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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 회)

 

상 편

 

4. 곡절은 있었어도

 

(1)

 

5년이 지난 해의 여름 어느날이였다.

초당 아래쪽 돌길을 따라 또각또각 들려오는 말발굽소리에 갸웃이 목을 내밀고 내려다보던 송죽의 눈이 동그래졌다.

《아니, 너 도련이 아니냐?!》

《아씨, 그간 무탈하셨소이까?》

맨머리바람의 총각이(그는 이 집 말구종녀석이다.) 송죽을 향해 벌씬 웃어보이고는 말에서 내려 땀투성이얼굴을 숙여보이며 급히 인사를 올린다.

《아버님, 어머님은 무고하시냐? 앓지는 않으시고?…》

《그럭저럭… 외지살이가 제 집만이야 하겠소이까만… 지몽어르신이 다행히 큰 탈이 없으시니 한결 시름이 덜하오이다. 주인마님은 도련님이랑 송죽아씨랑 잘있는지 걱정된다 하시였소이다.》

《우리야 무슨 걱정이 있겠니. 지몽어르신을 돌보시느라 부모님들이 고생하시지.》

《참, 도련님은 잘있소이까?》

《응. 뒤산에 올라가계신다. 이젠 내려오실 때가 되였다.》

송죽은 도련이를 다시금 훑어보고는 호- 하고 한숨을 내쉬였다.

《네 모양이 말이 아니구나. 너를 보니 그곳 사는 형편이 짐작이 간다.》

《너무 걱정마시와요. 그사이 내가 좀 게을러져서 그런걸요.》

도련은 때묻은 팔소매를 슬쩍 가리우며 얼굴을 외로 꼬았다.

도련이란 이름은 도성거리 막사람들이 붙여준 그의 별명인데 그만에야 이름으로 되고말았다. 이 초당집 주인들이 말구종과 부엌어멈을 제 집식구들과 꼭같이 먹여주고 입혀주는터에 거리에 나서면 말구종과 주인아드님을 가려보기 힘들었다. 그래서 부러움 절반, 롱 절반으로 《도련님》이라고 불러준것이 아예 이름으로 되고만것이다. 그러던 말구종(도련)의 옷주제, 몸거둠새가 거지행색에 가까운 꼴을 하고있으니 송죽의 얼굴이 흐려진것이다.

양부모님이 외지살이를 하게 된 일을 생각하면 금시 가슴이 미여지군 하는 송죽이다.

양아버지 강궁진과 양어머니 을녀는 조정의 원로인 최지몽의 류배살이를 뒤바라지하러 가있는것이였다.

원로 최지몽이 류배를 가게 된것은 임금(광종)의 노여움을 산때문이였다.

세해전 일이였다.

양아버지인 군기감 강궁진은 병쟁기제조에 쓸 쇠붙이를 거두어들이는 일이 차츰 처지면서 계획한대로 진척이 잘 안되는데 화가 나서 자기의 권한으로 쇠부리터들을 전면 단속하는 조치를 취했었다.

할당된 쇠붙이량을 제 기한에 보장하도록 지방관리들을 엄하게 신칙하게 하는 한편 장거리들을 단속하여 무쇠붙이와 구리쇠붙이를 암거래하는 잠상들을 가차없이 벌을 주고 쇠붙이는 회수하게 했었다. 그통에 귀법사에 새로 앉혀놓을 불상과 매달아놓을 종을 제조하는데 쓴다며 가져가던 구리쇠까지 회수하는 일이 벌어졌다. 실은 귀법사중축을 턱대고 딴짓을 하려고 빼돌리는것을 회수한것이였으나(귀법사는 광종이 자기 어머니의 명복을 비는 사당으로 정하고 크게 확장하도록 한 절이였다.) 깜찍한 장사군들이 수염을 뻑 씻고 저들에게 리롭게 송사질을 한탓에 진속은 가리워지고 어지를 시행하는데 방해를 놓았다는 죄목만 붙고말았다. 단속하였던 관속들이 줄줄이 오라를 진것은 말할것도 없고 단속을 총괄한 강궁진에게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결론이 지어졌다.

