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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명곡과 더불어 영생하는 삶

 

 

∙ 1932년 6월 15일 서울에서 출생.

∙ 1949년 김일성종합대학 외국어문학부(당시) 입학.

∙ 1950년 조선인민군대에 입대.

∙ 1953년 무대예술공연 소개자로 활동.

∙ 1967년 량강도예술단 작가로 활동.

∙ 1987년 피바다가극단 작가로 활동.

∙ 1989년 조선문학창작사(당시) 작가로 활동.

∙ 2011년 3월 11일 사망.

김일성상계관인.

 

그리도 가슴가득 안고 산 축원

그리도 가슴가득 넘치던 감사

그리도 가슴가득 품었던 맹세

 

어이하여 그날에 그이앞에서

한마디도 아뢰이지 못하여

날이 가고 달이 갈수록

죄송한 마음, 아쉬운 마음

이리도 이 가슴 파고드는것인가

 

그러나 사람들이여

나를 나무라지 마시라

 

그이의 사랑이 너무도 깊은

것이여서

그이의 믿음이 너무도 높은것이여서

그이의 배려가 너무도 큰것이여서

참으로 이 세상 그 어떤 말도

찾을수 없었던것을

 

그날에 못 올린

그 모든 축원을 담아

그날에 못 올린

그 모든 감사를 담아

그날에 못 올린

그 모든 맹세를 담아

 

노래하고 또 노래하리라

목숨이 진할 때까지

온 세상에 소리높이 노래하리라

세월의 끝까지

(최로사의 시 《나무라지 마시라 사람들이여》중에서)

 

절세의 위인들에 대한 고마움과 감사, 은혜로운 그 품에 피줄을 잇고 사는 우리 인민의 절절한 마음을 담은 시이다.

떨어져서는 단 한시도 살수 없는 위대한 그 품속에 오늘의 삶과 보람, 래일의 행복이 있다는것을 뜨거운 심장으로 절감한 한 인간의 격정이고 분출이리라.

시인 최로사는 이 시에서 자기 인생의 어버이, 삶의 영원한 생명수를 부어주신 위대한 수령님들에 대한 고마움을 절절하게 토로하였다.

이 나라 수천수만의 생명들이 그러하듯 시인 최로사는 바로 위대한 수령님들의 품속에서 김일성상계관인으로, 인민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는 시인으로 자라날수 있었다.

 

영원한 삶의 생명수 (2)

 

평범한 시인을 주체예술의 화원에서 만발하는 천만가지 꽃중의 한송이 꽃으로 피워주시고 작가들과 작품들을 천금보다 더 귀중히 여기시며 아껴주시는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의 사랑은 세월과 더불어 더해만 갔다.

1986년 봄 최로사는 여러편의 가사들을 창작하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그때 그가 창작한 노래 《우리가 제일일세》를 들으시고 가사가 참으로 좋다고 높이 평가해주시였다.

그이의 말씀을 전달받은 최로사는 솟구쳐오르는 감격을 금할길 없었다. 친부모도 따르지 못할 다심한 사랑의 품속에서 받아안은 은정에 다소나마 보답했다는 그 기쁨을 어디에 비기겠는가.

그러나 한편 서글픈 감정이 갈마드는것을 어찌할수 없었다. 이 가사가 그이께 드릴수 있는 마지막가사로 되지 않겠는가 하는것이였다.

그는 이제 몇달만 있으면 년로보장으로 일을 그만둘 나이가 되는것이다.

(이대로 시단에서 떠난단 말인가! …)

괴롭고 허전한 마음을 안고 하루하루를 보내던 그해 9월 어느날이였다. 꿈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감동적이고 현실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꿈같은 현실이 그앞에 펼쳐졌다.

이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일군들에게 최로사동무는 일편단심 당을 받들어 창작생활을 해왔다고 하시면서 그를 평양에 소환하여 생의 말년까지 자기의 재능을 마음껏 꽃피울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최로사의 두볼로는 뜨거운 눈물이 흐르고 흘렀다. 가슴속에 소중히 간직하기만 했던 간절한 소원이 그이의 크나큰 믿음과 은정으로 이루어지게 되였으니 그때의 그 감격을 무엇이라고 표현할수 있으랴.

