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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8 회)

 

상 편

 

6. 조정에 몸 담그고

 

1

 

(2)

 

은천은 아침과 저녁은 무조건 죽이고 점심만 밥이였다. 덩지가 크지 않은 자기 체중을 유지하는데 하루 세끼중 두끼는 죽만으로도 족하다는데서였다. 제 몸에 알맞게 적당히 먹으면 그만이야, 포식하는것만큼 어리석은짓은 없어, 이것이 은천의 생각이였다.

은천은 점심에 먹는 밥도 다른 대감나리들처럼 식을 갖춘 한벌 반상기가 아니라 국과 밥을 한데 얼버무린 장국밥을, 그것도 자그마한 보시기에 골싹하게 담아 먹었다. 아침과 저녁에 먹는 죽도 콩죽이나 팥죽 아니면 보리죽, 호박죽따위였다. 일년에 서너번 명절날에 가서나 잣죽 아니면 전복죽을 먹었다. 그것도 집안의 하인잡배들까지 매모조리 꼭같이 먹게 했지 저 혼자만은 절대 먹지 않았다.

이런 은천을 아는 개암이지만 어쩌다 대궐밖을 나와서 주인님께서 별식으로나 드는 잣죽을 부엌칸에서 보고는 참지 못하고 저도 모르게 한그릇 청해온것인데 아닐세라 은천은 두말없이 도리질이였다. 저 혼자는 절대 별식을 안하는것이였다.

《아직 걸음을 해야 할 길인데 국밥에 탁배기 한사발이면 족하다. 부포에 가면 전복죽은 생길거다. 래일 저녁 내 한턱 쓰지. 어떠냐?!》

《좋사와요, 약속했사와요.》

개암은 그제야 목을 펴고 상앞에 다가들었다.

《주인어르신도 함께 듭시다.》

은천이 청하자 주인은 손을 저었다.

《소인은 동무나 해드리겠소이다. 어서 쭉 드시오이다.》

은천은 탁배기대접을 슬쩍 입에 댔다 떼여 강쇠와 개암이가 마시게 선을 떼주고는 숟가락으로 장국물을 한술 떠서 맛을 보았다.

《국물맛이 참 좋으시오. 듣던바 그대로요. 내미홀온반이 소문날만 하오.》

《그렇지요?! 헤헤…》

주막주인은 은천의 치하에 버덩이를 드러내며 좋아했다.

《국맛이 독특한걸 보면 주인어른께서 남다른 비법을 쓰시는가보오이다.》

《비법이 있구말구요. 이건 누구한테도 루설하지 않은건데… 어르신한테만은 말하리다. 옛적에 우리 선대조상분께서 고구려군사로 계셨는데요, 말년에 이 내미홀에 정착하시와 어촌거리를 꾸리시고 고을생계를 주관하셨다 하오이다. 그때는 가세가 여간 세지 않았다 하옵는데 어찌어찌하다 지금 내 대에 와선 요 모양이 되였구만요. 남은건 고작 선대때부터 전해오는 이 장국말이재간뿐이구요.》

《나라를 지켜 싸운 훌륭한 선대분을 두셨구만요. 장하오이다. 그래, 그 장국말이비법은 대체 어떤것이요?》

《예, 그 비법이란게 다른게 아니고 돼지건 닭이건 꿩이건 네발짐승, 두발짐승 할것없이 고기란 고기는 매모조리 보리 삶은 물을 두고 푹 고아내는겁니다. 장국물은 보리와 고기를 삶은 물을 그대로 쓰고요. 간은 바다물을 길어다 서슬을 앗아낸것을 두오이다. 약간 다른것은 두발짐승고기를 삶은 국물에는 생굴을 끓여서 슬쩍 섞어넣고요 네발짐승고기를 삶은 국물에는 맛이나 대합같은 조개를 끓인 물을 섞어넣소이다.》

《고기는 왜 꼭 보리 삶은 물로 끓이시오?》

《그건 보리의 달콤한 맛이 고기에 배이게 하려는거지요. 굴이나 조개 삶은 물을 섞는것은 어물의 달짝지근하면서도 비린 맛으로 국물맛을 돋구면서도 고기의 니끼한 기름맛을 슬쩍 숨죽여놓자는것이구요.》

《거참 신통하시오.》

《놓치지 말아야 하는것은 꾸미에 고기와 함께 미나리와 록두나물, 동치미쪽을 꼭 놓는것이오이다. 미나리와 록두나물은 향내를 돋구면서도 겸사해서 독을 막자 함이고 동치미쪽은 배속에서 잘 삭여내서 뒤탈이 없게 하자는것이옵니다. 우리 집 온반맛의 비결은 바로 이런것이로소이다.》

《선대분들께서 이곳 토산물들을 잘 가려서 정말 특색있는 음식을 만들어내셨소이다. 누구도 흉내낼수 없는 내미홀온반이로소이다.》

《아닌 말로 우리 집 온반이 개경 황궁 수라상에도 오른다 들었는데 정말인지는 모르겠소오만 그만큼 소문이 난것은 사실이오이다.》

자기 집 온반이 임금의 수라상에까지 오른다는 소리에 은천은 웃음을 참느라 실눈을 지었다.

