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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한생 통일을 불러

 

 

1919년 7월 10일 경상남도 거창군에서 출생.

1943년 10월에 원산철도공장에서 로동.

1946년 현대일보사에서 활동.

1950년 7월 의용군으로 입대.

1962년부터 조선작가동맹 중앙위원회 작가로 활동.

1987년 8월 30일 사망.

조국통일상수상자.

 

 

                             《조선은 하나다!》

                             나의 말은 한평생

                             이 한마디뿐이다

 

                             …

                             이 말 웨치며 싸우리라!

                             불에도 뛰여들고 물에도 뛰여들고

                             적의 교수대에도 기꺼이 오르리라

 

                             내 통일의 원쑤들과 싸우다 죽으면

                             땅우에 흩어진 살점 하나하나

                             붉게 뿌려진 피방울 하나하나가

 

                             빠짐없이 높이 웨칠것이다

                            《조선은 하나다!》라고

(김상훈의 시 《한마디 말》중에서)

 

 

통일을 위하여

 

                             …

                             나에겐 아무것도 없다 아무것도 모른다

                             다만 조국을 사랑하는 한가지 길밖에

                             인민을 위한 인민의 나라를 세우는것밖에

                             나는 이래서 시를 쓴다 그리고 가장 자랑스럽다

(김상훈의 시 《나의 길》중에서)

 

해방과 함께 감옥에서 나온 김상훈은 이듬해초 어느날 서울 남산밑에 있는 어느 한 하숙집으로 달려갔다.

《서병곤군!》

서병곤은 예고도 없이 뛰여든 그를 보고 놀라움을 금할수 없었다.

《아니… 아, 이게 상훈군이 아닌가?!》

두 친구는 서로 손을 부여잡고 돌아갔다.

《그런데 우리 시인이 갑자기 무슨 일로 나타났나?》

서병곤은 더운물을 부어주며 물었다.

김상훈은 흥분을 늦추지 못하며 품속에서 《서울신문》을 꺼내놓았다.

《나도 봤네. 우리 민족의 령수, 절세의 영웅 일성장군님에 대해 쓴 자네의 이 기사를 읽었단 말이네.》

그제서야 서병곤은 친구의 얼굴이 왜 이처럼 상기되였는가를 짐작했다.

《병곤군! 지금 임자네들이 절세의 애국자이시며 해방의 은인이신 김일성장군님의 영상을 모시고 쓴 기사 <우리의 영웅 김일성장군>의 열풍으로 온 서울장안이 환희로 들끓고있네. 우리 전체 조선민족이 오매에도 그리고 흠모하던 위대한 태양의 존귀하신 모습을 처음으로 뵈옵게 된 우리들이 아닌가 말일세.》

그러면서 그는 가슴속에 넘쳐나는 감격과 희열을 억누르며 서병곤의 두어깨를 부여잡았다.

《병곤군, 정말 부럽네. 임자는 우리 남쪽에서 제일먼저 위대한 김일성장군님을 만나뵈옵는 영광을 지니고 그이에 대한 기사를 처음으로 쓴 행운아일세.》

서병곤은 정색한 기색을 지으며 안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너무 과찬하지 말라구. 솔직히 말해서 난 그 기사를 쓰고 자신을 얼마나 질책했는지 모르네.》

《그건 또 무슨 소린가?》

《우리 민족의 운명을 구원해주신 해방의 은인, 조선민족의 영원한 구세주이신 청년장군의 위인상을 너무도 짧은 기사로 썼으니…》

《병곤군, 나에게 김일성장군님을 만나뵈옵던 일을 이야기해줄수 없겠나?》

김상훈의 절절한 눈빛에서 그의 심정을 읽으며 서병곤은 감격스러운 날들을 돌이켜보았다.

《난, 천출명장 김일성장군님을 무한히 흠모하며 그이께로 달리는 우리 남녘의 인민들에게 그이의 위인적인 모습을 조금이라도 알려주는것이 기자로서의 직분을 다하는것이라고 생각하고 북행길을 단행하였네.》

이렇게 말꼭지를 뗀 서병곤은 자기들이 1945년 12월 28일 새벽녘에 38°선을 넘어 북으로 들어서던 때부터 시작하여 자기가 직접 보고 듣고 느낀 소감에 대하여 터놓기 시작하였다.