그뿐만이 아니였다.

온 가족이 함께 살도록 하여주신 위대한 장군님의 사랑에 의하여 그는 아들과 며느리, 딸까지 데리고 평양에 올라오게 되였다.

언제나 변함없는 믿음으로 내세워주시고 보살펴주시는 위대한 어버이의 손길에 떠받들려 최로사는 새로 지은 아빠트에 살림을 펴게 되였으며 청춘작가의 활력과 열정을 가지고 보람찬 창작의 나날을 보내게 되였다.

온갖 시름을 모두 가셔주고 천만가지 소원을 다 풀어주는 은혜로운 어버이품!

고목에도 꽃을 피울수 있도록 힘과 용기를 주시고 뜨거운 인간애로 품어주시는 위대한 장군님의 사랑은 정녕 마를줄 모르는 샘줄기와도 같은것이였다.

1989년 3월 어느날 최로사는 만수대예술극장으로 급히 오라는 련락을 받게 되였다.

이날 그곳에서는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장군님을 모시고 피바다가극단에서 출연하는 시와 음악무용공연이 진행되였다.

극장에 도착한 최로사에게 한 일군이 오늘 위대한 장군님을 모시고 진행하는 공연관람에 참가하게 되였다는것을 알려주었다.

얼마나 뵙고싶던 장군님이신가. 얼마나 흠모하고 그리워하던 그이이신가.

(정녕 무슨 말로 인사를 올리며 무슨 말로 감사의 정을 아뢰일가.)

최로사는 그이의 하늘같은 은정속에 사는 무상의 행복을 심장깊이 느끼며 그이께 올릴 말마디들을 고르고 또 골랐다.

이윽고 우렁찬 만세소리가 극장안을 뒤흔드는 속에 위대한 장군님께서 객석으로 들어서시였다.

만장의 환호에 태양과도 같이 환한 웃음을 지으시며 들어서시는 그이의 영상을 우러르며 최로사는 눈굽으로 흘러내리는 눈물을 걷잡을수 없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창작가들의 손을 하나하나 잡아주시며 최로사에게로 다가가시였다. 그를 이윽토록 바라보시던 그이께서는 그의 이름을 정깊게 불러주시며 손을 뜨겁게 잡아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을 만나뵈옵는 크나큰 행복을 지닌 사람이라면 누구나가 체험하게 되는 그이의 위대한 포옹력과 감화력을 뜨겁게 절감한 최로사는 마음속으로 준비했던 인사도 미처 드리지 못한채 그이의 넓은 품에 얼굴을 묻으며 울음을 터뜨렸다.

얼마후에야 겨우 마음을 진정한 그는 입을 열었으나 《위대한 장군님!》이라는 말만 몇번 아뢰였을뿐 다른 인사를 올리지 못하였다.

장내가 정돈되고 공연의 막이 올라서야 최로사는 운명의 어버이이신 그이께 감사의 인사말 한마디 제대로 올리지 못한 자신을 크게 질책하였다.

그날 공연이 끝난 후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휴계실에서 일군들과 창작가들을 다시금 만나주시였다.

그이께서는 시인들쪽으로 자애로운 시선을 보내시며 시인들이 좋은 시와 가사를 많이 써서 우리 조국의 부강발전에 크게 이바지하고있기때문에 자신께서는 높이 평가하고있다고 하시였다. 그러시면서 동무들은 앞으로도 지난날과 마찬가지로 좋은 시와 가사를 많이 창작함으로써 당과 운명을 같이하는 참다운 동행자가 되여야 한다고 뜨겁게 교시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최로사를 정겹게 바라보시며 가사 《샘물터에서》를 창작한 때로부터 지금까지 좋은 가사를 많이 썼는데 앞으로도 창작사업을 잘하여야 하겠다는 크나큰 믿음과 사랑을 안겨주시였다.

