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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1 회)

 

18

(3)

 

《나는 이전 쏘련의 국가비상사태위원회의 경험과 쓰라린 교훈을 분석하면서…》 하김정일동지께서는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국가정치를 실현하는 힘은 본질에 있어서 군사이고 군사의 뒤받침이 없는 정권은 바람앞에 선 초불이나 같다는 철의 진리를 다시금 절감하였습니다. 정치에서 국사중의 국사가 군사라는것이 흘러온 력사와 복잡다단한 오늘의 현 정세가 보여주고있는 피의 교훈이고 진리입니다. 정치이자 힘이고 정치의 모자를 벗기면 군사입니다!》

야조브는 그 말씀을 뼈아픈 자책속에 듣고있었다.

그자신이 꾸르츄꼬브와 함께 철직을 당한채 1년간에 걸치는 옥고를 치르고나서 찾은 피의 교훈이였기때문이였다.

그는 괴로운 심정을 털어버리며 김정일동지께 말씀드렸다.

《저는 귀국에 와서 지내는 기간 존경하는 당신께서 군대를 틀어쥐고 나의 희망의 등대인 귀국의 사회주의를 지켜내고있다는것을 알게 되였습니다.

내가 보건대 당신의 정치는 총대정치입니다. 틀린다면 용서하십시오.》

《아니, 옳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인류정치사에는 군사를 중시하는 정치가 적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총대, 다시말하여 군대를 정치의 수단으로 삼았다면 우리는 총대 그자체를 정치로, 광범한 군인대중을 정치의 주체로 보고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군대이자 당이고 국가이고 인민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군대는 우리 혁명의 기본기둥입니다. 바로 여기에 우리가 틀어쥐고나가는 총대정치의 새로운 본질이 있는것입니다.》

《새로운 본질이라구요?!》

《그렇습니다. 바로 군대를 정치의 주체, 정치를 주도해나가는 기본세력으로 보기때문에 우리는 그들을 당의 사상, 사회주의사상으로 끊임없이 교양하고있습니다.

이러한 사상으로 무장한 군인들의 총대는 인민의 리익을 침해하는 원쑤들앞에서 절대로 떨리지 않습니다. 설사 앞에 있는것이 부모형제나 친척, 친우라 할지라도 무자비합니다. 세상에 우리 인민군대와 같이 당에 충실하고 국가에 충실하고 인민에게 충실한 군대는 없을것입니다. 그들은 당의 리익, 사회주의국가의 리익, 인민의 리익을 해치는 온갖 원쑤들에게 섬멸적인 반격을 가할것입니다.

우리가 군사를 중시하고 선군을 하는 리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고난의 행군〉을 하면서 새로운 선군정치방법을 창조하고있습니다. 이제 앞으로 그것을 정식 공포하게 될것입니다.》

《옳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당신께서는 덕과 함께 사회주의를 지켜내는 또 하나의 보검을 가지게 될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야조브의 눈앞에는 국가비상사태위원회의 지시에 따라 크레믈리궁전을 포위했던 군대가 총 한방 쏘지 못하고 물러서던 비참한 몰골이 선히 떠올랐다. 군대의 《비사상화》, 《비정치화》가 빚어낸 후과는 얼마나 비극적인것이였던가. 수백만의 병사들과 핵과 미싸일, 최정예무기로 무장한 레닌, 쓰딸린이 창건한 붉은 군대가 어찌하여 그토록 무맥할수 있었던가.

야조브는 김정일동지앞에서 머리를 들수 없었다. 그 모든 책임이 자기에게 있었다.

자신의 가슴에 총구를 대기전에 왜 자기자신은 국방상으로서 병사들의 앞장에서 인민을 배반한 그따위 인간쓰레기를 쏘아넘기지 못했더란 말인가. 그놈들만이라도 쏴갈기였더라면…

그는 어금이를 꽉 깨물었다. 배신자, 변절자들에 대한 증오만이 아닌 자기자신에 대한 혐오감으로 피가 터지게 입술을 깨물었다.

《자, 이젠 기본문제로 돌아갑시다!》 하고 말씀하시는 바람에 야조브는 회오의 감정에서 돌아와 김정일동지를 바라보았다.

《우리가 망하겠는가 안 망하겠는가?》

김정일동지께서 이렇게 다시 질문을 던져놓고는 야조브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자기자신에게 말씀하듯 결론하시였다.