평양행 기차의 앞머리에 정중히 모셔진 김일성장군님의 초상화에 대하여, 새 조국건설의 열정으로 들끓는 북의 전야들에 대하여, 민주건설의 노래를 부르며 씩씩하게 거리를 행진하는 학생들과 사람들의 얼굴들마다에 넘쳐나는 행복과 희망으로 밝은 웃음에 대하여 이야기해주었다.

《정말 꿈같은 세상이였네. 이 땅에서는 상상도 할수 없는 현실이였지. 공장담벽과 큰 건물들에 붙어있는 <조선민족의 절세의 애국자이신 김일성장군 만세!>, <우리의 손으로 자주독립국가를 건설하자!>, <친일파, 민족반역자들을 숙청하라!>는 구호들을 보는 순간 우리의 정신은 금시 맑아지는것만 같았네.

사실 정치적식견이 너무도 어린 우리였지만 하루동안에 목격한 북의 현실을 통해서 우린 영명하신 김일성장군님께서 베푸시는 현명한 정사에 대해서 알수 있었으며 우리 조선인민이 나아갈 길이 어느 길인가를 어렴풋이나마 깨달을수 있었지.》

《그래, 그이께서는 우리 조선이 나아갈 앞길에 대해 어떻게 말씀하시였나?》

김상훈은 여직껏 자기가 묻고싶었던것을 물었다.

김일성장군님께서는 해방된 우리 인민은 반제반봉건민주주의혁명을 수행하는 길로 나가야 한다고 하시면서 그러기 위하여서는 민주주의적인 모든 정당, 사회단체들을 망라하는 민족통일전선을 형성하고 광범한 애국적민주력량을 묶어세워 민주주의적인 정부를 세워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네.》

《반제반봉건민주주의혁명! …》

너무도 현명하고 심오한 가르치심에 김상훈은 막혔던 가슴이 후련해짐을 어쩔수 없었다.

바로 이 길이였구나!

김상훈은 암흑속에서 헤매다가 밝은 해빛을 본듯 앞이 환히 트이고 그이의 현명한 령도를 따른다면 무슨 일이든지 거침없이 해낼것만 같았다.

뜨거운 격정과 환희속에 흥분을 금치 못해하는 김상훈에게 서병곤은 정히 포개인 털외투를 들고 다가섰다.

《상훈군, 이 외투는 바로 그이께서 나에게 주신 선물이네!》

김상훈은 감동을 금치 못해하며 털외투와 서병곤을 번갈아 보았다.

《우리가 떠나는 날 그이께서는 이 털외투와 털신을 보내주시였네. 추운 이 겨울에 외투도 변변히 입지 못한 우리들이 걱정되시여…》

그는 뜨거운것이 목에 꽉 메여 말을 잇지 못했다.

(아! 언제면 나도 자애로운 그 품에 안길수 있을가. 아, 못견디게 그리운 김일성장군님의 품!)

김상훈은 보물을 받아안듯 그 외투를 정히 받아 자기의 품에 꼭 껴안았다.

절세의 위인의 뜨거운 체온이 자기의 온몸으로 흘러드는것만 같았다.

심장은 높뛰였고 가슴은 격정의 파도로 설레여 시적흥분과 충동을 금할수 없었다. 그의 입가에서는 저도 모르게 즉흥시가 흘러나왔다.

 

                                         비탄의 피울음 울며

                                         절망의 거리를 헤매던 우리

                                         장군님 밝혀준 민족의 진로따라

                                         어깨겯고 나아가자 힘차게 앞으로!

 

이것은 결코 김상훈 혼자만이 아닌 남녘인민들의 한결같은 마음이였다.

이날 그들은 두손을 꼭 부여잡고 민족의 태양 김일성장군님께서 밝혀주신 통일애국의 길에서 문필가로서의 본분을 다해나갈 굳은 결의를 다졌다.