다행히도 내의성 시랑으로 갓 옮겨앉은 서희가 임금에게 간언하여 과실죄로 인정되고 적당히 문책으로 일은 끝이 났었다. 내의성 시랑이란 직무가 임금의 정사중에 그릇된 일처리를 바로잡도록 건의하는 일을 기본임무로 하고있는 벼슬자리인지라 서희의 제의를 임금이 심중히 들어준것이였다.

그런데 정작 귀법사 중축공사가 완료되여 축하연이 벌어진 자리에서 임금과 자리를 같이하게 된 최지몽이 술기운을 빌어 한마디 롱담을 한것이 화근이 될줄이야.

귀법사에 새로 매달아놓은 종소리가 대단히 좋다 하며 임금이 종을 다시 쳐보라 하여 주지가 손수 나서서 덩실덩실 종봉대를 흔들어대고 뒤이어 은은한 종소리가 절간지붕마루를 드르덩덩 울려퍼지는 순간이였다.

《장야감, 너 듣느냐? 저 종소린 군기감나으리께서 너를 보고 일을 더 잘하라고 신칙하는 소리이니라.》

장야감이란 이후에 장야서(각종 금속주조와 금, 은, 동세공품제작을 맡은 부서)로 불리우게 되는 궁정부서의 책임자로 품계는 그닥 높지 않아 임금과 술자리를 함께 할 정도는 못되였으나 임금이 특별히 령을 내려서 황송하게도 한자리에 앉게 되였었다.

최지몽이 군기감인 강궁진의 신칙이 어쩌구 한것은 장야감이 구리쇠붙이를 가지고 롱간질을 하는 장사나부랭이들을 단속하는 일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의미와 함께 강궁진이 무기제조의 중임을 착실히 하고있다는 점을 임금이 알고있으라는 의미도 담고있는 말뜻이였다.

그런데 지몽의 그 말이 임금에게는 죄없는 강궁진을 벌하였던 일을 꼬집는 뜻으로 해석되였다.

《지몽공께선 짐이 죄없는 사람을 마구 벌한다 생각되시오?》

《아니, 무슨 말씀을 하시오이까, 페하!》

《그게 아니면 뭐란 말이요? 군기감의 죄를 묻지 않았으면 그만이지 짐이 기특히 여겨 한자리에 앉게 한 장야감을 야료하는 그 속내야 뻔하지 않소. 이 사람을 시까스르지 못해 안달이 난게 아니고 뭔가 말이요?》

임금은 목덜미까지 붉어지며 눈을 치떴다.

《페하, 제 말은 그런 뜻이 아니오라…》

지몽은 황급히 일어섰다.

《그만두시오. 공은 이 사람을 아직도 젖먹이로 아는 모양인데… 지나친 걱정이요, 어험!》

임금은 불쑥 일어서더니 종종걸음으로 절뜨락을 내려섰다.

《페하!…》

지몽은 그 자리에 풀써덕 주저앉고말았다.

아이코! 이런 망녕이라구야. 내 무슨 실언을 하였단 말이냐. …

그러지 않아도 요즈음 임금이 간신들의 송사질을 그대로 믿고 죄없는 사람들을 마구 목을 딴다고 궁성안팎에서 원성이 높다는 말을 전해듣고 신경이 날카로와져있는것을 번연히 알면서도 입건사를 요 모양으로 하다니…

(이 오새없는 로구야. …)

최지몽은 이마를 두드렸다.

(이제는 때가 되였구나. 그만 물러가는 수다.)

지몽은 그 즉시 사표를 내고 귀양을 자청해 떠나갔다.

원로대신들은 지몽을 막지 못하였다.

강궁진도 허둥지둥 지몽의 뒤를 따랐다. 지몽이 자기를 두둔해주다가 벌어진 일이므로 함께 벌을 받음이 마땅하다고 생각한것이다. 고향 금천에 기별하여 마누라까지 불러올려 함께 떠나갔다. 지몽의 뒤바라지를 하려는것이였다.

강궁진이 사표를 내고 지몽을 따라가겠다 하는데 대해 임금은 만류의 말 한마디 없었다.

궁진은 따라서는 아들 은천을 밀막으며 초당을 지키고앉아 학업에나 열중하라고 당부했다.