여기에는 작가에게 영원히 빛나는 삶을 안겨주시고 생의 순간순간을 나라와 인민을 위해 값있게 바칠줄 아는 시대의 기수로 내세워주시려는 우리 장군님의 웅심깊은 뜻이 깃들어있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이날 최로사의 시집을 출판하도록 은정깊은 사랑도 베풀어주시였다.

최로사는 크나큰 충격으로 하여 한동안 자기의 귀를 의심했다.

(시집이라니?! …)

어제날 자기의 꿈과 희망을 꽃피우려고 했어도 침략자들의 군화발밑에서 싹도 틔워보지 못했던 그였다.

그런데 위대한 조국, 고마운 공화국의 품에서 문학을 배우고 오늘은 이렇듯 만사람들이 선망과 존경의 눈길로 바라보는 작가로 되였는데 자기의 이름으로 된 시집까지 낸다니 행복이면 이보다 더 큰 행복이 또 어데 있단 말인가.

위대한 품속에서 귀중한 정치적생명을 받아안고 참된 삶과 행복을 꽃피워온 보람찬 나날에 창작한 시편들을 한데 묶어 작가의 이름과 더불어 영원히 빛내여주시려는 어버이 그 사랑에 최로사는 무엇이라 감사의 인사를 올려야 할지 몰랐다.

겹쌓이는 흥분으로 하여 마음을 진정하지 못한 최로사는 《위대한 장군님! …》 하고는 더 말씀을 올리지 못하였다.

그이께서는 하많은 사연이 담긴 인사의 말을 뜨거운 눈물로밖에 표현하지 못하는 그의 심중을 깊이 헤아리시고 그가 받은 새 살림집에 대하여 물으시였다.

순간 최로사는 아무리 자애롭고 다정스러운 말을 고르고골라도 이 짤막한 말씀속에 소용돌이치는 그이의 뜨거운 사랑을 다 이야기하지 못할것이며 그 어떤 수백수천의 말을 합치고 합쳐도 그 말씀속에 담겨있는 은정의 세계를 다는 전하지 못할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너무도 잘 알고있었다. 그이의 말씀속에는 작가와 작품, 인간과 생활에 대한 우리 장군님의 위대한 사랑이 하나로 응축되여있다는것을…

최로사는 뜨거운 격정으로 흘러내리는 눈물을 손수건으로 닦으며 대답올렸다.

《정말 고맙습니다. …》

위대한 장군님께서 떠나신 다음에도 최로사는 어린애마냥 두손으로 얼굴을 싸쥐고 그냥 울었다. 그는 언제나 창작가들을 자신의 영원한 동행자로 굳게 믿어주시며 작가와 작품의 운명을 끝까지 빛내여주시려는 위대한 령도자의 그 사랑에 한생을 다 바쳐 기어이 보답하리라 굳게 마음 다졌다.

그후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최로사뿐만아니라 그의 가정에도 크나큰 사랑을 베풀어주시였다. 그이께서는 지방에서 재능있는 어린 학생들을 많이 키워낸 최로사의 남동생 최호섭을 만경대학생소년궁전 안무가로 일하도록 하여주시는 은정어린 조치를 취해주시였다.

다시는 예술에 발을 들여놓지 말라고 신신당부하며 어린 딸자식을 공화국의 품으로 보낸 최로사의 어머니 석금성, 슬하에서 떠나간 아들딸들의 생사여부를 알수 없었던 그는 수십년동안 사찰들을 찾아 북으로 간 자식들이 무사하기를 빌고 빌었다고 한다.

그러던 1990년대초에 일본에 있는 친척을 찾아 도꾜로 갔던 석금성은 뜻밖에도 공화국에서 발행하는 신문과 잡지, 화보를 통하여 자기의 딸인 최로사가 위대한 수령님들의 보살피심속에 대학을 졸업하고 작가가 되였다는것과 아들인 최호섭이 안무가로 보람있는 삶을 누리고있는것을 제눈으로 직접 확인하게 되였다.

일본땅에 와서 뜻밖에 자식들의 소식을 알게 된 그는 자기의 아들딸들을 훌륭히 키워 작가, 예술인으로 내세워주신 위대한 수령님들의 자애로운 영상을 우러르며 감사의 인사를 올리고 또 올렸다.

