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회)
상 편
3. 은천이 서희와 사귀다
봄이 왔다.
사시절 푸르청청한 송림을 자랑하는 송악의 산자락들에도 점점이 꽃들이 피여 분홍빛, 흰빛단장을 하였다.
송악산 주봉에서 동남쪽으로 만월대와 잇닿은 본줄기와 이웃하여 이채로운 바위들을 들쑹날쑹 이고서 가지런히 내리뻗은 한줄기 산자락이 둔덕을 이루면서 끝나는 곳에 흰 배꽃이 류달리 많이 피여있다.
배꽃이 만발한 그 둔덕아래 서쪽모퉁이에 초당 한채가 오붓이 자리잡고있었다. 군기감 강궁진이 거처하는 집이였다.
가로 스물두자, 세로 열여덟자정도밖에 안되는 좁은 폭의 초당뜨락에 강궁진이 아들 은천과 양딸인 송죽이와 나란히 서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모양 서성거리고있었다.
이 초당은 강궁진의 아버지 강여청이 조정에 일을 보러 올라와있을 때마다 거처하던 곳이다.
강여청은 고려태조 왕건을 옹립하는데 참가한 공신으로 왕건으로부터 고향인 금천(시흥)을 식읍으로 하사받은 지방호족이고 고려군 장수였다.
고려의 세습법에 따라 궁진은 본관지인 금천땅과 함께 송악의 이 초당도 넘겨받았다.
송악에 올라오는 때에만 잠시 묵군 하던 이 초당에 궁진은 조정의 군기감으로 일하게 된 이후부터 아예 눌러앉아버렸다.
품계와 관직에 따라 궁진에게는 나라에서 지어주는 집인 관사와 함께 다섯명까지의 종을 둘수 있게 되여있으나 집은 따로 짓느라 하지 않고 말구종 하나에 부엌일을 보는 녀종 하나를 두는것으로 만족한채 이 초당에서 검소하게 살았다.
이 집 말구종아이는 말편자를 갈아대는 일마저 주인에게 떼우기가 십상이였고 나무를 해오거나 마초를 베오는 일따위도 이 집의 작은어른인 은천에게 선손을 떼우는 때가 드문했다.
부엌일을 보는 녀종어멈도 저자거리를 다녀오는 일은 이 집 양딸 송죽이가 도맡아하는터여서 머리에 목함지나 구럭따위를 별로 이여보지 못했고 제 말마따나 종년치고는 드문 호사를 하며 살고있다.
이들모자(말구종과 부엌어멈은 모자간이다.)를 송악도성바닥의 대가집 종들은 다들 부러워했다.
오늘도 이들은 초당에 반가운 손님이 온다 해서 새벽일찍 일어나 조반을 준비하는중에 날쌔게 뜨락청소를 해놓았기망정이지 여느날 같으면 뜨락 거두는 일은 주인들 몫으로 손을 대볼 겨를조차 없다.
오늘 이 집에 찾아오는 손님은 놀라웁게도 조정의 광평성 원외랑나으리이시란다. 광평성이라 하면 임금의 어지를 하달하고 관료대신들의 간언을 검토하여 상주하는 일을 주관하는 조정의 제일 웃자리에서도 가운데부서이고 원외랑이라 하면 총리격인 시중으로부터 세네번째 아래로는 떨어지지 않는 대신 다음가는 등급의 벼슬자리이다.
썩 이후에 고쳐 정해놓게 되는 상서성의 원외랑(정6품)과는 달리 지금(광종시기)의 광평성 원외랑은 종3품에 해당되는 대단히 높은 품계의 자리였다.
이 집 종들이 더더욱 놀란것은 정작 찾아온 광평성 원외랑이란 나으리가 코밑에 수염자리조차 찾아볼수 없는 애숭이인때문이였다. 턱밑에 수염발이 드날리는 장년인줄 짐작했다가 이제 방금 스물을 갓 넘긴 홍안의 젊은이인것을 보고는 너무도 놀라 입도 다물지 못한채 혼나간 상을 하고 멀거니 바라보고만 있다.
찾아온 손님인 광평성 원외랑나으리의 이름은 서희, 일찌기 고려태조 왕건의 밑에서 일했고 말년에는 내의령(그 당시 시중 다음순서의 벼슬)까지 지낸 문사 서필의 아들이다.