이것은 김상훈의 인생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운명의 선택이였다.

김일성장군님을 따르는 길! 바로 여기에 민족의 운명은 물론 자신의 운명을 개척해나가는 길이 있다는것을 그는 확신한것이였다.

압제의 사슬이 거미줄처럼 칭칭 감겨도는 남조선사회에서 자기의 신념을 고수하고 지켜싸운다는것은 피와 목숨을 요구하는 혈전의 나날들이였다.

1946년 1월 학도병동맹사건이 일어났다.

학도병동맹은 일제의 《학도병제》실시로 전쟁터에 끌려갔다가 해방을 맞아 조국으로 돌아온 청년학생들이 조직한 진보적인 단체였다.

여기에 망라된 성원들의 대다수가 애국적경향을 가진 젊은 지식인들이고 그들의 정치적영향력이 강한것으로 하여 동맹은 당시 주요정치세력의 하나로 지목되였다.

김상훈도 이 조직에 가입하여 서울 삼청동에 있는 본부와 문화회관에 자주 다니면서 이들과 마주앉아 시국을 론의하고 앞길을 모색하기도 하였다.

1946년에 《전위시인집》을 공동으로 발간하여 전위시인으로 이름떨친 유진오, 김상훈, 박산운 등은 원래 학도병출신들이 아니였다.

다만 조선과 일본의 전문학교, 대학들에서 함께 공부하다가 일본침략군대의 총알받이로 끌려나갔던 학도병출신 학우들과 동창생들의 연줄로 학도병동맹에 발을 들여놓았던것이다.

학도병동맹안에서 진보적인 청년학생들과의 접촉은 전위시인들의 창작활동에서 중요한 계기로 되였다.

특히 일본군대의 삼엄한 철조망안에 갇혀있던 자기들에게 재생의 서광을 안겨주시는 어버이수령님을 우러르며 반일결사전을 각오해나섰던 반일학도병무장대 성원들이 전위시인들에게 준 영향은 컸다.

비록 몸은 남녘땅에 있어도 마음은 언제나 어버이수령님의 품을 그리며 열정의 시, 투쟁의 노래를 구가한 전위시인들의 첫걸음은 이렇게 시작되였다.

그러나 악독한 일제식민지통치기반에서 해방된 기쁨을 안고 새 조국건설에 자신들의 지혜와 열정을 남김없이 바치리라던 김상훈을 비롯한 학도병동맹 성원들의 환희는 오래 가지 못했다.

미제와 그 앞잡이들이 남조선의 진보적인 단체들을 탄압하기 위한 목적으로 학도병동맹사건을 조작하였던것이다.

1946년 1월 18일 미제의 사촉을 받은 반탁전국학생련맹의 폭력배들은 인민당과 서울시인민위원회청사 등을 습격하여 학도병동맹 성원들과 격렬한 싸움을 벌렸으며 이 과정에 량측에서 40여명의 부상자가 발생하였다.

경찰은 학도병동맹이 총기류를 소지하고 먼저 불집을 일으켰다는 무근거한 사실을 날조하여 19일 새벽 삼청동에 있는 학도병동맹본부를 습격하였으며 동맹성원 3명을 무참히 살해하는 만행을 감행하였다.

이로 하여 온 서울시내는 공포의 분위기에 휩싸여있었다.

미제와 그 앞잡이들에 의하여 해방된 조국땅에서 무참히 살해된 3명의 렬사들과 영결하는 장례식장은 야수들에 대한 치솟는 분노와 울분으로 끓어번졌다.

이날 그들의 령전앞에서 김상훈은 피눈물을 삼키며 추모시 《눈물로 쓰는 시》를 랑송하였다.