그 모양을 띠여본 주인이 이마살을 찌프렸다.

《왜, 내 말이 믿어지지 않소이까?》

《아니, 아니요. 아마 틀림없을거외다.》

은천은 주막주인의 외람된 생각을 나무리고싶지 않았다. 자기것에 대한 긍지, 이것이 이 사람이 즐기는 생활의 진짜맛인것이였다.

《실은 나도 이 온반을 무척 좋아하오이다. 우리 가문의 선대분들 역시 그러했고요.》

《그렇소이까?! 나리는 어디 사시는분이시오이까? 년세가 아직은 중년고개에 못 미치신것 같은데…》

《나는 저기 한수(한강)아래 금천사람인데 지금은 송악산자락귀퉁이에 거처하고있는 반건달이오이다. 서른을 방금 넘긴 아이이니 말씀일랑 낮추시오이다. 나리는 무슨 나리겠소이까.》

《아니할 말씀. 이래뵈도 내가 사람은 가려볼줄 아오이다. 복색은 허술히 하고계셔도 틀진 거동이야 감출수 있소이까? 삽시에 상대를 제압하는 나리의 그 눈빛만 보고도 나는 당장에 알아차렸소이다.》

주인은 한무릎 다가붙으며 목소리를 낮추어 물었다.

《나리는 조정에서 파한 감찰어사지요?》

《당치도 않은 말씀이시오. 원, 주인어르신도…》

《헤헤, 틀림이 없으리다. 내 스물일곱해를 이 주막거리에서 부대껴온 사람이오이다. 이 주막을 거쳐가는 행인길손이 하루에 작아서 삼사 십이요. 많을 땐 륙칠십인데 사람상대에 이골이 튼 내가 아무렴 벼슬하는 나리를 못 알아보시겠소이까? 아무리 뜨내기행색을 하셨어도 나는 못 속이오이다.》

《주인어른, 우리 온반이야기나 계속하십시다.》 은천은 지꿎게 다가붙는 주막주인에게 말머리를 돌리였다.

《주인어른의 선대분께서 고구려군사였다니 하는 말이온데 실은 이 온반이란 음식이 생겨난것이 고구려군사들과 무관하지 않은걸로 나는 알고있소이다. 고구려때 파발들이 급한 정보나 군령을 날라가는 도중에 끼니때가 되면 이런 주막에 잠간 멈추어서서 말우에 앉은채로 급히 밥을 받아먹기가 일쑤였는데 시간이 급하니 개다리소반에 찬그릇들을 개개로 챙겨줄순 없고 해서 주막주인들이 생각해낸것이 밥과 국, 식찬을 그릇 하나에 담아서 주군 하였다더군요. 그것이 먹기에 편리해서 싸움판에 나가선 군사들에게 한그릇에 합쳐 담아주는것을 례사로 여겼는데 그것이 오늘에 와서 온반으로 고착되였다 하옵니다. 지금도 전장에 나가면 군사들이 이렇게 온반 먹듯 한그릇에 밥과 국을 말아먹는게 보통입니다. 그릇이 없을 땐 투구를 벗어 담아먹기도 하는데 날씨가 찰 때는 국밥을 담은 투구를 불무지에 올려놓고 덥혀먹다나니 그만에 전골이란 료리종류가 새로 생겨났구만요. 개경에 지금 한창 퍼졌는데 화로불이든 화토불이든 피워놓은 우에 놋그릇을 올려놓고 고기건 남새건 밥이건 국이건 제 내키는대로 넣고서 부글부글 끓여먹는 그 맛이 참 별맛이랍니다.》

《그렇소이까?! 그 전골인지 하는걸 한번 맛보았으면 좋겠소이다.》

《맛보고말고 할게 있소이까? 방금 말한대로 하면 됩니다. 여기서도 그 전골을 퍼치십시오. 개경 선비어르신들은 그 음식을 상스럽다 흉을 보는가본데 먹기 좋고 맛있으면 그만이지 흉볼거야 있소이까? 아마 그들도 인츰 따라먹을것이오이다.》

《그 전골을 나도 꼭 해보겠소이다, 나으리!》

《좌우간 주인어르신, 오늘 소문난 내미홀온반을 정말 맛있게 들었소이다. 앞으로 계속 소문을 내시오이다.》

《그러겠소이다, 소문을 내고말고요.》

주막주인은 허리를 굽석이며 흡족해했다.

