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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부의 최후가 말하다

 

 

그 누가 말했던가, 수천척 지하막장의 탄부나 광부의 인생은 버려지는 막돌이나 버럭과 같은 버럭인생이라고.

허나 로동당시대, 람홍색공화국기가 창공높이 펄펄 휘날리는 이 땅, 이 하늘아래선 그런 말이 통하지 않는다.

공화국에서는 이런 사람들이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 시대의 영웅으로 떠받들리며 참다운 인생길을 걷고있다. 그 길에서 조국과 인민, 동지와 집단을 위해 고귀한 생을 바친 사람들이 령도자와 인민의 축복속에 영생의 삶을 누리고있다.

검덕광업련합기업소 금골광산 채광공이였던 박태선의 영생의 삶은 시작은 있어도 끝이 없는 김정은원수님의 숭고한 사랑과 의리의 세계를 보여주는 감동깊은 이야기들중의 한토막이다.

박태선이 군사복무를 마치고 검덕에 제대배낭을 풀어놓은것은 1999년 11월이였다.

그는 금골광산 영광갱 채광5소대에 배치된것을 커다란 긍지로 여기였다.

그 소대가 바로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 1991년 7월 검덕에 진출한 12명의 제대군인들이 제일 어렵고 힘든 심부막장에서 채광전투를 벌려 2월 16일전으로 l. 4분기 광물생산계획을 끝내고 결혼식을 한다는 보고를 받으시고 1992년 2월 20일 소대원들에게 은정넘친 결혼상을 보내주시여 온 나라에 널리 알려진 단위였던것이다.

박태선은 소문난 혁신자광부인 우승환소대장의 손을 놓지 못하며 젖은 목소리로 말하였다.

《우리 장군님께서 아시는 소대에 배치되여 정말 기쁩니다. 많이 배워주십시오.》

체격은 크지 않아도 소박하고 진실해보이는 신입채광공은 첫눈에 소대장의 마음에 들었다.

《우리 소대는 다른 소대와 다르오. 남보다 2배, 3배 일해야 하거던.》

박태선은 명령받은 병사처럼 허리를 꼿꼿이 폈다.

《알았습니다. 영광의 소대에서 한생 힘껏 일하겠습니다.》

광산에서는 박태선에게 제대휴가를 가라고 고향인 영광군으로 떠밀었다.

하지만 그는 막장에 들어갔다. 그는 매일 기능공들을 찾아다니며 착암기구조로부터 각종 채광법에 이르기까지 모든 일을 열심히 배웠다. 그가 단독착암을 하자면 여러달 걸린다는 관례를 깨고 보름만에 서로 다른 막장조건에서도 능숙하게 채광작업을 할수 있게 준비되였을 때에는 모두가 혀를 찼다.

위대한 장군님의 령도업적이 깃들어있는 소대에서 일한다는 긍지와 영예는 박태선을 위훈과 혁신에로 끊임없이 고무하였다.

몇해전 어느날 월계획을 완수한 소대에 채광장을 옮길데 대한 지령이 떨어졌을 때였다. 박태선이 소대장에게 달려갔다.

《채광장앞쪽에 아직 광석이 남아있습니다.》

소대장은 머리를 끄덕이였다.

《알고있소. 그런데 거긴 언제 붕락될지 알수 없는 위험구간이요.》

그것을 퇴치하자면 채굴준비를 맡은 소대가 한달동안 작업해야 하였다. 그때까지의 시간이 아까웠다. 자칫하면 남아있는 광석을 영영 캐지 못할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 귀중한 나라의 재부를 속절없이 땅속에 묻어둔다면 그게 무슨 광부이겠는가.

박태선은 사색을 거듭하여 채광작업을 할수 있는 기발한 방안을 내놓았다. 그리하여 소대는 붕락구간을 단숨에 극복하고 막장에 남아있던 광석을 깡그리 캐내게 되였다.

그날 마지막광차를 보내며 박태선이 지은 흐뭇한 미소는 참된 애국자만이 지을수 있는 행복한 웃음이였다.

박태선은 광산에 배치된 첫날부터 일밖에 몰랐다. 그렇지만 광산에는 그를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더 많았다.

원래 말이 없고 대중앞에 나서기도 저어한 그였던것이다. 생활범위는 극상하여 갱주위에 머물렀고 오가는 걸음도 채굴장과 막장휴계실, 집으로 이어진 외통길뿐이였다. 한마디로 있는지 없는지 모를 사람이였다.

