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일화로 보는 위인상 2》중에서

 

애국자가정이라고 불러주시며

 

주체104(2015)년의 양력설날 밤이였다.

릉라인민유원지가 바라보이는 풍치수려한 대동강반의 문수지구에 자리잡고있는 아빠트의 한 집에서는 밤이 지새도록 불이 꺼질줄 몰랐다.

아이들은 좋아라 떠들어대면서 흥성이고 어른들도 즐거운 기분에 떠서 이야기꽃을 피우고있는 행복한 가정에 평시에 없던 손님사태가 나 세칸짜리 집이 사람들로 꽉 찼다.

밤이 지새도록 오가는 화제의 주인공은 이 집의 세대주인 김정숙평양방직공장 기사장 리용근이였다.

그에게 어떤 가슴뜨거운 사연이 있어 그와 온 가정, 찾아온 사람들이 밤이 깊도록 그처럼 잠들지 못하는것인가.

그날로부터 얼마전인 2014년 12월말이였다.

이날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께서는 김정숙평양방직공장을 또다시 찾으시였다.

공장의 여러곳을 돌아보시며 로동자들의 생활조건과 생산정상화문제에 대하여 일일이 가르쳐주신 그이께서 마당에 나서시였을 때였다.

강바람이 세게 불어와서인지 12월의 이날은 류달리 추웠다.

맵짜게 불어치는 찬바람에 공장구내의 아름드리나무들이 초리를 떨며 우수수 설레였다.

리용근을 비롯한 공장일군들이 이처럼 추운 날에 경애하는 원수님을 모신것이 자신들의탓인것만 같아 죄스러움으로 옹색해하였다.

하지만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구내길을 천천히 거니시며 공장의 외부전경을 부감하시였다.

그이께서는 감회가 깊으시였다.

곳곳에 력력히 어려있는 방직공들에 대한 위대한 수령님들의 사랑의 체취가 그대로 생생히 느껴지시며 눈굽이 뜨겁게 달아오르시였다. 그리고 인민군대의 강력한 건설력량을 파견하여 로동자들의 《호텔》로 불리우는 로동자합숙을 세상에 보란듯이 일떠세워주시던 일이 어제런듯 가슴벅차게 떠오르시였다.

이윽토록 생각에 잠겨계시던 원수님께서 나무들이 울창한 어느 한 곳에 시선을 멈추시였다.

그러시다가 일군들을 둘러보시며 원림록화가 잘되였다고 치하하시였다.

공장일군들은 공장의 원림사업에 대한 과분한 평가에 송구스러움을 금할수 없었다.

이때 한 일군이 리용근기사장을 가리키며 이 동무의 아버지가 지배인으로 일할 때부터 공장에서 원림화사업에 힘을 넣었다고 말씀드리였다.

그러자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그를 정겹게 바라보시였다. 그러시면서 기사장의 집안은 대를 이어 방직공장을 지켜가는 쉽지 않은 애국자가정이라고 말씀하시였다.

애국자가정!

대를 이어 아버지의 땀이 스민 일터를 지켜가고있는 크지 않은 소행을 그토록 크게 보시며 자기의 가정을 애국자가정이라고 그처럼 높이 평가하시는 말씀에 리용근은 솟구치는 격정을 금할수 없었다.

(아! 아버지, 지금 듣고계십니까.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우리 가정을 애국자가정이라고 불러주시였습니다.)

리용근의 가정은 평범하였다.

아버지는 조국해방전쟁이 우리 인민의 승리로 끝난 후 평양방직공장(당시) 직장장으로 일하다가 1970년부터 1993년말까지 지배인으로, 그후부터 생을 마치는 2001년까지 고문지배인으로 사업하였다. 그 나날 아버지는 위대한 수령님들의 뜻을 받들어 생산과 함께 공장의 원림화도 근기있게 내밀었었다.

방직공장병원에서 출생하고 유치원도 공장유치원을 다닌 리용근은 군사복무를 마친 후 한덕수평양경공업대학(당시)에 가서 방직공학을 배우라는 아버지의 권고를 기꺼이 받아들이였다. 대학졸업후 그는 생산현장에서 일을 시작하여 이태전에 기사장으로 임명받았다.

가정에 특별한것이 있다면 아버지가 한생토록 찍은 영광의 기념사진들곁에 아들 리용근이 전국과학자, 기술자대회에 참가하여 경애하는 원수님을 모시고 찍은 기념사진도 함께 빛나고있는것이였다.

바로 이러한 가정이 경애하는 원수님으로부터 분에 넘치게도 애국자가정이라는 영광을 받아안았으니 설날밤에 무한한 행복감에 넘쳐있는것은 무리가 아니였다.

애국의 마음이라면 그것이 크든작든 보석처럼 값있게 빛내여주시는 경애하는 원수님이 계시여 이 땅의 수많은 애국자가정들이 아름다운 별무리처럼 빛을 뿌리고있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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