《우리는 망하지 않습니다. 나는 우리 군대를 자신처럼 믿습니다. 그렇습니다! 나자 그들이고 그들이자 바로 나자신입니다.》

야조브는 응답을 하지 않았다. 이 순간 눈앞에 매우 강한 섬광처럼 번쩍하는 하나의 모습이 비껴갔기때문이였다. 바로 한두시간전 그이의 명령(그렇다. 그것은 이 나라의 당과 국가의 운명이 걸린 매우 무거운 명령이였다.)을 받은 조선인민군의 한 장령이 바지혼솔에 피묻은 붕대를 감은 손을 딱 붙이고 차렷자세를 짓던 모습이였다. 그 모습에서 받은 인상이 지금 김정일동지께서 하신 말씀이 죄다 사실이며 결코 공담이 아니라는것을 증명해주고있었다.

암. 그렇구말구! 야조브는 마음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며 묵묵히 서있었다.

그러나 이때 그가 그 장령이 아니라 자기의 최고사령관의 사상과 의지를 받아들인 군인대중, 한 병사의 모습만이라도 더 볼수 있었다면…

 

×

 

군인들이 궐기모임장으로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벌써 천인지 만인지 모를 정도였는데 그들은 자동차를 타고 혹은 대렬을 지어서 끊임없이 밀려들고있었다. 가까운 작업장들에서뿐아니라 멀리 안변과 회양쪽에서 다 모여오는것 같았다.

남철은 그들앞에 나선 자신을 상상해보았다. (무슨 말을 할것인가?) 그는 생각했다.  (최고사령관동지께서는 병사들을 믿고계신다고? 그 믿음에 충성으로 보답하자고?)

그러나 지금까지 수없이 해온 그 말이 적합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말이야 남철이 자기가 아닌들 누가 못하겠는가? 그는 자리를 피해 달아나고싶었다.

어제 심철범장령이 자기를 끌어안고 잔등을 쓸어주었고 리완수가 그 무슨 말인가 하라고 하였을 때 남철은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말해야 한다는것을 느꼈다. 그래서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고있었다.

남철이는 자기를 토론자들중의 하나로 뽑았을 때 그것을 거절못한것을 후회했다. 그때에는 밤새껏 궁리하면 될줄 알았다. 그러나 토론을 시작해야 할 지금까지도 그는 첫말을 어떻게 떼야 할지 몰랐다. 그의 댓걸음앞에는 장대가 꽂혀있었는데 그끝에 밤송이만한 마이크가 매달려있었다.

남철에게는 자그마한 그 물건이 당장 터지려는 폭탄처럼 느껴졌다. 그는 두려운 마음으로 그것을 바라보았다.

드디여 모임을 집행하는 군관이 토론자들속에 서있는 남철에게로 다가오더니 옷소매를 걷고 손목시계를 가리켜보이며 차례가 다 됐다는것을 알려주고나서 어깨를 두어번 두드려주었다. 남철은 첫번째로 토론하게 되여있었다.

그는 고개를 돌려 등뒤에 서있는 심철범과 리완수, 전호진 등 장령들과 군관들을 얼핏 바라보았다. 그들은 고무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드디여 집행자가 마이크앞에 나섰다. 그는 마이크를 입김으로 두어번 불어보고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부터 전사 김남철동무가 토론하겠습니다. 그는 동무들과 같이 평범한 병사로서 우리의 경애하는 최고사령관 김정일동지를 만나뵙는 영광을 지니였습니다. 그는 오늘 석비레모래를 창안함으로써 우리모두를 기쁘게 해주었습니다. 그러면 전사 김남철동무가 말하겠습니다.》

남철은 집행자의 말을 자기와는 아무 관계도 없는것처럼 무심히 듣고있었다. 그러나 집행자가 손으로 마이크를 가리키는것을 보자 분주히 주머니를 뒤지며 겁에 질려 어리둥절해졌다. 토론원고는 이미 쓸모없게 된것이였다.

그는 어떻게 마이크앞에 나가섰는지 몰랐다.

그는 첫말을 떼려고 무진 애를 썼다. 그러나 좀체로 생각나지 않았다. 아찔하여 눈을 감았다. 그 순간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의 눈부신 영상이 떠올랐다. 얼마전 그이의 집무실에서 뵙던 모습이였다. 그런데 그이앞에 서있는것은 자기가 아니라 다른 병사라는 착각이 들었다. 그 병사는 남철이 자기로서는 바라볼수 없이 아찔한 높이에 있는 병사였다.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는 자기의 목소리가 다른 사람의 목소리처럼 들렸다.

《저는 영웅도 모범군인도 아닙니다. 그렇습니다. 동지들! 그저 평범한 군인이고 병사입니다.》

남철은 이미 흥분상태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밤새 생각해왔고 방금까지 생각해내려고 애쓰던 표현과 문구들이 저절로 머리에 떠올랐다.

