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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2 회)

 

19

(2)

 

남편은 자기를 알아보지 못하고 현관으로 들어가더니 얼마쯤 지나서 다시 뛰여나왔다. 여전히 실내옷바람으로 손에는 자기의 솜외투만을 들고있었다. 순경은 인기척을 냈다.

남편의 머리에는 성에가 하얗게 불려있었다. 입술은 파랗게 질렸으며 턱이 덜덜 떨리고있었다.

순경은 갑자기 련민의 정을 느꼈다. 이제 남편이 손목을 쥐여당기면 와락 안기여 그의 언몸을 녹여주리라, 뜨거운 입김으로, 온몸의 체온으로! 그러나 정작 남편의 손에 손목이 잡히였을 때 순경은 팩 돌아섰다. 남편은 손목을 놓고 량어깨를 잡더니 자기쪽으로 돌려세웠다. 순경은 용수철을 넣은 인형처럼 도로 튕겨났다. 바로 그때 순경은 거친 숨소리와 함께 남편의 솥뚜껑같은 큰 손이 자기의 뺨을 후려치는것을 느꼈다. 눈앞에서 번개가 일었다.…

동환은 그 일을 몹시 후회하였다. 무슨 정신에 안해의 연약한 몸에 손을 대였던지 몰랐다. 사랑하기때문이였다고? 허지만 그는 안해의 반박하는 목소리를 들었다.

(당신은 남철이도 그렇게 쫓아냈지요? 사랑하기때문에? 사랑하기때문에?)

(그렇소. 사랑하기때문이였소!)

동환은 자신을 속이지 않고 마음속으로 확고히 대답했다. 그러나 그는 안해앞에 사죄하고싶지는 않았다. 워낙 무틀지고 과묵한 그는 그런것을 낯간지러운 일로 여기였다. 한마디의 사죄도 없었지만 남편을 대하는 순경의 태도는 여전하였다. 무슨 사람이 그런지 몰랐다. 그 일이 있은 후 두세번 비상소집훈련이 있었는데 순경은 이전보다 더 극성스럽게 준비를 해주었고 아침 일찌기 밥을 지었으며 여전히 자기의 옆에 와서 누웠다가 깨워주었다. 동환의 후회는 더욱 커졌다.

(모든것이 그놈의 자식때문이다.)

그는 아들을 욕했다. 그러나 그것이 부질없다는것을 인차 느꼈다.

남철이가 유치원때였다. 부부간의 사랑이 무엇인지 알수 없는 철없는 아들로부터 동환은 뜻밖의 권고를 받았다.

어느날 아침 동환은 출장을 떠나기에 앞서 자체학습과제를 해놓으려고 책상에 마주앉아있었는데 남철이가 조용히 들어와 등뒤에 서는것이였다. 꼬마는 뒤짐을 지고 어른스레 아버지를 바라보다가 《아버지.》 하고 불렀다.

《오, 너냐?》

동환은 뒤돌아보지 않은채 대답했다. 그는 애가 적적해서 자기를 부른줄로 여겼던것이다.

《아버지.》

남철이가 다시 불렀다.

《왜?》 하며 동환은 왼손을 뒤로 가져가 남철의 손을 잡아주고나서 하던 발취를 계속하였다. 그때 남철이 등뒤에서 빽 돌아 책상옆으로 오더니 아버지가 펼쳐놓은 책을 탁 덮어버리는것이였다.

그제야 동환은 아들을 자세히 바라보았다. 어린 남철은 자못 심중한 표정을 짓고있었다.

《무슨 일이지?》

동환은 정색해서 물었다.

《아버지, 나하고 약속하자요.》

《응? 무슨 약속?》

《글쎄 약속하자요!》

어린것은 새끼손가락을 꼿꼿이 편 손을 동환의 앞에 내들었다.

《빨리!》

동환은 빙긋이 웃으며 새끼손가락을 펴서 아들의 손가락에 걸었다. 아들은 이번엔 새끼손가락을 건채 엄지손가락을 펴서 도장을 누르자고 하였다. 동환은 아들애의 요구대로 응해주었다. 그러자 아들은 다른 손에 들고있던 종이장을 동환의 책상우에 놓고는 돌아서나갔다. 가족휴양권이였다.

전날밤 장기간의 항해훈련에서 돌아온 그앞에 안해가 부대에서 보내왔더라고 하면서 가족휴양권을 내놓았었다. 결혼생활을 시작하여 10여년이 되여 오지만 언제한번 남들처럼 부부가 함께 휴양을 가본적이 없었던것이다.