 

                                     …

                                     함께 이 땅의 일군이 되자고

                                     손과 손 맞잡고 맹세하드니만

                                     머리 부서지고 가슴과 배가 찢어지고

                                     의좋은 삼형제처럼 비좁게 맞대고 누웠느냐

                                     누구의 고운 맘인지 가느다란 초불만 파달거린다

 

                                     우리는 천백번 옳아도 죽고 끌려가고

                                     바른말을 극성으로 보답하는자

                                     의기충천하야 나라를 다스린다

 

                                     아아, 앞서간 세 동무야 서러울건 없다

                                     또 하나의 쇠사슬이 끊어질 때까지

                                     네 이름을 부르며 따라가는

                                     무수한 동무가 있다

 

동지들의 영웅적희생은 김상훈의 투쟁열의를 더욱 돋구어주었다.

그들의 령전앞에 부끄럽지 않게 싸워 그들이 바라던 념원을 기어이 이룩할 일념을 안고 그는 학도병동맹 성원들과 함께 미제와 반동경찰들의 만행을 반대하여 시위투쟁을 벌렸으며 항의성명도 발표하였다.

그러나 파쑈적인 폭거는 날이 갈수록 더해지기만 했다.

미제의 마수에 의해 백주에 애국인사들이 거리에 피흘리며 쓰러졌고 수많은 무고한 인민들이 감옥으로, 사형장으로 끌려갔다.

민족을 또다시 피의 참화속에 몰아넣는 미제와 그 추종세력들에 대한 항거로 김상훈은 전위시인들과 함께 1946년에 출판한 《전위시인집》에 시 5편(《말》, 《전원애화》, 《장렬》, 《기폭》, 《바람》)을 실었다.

 

                                   …

                                   황량하다 천한 촌백성이 사는 이 마을엔

                                   어미가 자식을 헐벗겨 떨리고

                                   삽살개 사람을 물어 흔들고

                                   금전과 바뀌여진 딸자식을 잊으랴 애썼다

                                   …

(시 《전원애화》중에서)

 

김상훈은 해방후 외세에 의하여 갈라진 민족의 아픔과 통일에 대한 자기의 견해와 의지를 밝힌 시들을 창작하였으며 이로부터 전위시인으로 불리우게 되였다.

그는 자기가 일하던 현대일보사가 미제의 탄압으로 또다시 페간되자 시인으로서 창작사업에 힘을 기울이면서 조선문화단체총련합회(문련) 서기국에서 사업하였다.

문련서기국은 남조선의 문학예술에 대한 창작지도, 련락, 문건작성 등을 수행하였다.

그러나 미제와 리승만역적은 진보적경향이 강한 문련을 눈에 든 가시처럼 여기다가 마침내 1949년 11월에는 문련사건이라는것을 조작하였다.

이 사건으로 김상훈은 놈들에게 체포되여 룡산경찰서에 구금되게 되였다.

교형리들은 갖은 고문을 들이대면서 그의 통일의지를 꺾고 애국자들에 대한 단서를 뽑아내려고 미쳐날뛰였다.

하지만 그는 자기의 지조를 굽히지 않았다.

몇달동안 감옥에서 온갖 고초를 다 겪던 그는 병보석으로 출옥하게 되였다.

양아버지 김채환이 뒤공작을 한 대가였던것이다.

그날 감옥문을 나서면서 김상훈은 쓰거운 웃음을 지었다.

《허, 반공분자가 련공분자를 구원해주었군! …》

그것은 어제날의 친일주구로부터 친미주구로 전락된 김채환에 대한 개탄이였다.

김상훈은 감옥문을 나서면서 자기의 심정을 시 《옥문》에 담았다.

 

                                 옥문을 나섰으나 기쁘지 않소이다

                                 아이는 울먹울먹 나를 반기지만

                                 옥에서 다른 옥으로 전옥온듯 하오이다

 

                                 …

                                 양놈에게 매여사는 칼부림만 흔한 세상

                                 나무 한그루도 마음놓고 못 서있는

                                 이 땅 그 어디가 감옥이 아니리까

 

                                 문이라고 생긴 문은 안팎이 있다지만

                                 이 땅의 옥문들은 안팎이 없소이다

                                 얽매인 이 발자욱을 그 어디로 옮기리까

 

남조선을 강점한 미군과 그에 기생하는 역적무리들에 대한 치솟는 적개심은 날이 갈수록 높아갔다.

