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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9 회)

 

상 편

 

6. 조정에 몸 담그고

 

2

 

《이럴수가 있소? 기별도 없이 불쑥 왕림하시니… 내 원참!》

우람한 체구에 총이 센 수염투성이 강조는 시커먼 큰 눈을 디룩거리며 부리부리한 눈길로 못마땅한듯 은천을 내려다보았다.

첫눈에 거만하기 짝이 없어보였다.

《내미홀관아에 들릴 계획은 아니였소이다. 부포쪽에 일이 있어 지나가던 길에 잠간 주막신세를 지고있었는데… 이곳 군사들이 례절도 모른다 꾸중을 하더라니 잠간이라도 어르신을 만나보고 가는게 도리라 생각되여 들렸소이다.》

은천의 곰상스런 대답에 강조는 픽 웃었다.

《꾸중을 들을만도 하지요. 부포도 본관의 관할지인데 그렇게 기별없이 밟을수가 있는것이요?》

《그래서 이렇게 인사를 차리는게 아니옵니까.》

《아니, 아니요. 조정의 어르신이 주라를 불며 오든 잠행을 해오든 내 상관할바 아니지요. 하지만 관복도 아니차리시고 평민복색을 하고 오셨으니… 가만… 이거 내가 정말로 새로 부임하신 감찰어사나으리를 몰라보고 횡설수설하는게 아니요?》

《그만 놀리시오이다. 엊그제 방금 조정문턱에 들어선 햇내기보고 그런 말씀을 다 하오니까. 내 별 볼것 없는 소인배라 유표한 관복차림을 해서 뭇사람들의 눈길을 모으기 싫어 이런 모양을 한것이니 그만 꼬집어주소이다.》

은천은 자기보다 나이가 퍽 아래로 보이는 강조가 처음 만난 사이임에도 반말로 나오는데 기분 잡쳤으나 그의 품계가 한급 우인것을 생각하고 그냥 넘겨버리고말았다.

《탓하지 마시오. 내 생겨먹은게 이렇소. 내키는대로, 속에 품은 그대로 말하는 사람이요.》

《무장이야 그래야지요.》

《거 은연자중한것이 돋보이오이다. 하긴 최승로대가분의 총애를 받으시는분이니 어련하실라구요.》

《페하의 총애를 받으시는 강장자어르신은 어떠하시구요.》

《놀리시는거요? 흥, 페하의 총애야 최승로 그 어른이 독차지하고있는게 아니요. 그 어른의 시무책인지 하는게 국책으로 눌러지는 판이 아니요.》

《그게 뭐 나쁜가요?》

《누가 나쁘다고 했소? 사람 잡겠군.》

《마음 놓으시오이다. 나를 퍼그나 료해하신것 같은데…》

《그게 알리오? 사실 말이지 원외랑나으리와 말 좀 하고싶었댔소. 뭐 벼르고있은건 아니지만…》

《그렇소이까?》

《최승로 그 어른의 시무책이 대체로는 괜찮으나… 불교를 배척하는건 참을수가 없단 말이요.》

《불교를 배척한다 생각되오이까?》

《아니면 뭐요. 팔관회랑 연등회랑 아예 싹 쓸어 그만두게 만든게 그 사람이 아니란 말이요? 태조께서도 절간을 더 늘이지 말라고만 하셨지 팔관회랑 연등회를 그만두라고는 하지 않았소.》

《불필요한 불교행사로 국고를 랑비하지 말라 하셨지요.》

《랑비하지 말라고 하셨지 그만두라고는 안하셨단 말이요.》

《어르신께선 부처보다 성황신을 더 마음에 두고계시는것 같던데요.》

《그만두시오. 그건 가병아이가 트집을 거느라고 꾸며낸 소리요. 내다 들었소, 주막에서 있은 일을. …》

《어쨌든 절간들이 정리되고 회수한 사원토지를 봉토지로 넘겨쓰니 나라 쌀창고가 그득해서 좋아, 중들의 머리수를 줄이니 놀고먹는자가 적어져서 좋아, 좋은게 한두가지가 아니지 않소이까.》

《최승로 그 사람이 정종께서 추진하신 서경천도를 부정한것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서경천도를 부정하신게 아니라 지나친 부역으로 국력이 약해지고 민심이 흐려졌다 하였지요.》