그후 서울에 돌아온 그는 1995년 9월 사망하는 그날까지 하루빨리 조국이 통일되여 아들딸을 만나게 해달라고 마음속으로 기원했다고 한다.

세월이 갈수록 더해만 가는 친어버이의 사랑과 믿음은 그대로 최로사에게 끝없는 창작의 나래를 한껏 펼치게 하였다.

그는 그날의 감격을 안고 시 《나무라지 마시라 사람들이여》(1990년), 가사 《우리의 큰 명절》(1990년), 가사《오직 우리 당만 따르리》(1992년), 가사 《어머니들에 대한 생각》(1992년), 가사 《우린 승리자》(1993년), 가사 《아침도 좋아 저녁도 좋아》(1993년)를 비롯한 수많은 시들과 가사들을 창작하였다.

전화의 그 나날 포화속을 뚫고 부상병들을 치료하던 나어린 처녀병사의 처녀작 《샘물터에서》를 귀중히 여겨주시고 그의 인생말년에까지 온갖 육친의 정을 다 부어주신 위대한 장군님의 사랑은 정녕 끝이 없었다.

1991년 8월 중순 어느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최로사를 잊지 못하시여 또다시 그를 자신의 곁으로 불러주시였다.

한달음에 달려온 그를 반갑게 맞아주신 그이께서는 최로사동무가 보고싶어서 이렇게 불렀다고 하시며 그의 건강에 대해서까지 일일이 물어주시였다.

이날 장군님께서는 최로사동무는 열여덟나이에 처녀의 몸으로 전쟁시기 군대에 나가 싸웠을뿐아니라 그 전화속에서 전쟁승리에 크게 기여한 전시가요 《샘물터에서》를 쓴것은 대단히 큰 공로라고 치하해주시였다.

그이께서는 감격에 젖어있는 그에게 보천보전자악단에서 새로 창조한 노래도 들려주시며 지난날과 마찬가지로 앞으로도 당의 작가, 로동당의 작가가 되여야 한다는 크나큰 믿음을 부어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그후 최로사에게 어버이수령님의 존함이 모셔진 선물시계를 표창해주시고 또 그를 전국지식인대회의 대표로 불러주시는 크나큰 영광을 안겨주시였다.

세월의 흐름과 더불어 자신의 곁에 더 가까이 불러주시고 두터운 신임과 배려를 돌려주시는 위대한 장군님의 따사로운 해빛아래 최로사는 인생의 황혼기를 모르고 언제나 포연속을 헤치던 처녀병사시절처럼 신심과 락관에 넘쳐 작품들을 창작할수 있었던것이다.

이것은 그가 1995년 2월에 창작한 가사 《조선의 행운》(안정호 작곡)을 두고서도 잘 알수 있다.

최로사는 그 노래의 창작계기에 대해 이런 글을 남겼다.

《… 뜻밖에도 어버이수령님을 잃는 커다란 국상을 당하여 사람도 강산도 피눈물에 젖어있던 1994년을 보내고 새해 1995년을 맞이한 나의 뇌리에는 문뜩 솟구치는 하나의 시상이 있었다.

조선이 피눈물의 바다에 잠겨 영영 다시 일어서지 못한다고 미제와 그 앞잡이들이 떠벌이고있을 때 우리 인민의 가슴속에서 용암처럼 솟구치는 힘은 과연 어디에서 분출하는것이였던가.

그것은 우리에게는 또 한분의 위대한 령도자이신 김정일장군님께서 계신다는 생각, 그이께서 어버이수령님은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신념을 우리 인민의 가슴속에 깊이 심어주시여 생겨난 힘이 아닌가.

