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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회)

 

상 편

 

2. 아버지를 따라서

 

《차돌아, 저기 네 각시 왔다.》

땀투성이얼굴의 사내애가 산아래쪽을 가리키며 헤벌쭉 웃어제꼈다.

얼결에 그쪽으로 눈길을 돌렸던 차돌이(그는 은천이였다.)는 《너 혼 좀 나보겠니?》 하며 살같이 날아들어 이죽거리는 사내애를 받아넘겼다. 《아이쿠!》 비명을 지르며 나자빠지는 사내애는 건너집 셋째 병술이다.

병술이가 놀려주는 은천이 각시란 은천의 누이동생 송죽이다. 송죽은 은천의 친동생이 아니고 은천의 아버지 강궁진이 전장에서 숨진 수하장수의 딸을 양딸로 삼아 집에 함께 살고있는 처녀애다. 이태전에 어머니마저 병으로 돌아가고 의지가지할데 없게 되자 아예 딸을 삼고 만것이다. 은천이보다 네살 아래이다. 뭐든 구실을 잡아 놀려주기를 좋아하는 애들인지라 송죽을 은천의 동생이 아니라 각시라고 놀려주는것이다.

《다시한번 각시타령 했단 봐라.》

이렇게 을러메친 은천은 산아래로 내리달렸다.

《오빠, 아버지가 돌아오셨어요.》

송죽은 마주 달려오며 소리쳤다.

《아버님이?!》

반기는 은천에게 송죽은 손을 저으며 소리쳤다.

《조련을 다 하고 내려오라 하셨어요. 나 여기서 기다릴게요.》

송죽은 덤비지 말라는듯 연신 손을 저었다.

(아버님이 돌아오셨단 말이지!)

은천은 다시금 창을 꼬나잡으며 씨익 웃었다.

얼마나 그리웠던 아버지인가! 아버지 강궁진은 그사이 또다시 변방을 누비였었다.

5년이란 세월이 살같이 흘러갔다.

그 즈음에 고려의 서북방정세는 여간 소란하지 않았다. 거란이 후주(후당, 후진, 후한에 이어 950년부터 960년까지 10년간 황하이북의 북중국일대에 존재한 나라)를 먹어보려고 세월없이 싸움을 벌려놓고있는 틈을 타서 이전부터 거란의 등뒤를 쑤셔대던 돌궐이 이번엔 거란의 동쪽옆구리를 에돌아 압록강쪽으로 쓸어나왔다.

고려는 건국초기부터 첫째가는 적으로 규정하고 대처하고있는 거란이 골탕을 먹고있는 상황이라 깨고소한중에서도 만약 경우 돌궐이 거란을 몰아내고 료동일대를 차지하는 경우 이 오랑캐들 역시 다음번 목표는 틀림없이 고려일것이라는 생각에 긴장되여있었다. 하여 고려는 서북변방에 력량을 더욱 보강하고 차후의 형세발전에 대비하느라 고심하고있었다.

고려조정의 조치에 따라 군사들이 징발증파되였다.

강궁진은 맨 선참으로 자원하여 증원군의 일진 선봉장으로 떠나갔다.

돌궐군 선두부대와의 첫 접전은 봉성(압록강이북)계선에서 벌어졌다. 이 계선은 태조대왕때 장수 유금필휘하의 고려군사들이 대담하게 압록강을 건너 백리 넘게 깊숙이 들어가서 돌궐군사들에게 된매를 안기고 이들의 남하기도를 제압해버렸던 곳이였다.

강궁진은 첫 접전에서 돌궐군선두부대를 보기 좋게 격퇴하였다. 그는 그 기세로 계속 추격해들어가다가 조정의 령에 따라 공격을 멈추었다.

조정에서 공격을 멈추게 한것은 거란으로 하여금 저들의 령역으로 공격해오는것으로 오해를 살 여지가 있었기때문이였다.

고려군은 돌궐군을 제압한데 만족하고 일단 압록강계선까지 물러섰다.

몸풀이나 조금 한 정도로 싸움이 끝나버린 뒤에 싱거운 기분으로 입만 다시고 앉아있던 강궁진에게 조정으로부터 급히 개경으로 돌아오라는 령이 내렸다.

강궁진은 아쉬운 마음으로 돌아섰다. 하지만 궁진은 이제 자기에게 어떤 중대한 임무가 차례질는지 다는 모르고있었다.

개경에 돌아온 강궁진에게 조정에서는 군기감의 부책임자인 감(책임자는 판사이다.)의 임무를 맡기였는데 그 당시로는 정4품에 해당되는 관직이였다. 명궁인 궁진에게 고려군이 싸움에서 사용할 활과 화살, 창과 칼을 만드는 일을 주관하게 한것이였다.

조정에서 강궁진에게 이 일을 맡긴것은 거란과의 싸움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고려조정이 이런 조치를 취하게 된것은 거란이 고려에 대한 대규모적인 공격을 준비하고있다는 정보를 받은때문이였다.

이 정보를 날라온 사람은 격퇴된 돌궐군선두부대에 속해있던 거란인인데 그는 최광윤이란 고려사람의 부탁을 받고 돌궐군에 침투하여 돌궐군의 압록강진출에 길안내를 자청하여나섰다가 고려군과의 접전기회에 투항형식으로 넘어와 정보를 제공하는데 성공하였던것이다.

최광윤은 고려태조 왕건의 모사였던 최언위의 맏아들이다. 그는 부친 최언위와 태조 왕건이 비밀리에 후진에 류학명분으로 들여보냈던 간자였다.

최광윤은 후진에서 류학을 마치고 장원으로 급제하여 후진조정의 관리로 발탁되였고 후한(947-950년), 후주(950-960년)에 이르기까지 뒤바뀌는 중원대륙의 조정에 끄떡없이 앉아있다가 후주의 수도를 함락한 거란왕의 강요에 마지못해 응하는 형식으로 그를 따라 거란의 조정에 옮겨와 거란왕을 《보좌》하였다. 그 과정에 거란왕이 후주를 굴복시킨 이후에 한숨 돌리고나서 고려를 침공할 준비를 하고있는 사실을 낱낱이 장악하여가지고 탈출을 기도하다가 실패하자 구금된 상태에서 이미부터 장악하였던 이 거란인을 고려로 보내온것이였다.

최광윤이 보내온 정보에는 거란의 인적물적잠재력으로부터 군력의 총량과 고려원정군의 규모에 이르기까지 구체적으로 밝혀져있었다.

고려조정은 거란의 침공에 대처할 준비를 보다 세밀히 그리고 다급히 추진해야 할 사정에 처해있었다. 필요한 대책이 취해졌으며 활과 화살, 창과 칼을 제조하는 일을 맡아할 중임이 강궁진에게 차례진것이였다.

강궁진은 개경에 돌아온 즉시 일에 착수하였고 지방의 관리들에게 일감을 분담시키는 일을 조처하는 기회에 집에 잠간 들린것이였다.

아버지 강궁진이 이런 중대사를 걸머지고있는줄을 어린 강은천은 아직 알수 없었다.

강궁진은 개경으로 올라가는 길에 아들 강은천을 데리고갔다. 양딸인 송죽이도 함께 데리고갔다. 하여 강은천은 열다섯살잡힌 해부터 송악(개경)에서 살게 되였다.

《나라를 지키는 장부의 소임을 잘하자면 군사와 함께 학식을 겸비한 인재가 되여야 하느니라. 너는 이제부터 학문탐구에 보다 주력해야 할것이다.》

《알아들었소이다, 아버님!》

아버지 강궁진의 분부에 어린 강은천은 머리숙여 맹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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