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다시 고쳐 부르고 싶은 노래
지금 북과 남, 해외의 7천만겨레가 다 함께 부르는 노래가 있다. 그것은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이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
이 나라 살리는 통일
통일을 이루자
이 겨레 살리는 통일
이 목숨 바쳐서 통일
통일이여 어서 오라
통일을 이루자
겨레의 통일념원이 절절하게 흐르는 노래라고 본다. 노래의 곡도 좋고 가사도 좋다. 곡이 겨레의 정서를 간절하면서도 박력있게 반영하였으니 좋고 가사가 또한 통일에 대한 겨레의 불타는 념원을 진실하게 표현하였으니 좋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
노래의 이 소절들에서 보는바와 같이 통일은 우리 겨레에게 있어서 잠시도 가슴속에서 떠날수 없는 념원이다.
흔히 우리 민족을 보기드문 단일민족이라고 세상사람들이 말하고있는데 사실 반만년의 력사를 두고 한강토안에서 한피줄을 유지하고있는 민족은 지구상에 그리 많지 못하다고 본다.
우리 민족은 그 어떤 외세에도 동화되지도 않고 흩어지지도 않았으며 장장 세월 운명공동체를 유지하고 자기의 고유한 언어와 문자와 풍속과 문화를 보존하고 발전시키면서 한피줄을 이어왔다.
우리 민족을 순결하고 강의한 민족으로 칭하게 된 리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고 본다.
우리 민족의 분단은 전적으로 자의가 아닌 타의의 결과였다.
조국광복이 이룩된 1945년 8월 삼천리강토에는 3천만의 겨레가 살고있었다. 그 3천만겨레가 광복의 기쁨을 안고 서로 얼싸안으며 울고웃어야 할 때 그만 뜻하지 않은 분단의 비극에 직면하여 갈라져서 통곡해야만 하였다. 우리는 누구네처럼 합쳐살면 불편하고 갈라져 살아도 무방한 그런 민족이 아니다.
우리 나라의 분단은 종종 보게 되는 종족으로 갈라져있는 나라들의 분렬과 같은 그런 성격의 분단이 아니다. 우리 나라의 분단은 문자그대로 육신을 칼로 동강을 낸것과 같은 아픔을 온 겨레에게 주는 매우 고통스러운것이다. 그 고통이 반세기가 넘도록 지속되고있으니 어찌 참을수 있는 일인가.
하기에 통일은 겨레의 소원으로 되고있는것이며 겨레에게 있어 꿈속에서도 소원으로 되고있는것이 통일인것이다.
노래는 이렇게 계속되고있다.
이 나라 살리는 통일
…
이 겨레 살리는 통일
노래의 가사가 말해주듯이 통일은 우리 겨레에게 있어 없어서는 안될 생명과도 같이 귀중한것이다. 혈육들이 생리별을 강요당하게 된것도 정치, 경제,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나라가 통일적발전을 기하지 못하게 된것도 다 외세가 강요한 분단에 있다. 분단이 민족에게 준 불행과 고통은 더 없이 큰것이며 그런것만큼 나라를 살리기 위해서는 통일되여야 하는것이고 겨레를 살리기 위해서 통일이 되여야 하는것이다.
노래에는 또한 겨레의 강한 통일의지도 반영되여 있다. 《이 목숨 바쳐서 통일》이라는 노래의 소절이 이것을 말해주고있다. 통일이 겨레에게 있어 생명과도 같이 귀중하기에 한목숨 바쳐서라도 통일을 이룩하고야 말겠다는것은 온 민족의 한결같은 의지이다.
1948년에 창작보급된 이 노래의 가사는 원래 《우리의 소원은 독립》, 《꿈에도 소원은 독립》으로 되여있었다. 기미년 3. 1운동사건 29주년을 기념하는 방송극의 주제곡으로 지은 노래였기에 그 가사가 원래 《독립》으로 되여있었다.