하여 대를 이어 누리는 수령복, 우리 조선민족만이 타고난 수령복을 노래하고싶었으며 그 정서를 비장하게가 아니라 랑만적으로 희망차게 노래하고싶어 창작한것이다.》

 

온 나라에 그늘없이 해빛을 뿌려

행복의 꽃 피우시는 김정일동지

아 뜨거운 사랑의

아 태양을 모심은

조선이 타고난 행운이라오

 

이 세상의 모든 풍파 다 막으시여

좋은 날만 펼치시는 김정일동지

아 천하를 비치는

아 태양을 모심은

조선이 타고난 행운이라오

 

나라마다 차례지는 영광이런가

사람마다 누리는 복이라던가

아 대대로 위대한

아 태양을 모심은

조선이 타고난 행운이라오

 

이 노래에는 위대한 장군님의 품에 안겨사는 행운을 지닌 시인의 복된 삶의 토로, 이 세상 그 어느 민족도 누리지 못하는 수령복, 태양복에 사는 복받은 우리 인민의 행복상이 자랑스럽게 구가되여있다.

1995년 5월초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최로사를 다시금 자신의 곁으로 불러주시였다. 그가 도착하기 전에 그이께서는 일군들에게 최로사동무는 전쟁에 참가한 처녀병사이며 전화속에서 전시가요를 썼고 또 어버이수령님을 모시고 진행하는 공연의 무대소개자로 조국의 존엄을 떨쳤다고 높이 평가하시였다. 그러시고는 그는 《그네뛰는 처녀》와 같은 명가사들을 많이 썼다고, 우리 당이 그 동무의 일생을 끝까지 잘 돌봐주어야 한다고 간곡히 말씀하시였다.

이윽고 최로사가 도착하자 그이께서는 그를 반갑게 맞아주시였다.

이날 장군님께서는 왕재산경음악단에서 새로 형상한 노래 《그네뛰는 처녀》를 그에게 들려주시였다.

커다란 감격에 휩싸여있는 그를 보시며 그이께서는 이 노래가 명가사, 명곡이라고 하시며 노래는 그렇게 랑만이 있어야 우리 인민이 좋아한다고 거듭거듭 치하해주시면서 그에게 힘과 용기를 북돋아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의 위인상에 한없이 매혹된 그는 1998년 2월 남조선의 옛 학우들에게 보내는 편지 《장군님을 알면 래일이 보입니다》에서 이렇게 썼다.

《숙명녀고의 동창생 옛 학우들!

해외에서 학우들이 보낸 편지를 받았습니다. 이제는 꼭 50년전, 비내리는 서울역두에서 눈물속에 헤여졌던 문학소녀 <종달새>, 이 최로사를 잊지 않고 편지들을 보내주어 고맙습니다.

학우들은 편지에서 김정일장군님을 만나뵈온 이 <종달새>를 축복하면서 장군님에 대해 알려달라고 부탁했지요.

그이께서는 저를 몇해어간에 다섯번이나 만나주셨답니다.

오늘은 장군님앞에서 제가 <울보>가 되였던 이야기만을 <통일신보>의 지면을 빌려 전해드리고저 합니다.

제가 지난해 만나본바이지만 우리 동창생들가운데는 동서방 대통령들의 관저를 드나들며 그들과 가까이 지낸다는 저명한 문필가도 있습니다. 그가 대통령들과 친한다면 그것은 직업상의무감때문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제가 김정일장군님께 그토록 이끌리게 된것은 그이께서 민족의 령도자이시기에 앞서 다정다감한 인간이시라는 매혹에 있습니다.

그이의 미소는 봄날의 해빛처럼 따스하며 그이의 안광은 예지로 별빛처럼 빛납니다.

그이의 음성은 정서깊은 음악의 선률이 되여 이 마음의 금선을 튕기며 추억의 나래도 펴주고 미래에 대한 락관의 샘이 솟구치게도 합니다.

여러해전 어느 가을날, 장군님께서는 저를 만나주신 자리에서 좋은 가사들을 쓰느라고 수고가 많았다고 하시며 몸소 축배잔을 찧어주시였습니다. 저는 장군님의 은정이 너무도 고마워 인사의 말씀도 제대로 드리지 못하고 감격의 눈물만 흘렸습니다.

그이께서는 저를 보고 울보라고 하시며 어서 잔을 들어야 함께 잔을 들것이 아닌가, 동무가 <축배를 들자>는 노래도 지었는데 어서 들자고 다정히 말씀하시였습니다.