《자, 그럼 우린 떠나보겠소이다.》

은천은 주막주인에게 거듭 사례하며 일어섰다.

바로 이때였다.

《가만, 거기 좀 섰거라!》

웬 놈팽이들 대여섯이 호통치며 다가왔다.

《맞구나. 지경밖 고개에서 우릴 야료하던 애들이야.》

노루를 쫓아오다 손찌검당한 그 패거리들이였다.

《야들이 어디서 굴러온 개똥쇠들이야? 허… 천지신명도 몰라보는 이런 무뢰배들을 보았나.》

《?…》

은천이와 강쇠, 개암이는 어리둥절해졌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갑자기 천지신명이라는건 또 뭐냐?

《형들께선 왜 또 트집을 걸며 이러시오?》

강쇠는 아까 손 한번 쓰지 못한것이 아쉽던차라 이게 웬 호떡이냐 하는 심산으로 어깨를 살리고 나섰다.

얼핏 보니 아까 초벌 봉변을 당한 갈구리눈은 뒤쪽에 서서 뭐라 부추기고 절간의 금강력사같이 우락부락하게 생겨먹은 구척장신의 두억시니 하나가 곁달려와서 떡봉이행세를 하고있다.

《성황지신을 노엽히고도 할 소리가 있어?》

《성황지신을 노엽혀?》

《성황나무에 말을 세마리씩이나 매놓고서도 그 죄를 몰라?》

《뭐, 성황나무?》

두억시니의 말은 개암이가 말을 매놓은 저 느티나무가 성황나무라는 소리였다.

성황나무란 성황지신의 기가 배여있는 나무라는 뜻이고 성황지신이란 집과 터밭, 재물을 지켜준다는 땅귀신을 말한다.

이 땅귀신은 하늘귀신의 재주를 잘 알기때문에 하늘귀신이 내리는 온갖 재앙을 막아주어 사람도 살리고 재물도 지켜준다고 하였다. 바람이든 비든 천둥벼락이든 좌우지간 하늘에서 내리는 재앙은 물론이고 땅우에 맴돌거나 땅속에 기여다니는 온갖 잡귀신들까지 이 땅귀신은 마음만 동하면 다 막아주는데 그 마음을 동하게 하는것이 바로 무당들이 벌리는 굿판놀음 아니면 성황당에 떡함지를 이고가서 빌거나 하다못해 성황나무라는 헛개비탈을 씌운 이런 나무의 밑둥아리에 아까운 술과 고기쪼박을 제 입에 넣기 전에 먼저 고여주며 비는짓따위였다.

도대체 내미홀바닥에 처음 발을 들여놓은 은천이네로서는 주막집 차일기둥으로 쓰는 멀쩡한 나무를 갑자기 귀신 들린 나무라 들고나오니 처음엔 어리둥절해서 퍼붓는대로 말짱히 욕만 먹는 판국이 되여버렸다.

변괴로다, 이런 낮도깨비들을 보았나?!

《나리, 아무래도 오늘 내 좀 놀아주어야 할가보오이다.》

얼떨떨해있던 강쇠가 비로소 정신을 차린듯 우드득 소리내여 어깨관절을 비틀고는 목을 두어바퀴 돌렸다.

《마구다지로 물고늘어지는 꼴이니 조금 놀아주어라. 하지만 완력을 쓰지 말고… 오늘 강쇠와 개암이의 입씨름실력을 좀 보자.》

은천은 머리를 끄덕이며 노전바닥에 다시 주저앉았다.

드잡이로 버릇을 가르치려던 강쇠는 입씨름으로 해결을 보라는 은천의 분부에 눈살을 찌프렸다. 하지만 별수 없었다.

《나무에 성황나무라고 써붙이지 않은 이상 우리가 어떻게 알수 있겠냐. 가만… 참, 주인어른께선 이 나무가 성황나무란걸 알고계셨소이까?》

강쇠의 물음에 주막주인은 마른침만 꿀꺽 삼켰다. 아닌 말로 이 주막에서 배꼽 떨어져 오늘까지 제집 마당나무가 성황나무라는 소린 듣다 처음이였다.

《그… 글쎄 말이네. …》

갑자르는 주막주인에게 두억시니는 청산류수로 다그어댔다.