그런데 그때 이 노래를 들은 남녘민중의 가슴은 허전하였다. 기미년 3월 1일의 만세함성도 아직 귀전에 생생한듯 하였다. 일제기반에서 벗어나 3년. 그러나 그토록 갈망했던 독립은 도대체 어디에 있느냐, 그들은 하나와 같이 이렇게 반문하였다. 그때로 말하면 미국이 기만적으로 군정의 모자를 벗고 신식민주의통치로 넘어가려고 리승만을 내세워 망국적《단선단정》을 획책하고있어 남조선이 온통 뒤숭숭하던 때였다.
민중의 눈은 자연히 북으로 쏠리였다. 이남은 식민지의 주인만 갈린 여전한 암흑지대였으나 이북은 전혀 달랐다. 민주개혁까지 실시된 이북에서는
독립의 봄기운이 한창이였다. 그무렵에 불세출의 영웅이신
민중속에서 통일기운이 높아지는 속에서 3. 1운동을 기념하여 지은 가요 《우리의 소원은 독립》이 《우리의 소원은 통일》로 가사가 슬그머니 변하고 말았다. 민중은 고달플 때나 괴로울 때나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부르며 통일을 갈망하는 마음을 달래였다.
노래란 그 누가 지었든 관계없이 인민의 마음에 들면 인민의 영원한 소유물로 되는것이고 인민에 의하여 더 좋게 다듬어지고 더 훌륭하게 완성되는 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가요 《우리의 소원은 통일》은 유신파쑈통치를 반대하여 투쟁하던 시기에 와서 전에없던 2절과 3절이 새로 생겨났다. 그 2절은 곧 《우리의 소원은 자주》였으며 그 3절은 《우리의 소원은 민주》였다. 4. 19가 5. 16에 의해 유린된 후 남녘민중은 자주와 민주가 없이는 통일도 없다는것을 깨닫고 《자주》와 《민주》의 내용으로 이 노래의 2절과 3절을 새로 지어부른것이다.
남녘민중은 새로 3개 절로 전개된 이 노래를 반《정부》집회장소에서도 부르고 항쟁의 거리에서도 불렀다. 1980년 5월 광주의 애국시민들도 이 노래를 부르며 《계엄군》과 결사전을 벌렸다.
이 노래를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때 림수경이 평양에 와서 불렀다. 림수경은 이 노래의 절절한 선률로 남녘민중의 통일열망을 북의 동포형제자매들에게 뜨겁게 전하였다.
물론 이 노래는 북의 형제들에게도 생소한 노래는 아니였다. 북의 형제들은 이미 남녘의 항쟁의 거리에서 울려온 이 노래의 곡도 가사도 알고있었다. 그러나 《통일의 꽃》이 평양에 와서 부른 이 노래는 북의 형제들에게 새롭게 들리였다. 그리하여 그때 이 노래는 북과 남, 해외의 7천만겨레의 공동의 애창곡으로 되였다.
남에서 많이 들어왔고 많이 부르기도 했던 이 노래이지만 공화국의 동포들이 이 노래를 부르는것을 듣노라면 웬일인지 내자신부터 그것이 전혀 새롭게만 느껴진다.
그리고 새로운 충동을 받군 한다.
그것은 오늘의 시점에서 이 노래의 가사를 다시 고쳐 부르고싶은 충동인것이다.
통일은 분명 더는 미룰수 없는 민족지상의 과업인것이다. 그러나 통일은 소원으로 품고있다고 해서 오게 되는것도 아니고 어서 오라고 웨쳐댄다고 해서 저절로 오게 되는것도 아닌것이다.
통일은 자연의 법칙처럼, 겨울의 추위가 아무리 엄혹해도 시간이 가면 봄이 저절로 도래하게 되는것처럼 시간이 루적되면 저절로 오게 되는것이 아니다.
통일은 외세와 나라의 통일을 한사코 반대하고 우리 민족의 분단에서 저들의 《정권》을 유지하려는 반민족세력과의 투쟁을 통해서만 실현될수 있는것이다. 그러면 통일대업을 위한 성스러운 투쟁에서 중요한것은 무엇이냐. 어떻게 해야 통일대업에 참되게 이바지 할수 있게 되느냐.