《그게 그 소리가 아니고 뭐요? 태조께선 평양성이 만대부흥의 명맥이라 하시며 량경이라 규정하지 않으셨소? 그 유지를 실현코저 국력을 소모한것이 잘못이란 소리가 바른 소리요? 바른 소린가?》

《그 점에 한해선 나도 납득이 안 가오이다.》

《생각이 그러하셨다면 직통으로 한번 찔러보실걸 그랬소. 밤낮으로 코를 맞대고있는 사이인데 기회가 여간 좋소?!》

《그 어른도 평양성 그자체의 중요성은 부인하지 않았지요.》

《부인하지는 않았지만 평양성천도는 싫다 그거란 말이요. 그게 바로 신라족속들의 소가지요.》

《신라가 없어진지 언젠데 아직 신라출신을 가리시오?》

《가릴수밖에, 노는 모양새가 그러한데도?》

강조는 얼굴을 붉혀가지고 은천을 노려보다가 입을 씰룩하며 말을 이었다. 《하긴 원외랑나리야 그네들의 덕을 입고있는 처지이니… 하지만 조정에 신라출신들이 너무 득세하고있는건 사실 아니요? 전대에 작고했지만 상부 도성령 김부(978년에 죽었다.)에다 지금도 앉아있는 내사령 최지몽을 보시오. 이 사람들이 태조를 받든 원로라 하여 지금껏 임금님들을 제 손주 다루듯 하지 않았단 말이요?》

《그건 너무 지나친 말씀이시오. 그분들은 태조이래 다섯, 여섯대를 거쳐오며 사심없이 임금들을 보필한 충신이로소이다.》

《그들의 입김이 너무 셌던것은 사실이 아니요. 게다가 지금의 최승로를 보시오. 태조의 모사였던 아비 최은함의 후광을 덕입어 문하시랑 평장사까지 되였소. 그가 똑똑한건 사실이지만 평양성천도계획이 잘못됐다 론한건 도대체 용납할수 없단 말이요.》

《그 점에 한해서는 잘못 평가하였다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소이다. 이번에 병관어사로 발탁된 서희어른이 특히 그러하더이다.》

《그것 보시오. 그는 신라출신이 아니란 말이요. 그의 본관지가 리천이 아니요?》

《옳소이다.》

《리천도 본래는 고구려땅이였으니 고구려출신인 그가 생각하는게 벌써 다르지 않소. 원외랑나리도 금천사람이라 본관이 고구려지요? 내 그래서 속에 품고있던걸 터놓는거요.》

《강장자께선 여기 내미홀이 본관지인게지요?》

《우리 선대의 원래 본관지는 신천이외다. 고구려때 남평양이라고 지금의 치악산(황해남도 신원)에서 장수노릇하였다고 전해오오이다. 그의 몇대손인지 하는이가 여기 내미홀 수양산성 성주로 임명되는터에 갈래가 가지쳐나온 모양입니다. 지금도 치악산일대엔 우리 족속들이 배겨있지 않은데가 없소. 거기서 사방으로 퍼져서 패강아래 례성강 서쪽 일대가 우리 신천 강씨 터밭이 된거외다.》

《그렇군요. 우리 금천 강씨와 성씨부름말이 같아서인지 별로 친근감이 가오이다.》

《하지만 조상은 판판 다르니 동성동본은 아니요.》

《알고있소이다. 우리 금천 강씨는 제비모양글자를 쓰오이다. 신천 강씨는 집안에 누운 모양 글자(편안할 강)를 쓰지요?》

《잘 아시누만, 하지만 원외랑나리는 한가지 모르는게 있는것 같소. 나리의 원래 본관지가 금천인걸로 아시오?》

《금천은 우리 조부때에 정해진걸로 알고있소이다. 부친의 말에 의하면 우리 가문의 원조상분은 강이식이라고 고구려 영양왕9년에 군사를 이끌고 료서지방을 방어하는데 공을 세우고 뒤이어서 수나라 양제의 300만대군을 격파하는 싸움에서 큰 공을 세운 고구려장수였다고 하오이다. 그후로 그 후손들이 남하를 거듭해서 지금의 저 남해안 진주땅에 정착하였다나 봅니다. 거기서 진주를 본관지로 정하였다더군요.》