서필의 아버지 서신일은 리천(경기도)사람으로 신라 말기에 리천의 효향산에 은거해살다가 고려태조 왕건이 등극한 후에 학식있는 사람들을 널리 포섭등용할 때에 조정에 들어왔었다.
전해오는 소문에는 도술까지 쓴다는 그가 무슨 까닭인지는 몰라라 슬하에 자식을 두지 못한채 나이를 먹다가 고려조정에 들어온 어느날인가 태조 왕건이 일을 잘한다 하여 상으로 내린 어주를 마시고 기분좋은김에 그날 밤 잠자리를 기세좋게 본것이 결실을 보아 여든에 아들을 보았는데 그가 바로 서필이라는것이다.
서신일을 송악으로 인도해간 사람이 강궁진의 아버지 강여청이라고 한다. 강여청이 살던 금천(경기도 시흥)과 서신일이 살던 리천은 80리밖에 안되는 거리이다.
강여청은 고려건국이전부터 왕건의 군사로 이 일대를 종횡무진한지라 리천의 효향산에 은거해있는 서신일이 학식이 대단하다는 소문을 이미전부터 듣고있던터였으므로 고려가 선 이후에 왕건의 어지를 시행코저 손수 서신일을 찾아가 그를 일으켜세웠던것이다.
강여청과 서신일의 이런 연고관계로 해서 아들들인 강궁진과 서필의 사이는 여간 가깝지 않았다.
둘은 나이는 비록 스무살차이였지만 형제로 어울렸다.
나이가 앞서 형이 되는 강궁진은 마흔이 넘어 강은천을 보았지만 동생이 되는 서필은 스물이 되여 인차 아들 서희를 보았다. 서희가 942년생이고 강은천은 948년생으로 이들은 여섯살차이에 불과했다.
하지만 서희는 강은천보다 나이만 앞서는것이 아니였다. 강은천이 아직 글을 깨치고있을 때에 서희는 벌써 과거를 본 뒤에 조정의 상좌 반렬에 올라있었다. 18살에는 과거에 장원으로 급제하고 스물을 갓 넘긴 젊으나 젊은 나이엔 임금을 직접 보좌하는 광평성 원외랑이란 핵심인물이 된것이다.
오늘 서희가 강궁진을 찾아온것은 아버지벌인 그에게 문안인사를 드리는데도 목적이 있지만 진 목적은 강궁진의 아들 강은천을 보러 온것이였다.
《군기감어르신께 문안드리오이다.》
서희는 말에서 내려 길잡이종도 뒤로 물린채 조용히 뜨락에 들어서서는 궁진에게 제먼저 머리를 숙이며 인사말을 올렸다.
《원외랑나으리께서 이런 외진 곳을 다 행차하시오니 감사의 마음 금할수가 없소이다.》
궁진은 한쪽무릎을 땅에 대며 머리를 마주 숙이였다.
《이러지 마시오이다. 아버님벌이 되시는 어르신께서 이러시면… 전 뭐가 되오이까.》
서희는 황황히 같이 무릎을 꺾으며 궁진의 손을 마주 쥐고 일으켜세웠다.
《돌배꽃철에 이 초당에 오면 리천에 있는 조부님고향집에 온듯 마음이 설레입니다.》
서희는 자기 본관지인 리천에 유명한 돌배꽃풍경을 상상해보는듯 시종 밝게 웃었다.
궁진의 안내를 받으며 초당 마루방에 올라선 서희는 궁진의 뒤쪽에 단정히 서있는 은천에게 은근한 미소를 주며 머리를 끄덕였다.
크지 않은 키에 다부진 몸매, 영채도는 눈빛이 류다른 은천을 뜯어보며 서희는 지금 조정의 좌상인 내의령 최지몽의 조언을 다시금 상기했다.
태조의 유지를 받들어 고려조정의 기틀을 다지고 떠받드는 보이지 않는 주추돌이 되고있는 그의 조언은 백이면 백 어느 하나 그른데가 없어 대신관료 누구나 무조건 받아들이는데 버릇되여있었다.
그가 관심하고 조처하는 일들중에 제일 품을 넣고있는것이 바로 인재육성이였다. 서희도 그의 눈에 들어 젊으나 젊은 나이에 조정의 상좌에 올라있었다.