김상훈은 예술의 무기를 틀어쥐고 불합리한 남조선의 현실을 비판하고 미제와 그 앞잡이들을 반대하는 투쟁에 떨쳐나섰다.

전위시인의 한사람이며 전후복구건설시기 가사 《복구건설의 노래》를 창작하여 우리 인민들과 친숙해진 시인 류종대는 1947년 3월 《남조선민주투사들에게 드리는 시집》이라는 부제아래 발간된 김상훈의 시집 《대렬》의 후기에 이렇게 썼다.

《… 아직 창백하고 병약했지만 약을 먹기보다, 부모에게 달려가기보다 상훈은 새 조선의 요구앞에 예술을 들고 거리로 뛰여나갔다. 정의와 진리를 사랑하는 조선청년이면 다 그러하듯이 위대한 력사적현실앞에 새로운 각오가 불타올랐다. …》

약을 먹기보다 예술을 들고 거리로 뛰쳐나간 사람! …

미제가 공화국을 반대하는 침략전쟁을 일으켰을 때 김상훈의 신념은 더욱 확고해졌다.

인민군대에 의하여 서울이 해방되자 노예의 사슬을 벗어던진 흥분으로 가슴을 들먹이던 김상훈은 지체없이 손에 총을 틀어잡고 의용군에 입대하였다.

김상훈은 자기의 군복입은 모습을 력사라는 거울앞에 비쳐보았다.

동족의 피로 물든 군복을 입고 손에 파쑈의 총칼을 든자들과 지금껏 맨손으로 싸워온 그에게 있어서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였다.

해방전에는 누런 군복을 입고 총칼로 조선사람들을 무참히 죽여 이 땅을 하나의 피바다에 잠그었던 일제에게 항거하여 학도병을 거부했고 해방후에는 《해방자》의 탈을 쓰고 총을 휘두르며 남조선의 수많은 애국자들과 인민들을 살륙한 미제, 그자들의 앞잡이가 되여 오늘날에는 동족을 반대하는 침략전쟁에 나선 역적무리들을 반대하여 펜을 휘두르고 항거의 주먹을 내흔들던 그였다.

그러나 오늘 그가 입은 군복은 단순한 의복이 아니였다. 민족을 둘로 갈라놓고 동족의 머리우에 전쟁의 불구름을 몰아온 미제와 리승만역적을 반대하고 이 땅우에 평화롭고 정의로운 인민의 새세상, 조선민족의 영원한 삶의 터전을 수호하기 위하여 스스로 선택한 군복, 민족의 운명을 걸머진 군복이였다.

《아빠, 우리도 같이 가면 안되나?》

《아버지, 이제 가면 언제 다시 오나요?》

올망졸망한 다섯 자식들이 그의 품에 와락 매달렸다.

김상훈은 아들과 딸들의 이름을 차례로 하나하나 불렀다.

《애들아, 아버지가 미국놈들을 모조리 족치면 우리 다시 만나게 된다. 그때까지…》

목구멍이 꽉 메여와 그는 말끝을 채 맺지 못했다. 기약할수 없는 길이였다. 하지만 자식들을 위해서, 이 나라의 수천만의 생명들을 위해서 이 길을 가야만 하는 김상훈이였다.

의용군에 입대한 그는 싸우는 전선으로 포탄과 탄약을 수송하는 임무를 수행하게 되였다.

이 나날 그는 피를 흘리며 귀중한 조국의 촌토를 목숨으로 사수하는 전우들의 모습을 보면서 기어이 이 땅에서 외세를 몰아내고 조국을 통일할 결사의 의지를 굳혀갔다.

 

                                     …

                                     정의는 반드시 이기는 법

                                     장군님 이끄시는 승리의 길에

                                     간악한 원쑤놈들 무찌른 날에

                                     영광의 전승가를 부르기 위하여

                                     나는 밤과 낮이 없이

                                     아둔한 목청을 가다듬고있다

 

                                     나의 총구는 오직 원쑤를 향하여

                                     나의 노래도 오직 원쑤를 향하여

                                     불같은 증오로 달려나간다

                                     아, 타오르는 불길이 되여!