《틀리지 않소이다. 우리 부친이 하는 말이 진주 강씨의 후손들과 우리 신천 강씨의 후손들이 당나라군을 치는 싸움을 함께 치르었다고 하오이다. 호로하(림진강)인가 하는데서 마지막싸움을 치른 끝에 우리 신천 강씨들은 고향으로 돌아가고 진주 강씨들은 고향인 북으로가 아니라 남쪽으로 내려갔다더군요. 고구려는 조락했어도 조상들의 국토통합념원은 실현해야 한다면서요. 신라땅에 고구려후손들의 씨가 내리면 그게 곧 통일이 아닌가고 하였다더이다.》

《옳소이다. 그때 우리 조부되시는분은 부상을 입고 널쪽 하나에 의지한채 떠내려가다가 한수(한강)와 합쳐지는 물목에서 때마침 올려미는 밀물의 덕으로 겨우 기슭에 붙어 지금의 금천(시흥)땅에 터를 잡은겁니다. 그러다보니 혼자 떨어진 우리 조부보다 여럿이 내려간 진주 강씨쪽이 큰집이 되고 그곳을 원조상의 본관지로 정한것입니다. 그래서 금천 강씨와 진주 강씨는 한조상, 한갈래입니다.》

《그러니 두 강씨는 다 고구려후손이군요.》

《통일고려의 주역을 논 고구려출신들이지요.》

《고려통일의 주역이였을뿐아니고 고려를 지키는데서도 주역이 되여야지요.》

《강장자어른, 정말 말씀을 잘하셨소.》

《지금 거란족속들이 변방을 계속 쑤셔대는 모양인데… 조만간에 싸움이 터질것으로 보아 틀림이 없을것이요. 이 강조는 때가 되면 내 할바를 다 할것이로소이다.》

《국난이 닥쳐오면 선비와 무사를 가르겠소이까? 그때에는 나도 쾌히 군사로 나설것이옵니다.》

《확실히 우린 배가 맞는 짝패요. 자, 상면을 기념해서 한잔 하십시다. 얘들아!》 강조는 호기있게 소리쳤다. 《그냥 갈 생각일랑 아예 마시오.》

강조는 은천의 손을 꾹 잡아누르며 읊조리였다.

《좋은 벗을 만났으되 어찌 좋은 술 안 마시랴. 어떻소, 내 시짓는 솜씨가…》

《좋은 벗은 또 하나의 자기자신이자 스승이기도 하여라.》

은천이 즐거이 화답하자 강조는 두손을 저었다.

《내가 스승이라니… 그건 아니고, 우리 서로가 호형호제하며 서로가 스승이 되고 제자가 됩시다. 하하하…》

《하하하…》

둘은 소리내여 웃었다.

은천은 강조의 호의를 받아들여 하루밤을 묵지 않을수 없었다.

다음날 은천은 강조의 바래움을 받으며 내미홀을 떠나갔다.

그다음 부포로 또 월포로 부지런히 말을 달려 계획했던 일들을 하나하나 해나갔다. 그곳 접객소들의 촌때를 벗도록 일일이 손을 대였고 가는 길에 들리는 고을마다에서 민심을 료해하고 특히는 군사업무실태를 속속들이 장악하였다.

강조가 장담하였던바대로(강조는 은천에게 자기 관할지안에 다른 일이라면 몰라도 군역체계만은 온전히 세워놓았다고 했었다.)이곳의 병역동원체계는 그만하면 괜찮았다. 강조부자가 포악스럽다는 소리가 드문드문 들려오는것이 마음에 걸릴뿐이였다.

강조가 최승로의 시무책을 내놓고 비평하는것도 불안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전면부정하는것은 아니였고 은천이나 서희가 부정하는것과 맥이 같은것이여서 일면 긍정하고 자중하라 일러는 두었지만 최승로는 강조가 조정에 고분고분하지 않는다며 그의 전모를 부적절한 존재로 규정짓고있지 않았던가.

사람은 서로 만나봐야 진속을 알수 있는것임을 은천은 새삼스레 느꼈다.

강조는 최승로 개인을 탓하는 사람이지 조정자체를 탓하는 사람은 아니였다. 전해오는 말만 듣고 서둘러 결론을 지어버리는것은 관리로서 대단히 경계해야 할 일임을 은천은 다시한번 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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