서희도 은천이 귀양지로 가는것을 반대했다. 때가 되면 임금의 오해는 풀릴것이라며. …

은천은 할수없이 주저앉았다. 송죽이도 떨어졌다. 은천의 뒤바라지를 해야 했던것이다.

초당은 졸지에 서리맞은 꼴이 되였다.

은천은 초당안은 답답하다며 쩍하면 뒤산으로 올라가 책을 읽었다.

아버지가 귀양가있는쪽을 하염없이 바라보기가 일쑤였다.

(서희어른께선 언제 돌아오시려나. … 그 어른이 계시면 은천오빠의 외로움을 조금은 덜련만…)

송죽은 오래비 은천이 송나라에 사신으로 가있는 서희가 돌아오기를 얼마나 애타게 기다리는가를 잘 알고있다.

서희는 금년(972년) 초봄에 송나라 수도 개봉으로 떠나갔다.

송나라와의 반거란동맹체결이 기본목적이였다.

송나라는 후주의 군사귀족 조광윤이 960년에 왕이 죽자 어린 세자를 왕위에 올려놓았다가 3년을 못 넘기고 페위시킨 뒤 제가 왕이 되여 송이라 나라이름을 고쳐 정한 뒤 황하이남의 형남, 촉, 남한, 남당, 오월 등 크고작은 소국들을 일면 강압, 일면 회유의 방법으로 함락귀속시키면서 10년사이에 제법 거란과 맞서 기염을 토하며 기세를 올려가고있었다.

10여년전에 거란의 공격을 가까스로 멈춰세우고(거란에 만리장성부근의 숱한 땅을 내주고 교역형식의 조공까지 곁들이여 바칠것을 약조한 대신으로 치욕적인 정화를 하였었다.) 힘이 진해 헐떡이는 후주조정은 사실상 자기 명을 다한 상태였었다. 거란과의 싸움을 총괄하는 과정에 군권을 틀어쥐게 된 조광윤은 3년후인 963년에 왕위에 올라 갱신의 새바람을 일으키며 10년어간에 중국을 통일하는 공을 세웠다.

땅은 얼마간 양보하고 그까짓 조공따위는 약조했다 하더라도 그래도 거란의 남하를 막고 덩지 큰 한족국가의 체면을 세워주고 존재를 유지하게 한 그 공을 어찌 작다고 할것이며 10년만에 진나라때보다 남북동서로 령토를 더 넓혀서 더 큰 통일국가를 세워놓았으니 그 공 또한 어찌 칭찬하지 않을수 있으랴.

송태조 조광윤의 명성이 하늘 높은줄 모르고 솟구쳐오르자 거란왕은 심사가 뒤틀려 환장할 지경이 되였다. 그사이 한편으론 뒤통수를 쑤시는 돌궐과 싸우느라, 다른 편으론 집안끼리 벌려놓은 편싸움을 결속하느라 후주공략에서 약간 거두어들였던 땅이니 재물이니 하는것들을 제대로 소화시키지도 못한채 피칠갑을 해가지고 허우적거리다가 겨우 수습한 거란으로서는 료태조때의 유지인 중원공략웅지를 지금 당장 다시 펼칠수는 도저히 없는 상태였다.

송나라가 부국강병의 북소리를 울리며 위세를 돋구는것을 당장은 눈뜨고 보고만 있어야 하는 거란의 심사가 오죽하랴. 하지만 원체 질기기가 락타 발뒤꿈치 심줄같은 이 족속들이 가만있을리 만무였다. 그속에서도 감히 돼지엉치에 창질하듯 때없이 송나라지경을 기습하기가 일쑤여서 치세치민에 열중하는 송을 노상 괴롭히고있었다.

화김에 발차기라고 무뢰배 거란것들은 돌궐을 침네 하고 고려의 압록강대안까지 말발굽을 울리군 하여 고려조정의 신경을 곧잘 건드리군 하였다.

구름이 자주 끼면 비가 오는 법이라고 고려변방에 대한 거란군의 잦은 출몰은 십중팔구 전면공격에로 이어질 가능성이 풍부했다.

거란에 대처하기 위해 힘을 모아가고있는 사정은 고려나 송이나 같은 처지였다. 이로 해서 고려와 송은 반거란동맹의 형성이 절실하게 나선다는 견해에 도달했다.

