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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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비행기가 착륙하자 하늘에서 비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가을비는 늙은이 턱수염밑에서 긋는다고 했지만 평양시내로 들어오는 사이에 비는 폭우로 변했다.
허성렬은 이마살을 찡그리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사무실에 들어서자바람으로 부서일군이 아래 단위에서 올라온 문건을 들고왔다가 두고나갔다. 그것을 보는 허성렬의 얼굴이 점차 굳어져갔다. 국방공업과 관련한 내용이였는데 거액의 자금을 요구하는것이였다.
(이걸 어쩌면 좋단 말인가?…)
그는 오른손으로 턱을 싸쥐고 깊은 생각에 잠겼다.
외국방문기간에 만났던 그 정치국위원의 얼굴이 떠올랐다. 《개혁, 개방》을 한다고 말없는 속에 비난하지만 결국 당신들도 그 길로 갈수밖에 없지 않느냐는듯 미묘한 표정을 짓던 그 얼굴…
사회주의를 고수하자면 국방공업에 선차적인 힘을 넣어야 한다. 하지만 이것은 너무도 아름찬 일이다.
문득 평양을 떠나기 전에 만났던 체신부 부부장이 생각났다. 그때 그도 자금때문에 얼굴이 새까맣게 질려있지 않았는가.
자리에서 급히 일어선 허성렬은 곧장 체신부로 갔다.
젊은 부부장은 서둘러 자리를 권하고나서 의문스레 상대를 바라보았다. 자기네 부하고는 련계도 없는 당중앙위원회의 책임일군이 찾아온것이다.
부부장으로 말하면 허성렬에게는 아들벌이 되는 젊은 사람이였다. 그의 아버지는 허성렬이와 가까운 친구지간으로서
젊은 부부장은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다음 자기를 친아들처럼 여기는 허성렬이 외국출장에서 돌아오자바람으로 찾아온것이 무척 의아스러운 모양이였다. 그는 여전히 자리에서 일어선채로 허성렬을 바라보고있었다.
《허허… 왜 매보고 놀란 수탉처럼 껑충해 서서있나? 앉으라구.》
허성렬이 정말 아들처럼 여기고 해라를 하며 허물없이 굴자 부부장은 수줍게 웃으며 그가 앉은 쏘파에 나란히 앉았다.
허성렬이 곧 정색해서 물었다.
《얼마를 받았나?》
젊은 부부장은 무척 촉기가 빨라서 그가 무엇을 묻는다는것을 제꺽 알아차리고 그 액수를 알려주었다. 그 막대한 액수에 놀란 허성렬이 추궁하듯 말했다.
《그래 그걸 받으면서 손이 떨리지 않던가?》
《제 말을 들어보고 욕하든지 때리든지 하십시오.》
젊은 부부장은 배심있게 항변하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부부장이
《그새 잘 있었소?》 하고
부부장이 황송하여 《옛, 잘 있습니다.
《빛섬유까벨공사를 언제까지 끝낼수 있겠소?》
《굴착공사는 금년안으로 끝낼수 있습니다.
《까벨은 체신부에서 생산할 계획이요?》
《옛, 그렇습니다. 그런데 공장설비가 해결되지 않고있습니다.》
《공장설비가 해결되면 언제부터 생산을 시작할수 있소?》
《반년후이면 될수 있습니다.》
《그다음은?》
《래년 상반년안으로 전국의 모든 시, 군들에 빛섬유통신이 들어갈수 있습니다.》
《인민군 군부대들도 예견해야 하오.》
《물론입니다. 그 경우에도 래년 상반년이면 됩니다.
《그럼 내가 필요한 액수를 떼줄테니 당장 공장설비를 들여오도록 하시오. 설비구입에 필요한 자금액수를 계산해둔것이 있소?》
《…》
《왜, 계산해두지 못했소?》
《아 아닙니다.》
《그런데?》
《…》
역시 대답을 망설였다.