《글쎄가 뭐요, 주인장어른. 우리 강장자어르신께서 이미 십수년전에 정해준 성황나무가 아니요? 저기 옥계천 선녀소우의 돌배나무하고 선산고개마루의 구름나무하고 저 앞 개바닥 갈매바위우의 고양나무하고 여기 이 학고개밑 주막거리 느티나무까지 사방 네귀를 맞추어서 정해준 성황나무를 그래 주인장께서 모르신단 말이요?》

두억시니는 보기와는 달리 터진 팥자루 새듯 시커먼 거짓말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저 두억시니나 갈구리눈놈팽이들이 다름아닌 강장자수하의 난다긴다하는 가병들인것을 잘 알고있는 주막주인은 뒤탈이 두려워 놈팽이들 장단에 응해버리고말고푼 생각이 굴뚝같았으나 한편으론 처음 보는 은천의 됨됨이가 범상치 않다는것을 알아차린 뒤라 자기뒤를 봐주리란 믿음이 갈마들면서 서서히 배짱이 뻗쳐올랐다.

에잇, 불알 달고 어언간 쉰고개이다. 머리털이 희슥희슥한것이 코밑에 수염자리 겨우 난것들한테 코빼기를 숙일소냐?!

드디여 주막주인의 울대뼈가 꿈틀 용을 썼다.

《방정맞게 뉘집마당에 와서 귀신나무타령이냐? 그따위 소린 듣다 처음이다, 이 오그라질 놈들아! 내 더운밥 먹고 식은 소리 하랴. 섰다 죽어도 우리 마당나무는 성황나무가 아니다, 이 주리를 틀 놈들!》

벼락치듯 내리패는 주막주인의 욕지거리에 이번엔 두억시니며 갈구리눈들이 얼쳐버렸다

《아아, 주인어르신! 그만 고정하셔요.》 지금껏 잠자코 있던 개암이가 새치고 나섰다.

《저 형님들 말대로 이 나무가 성황나무라 칩시다. 하오면 성황나무밑에서 지금껏 살아오신 주인어르신은 성황신이 되는게 아니오니까?!》

《내… 내가 성황신?…》

《그렇잖구요.》 개암이는 주막주인에게 한쪽눈을 찡긋했다.

《그러니 저 형님들이 우리보고 건트집을 잡을 리유가 없게 되였구만요. 우린 이 주막에 들어설 때 주인어르신께 인사를 했고 떠나면서도 인사를 하지 않았소이까. 올 때, 갈 때 다 성황신에게 인사를 올렸는데 어째서 무뢰배라 할가요, 형님네들! 내 말이 그르면 그르다고 하시우.》

놈팽이들은 개암이의 아귀가 꼭 물린 말에 뻐꾹소리 한마디 대꾸할수가 없었다.

《자, 형님네들 말대로 이 나무는 성황나무이니 이 집주인어르신은 성황신이 되옵니다. 어서 우리처럼 주인어르신에게… 아니, 성황신께 절을 올리시오, 어서 절을 하란 말이요, 하하…》

《하하하…》

《허허허…》

개암이와 강쇠가 깔깔깔 웃어제끼자 주막주인도 어이가 없는지 따라웃었다.

은천도 빙그레 웃지 않을수 없었다. 하지만 은천은 주막주인의 뒤일이 걱정되지 않을수 없었다. 한껏 망신을 당한 놈팽이들이 《저놈의 두상, 두고보자.》 하며 이발을 부드득 가는 모양을 띠여본것이다.

은천은 조용히 강쇠를 불러 이러이러하라 일렀다. 머리를 끄덕이고 난 강쇠는 무슨 생트집을 또 잡아볼가 하여 눈알을 굴리고있는 두억시니에게 바투 다가가 궁성호위군졸의 표적을 꺼내보였다.

《글을 알테지? 보았냐? 앞으로 그가 누구든 주막주인의 머리칼 한오리라도 다치는자는 사정보지 않고 목을 따치울것이다. 알아들었냐?》

《알았소이다.》

놈팽이들은 황급히 꿇어엎드리며 머리를 조아렸다.

《또 한가지, 앞으론 이 주막을 지날 때 저 성황나무하고 이 주막주인어른에게 절하는걸 잊지 말라.》

《그리하겠소이다. 얘들아, 어서 돌아가자.》

놈팽이들은 황황히 꽁무니를 뺐다.

《글쎄 그러면 그렇겠지, 내가 잘못 볼리야 있나. 하하… 야, 이 햇콩꼬투리를 단것들아! 너희들 그 햇콩깍지가 아무리 빳빳한들 쭈글쭈글한 내 홍두깨에 비기겠냐? 이 젖내나는것들! 내것은 노상 고개를 숙이고 사는줄 아는가 보네, 내참, 코털이 시여서…》

주막주인은 의기양양해서 놈팽이들이 사라지는쪽에 대고 연해연방 줄욕을 퍼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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