친오라버님 같으신 장군님의 후더운 인정이 저를 울보가 되게 한것입니다.

1995년 5월의 봄날에도 장군님께서는 여러 시간이나 저를 만나주시였습니다. 그이께서는 그해초에 제가 지은 노래 <조선의 행운>에 대해서 먼저 말씀이 계셨습니다. 그이께서는 1956년에 제가 가사를 쓴 민요 <그네뛰는 처녀>에 대하여 회고하시면서 그때 동무는 민족적색채가 짙은 랑만적인 노래로 인민들을 고무하더니 풍파많은 시련의 오늘에는 이렇게 신심에 찬 노래를 지었다고 분에 넘치는 말씀을 하시였습니다.

그러시면서 노래에서 자신을 태양으로 부르는것만은 지나치다고 하시면서 엄하게 나무람하시였습니다.

저는 뜨거운 눈물을 삼키며 마음속으로 그이께 아뢰였습니다. 남녘땅에서는 불행에 처했던 이 소녀에게 행운의 빛발이 어디서 비쳐왔습니까. 한편한편의 소박한 노래들을 다듬어 완성시켜주시고도 이 시인을 내세워주시며 겨레를 위해 붓을 들고 참답게 살도록 깨우쳐주신 장군님이 아니십니까.

동창생 여러분!

장군님께서 아무리 만류하시여도 그이는 제 인생의 태양이십니다.

한줄기의 해빛을 감수하고도 우주만물을 소생시키는 태양의 열도를 가늠할수 있는것이 아닙니까.

조선민족 그 누구이든 장군님을 만나뵈옵고나면 그이를 인생의 태양으로 확신하게 될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학우들! 어수선한 세상에서 자신과 자녀들의 장래가 걱정되거든 우리 장군님께 운명을 맡기십시오. 장군님을 알면 민족의 밝은 래일이 보입니다.

우리모두 인생의 태양, 민족의 태양 김정일장군님을 높이 모시고 따르는 길에서 통일조국의 봄을 마중해나갑시다.
   1998년 2월 3일 평양에서.》

세상만물의 존재는 어디까지나 끝이 있는 법이다.

하지만 최로사에게 돌려주신 장군님의 사랑에는 끝이 없었다.

그가 늙은 몸으로 집에서 창작생활을 하던 2000년 3월에는 일군들에게 최로사동무는 지난 시기 훌륭한 시와 가사를 많이 쓴 재능있는 작가라고 분에 넘치는 치하를 해주시고 그의 건강과 생활을 잘 돌봐주어야 한다고 당부하시며 귀중한 보약들과 선물들을 보내주시였다.

그러시고도 못다 주신 사랑이 있으신듯 전쟁로병시인인 그의 창작성과를 높이 평가하시여 2001년 4월에는 그에게 김일성상을 수여하도록 하여주시고 그가 일흔살이 되는 2002년 6월에는 생일상을 보내주시고 로력훈장까지 수여해주시였다.

로병시인을 언제나 잊지 않으시고 해마다 명절때면 사랑의 선물과 보약들을 보내주시고 전쟁시기 당한 부상자리가 도져 쓰러졌을 때에는 전문치료집단까지 무어주시여 그가 다시 일어서도록 하여주신분도 다름아닌 자애로운 어버이 김정일장군님이시였다.

뿐만아니라 그이께서는 2006년 12월 13일에는 자기를 품에 안아 키워준 삶의 요람인 우리 조국에 대한 고마움의 인사, 감격의 인사를 담아 최로사가 올린 편지를 친히 보아주시고 사랑의 친필을 보내주시는 크나큰 영광을 안겨주시였다.

이렇듯 뜨거운 사랑과 배려속에 자기의 한생을 살아온 최로사였기에 운명의 마지막순간까지도 위대한 장군님을 그리며 자기의 생을 마친것이였다.

2011년 3월 그가 사망했다는 보고를 받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못내 가슴아파하시면서 최로사의 장례식을 기관장으로 하도록 하시고 자신의 명의로 된 화환까지 보내주시였다.