《어떤 병사였는가?》 하고 남철은 계속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공부를 잘해서 선생님들과 부모들의 사랑을 받아왔습니다. 이 다음에 커서 조국을 위해 큰일을 하리라는 희망으로, 그것을 자랑으로 여기며 자랐습니다. 나는 자기의 총명과 지혜를 자랑으로 여겼습니다. 이러한 자기란 과연 무엇이겠습니까?》 하고 남철은 목소리를 더 높여 계속했다.

《이러한 자기란 63키로그람의 육체였습니다. 그것은 달구지 하나 끌 정도의 힘밖에 낼수 없는 가냘픈 존재였습니다.》

남철은 군중을 보지도 않고 마이크만 보면서 그쪽에 가까이 몸을 숙였다. 그의 격조높은 토론은 새로운 견인력을 가지고 울리기 시작했다.

《이것을 느끼자 나는 갑자기 무기력해지고 비굴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때까지 나는 나의 힘으로 뭐든지 다 할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모범군인도 되고 영웅도 될수 있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허망한 일로 여겨졌습니다. 동지들은 이에 대하여 나를 타매할수도 있습니다. 동지들, 그러나 나는 끝까지 동지들앞에서 솔직하고싶습니다. 나는 광차를 밀 힘도 질통을 질 힘도 착암기를 들 힘도 없어졌습니다. 나중에는 공사장을 떠나 전투구분대로 갈 생각까지 했습니다. 나는 자기를 지키려다가 그것을 완전히 잃고말았습니다. 정말 잃었습니다!》

이 순간 남철은 누구를 눈앞에 그려보았는가? 누구와 이야기하고있었는가? 누구를 상대하고있었는가? 희생된 중대장을? 아버지를? 어머니를? 지금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있는 수만의 군인들을?

《이러한 때 나는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의 부름을 받게 되였습니다. 그리하여 경애하는 장군님을 만나뵙게 되였습니다.》

남철은 계속했다.

《나는 자기를 다시 찾았습니다. 그러한 나는 그전과 다른 남철이였습니다.》

남철은 자기가 적절하지 못한 표현을 한것이 아니라는것을 납득시키기 위해 되풀이해 말했다.

《63키로그람의 나의 몸에는 부모의 피가 아닌 다른 피가 흐르게 되였습니다. 나는 강자가 되였습니다. 사상의 강자, 의지의 강자, 신념의 강자가 되였습니다.》

남철은 이 순간에 자기가 하고싶던 말을 다하지 못하지나 않을가 걱정되여 이 생각 저 생각을 앞뒤가 맞지 않게 건너뛰면서 서둘러 말했다. 그리고 자기가 토론문에 쓰고 지금까지 기회가 생길 때마다 말해왔으나 적합치 못하다고 여겼던 그 말이 저절로 튀여나오는것을 느꼈다.

《동지들, 자기를 버리십시오. 그리고 그이를 닮으십시오. 김정일장군형의 군인이 되십시오. 그때만이, 바로 그때만이 그이의 믿음에 충성으로 보답하자는 말이 공담이 아니라 실천으로 될수 있는것입니다.》

비상한 정신적앙양을 체험하며 수만의 청중도 보지 못하고 그들이 울리는 박수소리도 듣지 못하며 남철은 마이크를 틀어쥐고 열정적으로 웨쳤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몸엔 주체형의 피만이 흘러야 합니다. 설사 부모가 준 피라고 해도 다른 피가 섞여서는 안됩니다. 절대로 안됩니다. 만일 동지들중 그 누가 그렇게 된다면 일심동체의 대오에서 떨어져나와 나약한 존재, 버림받는 존재로 될것입니다.

원쑤들이 우리의 피속에 다른 피를 섞어넣을수 있다고 믿지 마십시오. 나는 알고있습니다. 우리의 모든 인민군군인들이 최고사령관동지의 의지의 전사, 일당백의 전사가 될것이라는것을! 우리는 최고사령관동지의 명령을 무조건 관철할것입니다. 형편이 아무리 어렵고 난관이 겹쌓인다 해도 우리는 기어이 뚫고나갈것입니다.》

여기서 남철의 토론은 끝났다. 뢰성과도 같은 환성이 터져오르며 한무리의 군인들이 뛰여나와 그를 마이크채로 끌어안았기때문이였다.

그날 밤 남철은 중대교양실에서 편지종이를 꺼내놓고 조용히 앉았다.

