 삼키였다.

일단 손을 들었으면 하루라도 빨리 갈것이고 있으면 있는만큼 손해만 보리라는 암시에 또 한번 기가 꺾인것이다.

소손녕이 돌아가는 날자를 늦잡는것은 이왕지사 고려에 코를 떼운바에는 화친관계라도 두터이 하고 가는게 빈손 털고 가는것보다 나으리라 생각한때문이였다. 겸해서 싸움이 끝나고서 열흘이나 앉아있었다 하면 이 소손녕이 고려로부터 굉장히 대접을 받은것으로 생각할것이라는 희떠운 타산까지 하였던것이였다.

하지만 서희는 애초에 그런 서툰 장난질조차 받아줄 눈치가 아니였다.

소손녕은 다문 며칠만이라도 더 지체해볼 심산으로 이튿날 아침을 먹은 뒤에 붓이나 놀려 서로 글을 나누자 청하고 제 먼저 《인의지용》이란 네글자를 써서 서희에게 괴여올렸다.

어질 인자에 옳을 의자에 지혜 지자에 날랠 용자라, 고려장수 서희가 인자하고 의롭고 지혜롭고 용맹하기 이를데 없는 명인재사라는 찬사였다.

이에 화답하여 서희는 일필휘지로 《개과천선》이라 써주었다.

고칠 개자에 지날 과자에 옮길 천자에 착할 선자라, 거란장수 소손녕이 지금까지의 잘못을 뉘우치고 착한 마음으로 돌아선것이 그지없이 기특하다는 뜻이였다.

소손녕은 자기는 서희를 한껏 춰올렸는데 서희는 소손녕을 칭찬은 하였으되 잘못을 뉘우치고 착한 마음으로 돌아섰다는 어찌 보면 핀잔 절반 훈시 절반인 글을 받아보는 순간 속이 불끈하였으나 아닌 말로 패자가 승자에게 그만한것도 과남하다는 생각에 속을 누르고 에라 이왕에 머리를 숙인바에는 한번 더 숙인다 하고 다시금 붓을 휘둘러 《신언서판》이란 글귀를 지어올렸다.

몸 신자에 말씀 언자에 글 서자에 갖출 판자라, 서희의 지체와 용모, 지략을 찬양한것으로 서희가 훤하게 잘생긴 용모에 능한 언변에 글씨 또한 뛰여난것이 안팎으로 갖출것은 다 갖춘 천하에 보기 드문 명인재사라는 뜻이였다.

괴여올리는것도 정도지 그래도 명색이 한개 나라를 대표한다는 사람으로서 이것이 가당한짓이냐?

옆에서 지켜보던 소손녕의 측근부하가 눈코입을 찡그렸으나 소손녕은 개의치 않았다. 소손녕자신은 진심을 적고있었던것이다. 이번 싸움의 전과정을 돌이켜보아도 그래 정작 마주하고 말을 해보아도 그래 자기같은건 서희의 발뒤꿈치에도 갖다댈 위인이 못된다는것을 자인한것이였다.

하면서도 소손녕은 그쯤 괴여올렸으면 그래도 이 소손녕이 돌아가서 얼굴건사는 할수 있는 글귀를 써주겠지 하고 한가닥 기대를 가지고 서희의 붓끝을 주시했다.

《하도현불》, 아래 하자에 칼 도자에 드러날 현자에 부처 불자라, 역시 소손녕의 용모를 그린것으로 칼을 내리우니 마치 부처를 보는듯 하다는 뜻이였다.

내가 석가모니라고?

나를 만가지 욕심을 다 버리고 고자노릇이나 해야 하는 중따위에 비긴단 말인가?!

소손녕은 속으로 덴겁하여 한길 뛰여올랐다 주저앉는 심정이였다.

하지만 그것도 한순간, 소손녕은 이내 이마를 치지 않을수 없었다.

불도의 계률에서 첫째로 꼽는것이 살생을 금하는것이라 소손녕! 너 이제 다시는 그 손에 칼을 들지 아니하고 피를 묻히지 아니하며 금욕, 금주, 금색하야 착하게 살아갈지어다, 서희는 이렇게 오금을 박고있는것이였다.

맙시사, 진짜 부처는 고려장수 서희, 그대로소이다!

소손녕은 속으로 이렇게 부르짖지 않을수 없었다.

그만에 소손녕은 두손 들고 나앉고말았다.

산세 수려하고 물맑기가 수정같은 이 고려땅에 저런 인물이 나는것은 당연지사로다.

소손녕의 뇌리에 부지중 격언 하나가 떠올랐다.

중원사람들의 고사를 읽던중에 익혀두었던 네글자, 《부이동동》 동쪽으로는 가지 말라 한 그 말의 진뜻을 그제사 깨닫게 되는 소손녕이였다.

소손녕은 부랴부랴 화친례식일정을 한주일로 단축해버리였다. 그리고 있는 성의를 다하여 서희일행을 대접하였다. 성한 몸으로 돌아가자면 아래도리를 벗는것도 마다하지 말아야 할 처지였던것이다.

소손녕은 시종 굽힌 허리에 노상 량수거지를 하고서 진수성찬을 괴여올려가며 화친례식을 끝내고나서 떠나가면서는 락타 10필, 말 100필, 량식으로 몰고왔던 양 1 000마리 그리고 그사이에 부랴부랴 본국에서 날라온 송나라산 비단 500필까지 례물로 바치고 갔다. (《고려사》)

임금은 거란과 성공적으로 담판을 결속짓고 많은 례물까지 받아가지고 돌아온 서희를 100리밖에까지 나와서 마중하였다.

고려왕은 나와서 항복을 하라고 을러메던 거란이 사실상 고려에 항복을 하고 돌아간셈이 되였으니 임금의 기쁨이 어떠했으랴.

며칠후, 새해 994년 정초에 임금은 서희의 벼슬을 평장사로 올려주었다.

서희를 위시한 고려군민의 단합된 반거란항전 결과 나라에 닥쳐왔던 위기는 가셔졌다.

은천은 서희와 며칠밤을 뜬눈으로 새우며 그간의 만단사연을 갈피갈피 풀어헤쳤다.

태조이래 몇대째 벼르고벼려온 거란과의 전쟁에서 승리의 월계관을 차지한 긍지와 자부심으로 하여 이들의 가슴은 마냥 부풀어 설레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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