돈과 권력이 판을 치는 남조선에 있었더라면 최로사의 재능과 그의 운명은 빛도 없이 초야에 묻히고말았을것이다.

하다면 그의 운명은 과연 어떻게 영생의 언덕으로 올라서게 되였는가.

위대한 수령님들께서는 공화국의 품에 안긴 그의 운명의 보호자가 되시여 육친의 정보다 더 뜨겁고 자애깊은 사랑으로 그를 안아 키워주시고 영생의 언덕에 내세워주시였다.

참으로 최로사에게 돌려주신 위대한 수령님들의 사랑은 천만부모의 사랑을 다 합쳐도 따를수 없는 가장 뜨겁고 열렬한 어버이사랑이였다.

하기에 최로사는 생전에 《우리 당은 내 운명의 보호자, 우리 당의 사랑은 내 삶의 생명수! 그것이 아니였다면 나는 일찌기 기갈이 들어 풀끝의 이슬로 사라지고말았을것입니다.》라는 말을 자주 하였다.

자기의 운명을 품어주고 내세워주는 자애로운 어버이의 품이 있어 최로사는 처녀작 《샘물터에서》부터 시작하여 수많은 명가사들과 명시들을 창작할수 있게 되였으며 우리 나라 주체적문학예술발전에 크게 이바지할수 있었다.

인생은 끝이 있어도 영원한 사랑과 믿음으로 영생의 절정에 내세워주시는 절세위인들의 숭고한 품속에서 그는 오늘도 자기가 창작한 명곡들과 더불어 인민들의 가슴속에 길이 살아있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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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운명의 선택 5》중에서 ^bb 노래로 빛나는 삶 -인생의 노래를 찾아서- 도서 《운명의 선택 5》중에서 ^bb1. 노래로 빛나는 삶 -성장의 나날- 도서 《운명의 선택 5》중에서 ^bb1. 노래로 빛나는 삶 -위인의 손길에 이끌려- 도서 《운명의 선택 5》중에서 ^bb 1. 노래로 빛나는 삶aa-노래속에 꽃피는 생활- 도서 《운명의 선택 5》중에서 ^bb2. 명곡과 더불어 영생하는 삶 -삶의 빛줄기를 찾아서- 도서 《운명의 선택 5》중에서 ^bb2. 명곡과 더불어 영생하는 삶 -은혜로운 토양이 피워낸 처녀작- 도서 《운명의 선택 5》중에서 ^bb2. 명곡과 더불어 영생하는 삶 -영원한 삶의 생명수 (1)- 도서 《운명의 선택 5》중에서 ^bb2. 명곡과 더불어 영생하는 삶 -영원한 삶의 생명수 (2)- 도서 《운명의 선택 5》중에서 ^bb3. 관록있는 영화배우로 자라기까지 -갈림길에서- 도서 《운명의 선택 5》중에서 ^bb3. 관록있는 영화배우로 자라기까지 -위대한 스승과 관록있는 제자- 도서 《운명의 선택 5》중에서 ^bb3. 관록있는 영화배우로 자라기까지 -노력과 열매- 도서 《운명의 선택 5》중에서 ^bb3. 관록있는 영화배우로 자라기까지 -소원과 계승- 도서 《운명의 선택 5》중에서 ^bb4. 그가 남긴 생의 자욱 -아버지와 아들 (1)- 도서 《운명의 선택 5》중에서 ^bb4. 그가 남긴 생의 자욱 -분수령- 도서 《운명의 선택 5》중에서 ^bbaa4. 그가 남긴 생의 자욱 -아버지와 아들 (2)- 도서 《운명의 선택 5》중에서 ^bb4. 그가 남긴 생의 자욱 -생의 메아리- 도서 《운명의 선택 5》중에서 ^bb5. 한생 통일을 불러 -항거- 도서 《운명의 선택 5》중에서 ^bb5. 한생 통일을 불러 -통일을 위하여- 도서 《운명의 선택 5》중에서 ^bb5. 한생 통일을 불러 -고마워라, 내 안겨사는 어버이품이여- 도서 《운명의 선택 5》중에서 ^bb5. 한생 통일을 불러 -통일이여 어서 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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