통일위업을 이룩하려면 지침이 있어야 한다. 하물며 외세에 의한 민족분단의 비극을 끝장내고 조국을 통일하는 력사적위업을 실현하기 위한 어려운
투쟁에서 지침이 없어서야 승리할수 있겠는가. 우리 겨레에게 있어서 그 지침이란 곧
참말로 우리 겨레의 통일대업을 실현하려면
그런 의미에서 나는 노래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이렇게 고쳐 부르련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
… …
… …
통일의 열쇠는 자주
자주를 지키자
겨레의 한길은 통일
… …
나는 시에 대해서도 노래에 대해서도 전혀 조예가 없다. 시를 지울줄 모르는것은 물론 랑송할줄도 모른다. 노래에 대해서는 듣기는 좋아해도 부를줄은 더더구나 모른다.
그저 자기 생각으로 이미있는 곡에다 서툴게 적은 가사를 달아놓았다. 그렇기는 하지만 단언컨대 이것은 결코 나 혼자만의 심정이 아니라고 본다. 온 남녘민중이 이렇게 생각하고있다고 확신한다.
남조선의 현실이 이것을 립증해주고있다.
내가 입북하기 직전인 주체87(1998)년 10월말 겨우 19살밖에 되지 않은 한 고등학교 학생이
이보다 앞서 내가 입북하기 한해전 겨울 어느날에 서울 구로공단 일대에
사실 남조선의 언론지들은 지금 공화국에서 소개선전하는
민심의 이러한 동향은 어제오늘에 비로소 나타난것이 아니다. 1987년의 6월민주항쟁이후 이런 동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몇가지의 자료를 정리하여 적어본다.
무엇보다도 주목되는것은 주체사상보급활동이 활발해진것이다.
6월항쟁직후에 서울의 《대등》출판사에서는
그리고 서울의 《온 누리》출판사에서는
신문 《중앙일보》는 공화국관계도서들의 출판보급에 주의를 돌리면서
주체사상보급활동은 론문작성활동을 통해 많이 진행되고있다.
서울대학교의 《대학신문》에 실린 한 론문은 《주체사상은 1930년이후
《통일일보》는 대학생들속에서 주체사상보급활동이 활발히 벌어지고있는 사실을 전하면서 《대학신문들은 잇달아
청년학생들에 의한 주체사상보급활동은 공개적인 방법으로까지 발전하여 주목되고있다.
이에 대하여 남조선의 《서울신문》은 이렇게 전한바있다.
《대학가에는 북의 선전문구와 리론을 전개한 인쇄물이 공공연히 나도는가 하면 대낮에 대학강의실에서 주체사상강의가 진행된다.
이런 현상이 결코 영웅심리에서 나오는 일시적인것이 아니라 현실인식에 바탕을 둔 확신적주장이라는데 있다. 고려대학교의 법대 207호 강의실에서는
실내가 떠나갈듯한 힘찬 박수소리가 터져나왔다. 고려대 구속청년학생동지회를 중심으로 결성된 조직성원들이
남조선청년학생들속에서 평양에서 한창 준비되고있었던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을 두고 흥성거리고 있던 주체78(1989)년
봄철 어느날의 일로 기억되는 하나의 사실이 있다. 그때 남조선의 어느 한 방송이 서울의 경희대학교학생들의 롱성투쟁소식을 전하면서 롱성학생들이
북의 노래 《빛나라 정일봉》과 《당의 품은 우리 사는 집》을 록음한 테프를 돌리며 그 노래들을 감상하였다고 전한바 있었다. 나는 그때 그 소식을
듣고 흥분하였다. 나는 당시 그 노래들의 곡에 대해서도 가사에 대해서도 비록 전혀 몰랐으나 학생들이 롱성장에서 폭압을 무릅쓰고 그런 흠모의
송가를 록음기를 들어 감상하였다는 사실을 통해서
나는 공화국에 들어온 후 가끔 방송을 통해 노래 《빛나라 정일봉》과 《당의 품은 우리 사는 집》을 듣군 한다. 이 노래들을 들을 때마다 참으로 감회가 새롭다. 서울에 있으면서 학생들이 이 노래들을 감상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내 마음이 평양으로 막 달렸는데 평양에 와서 실제로 이 노래들을 감상할 때마다 내 마음은 이 노래들을 부르고 있을 남녘의 청년학생들에게로 막 달려가게 된다.
온 누리는
나는 남조선민중의 이러한 념원을 담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