허나 인간에 대한 평가는 생을 마친 다음에 더 명백해지는 법이다.

소대원들의 추억에 의하면 박태선이 남긴 평소의 생활흔적은 크지 않아도 뚜렷했다. 항상 어렵고 힘든 일에 남먼저 뛰여들고 맡은 과업을 수행하기 위해서라면 모든것을 깡그리 바치는것이 그의 습성이였다. 성스러운 군사복무가 그를 그렇게 키웠다.

희생된 그가 남긴 많지 않은 유품가운데는 13개의 훈장과 메달이 있었다. 그중 9개가 군사복무기간에 받은것이였다. 안변청년발전소건설자들에게만 수여한 기념메달도 있다.

고난의 행군시기 혁명적군인정신창조의 발원지라 할수 있는 안변의 대격전장에서 그가 어떻게 살며 일했고 무슨 위훈을 세웠는지 자세히 아는 사람은 현재 광산에 없다. 그가 평소에 제 자랑처럼 들릴수 있는 말을 극력 삼가한 까닭이다.

그러나 한가지만은 확신할수 있다.

그는 조국이 가장 준엄한 시련을 겪던 시기에 안변청년발전소건설에 용약 참가하여 조국이 겪는 고난과 아픔을 총쥔 병사가 어떤 자세로 대해야 하는가를 안것이다. 수호자의 삶자체가 조국에 자기를 아낌없이 바치는것이며 그것이 곧 병사의 빛나는 생이라는것을 뼈와 살에 새긴것이다.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의 명령을 관철하기 전에는 조국의 푸른 하늘을 보지 말자고 웨치며 열어나간 물길굴에, 한치한치 쌓아올린 언제에 그의 공로도 깃들어있다.

지극한 자식의 진정을 낱낱이 헤아리는 어머니처럼 한 병사의 헌신적인 복무정신을 귀중히 여겨 은혜로운 조국이 안겨준 사랑과 믿음의 증표들은 그의 어제와 오늘을 하나의 흐름속에서 다 말해주고있다.

소대의 누가 출근하지 못하였을 때면 그 빈자리에는 항상 박태선이 서있었다. 작업도중 어려운 정황에 부닥치면 말없이 소대를 이끈 기수가 그였다.

막장에서 일하기 시작한 몇해후 그는 교대장으로 임명되였다.

광산에서 제일 말단인 채광소대의 한개 교대장이라야 데리고있는 성원이 불과 몇명이다. 하지만 그는 교대장의 임무를 어떤 중책보다 무겁게 대하였다. 교대가 계획을 해야 소대가 계획을 하고 소대가 계획을 해야 중대와 갱, 광산의 계획이 수행된다는 단순한 리치가 곧 교대장임무에 대한 그의 립장이였다.

박태선은 취장질환으로 자주 애를 먹었다. 작업도중 아픔이 발작할 때면 온몸을 땀으로 질벅하게 적시군 하였다.

함께 일하는 광부들이 휴계실로 떠밀면 그는 고통을 참느라 입술을 깨물면서 말하였다.

《교대장이 없는 전투장이란 없소. 좀 지나면 일없겠으니 계속 일합시다.》 이러며 그는 채굴장을 뜨지 않았다.

국가적혜택으로 광부들이 해마다 받는 l개월간의 휴가도 10여년동안 고스란히 광물생산에 바치였다.

그가 희생되기 전날은 소학교에 다니는 아들의 생일이였다.

그는 이른새벽에 일어나 안해와 함께 찰떡을 치고 송편도 빚었다. 안해더러 저녁에 아들 광명이의 담임선생님을 모셔오라고도 하였다. 그리고는 날이 밝자 출근길에 나섰다.

안해가 지금까지 미루어온 대휴도 있는데 하루 집에서 쉬면 안되겠는가고 하면서 대문밖까지 따라나섰다.

박태선은 서운해하는 안해를 잠시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당신답지 않게 왜 그러오? 우리 교대에 엊그제 입직한 광부들이 있어 내가 자릴 비우면 안된다는걸 잘 알지 않소. 래일 저녁에 들어오겠소. 미안하오.》

그는 아쉬움을 풀라는듯 한눈을 찡긋하여 웃어보이고는 인차 광구로 향하였다.

땅속깊이에 있는 보석처럼 사람의 참된 가치도 겉에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생활에서는 눈에 보이는것보다 쉽게 보이지 않는 훨씬 더 많은것이 그 밑바탕에 깔려있기때문이다.