서희는 바로 그로부터 군기감 강궁진의 아들 강은천을 눈여겨보라는 조언을 받았다. 어린 나이에 사서삼경은 무불통달이요 대학, 중용에 천문지리까지 터득한것은 물론이고 부친은 물론 조부때부터 조정을 받들기에 사심이 없고 매사에 분별이 정확하고 분수에 넘는 일이 없으며 청렴결백하기가 송악의 청솔 한가지라 지혜와 도량에서나 기강과 성품에서나 바이 조정에 몸담을수 있는 재목이라는것이였다. 가깝게는 5~6년이요 길어서 십수년후이면 일을 시켜 등탈이 없을것이라는 원로 지몽의 진단을 서희는 심중하게 받아들인터였다.
서희는 조정의 대신관료반렬에 자기또래의 젊은 인재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늘 마음 한구석에 맴돌고있은지라 지몽의 귀띔이 여간 반가운것이 아니였다.
그
관상과 천문보기가 장끼인 최지몽이 웬만해서는 칭찬을 하지 않는 평소의 틀을 깨고 은천에게만은 찬사를 아끼지 않던것을 상기해보아도 그가 그런 조언을 주는것은 조금도 무리가 아니라는것을 서희는 알고도 남음이 있었다.
70고개를 넘은 최지몽은 자나깨나 오직 하나 조정의 후일을 념려하고 대를 이어 임금을 성실하게 보필할 인재를 찾아 키우는 일에 전심전력을 다하고있는것이였다.
지몽을 비롯한 원로대신들의 제의에 따라 조정에서는 이미 과거를 보는 제도를 내왔고 서희는 두번째 해에 시험에 합격하여 지금 그 빛을 보고있었다.
서희 다음으로 원로들의 눈에 든것이 바로 강은천인것이였다.
강궁진은 서희로부터 조정의 원로대신들의 이러한 의향을 귀띔받고 대번에 긴장해졌다. 자기가 마음속으로 바라마지않아온 소원이였기때문이였다.
하지만 강궁진은 이내 머리를 가로 저었다.
《아직은 시기가 이르옴을 말해두오이다. 나도 내 아들이 조상들이 물려준 이 땅을 지키는데 한몫 하기를 바라는 사람이오만 그러한 중임을 맡기기에 아직은 부족함이 너무도 많은줄 아오이다. 내 힘써 노력하리다만 넉넉하게 준비되려면 앞으로 10년 가지고는 어림도 없는줄 아오이다.》
《나도 공감이로소이다. 정사에 몸담는 중대한 일이라 서두를 필요는 없사옵고 떡심으로 근기있게 10년만 밀어붙여가면 넉넉히 모양을 갖출것으로 짐작되오이다.》
서희는 궁진의 견해에 공감을 표시했다.
권력에 집착하는 사람이라면 앞뒤 가릴새없이 응해나올 기회였건만 그런데는 티끌만큼 사심도 없는 강궁진은 금시 이마에 내 천자를 그리고 걱정이 가득한 얼굴을 하고있었다.
서희는 이것이 또한 마음에 들었다.
《동생, 우리 좀 같이 바람을 쏘이지 않겠나?》
서희는 자리를 일면서 궁진에게 인사를 한 뒤에 은천에게 넌지시 청했다.
《그렇게 하겠소이다, 원외랑나으리!》
은천이 황송하여 머리를 숙이자 서희는 손을 저었다.
《동생, 우리 둘이 있을 땐 그저 형이라고 부르게. 자, 그럼 어서…》
서희는 말구종에게 말을 끌고 대궐로 먼저 가라 이르고 은천과 나란히 초당뒤 둔덕을 톺아올라갔다.
둘은 훈훈한 봄바람을 맞으며 산자락을 누벼갔다. 산발을 타고 내처 걸어 송악산 봉우리까지 올라갔다.
솔바람이 솨솨- 불어치는 송악산 정상에서 아직은 홍안인 두 젊은 총각은 눈뿌리 모자라게 뻗어간 산발들을 굽어보며 조상의 이 땅에 펼쳐갈 남아대장부의 크나큰 웅지를 마음속에 다지고있었다. 이때 강은천의 나이는 아직 열일곱살밖에 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