《왜 그러오?》
부부장은 한참 더 갑자르고나서 송구스러운 목소리로 떠듬떠듬 말씀올렸다.
《저희들이… 자체로 생산해보겠습니다.
그러자
여전히 날카로운 목소리가 수화기에서 울려나왔다.
《내가 여러번 생각하고 생각한 끝에 결심한것인데 동무는 무슨 딴 소리를 하는거요? 래일중으로 자금을 받아다가 일을 전개하시오. 아니 오늘로 당장!》
부부장의 이야기를 듣고난 허성렬은 《됐소!》라고 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부부장과 서둘러 인사하고나서 방에서 나갔다.
계단을 뛰여내려가는 그의 다급한 구두발소리가 들려왔다.…
21
(1)
비는 더욱 억수로 쏟아져내렸다.
대줄기같은 비는 자정이 되도록 멎을줄 몰랐다.
그 공사는 심철범장령이 지휘하고있는 금강산발전소건설과 함께
군인건설자들은 10월 10일, 이해의 당창건기념일전으로 로반공사를 완공할 결사의 각오로 일하고있었다. 10월 10일은 이제 불과 며칠밖에 남지 않았다.
그러나 어제 받은 보고에 의하면 《철벽 1다리》와 《철벽 2다리》공사형편이 시원치 못했다. 다리의 길이가 워낙 긴데다가 작업장면적이 좁아서 건설력량을 더 투입하재도 할수 없는 형편에 그마저 련일 계속된 장마비로 하여 공사장전반이 침수되여있었다. 그런데 이 다리공사가 끝나야 도로 전반구간이 관통되게 되여있었다.
드디여 리길남장령이 송수화기앞에 나타났다.
《지금 형편이 어떻소?》
《그 대책안을 언제쯤이면 내가 알수 있겠소?》
《지금 보고드릴수 있습니다.》
《그럼 보고하시오.》
리길남장령은 잠시 말을 끊고있다가 보고를 시작했다.
장령의 보고는 한마디였다.
리길남장령의 갈린 목소리가 울려왔다.
《동무의 위치를 말하시오.》
《옛, 저는 안주현장지휘부에서 전화를 받고있습니다.》
《됐소, 내가 이제 그리로 가겠소.》
《아니?! 이 비속에… 안됩니다.》
현장지휘부의 천정이 낮은 방에 부관이 들어와 알려서야 리길남장령은
밤은 아직도 캄캄하였다.
자동차가 전조등을 켠채로 서있는데
장령은 그의 뒤를 따랐다.
이때
《적지 않습니다.》 전사는 흔연한 목소리로 대답올렸다.
《공급량하고는 맞지 않은데?》
《아니 맞습니다.》 전사는 한본새로 우기였다. 촉수낮은 전등빛에서 그의 얼굴륜곽이 희미하게 드러날뿐이였다.
《그렇지 않소, 분명 제 량이 아니요.》
전사는 《우린 정량으로 생각하고있습니다.》 하고 고집하다가 벌떡 일어서더니 군인식으로 차렷자세를 지으며 대답올렸다.
《우리 중대장동지가 상급의 명령이라고 하면서 당분간 허리띠를 줄여야 한다고 했습니다. 일없습니다. 인민들이 식량고생을 하고있는데 사실 공급정량을 다 먹는다는건 아무리 군대라고 해도 렴치가 없는 일입니다.》
《동무네 중대장이 어디 있소?》
《중대 차렷!》
《동무네 중대 급식량을 짜르라고 명령한게 누구요?》
중대장은 꼿꼿이 선채 머밋거리다가 《저…》 하고 입을 열었으나 뒤를 잇지 못하였다.
그래도 중대장은 《저… 저…》 하며 우물쭈물하였다. 때마침 리길남장령이 어둠속에서 나타나며
《동무가?!》
《예…
《예…》 하고 장령이 차렷자세를 지었다.