돌이켜볼수록 인간적인 향기가 짙은 박태선의 생활이였다.

그의 안해는 어려서부터 알수 없는 원인으로 한쪽다리를 잘 쓰지 못하는 녀성이다. 박태선은 그런 녀성과 가정을 이루고 화목하게 살았다.

마을의 남녀로소가 그의 사람됨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왜 몸이 불편한 처녀를 안해로 삼았는지는 누구도 몰랐다. 박태선이 안해앞에서도 그런 말을 입에 올린적이 없기때문이다.

왜 그랬을가. 다만 알수 있은것은 그들의 결혼과정과 그후의 생활세부 몇가지뿐이다.

10여년전 어느날, 김정순(박태선의 안해)에게 혼사말이 났다. 광산에 새로 온 제대군인들중에 착실한 총각이 있는데 그가 불편한 몸이지만 피복공장에서 일하면서 짬짬이 광부들에게 장갑과 작업복 등을 만들어 보내주는 마음씨고운 처녀에 대하여 알고 몹시 감동되여있다는것이였다.

(몸이 변변치 않아 좋은 혼기를 놓친 우리 딸에게 어느 총각이? 더구나 끌끌한 제대군인이라는데. 아니될 일이지. …)

나이먹은 딸을 둔 김정순의 어머니였지만 잠시나마 품었던 미련을 털어버리였다. 그런데 며칠후 그 제대군인청년이 불쑥 나타났다. 처녀의 집에서는 처음부터 마다하였다. 건강한 녀자와 살다가도 이런저런 일이 생기는게 인간생활인데 일생대사를 그렇게 대하는게 과연 옳겠는가, 더구나 고향에 어머니와 형제들도 있다는데 본인생각만으로 될 일이 아니지 않겠는가고 하며.

청년은 묵묵히 집문을 나섰다. 그러나 일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사흘이 멀다하게 그가 집에 나타났다. 와서는 장작도 패주고 울타리를 손질하는가 하면 어느날엔 떨어진 담벽을 바르는 등 잔손질을 두서없이 하다가는 올 때처럼 말없이 돌아갔다. 그러던 어느날 김정순의 어머니는 집모퉁이에서 남몰래 흐느끼는 딸을 보게 되였다. 알고보니 청년이 또 왔다갔는데 이런 말을 남기였다는것이다.

《물론 우리 사회에 동무와 일생을 같이할 사람이 얼마든지 있다는걸 모르는바 아니요. 하지만 내게 무엇이 부족하여 받아들일수 없다고 하는지 나로서는 알수 없는게 안타깝소.》

모녀는 마침내 뜨거운 눈물을 삼키였다. 그래 누가 무엇을 모른단 말인가. 그 마음이 너무도 과람하여 쉬이 받아들일수가 없어 그러는줄 왜 몰라준단 말인가.

열나흘째 되는 날 박태선이 오늘부터 이 집에 눌러앉아 살 결심이라고 하면서 《제대명령을 받고 곧장 광산으로 오다보니 가진게 배낭 하나밖에 없는데 용서하십시오.》라고 말하였을 때 처녀와 어머니는 또다시 눈물을 쏟았다. 《제대배낭이면 족하지… 뭐가 더 필요하겠나.》

박태선은 이렇게 가정을 이루었다.

그때가 2000년 8월이였다.

그의 안해는 몸이 불편한 자기가 남편에게 짐이 되는것 같아 늘 송구해하였다. 그럴수록 박태선은 안해의 부담을 덜어주려고 마음을 썼다. 그가 안해에게 이따금 부탁한 일이 있다면 교대성원들의 작업복을 빨아가지고 와서는 터진 혼솔이나 구멍을 손질해달라는것뿐이였다.

김정순은 행복하였다. 언제인가 조용한 기회에 그는 남편에게 왜 자기 같은 녀자를 선택했는가고 물은적이 있었다. 그러자 박태선은 한동안 안해를 여겨보다가 웃으며 《왜, 살아보니 내가 마음에 안 드오?》라고 되묻는 바람에 김정순은 질겁하여 두번다시 그런 말을 꺼내지 못하였다고 한다.

세상에 건강한 안해를 바라지 않을 사내는 없다. 또 어디에도 기울지 않을 안해와 더불어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싶지 않은 사람 또한 없을것이다.

하지만 박태선은 몸이 불편한 안해의 인격을 무엇보다 존중하였고 자기우에 놓고 산 남편이였다.