이러한 견해를 먼저 표명해온것은 송나라였다. 송나라조정의 비밀접촉서신이 산동해안의 고려방상인들의 래왕행렬에 묻히여 전해져왔다.

송나라와의 접촉문제를 놓고 조정에서는 론의가 분분했다.

접촉에 응하느냐 마느냐, 접촉에 응하는 경우 송의 사신을 오게 하느냐 고려의 사신이 가게 하느냐. …

하지만 론의는 이내 결속되였다.

태조때 후진의 사신교환에 쾌히 응하였던 전례를 따르는것이 여러모로 보아 좋다는것이였고 더우기 송나라실상을 직접 료해할수 있는 기회를 놓쳐서는 안된다는데서 견해가 일치했다.

고려사신이 찾아가는것이 덩지 큰 송나라에 스스로 제후국처럼 보일수 있으니 격이 떨어지는 처사라 반대하는 대신들도 있었으나 그것은 즉시 부정되였다. 그것은 송나라조정의 비밀서신에 《야만족 거란이 감히 대료제국을 운운하며 중원과 해동, 두 제국의 비위를 건드리고 령토를 탐하는양을 묵과해둘수 없으므로…》라는 문구에서 알수 있듯이 송은 고려는 같은 제국으로 인정하나 거란은 제국으로 보지 않는다는 뜻이 명기되여있으므로 부디 제후국이나 속국으로 대하리라는 선입견은 가질 필요가 없다는데서였다.

만약경우 그런 틈사리가 조금이라도 보일 경우에는 즉각 반박하고 돌아서면 될것이였다.

사실을 말하면 임금은 스물두해전(950년) 즉위하면서 년호를 광덕으로 정하였고 이후에 준풍이라 고쳐불러왔지만 송은 이에 대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있었다.

론의의 초점은 반거란동맹의 약조문제중에 송이 지금 당장에 군사를 일으켜 거란을 익측으로 협공해달라는 실제적인 군사행동안이 제기되는 경우 이를 어떻게 처리할것이냐 하는 문제가 제기되여 시간을 조금 끌었다.

하지만 이 경우는 송이 먼저 공격할 준비가 완료되여있고 공격시간표가 세워져있는가를 확정한 뒤에 그리고 공격하여 능히 거란을 밀어내고 령토를 수복할수 있는지를 타산해본 뒤에 내려야 할것이므로 현지에 가는 사신의 판단과 처리에 맡기기로 했다.

마지막에 사신단의 수석을 누구로 하느냐 하는 론의에서 다시금 약간의 실랑이가 있었으나 그 문제도 이내 결속되였다.

임금이 내의시랑 서희를 추천한것이였다.

원로대신들은 별다른 의견을 제기하지 않았다. 최근에 와서 임금이 중요문제를 론의할 때 서희를 비롯한 젊은 관료들을 즐겨 불러들이는것을 이미 싫도록 목격한바도 있거니와 아닌 말로 현재 고려조정에 서희만큼 능수능란하게 림기웅변으로 대처할 능력을 가진 사람이 없었기때문이였다.

원로대신들자체가 신진관료의 출현을 적극 바라고 밀어주고있는데도 있지만 신진세력으로 조정을 꾸리려는 임금의 결심은 이미 즉위 초기부터 내려져있었던것이다.

임금은 즉위하여 8년만에 과거를 보는 제도를 내오도록 하여 신진관료선발을 공명정대하게 그리고 광범위하게 하도록 하였고 과거시험제도를 실시하여 두번째 해에 제일 첫자리로 당선된 서희에게 대담하게 시랑의 관직을 주었던것이다.

기실 이 시기에 임금은 건국공신들을 비롯한 수구관료들을 은근히 밀어버리고 신진관료들을 적극 내세워 조정의 기강을 참신하게 해가고있었다. 몇해전 최지몽의 실언을 즉석에서 꼬집어 면박을 준것도 실은 개국공신원로들에게 너희들 없이도 내절로 정사를 본다는것을 알게 하자는데 진목적이 있었다. 임금은 주대가 있는 사람이였다.

서희는 서둘러 떠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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