동환은 안해의 심정이 리해되였으나 두말 못하게 딱 잘라버렸다. 래일아침에 또 출장을 간다고… 그는 인차 잠자리에 들었다. 한밤중에 안해의 흐느낌소리를 잠결에 들었다. 그리고 침대밑 방바닥에 남철을 끼고 누운 안해의 어깨가 떨리고있음을 보았다.

아들애가 가져다놓은 가족휴양권은 안해를 울린 그 휴양권이다. 남철은 엄마편을 들어야겠다고 생각한 모양이였다.

이런 일은 그들부부의 생활에서 드문히 있었다.

그 시절에 동환은 사랑이란 무엇인가 하는 론쟁에 자주 말려들었다. 사랑은 주는것이다. 아니 받는것이다. 그것도 아니다. 주고 받는것이 사랑이다. 론쟁의 결론은 대체로 이러루하였다. 동환은 언제나 사랑은 주는것이라는 편이였다. 다시말하여 희생이며 무한한 헌신이 사랑이라는것이였다. 그는 주장하였다. 사랑을 위하여서는 목숨도 서슴없이 바쳐야 한다! 망망대해에서의 항해, 태여난 날은 각각이여도 유사시에 이 세상을 떠나는 날만은 같게 될 함 전체 성원들과의 집단적인 희생을 각오해야만 하는 해상경비대로서의 그의 직무가 그러한 사랑관을 가지게 하였는지도 몰랐다.

지금 동환은 자기옆에 누운 순경의 체취를 들이마시며 아들 남철을 생각하고있었다. 순경이와의 사이에 파문을 던지고 떠나간 그 아들이 최고사령관동지를 만나뵙게 될줄을 어찌 알았으랴!

최고사령관동지로부터 서한을 받던 날 그들부부는 서로 손을 맞잡고 감격과 행복의 눈물을 흘렸다.

비로소 그들사이에 일어났던 파문은 가뭇없이 사라졌고 부부의 정은 본래의 궤도에 다시 들어섰다.

단 한가닥의 그늘이 있었다면 남철에게서 편지가 없는것이였다. 최고사령관동지께서 쓰신것처럼 아들은 훌륭한 군인이 될것이였다.

(아버지에 대한 오해가 풀리지 않아도 훌륭한 군인만 된다면!)

동환은 이렇게 생각하였다. 그가 아들의 편지를 기다리는것은 망울진 꽃을 들여다보면서 어서 피기를 기다리는 심정이였다.

생활은 얼마나 아름다운것인가!

이때 가슴에 얹혀있던 순경의 손에 힘이 가며 지그시 누르는것이 알렸다. 《기상》 하는 다정한 음성이 나직이 귀전을 울렸다. 새벽 다섯시가 된것이다.

동환은 비상소집때와도 같은 빠른 동작으로 세수를 하고 군복을 입은 다음 순경이 차려놓은 밥상에 마주앉았다. 그리고 별로 씹지도 않고 어린애처럼 국에 만 밥을 꿀꺽꿀꺽 넘겼다.

《아이참, 천천히 드세요.》

순경은 두무릎을 모두고 앉아서 지켜보고있었다.

《이번엔 갔다와서 가족휴양을 꼭 갑시다.》 동환이가 문득 말했다.

《됐어요.》

《아니, 왜?》

《애들도 다 자라서 집을 나갔는데…》

《인생이 다 흘러갔단 말이지.》

동환은 미안쩍어하며 말했다.

《통일된 다음에 저 남해바다가로 갑시다. 거기 해당화가 동해의 해당화만 못하지 않을거요.》

《글쎄 그때라면 몰라도.》 순경은 남편의 턱에 묻은 밥알을 떼주며 물었다.

《동해쪽으로 가세요?》

《아니, 서해로.》

동환은 거짓말을 했다.

《오래 있게 돼요?》

《아니, 며칠간.》

동환은 또다시 거짓말을 했다. 이번 훈련은 적들의 새로운 도전과 관련하여 진행되는 실동훈련이였다. 작전일군인 그는 적어도 한두달은 해병들과 함께 동해에서 생활해야 할것이다. 순경은 본능적으로 남편의 말을 꺼꾸로 해석했다. 그는 남편을 아빠트밑까지 바래워주려고 일어서서 솜저고리를 입었다.

《아니, 나오지 마오.》

동환은 안해의 두어깨를 잡아세우고 저으기 엄하게 말했다. 그리고는 정말 잠간 다녀오려는 사람처럼 훌쩍 집을 나섰다.