몇해전 어느날, 박태선의 처남이 그를 따로 만나 자기 누이동생의 몸이 여사여사한 남다른 조건이 있는데 이제는 막장을 나와 갱밖에서 일하는것이 어떤가고 하였다.

박태선은 한동안 깊은 생각에 잠겼다가 섭섭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며 이렇게 말하였다.

《갱밖에 내가 꼭 필요하다면 몰라라 단지 그 조건때문이라면 난 언제까지라도 막장에 있겠소. 부탁이 있는데 방금 한 그 말을 내앞에서 끝내고 어떤 경우에도 우리 집사람에게는 하지 말아달라는거요.》

이것이 그에게 체현되여있은 인정미이고 인생관이였다. 박태선에게는 참된 생활을 보는 밝은 눈, 자기희생과 인간의 고상한 정신속에서 행복을 느낄줄 아는 열렬한 심장이 있었다. 그 심장의 최후가 만사람의 심장을 울리며 시대를 격동시키는 화폭을 펼치였다.

2012년 1월 15일, 이날은 금골의 광부들에게 있어서 평범한 하루였다. 정월광물생산계획을 끝낸 기세로 광명성절전까지 l. 4분기계획을 앞당겨 끝내려는 열의로 광부들의 기세가 여느때없이 앙양되여있었다.

이날 박태선은 아침일찍 교대성원들과 함께 막장에 들어가 착암준비를 서둘렀다. 착암준비에서 중요한 공정의 하나가 막장천정에 매달린 돌들을 찾아내여 떨구는것이였다.

전해에 인민군대에서 제대된 지동규라는 광부가 지레대를 들고 작업을 시작했다. 박태선은 그앞에서 전지불을 비치였다. 신입채광공보다 막장경험이 많은 그가 천정 전반을 감시하며 작업을 지휘하는것이 보다 안전하였던것이다.

얼마간 시간이 흘렀을 때였다. 천정짬에 끼인 작은 돌과 씨름하던 지동규는 갑자기 귀전을 때리는 《얏-》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자기 몸을 세게 밀치는 힘에 못 이겨 뒤로 나가넘어졌다. 거의 동시에 《쿵-》 하는 소리가 막장을 울리였다. 3t이 넘는 큰돌이 채광장바닥에 떨어진것이였다. 눈깜빡할 사이에 생긴 일이였다.

박태선은 이렇게 생을 마치였다. 떨어지는 큰돌을 먼저 발견한 그가 만약 한걸음만 뒤로 물러났으면 살수 있었다. 하지만 살수 있는 길이 아니라 동지를 살리는 자기의 희생길을 택하였다.

그의 최후는 순간이였다. 허나 그 순간의 최후가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의 대해같은 사랑과 의리에 의하여 영생의 삶으로 돌아왔다.

한 제대군인출신의 광부가 뜻밖에 벌어진 위급한 순간 자기를 바쳐 동지를 구원한 영웅적인 소행을 료해하신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께서는 그의 고귀한 삶에 영생의 삶을 주시는 친필을 보내주시였다.

《훌륭한 인간입니다. 이 동무의 영웅적소행을 잊지 말며 동지들을 위해 바친 그의 값높은 삶이 언제나 우리의 마음속에 빛나도록 희생된 동무의 몫까지 합쳐 더 많은 일을 합시다.

2012. 2. l

김 정 은

훌륭한 인간, 영웅적소행, 값높은 삶.

정녕 그것은 수천척 지하막장에 애국의 피와 땀을 묵묵히 바쳐온 평범한 광부의 고결한 삶에 대한 더없는 평가였다.

금골의 이름없는 광부였던 박태선에게 공화국영웅칭호를 수여한다는 정령이 발표되였으며 애국렬사증이 수여되고 그가 일하던 소대를 그의 이름으로 부르도록 할데 대한 국가적조치가 취해졌다. 그리고 렬사가 남기고 간 자녀들을 혁명학원에서 키우도록 하는 은정깊은 조치가 취해졌다.

우주를 통채로 안겨주는것만 같은 그토록 위대한 사랑, 그토록 크나큰 은덕에 감복하여 수수천년 검덕을 굽어안고 솟아있는 로은산이 울고 북대천이 울었다. 온 나라가 끝없는 격정속에 휩싸였다.

아, 은혜로운 사랑의 태양! 영원한 운명의 태양!

광부 박태선의 최후가 이렇게 말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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