《그리운 아버지…》 하고 시작을 뗀 그는 오래도록 더 쓰지 못했다. 눈앞이 흐려졌던것이다.

 

19

(1)

 

그날 새벽 김동환을 잠에서 깨운것은 부엌에서 나는 달그락소리였다. 동환은 습관대로 오른쪽팔을 뻗쳐보았다. 옆에서 자던 안해가 없었다.

이제 안해는 아침밥을 다 해놓은 다음 자기의 옆에 와서 다시 누울것이다. 그리고 숨소리를 죽이고 지켜있다가 다섯시 정각에 어김없이 흔들어 깨울것이다. 동환은 잠에서 깨면서 안해의 체취를 느끼게 될것이다. 그때까지 동환은 안해를 부대직일관처럼 믿고 푹 자도 된다. 이러한 새벽잠은 얼마나 단것인가!

동환은 다시 잠을 청하려고 눈을 감았다. 여전히 부엌에서는 달그락소리가 다정하게 들려왔다. 그러나 잠들수 없었다. 이날 따라 안해에 대한 애틋한 정이 전류처럼 온몸에 흘러들며 잠을 날려보내는것이였다. 세월은 퍼그나 흘렀으나 아직도 청초한 안해의 자태, 로인반점 하나 없는 맑은 얼굴, 박씨처럼 가쯘하고 희디흰 이발, 입술의 홍조, 아니 그보다도 신혼시절의 순정은 변덕을 모르는 심산속의 샘물처럼 아직도 여전했다. 안해 렴순경은 군관안해의 세파, 말하자면 끊임없는 이사, 가사일을 혼자 떠맡아야 하는 고됨과 무시로 집을 떠났다가 오랜만에 나타나는 남편을 기다려야 하는 고독속에서도 거칠어지지 않았다.

순경은 동환이가 동해의 어느 군함에서 경비정을 타고있던 시절에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하고 시집을 왔다. 미모의 대학졸업생은 《군관촌》생활에 잘 어울리였다.

대학을 나오지 못한 남편을 깔보지도 않았으며 자기보다 지식에서 어방없이 못한 이웃집 부인들과 섭쓸려 군인가족생활을 하며 돼지도 기르고 염소도 방목하며 어장에 나가 고기밸을 따는 등 궂은 일, 마른 일 가리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언제나 자태가 단아하였다. 미모처럼 그의 마음 또한 비단이였다. 그는 남편에 대해 언제나 고분고분하였으며 항변같은것은 생각할수도 없었다. 그가 기분을 드러내보일 때란 두가지 경우였는데 남편의 일이 잘됐을 때와 못됐을 때였다. 앞의 경우에 그는 박씨같은 이발을 드러내보이며 활짝 웃었고 뒤경우에는 얼굴이 새빨갛게 되여 쌕쌕거렸다.

그는 남편의 작식대원이였으며 그의 총의 멜끈이였으며 그가 타는 경비정의 추진기였다. 동환의 군사복무를 순경이와 떼여놓고 생각할수 없었다.

동환은 비상소집이라던가 출장이 있어 무시로 새벽에 나가면서도 언제 한번 선밥을 먹어본적이 없었다. 순경은 언제나 미리 밥을 지어놓고 지켜있다가 그를 깨워서 먹여보내군 하였다. 그것은 어머니의 자애와도 같은것이였다.

동환은 순경이가 언제 들어와 자기옆에 다시 누웠는지 몰랐다. 생각에서 깨여나보니 안해는 자기의 가슴에 손을 얹고 숨을 죽이고있었다. 보나마나 마음속의 초침을 세고있을것이였다.

가정과 생활이란 얼마나 귀중한것인가.

그러나 잔잔하고 향기만을 뿜던 그들 부부생활의 호수에 한점의 파문이 일게 되였다.

집에 왔던 아들 남철이 남편 동환이가 내던진 배낭을 집어 한쪽어깨에 걸치고 나가면서 쾅 닫아버린 문소리는 부엌에 있던 순경이를 크게 놀래웠다. 황급히 출입문쪽으로 뛰여나왔으나 남철은 이미 사라진 뒤였다. 아버지가 정말 아들을 쫓아버린것이였다. 부자간의 이야기를 다 들을수 없었던 순경은 동환이가 실성하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남편을 힐끗 보고는 신발장에서 신을 찾아신고 뒤쫓아나가려고 문고리를 잡았다. 일생 들어보지 못한 남편의 노성이 들린것은 그때였다.