(김상훈의 시 《나의 노래여 불길이 되라》중에서)

 

포연탄우를 헤치며 전시수송을 보장하던 김상훈은 1950년 가을 다리에 부상을 당하여 야전병원에 입원하였다.

침상에 누워 매일 매 시각 싸우는 전선의 전우들을 그리는 그의 가슴은 터질것만 같았다. 총탄이 없으면 보병삽을 틀어잡고 육박전으로 조국의 고지를 사수하고 수류탄이 떨어지면 가슴으로 적의 화점을 막아 부대의 진격로를 열어나가던 귀중한 전우들이 그리워졌다.

그러한 그였기에 그는 채 완쾌되지 않은 몸이지만 우리 조국이 가장 준엄한 시련을 겪고있던 전략적인 일시적후퇴시기 후방병원으로가 아니라 빨찌산부대에 소속되여 원쑤격멸의 성전으로 달려나갔다.

빨찌산부대의 정찰분대에서 싸우던 김상훈은 곧 정치부에 소환되여 문화과장으로 사업하였다.

그는 전투소보로 대원들을 승리에로 고무하였으며 그들의 영웅적위훈을 널리 소개선전하였다.

김상훈은 이 나날 《배낭의 노래》, 《봄비》, 《나의 노래여 불길이 되라》, 《소녀빨찌산》, 《습격조의 노래》, 《훈장》 등 수많은 시를 써서 원쑤와의 판가리싸움에 떨쳐나선 용사들과 인민들을 고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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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운명의 선택 5》중에서 ^bb 노래로 빛나는 삶 -인생의 노래를 찾아서- 도서 《운명의 선택 5》중에서 ^bb1. 노래로 빛나는 삶 -성장의 나날- 도서 《운명의 선택 5》중에서 ^bb1. 노래로 빛나는 삶 -위인의 손길에 이끌려- 도서 《운명의 선택 5》중에서 ^bb 1. 노래로 빛나는 삶aa-노래속에 꽃피는 생활- 도서 《운명의 선택 5》중에서 ^bb2. 명곡과 더불어 영생하는 삶 -삶의 빛줄기를 찾아서- 도서 《운명의 선택 5》중에서 ^bb2. 명곡과 더불어 영생하는 삶 -은혜로운 토양이 피워낸 처녀작- 도서 《운명의 선택 5》중에서 ^bb2. 명곡과 더불어 영생하는 삶 -영원한 삶의 생명수 (1)- 도서 《운명의 선택 5》중에서 ^bb2. 명곡과 더불어 영생하는 삶 -영원한 삶의 생명수 (2)- 도서 《운명의 선택 5》중에서 ^bb3. 관록있는 영화배우로 자라기까지 -갈림길에서- 도서 《운명의 선택 5》중에서 ^bb3. 관록있는 영화배우로 자라기까지 -위대한 스승과 관록있는 제자- 도서 《운명의 선택 5》중에서 ^bb3. 관록있는 영화배우로 자라기까지 -노력과 열매- 도서 《운명의 선택 5》중에서 ^bb3. 관록있는 영화배우로 자라기까지 -소원과 계승- 도서 《운명의 선택 5》중에서 ^bb4. 그가 남긴 생의 자욱 -아버지와 아들 (1)- 도서 《운명의 선택 5》중에서 ^bb4. 그가 남긴 생의 자욱 -분수령- 도서 《운명의 선택 5》중에서 ^bbaa4. 그가 남긴 생의 자욱 -아버지와 아들 (2)- 도서 《운명의 선택 5》중에서 ^bb4. 그가 남긴 생의 자욱 -생의 메아리- 도서 《운명의 선택 5》중에서 ^bb5. 한생 통일을 불러 -항거- 도서 《운명의 선택 5》중에서 ^bb5. 한생 통일을 불러 -통일을 위하여- 도서 《운명의 선택 5》중에서 ^bb5. 한생 통일을 불러 -고마워라, 내 안겨사는 어버이품이여- 도서 《운명의 선택 5》중에서 ^bb5. 한생 통일을 불러 -통일이여 어서 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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