순경은 그저 현관에 선채 계단을 뛰여내려가는(아직 승강기가 뛸 시간이 아니므로 남편은 계단을 리용하였다.) 남편의 발자국소리를 듣고있을뿐이였다. 그런데 사라졌던 발자국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그 소리는 점점 가까와지더니 문앞에 와서 멎었다.

문이 벌컥 열리였다. 남편이 다시 들어섰다.

순경은 다급히 물었다.

《뭘 잊었어요?》 그는 초조해하며 남편의 대답을 기다렸다.

《아니.》

동환은 천천히 머리를 저으며 안해를 뚫어지듯이 들여다보고있었다.

《왜 그러세요?》

순경은 그의 눈이 불타고있음을 느끼고 게면쩍어하였다.

《남철이한테서 말이요. 편지가 오면 잘 건사해두오.》

어처구니없는 부탁이였다. 그것을 아무렇게나 건사할가? 순경은 이 순간 남편이 매우 이상스러웠고 어째선지 측은해지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이날 아침 10시 순경은 우편통신원으로부터 남철이 보내온 편지를 받았다.

《그리운 아버지!》 하고 남철은 서두에 편지가 늦어진데 대해서와 이제는 아버지의 용서를 받을수 있으리라는데 대하여 쓰고 다음과 같이 계속하였다.

《그날 밤 상원까지 100리, 밤길을 걸어가는 이 아들의 몰골을 아버지가 보았더라면 련민이 아니라 환멸을 느꼈을것입니다. 군화는 끈이 풀어지고 단추를 벗겨놓은 군복앞자락은 속내의가 들여다보이게 너풀거렸으며 군모는 삐닥하게 머리우에 놓여있었습니다. 몇번 화물자동차를 잡아타려다가 휘뿌려난 저의 온몸은 눈과 흙범벅이였습니다. 저는 손에 훌쭉한 빈 배낭을 보자기처럼 들고있었습니다. 무거운 물건을 다 내던졌던것입니다. 저녁밥을 먹지 못했던 저는 너무 배가 고파서 수확한 무우밭에 들어가 언무우 몇개를 뽑아 씹어먹었습니다. 체모를 잃은 병사의 모습을 그밤 아버지가 아니라 길가던 뭇사람들이 보았더라도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남철은 그러면서도 아버지에 대한 원망만이 한가슴에 가득찼던 자기가 그때에는 그 추한 모습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고 하였다.

《그 어떤 경우에도 인격을 버리지 말라, 군인의 체모를 잃지 말라, 이것이 제가 찾은 군인생활의 교훈이고 병사의 진리입니다.

아버지, 저는 사람들앞에서 모든 군인들이 김정일장군님을 닮자고 말했습니다. 그이처럼 완성된 인격을 갖추자는것입니다.》

가슴이 후더워난 순경은 편지에서 눈을 떼고 옷소매로 두눈을 누르고있었다.

그는 동환이가 빨리 돌아와서 전혀 다른 사람이 된 아들의 편지를 보게 될 그 행복한 순간을 눈앞에 그리며 다시 편지를 읽어내려갔다.

《아버지, 저에 대해서는 더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지금 저는 힘들지 않습니다. 질통도 그 질통이고 광차도 그 광차이고 착암기도 그 착암기이고 먹고 자는것도 그전과 같지만 전혀 부담으로 여겨지지 않습니다. 저는 언제나 군복을 단정히 입고있으며 저의 군모의 오각별은 언제나 반짝이며 어깨우의 총창은 언제나 서리발처럼 번뜩이고있습니다.

아버지, 저의 몸에 흐르는 새형의 피와 넋과 의지를 주신분은 우리의 장군님이시라고 생각하니 그 고마움을 무엇이라고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아버님께서 기회가 있으면 저의 이 마음을 장군님께 전해드렸으면 좋겠습니다.》

아들의 편지를 다 읽은 순경은 그것을 봉투에 도로 넣어 풀로 봉한 다음 동환의 서재에 들어가 아무때나 인차 볼수 있도록 탁상등밑에다 놓아두었다.

 

20

(1)

 

허성렬은 방코크-평양행 비행기를 타고 귀국하고있었다. 이 항로는 《고난의 행군》기간에 개설된것으로서 미제가 강도적으로 친 봉쇄환에 뚫린 하나의 돌파구라고도 할수 있었다.

조선은 자기의 사회주의보루를 방어만 하고있지 않았다. 끊임없는 역습으로 세계무대에 진출하여 사회주의력량, 반제자주력량을 확대함으로써 미제국주의를 역포위해나가고있었다. 1992년 4월 20일 평양선언을 발표할 당시 여기에 서명한 세계 여러 나라 공산당, 로동당들과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당들의 수가 70여개였던것이 1995년 말 현재에는 100을 넘어 200을 바라보고있었다.