그 순간
장령은 까딱 않고 서있었고 옆에 있던 중대장도 부관도 숨을 죽이였다. 가슴을 옥죄이는 싸늘한 침묵이 흘렀다.
잠시후
장령은 차에 올라
야전용승용차는 울퉁불퉁한 작업도로를 몹시 들추면서 달리였다.
그리고는 《부관, 저기서 뭣들 하는가 가서 알아보시오.》 하고 말씀하시였다.
부관이 질적질적한 논뚝길을 따라 그쪽으로 달려가고 장령은 창가에 바투 앉으신
리길남장령은 지금 거기서 벌어지고있는 일을 너무도 잘 알고있었다. 방통에는 니탄이 실려있었고 그 니탄을 퍼날라가는것은 굶고있는 남녀로소들이였다.
니탄을 물에 울궈 식량대용으로 먹는 인민들, 그 인민이 겪는 식량난을 더는 보고만 있을수 없어 군인식량을 잘라 나누어준 그였던것이다.
드디여 부관이 돌아왔다.
《방통에 실린것은 니탄인데…》
《니탄?》
그러나
부관이 갑자기 설명을 중둥무이했다.
승용차는 길 한복판에 오래도록 서있었다.
운전사도 부관도 장령도 지어는
20~30분후에 작업장이 바라보였다.
먼저 시야에 들어온것은 공사장입구의 산턱을 깎아내고 세운 대형유화판이였다.
《할아버님은 어디로 가십니까?》
《자강도땅을 찾아가지요.》
《거기에 친척이라도 있습니까?》
《이 란리통에 친척을 찾아가서는 뭘하겠소.
이미 보고받은대로 모든것이 물바다에 잠겼다.
골재장도 트레그라인도 삭도도 지어는 교각도 꼭대기 한두메터를 남기고는 모두 물에 잠기여있었는데 이제 그 교각우에 보를 건너놓고 휘틀을 댄 다음 콩크리트를 타입하여 다리의 마감공사를 완성해야 한다는것은 정무원일군들의 눈으로 보건데 아찔하지 않을수 없는 실정이였다.
홍경봉은 흠칫 놀라며 더 하자던 말을 끊고 깍지낀 손을 비틀었다.
사실
하지만 그것도 한순간에 지났을뿐
《동무들은 군인들의 의견을 들었습니까?》
《예, 들었습니다.》
부총리가 어지간히 기가 꺾인 목소리로 대답을 올렸다.
《충분히 들었단 말이지요?》
《아니, 다시 들어봅시다. 리길남동무.》
부총리뒤에 서있던 리길남이 《옛.》 하고 앞으로 나와 차렷자세를 짓고 또박또박
그는 공사의 완공기일은
《우선 작업장이 침수된 조건에서 떼를 무어 교각에 비끄러매고 그우에서 작업을 계속할수 있습니다. 다음은 비가 계속 내리는 형편에서 콩크리트타입을 해야 하는데 그러자면 콩크리트혼합물을 순간에 굳어지게 해야 합니다. 그것도 방도가 있습니다.》
이때
장령은 자기 말을 더욱 확신성있게 이어나갔다.
《저희들은 지금과 같은 정황이 조성될것을 미리 예견해서 혼합물의 굳힘속도를 최대한 단축할수 있는 첨가제를 연구개발하였습니다.》
《구체적으로 그 첨가제를 쓰면 굳힘시간이 얼마나 되오?》
《15분입니다.》
장령은 힘차게 대답을 드리였다.
《나는 군인동무들의 결심을 지지합니다.
《옛, 알았습니다!》
장령은 기쁨에 넘쳐 대답을 올렸다.
《기계화부대에 명령하여 수륙량용차를 동원시키겠습니다. 그것으로 물동도 나르고 교각에 붙여놓고 그우에서 작업하시오. 떼목대신 말이요.》
( 다음호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