《내버려두오!》 순경은 깜짝 놀라 문고리를 쥔채 무춤하며 뒤돌아보았다. 《내버려두라는데!》

남편이 무섭게 쏘아보며 되뇌이였다. 그런 눈길도 순경은 처음 보았다. 그는 대번에 몸이 굳어졌다. 층계를 내려가는 아들의 발자국소리가 점점 멀어져가고있었다. 순간 순경은 남편의 노한 목소리도 무서운 눈길도 다 잊었다. 그는 문고리를 비틀어열고 복도로 뛰쳐나갔다. 그리고는 계단을 마구 뛰여내렸다.

굽높은 구두에서 나는 달가닥소리가 들려왔다. 동환은 현관에 선채 열려진 문으로 들려오는 그 소리를 듣고있었다. 아들의 일로 하여 리성을 잃을 정도로 격노했던 그는 자기가 안해를 어떻게 대했는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다급한 발자국소리를 들으면서 그가 어서 돌아오기만을 초조히 기다릴뿐이였다. 만일 안해가 아들의 손목을 끌고 들어온다면 다시 쫓아버릴것이다. 그는 주먹찜질이라도 할 심산으로 은근히 두주먹을 부르쥐였다. 한겨울의 찬바람이 창문을 울리고있었다.

(그까짓 자식 내버려두지 않구!) 동환은 화가 나서 중얼거리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는 실내옷바람으로 뛰여나간 안해를 생각하여 옷장에서 그의 솜저고리를 벗겨들었다.

문을 나선 그는 처음에 그들이 계단의 어느 층에서 만나 싱갱이질을 하거나 이야기를 나누고있으리라고 생각하며 한층한층 내려갔다. 그러나 아래층까지 다 훑어봤으나 그들은 어디에도 없었다. 동환은 아빠트현관을 나섰다. 그는 어리둥절해졌다. 그들의 행방을 도무지 가늠할수 없었던것이다. 비로소 아들에게 너무 독하게 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광복거리는 궤도전차시간이 끝나면 교통이 막히고만다. 지금은 자정도 지난 한밤중이다. 아들이 갈 길이 과연 어디인가. 상원, 그들의 작업조가 있는 곳까지는 100리길이다.

남철은 부득불 그 길을 걸어가야 한다. 그가 그 길을 걸어서 떠났단 말인가?

아니다. 걸어서라도 가야 한다. 그래야 나의 아들이다. 아버지의 마음은 편안한줄 아는가. 그런데 순경은 어데로 갔는가. 아들과 함께 떠났을리는 만무하다. 그것도 실내옷바람으로 굽높은 구두를 신고 말이다.

실내옷바람인 그자신도 금시 몸이 떨리였다. 그렇다고 안해의 행방을 알지 못한채 집으로 올라갈수는 없었다. 그는 아들에 대해서는 생각지도 않았다. 오직 안해 순경이만을 걱정했다. 그는 자기가 안해에게 무섭게 소리쳤던 사실을 상기하자 불안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는 아빠트현관을 떠나 매일 다니는 출퇴근길을 따라 궤도전차정류소에 이르렀다. 심야에도 다니는 시간뻐스가 있을수 있는것이다.

《철야운행》이라고 쓴 2번정류소에 사람들이 줄지어있는것이 보였다. 그들 가까이로 다가가서 안해와 아들을 찾아보았다. 그러나 인차 실망하였다. 그들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는 덜덜 떨면서 아빠트로 되돌아왔다. 두다리가 꽛꽛해서 걸음마저 제대로 되지 않았다. 줄곧 안해생각때문에 자기가 손에 그의 솜외투를 들고있으며 그것으로 언몸을 가릴수 있다는것도 잊고있었다.

그때 순경은 아빠트 바깥현관계단밑 외등이 미치지 않는 후미진 곳에 서서 다가오는 남편을 지켜보고있었다.

그도 남편처럼 아들이 아빠트의 어느 계단에서 자기를 기다리고있으리라고 믿고 그 높은 12층을 두어번 오르내리였다. 그리고 실내옷바람으로 궤도전차정류소까지 갔으며 거기서 아들을 찾아보다가 언몸을 덜덜 떨며 아빠트로 되돌아왔다. 그는 오는 길에 덤비면서 지나가는 남편을 보았다. 그의 손에 자기의 솜외투가 들려있는것도 알아보았다.

콱 얼어죽고말테다! 솜외투는 동태귀신한테나 입히라지! 지금 그는 다가오는 남편을 바라보면서 그 말을 곱씹고있었다. 매정한이! 지독한이! 백리나 되는 밤길을 걸어갈 아들을 생각하니 정말 콱 죽어버리고싶었다.

 

( 다음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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