이러한 당들가운데는 집권련립에 속하여 정부의 정책작성에 참가하는 당들도 있었고 국회활동에 참가하여 크나 작으나 정부적인 발언권을 가지고있는 당들도 있었다.

이 정당들의 적극적인 활동에 의하여 세계 여러 나라 정부들이 조선에 대한 미국의 《고립》, 《압살》정책에 반기를 들고나서게 되였다.

쏘련의 붕괴와 동유럽의 좌절에서 쓴맛을 보았던 수많은 공산주의자들이 오늘의 조선을 보고는 새로운 신심과 용기를 가지고 사회주의의 재생운동에 떨쳐나서고있었다.

이 시기 로씨야의 한 공산주의정치운동가가 미국기자와 한 담화는 사람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다. 그는 미국의 에이피통신기자로부터 이젠 당신도 공산주의정치운동을 할 의욕을 잃었겠는데 그렇다면 이제라도 그 명석한 판단력과 리지력을 21세기 《자유세계번영》을 위해 바치는것이 옳지 않는가 하는 질문을 받고 단호히 머리를 저으며 이렇게 말하였다.

《아니다. 공산주의자로서의 나의 인생은 오늘에 와서 진정 보람있는 궤도에 들어선셈이다. 나는 그 보람찬 삶을 조선동지들에게서 찾았다. 이제야 비로소 세계를 쥐고 휘두를 힘있는 사상, 그런 힘있는 무기를 가지게 되였다.

이제는 우리가 두번 다시 좌절되지 않을것이다. 나에게 공산주의자로서의 진정한 삶의 가치를 느끼게 한 김정일동지는 나자신뿐아니라 로씨야공산주의자들, 온 세계가 따라배워야 할 위대한 스승이시다. 나의 리지력을 가장 보람있게 바칠수 있게 된것이 참으로 큰 행운이다.》

이 모든 정당들, 개별적인사들이 미제에 대한 역포위환을 이루고있었다. 이 국제적전선의 최고사령관도 김정일동지이시라는것은 두말할것 없다.

허성렬은 장기간의 해외출장(물론 그사이 여러차례 귀국하여 자기 본신사업도 하였다.)과정에 이것을 깊이 느끼였다.

이제 그는 기쁜 마음으로 김정일최고사령관동지앞에 나설것이며 그 기간의 전과를 자랑스럽게 보고하게 될것이였다.

하지만 그는 방코크를 리륙해서부터 장시간 내내 무거운 마음으로 까딱않고 앉아있었다.

귀국에 앞서 마지막으로 들린 나라에서 있었던 일이 그에게서 모든 기쁨과 자랑을 날려보냈다. 피를 끓게 하고 가슴을 뒤번져지게 하는 《사건》이였다. 그날부터 그는 치명상을 당한 사람처럼 가슴이 천만갈래로 찢기는것 같은 진통에 시달리고있었다.

허성렬은 어느날 그 나라 집권당의 권위가 있다고 하는 정치국위원과 마주앉았다. 어버이수령님으로부터 친선과 협조의 뉴대를 이어오는 나라 집권당의 원로급인물이였다.

그 인물은 허성렬과도 면목이 바이 없지 않았다. 우리 나라에도 여러차례 왔었고 환영연에서 잔을 찧으며 축배를 나누었었다.

그는 선대수령들사이에 맺어진 형제적친선을 귀중히 여긴다는것, 조선의 현 처지에 대하여 깊은 리해를 표시한다는것 등에 대해서도 말하였다.

《우리는 조선이.》 하고 그는 말했다. 《혹심한 식량난을 겪고있다는것을 알고있습니다.》

허성렬은 말없이 머리만 끄덕였다.

《조선동지들은 식량지원을 필요로 하고있을겁니다.》

《귀국의 농사작황이 매우 좋더군요.》 허성렬은 동문서답격으로 대답했다.

《그래서 우리 당 지도부는 정부에 조선에 식량지원을 줄것을 제의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정치국위원은 손을 내저었다. 그는 얼굴을 붉히며 무엇이 두려운지 갑자르기만 하다가 몇번 헛기침을 깇고나서 말을 꺼냈다.

《저… 정부에서는 음… 한 천톤의 식량을 내놓겠다더군요.》

《그래요?》 허성렬은 가까스로 자신을 억제하며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그 쌀을 나는 저 거리들에서 헤메고있는 귀국의 방랑자들을 구제하는데 써달라는것을 권고하고싶습니다.》

허성렬은 이 순간 사회주의원칙을 저버리면 매 인간뿐아니라 당도 국가도 얼마나 도덕적으로 저렬해지는가를 뼈아프게 절감했다.

그가 머물고있는 이 나라는 제국주의자들의 회유와 압력에 굴복하여 원칙을 줴버리고 《개혁, 개방》의 길에 들어섰다. 서방의 자본과 사상문화가 쓸어들면서 서방식실용주의가 온 나라를 지배하기 시작하였다. 이런 나라에서 계급적련대성을 바란다는것은 어리석은 일이였다.

(모욕하지 말라, 누굴 거러지로 아는가!)

허성렬은 마음속으로 부르짖으며 자리를 차고 일어섰다. 그리고 남은 일정을 취소해버리고 그 나라를 떠나버렸다. 짓밟힌것은 자기 한 개인의 자존심만이 아니였다. 우리 민족, 우리 조국의 존엄이였다. 그의 분노는 하늘을 찌를듯 했다. 그는 그것을 응당한것으로 여기였다. 더우기 우리 나라가 식량지원을 미끼로 《개혁, 개방》을 요구하는데 반발하여 국제인권협약에서 탈퇴하기로 했다는 소식은 그로 하여금 자기 행동의 타당성을 추호도 의심할수 없게 하였다.

그러나 하루이틀 시일이 흐르면서 그는 자기 행동의 다른 측면 다시말해서 자기가 분별을 잃을 정도로 격노했으며 방문일정을 취소하고 훌 떠나버린 행동의 결과가 두 나라 당과 국가관계에 미칠 영향에 대하여 생각해보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확실히 자기가 감정을 앞세웠다는것을 느끼지 않을수 없었다. 외유내강은 당이 대외일군들에게 늘 강조하고있는 문제였다. 달리는 행동할수 없었을가?…

그는 자기를 비판적으로 돌이켜보며 불안을 느끼였다. 그를 더욱 불안하게 만든것은 조국이 자기의 처신을 두고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는것이였다. 조국에서는 빨리 돌아오라는 독촉뿐이였다.

거기에는 다른 하나의 리유도 있었다.

그는 조국을 떠나기에 앞서 해당부문 일군으로부터 국방공업발전에 거액의 투자가 필요하다는 제기를 받았다. 국방공업을 중시하고 국방공업발전에 큰 힘을 넣는것은 시종일관한 당의 정책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 제기를 두고 고심하지 않을수 없었으니 그것은 나라의 긴장한 자금사정을 그자신이 어느 누구보다 잘 알고있었기때문이였다. 바로 그때문에 허성렬의 마음은 이중으로 무거운것이였다.

비행기는 조국의 령공에 들어섰다.

허성렬은 비로소 숙이고있던 고개를 쳐들고 기창을 통하여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처음 그의 눈에 들어온것은 이해따라 더욱 우심하게 들이닥친 장마로 하여 죽탕이 된 농사작황이였다. 그는 잠시 눈을 감고 량미간을 찌프렸다.

잇따라 활주로처럼 뻗어나간 평양-향산관광도로건설장이 눈에 밟혔다. 거기에서는 지금 인민경비대 군인들이 특별한 기계수단도 없이 와글거리며 이해 10월 10일까지 로반완성을 위해 말 그대로 혈전분투하고있을것이다. 그 공사 역시 최고사령관이신 김정일동지께서 직접 지휘하고계시는 대상이 아닌가.

시야를 넓혀 조국땅 전부를 훑어보자 허성렬의 눈에는 전국의 각지로 실오리처럼 뻗어나간 수십수백갈래의 선들이 들어왔다.그것은 빛섬유까벨을 묻기 위한 작업이 진행되고있다는것을 의미했다. 그 순간 허성렬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앉았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우리가 아무리 어려워도 20세기가 다 가는 지금 21세기를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한다, 여기에서 조금만 주춤거려도 후대들앞에 죄를 짓는것으로 되며 조국의 만년대계를 그르칠수 있다, 21세기는 정보산업시대, 콤퓨터시대인것만큼 그 기초준비로서 온 나라의 빛섬유통신화를 실현해야 한다고 여러번 강조해오시였다. 지금 그것이 현실로 되고있는것이다. 그러나 이 사업이 결코 쉽지 않다는것을 과학자출신의 허성렬은 누구보다 잘 알고있었다. 막대한 자금이 드는것이다.

허성렬은 점점 난감해지는 자신을 의식하며 깊은 한숨을 내쉬였다. 그다음부터는 순안비행장에 내릴 때까지 눈을 감고 단 한번도 뜨지 않았다.

 

( 다음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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