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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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그들은 목적이 같았다. 그 목적이 현실로 될수 있는 시점에서 그들은 한자리에 모일 필요를 느끼였던것이다. 갑론을박할 사이가 없다. 북조선의 조기《종말》을 다그쳐야 한다. 이 자리에 모인 그들은 누구나 이 하나의 생각만을 하였다.

그렇다. 그들의 생각은 지금 제네바에서 열리고있는 국제인권위원회 회의에 집중되고있었다. 거기서 하나의 결정적인 주패장을 내대일것이다. 그것은 우리더러 국제인권협약에 맞게 주민들의 출국과 입국을 자유화하라는것, 다시 말해서 변절자, 배신자들이 마음대로 도주할수 있도록 국경통제를 완화하라는것 등 우리 제도를 어째보려는것이였다. 그들은 이것을 유엔결의로 채택하려고 하였다. 만일 우리가 이에 도전하는 경우 식량지원을 비롯한 인도주의적협조를 중단하는것으로 위협하려고 꾀하였다.

그 회의에는 엘리자베스 돌이 미국대표로 참가하고있었다. 강경보수세력의 대변인이기도 한 그 녀자는 회의에서 프랑스를 꼬드겨 결의발기국으로 내세우고 추종국가대표들로 하여금 그 결의를 지지하도록 만단의 준비를 갖추고있었다.

이제 이 밀실모의의 결과에 따라 결의는 정식가결될것이였다.

지금 비밀모의에 참가한 사람들은 적지 않게 흥분하고있었다. 북조선 큰물피해대책위원회의 국제적인 식량지원에 대한 긴급요청이 그들로 하여금 바로 이때다라는 결론을 내리게 하였다. 북조선은 자주성이 강한 나라이기때문에 지금까지 여러차례 자연피해를 입었지만 단 한번도 국제공동체에 지원을 요청한적이 없다. 그런데 이번에 국제공동체에 인도주의적협조를 호소한것을 보면 그들이 막다른 처지에 빠져있는것이 분명하다. 국경을 열고 《개혁, 개방》을 하라는 이 요구앞에 그들은 굶어죽지 않기 위해 응해나오지 않을수 없을것이다. 그들은 지금 이렇게 생각하며 흥분하여 떠들어대는것이였다.

그들의 말에 별로 끼우지 않고 대머리만을 쓸고 앉았던 보브 돌은 내심으로 흥분하고있었으나 그때문에 랭정하게 타산하는 능력마저 잃은것은 아니였다.

구세대를 대변하고있는 로회한 정객인 그는 유엔인권위원회의 결의가 채택되는 경우에 빚어질 사태의 다른 측면을 생각하고있었다. 그것은 북조선군대가 막다른 골목에서 가만있지 않을것이라는것이였다. 그들은 전쟁을 치르는 한이 있더라도 자기 혈육들이 당하고있는 고통을 덜어주려고 할것이다.

《그러니》 하고 그는 생각하였다. 그들과 전쟁을 해야 한다.

북조선과의 대결에서 눈만 떨어지면 전쟁도 불사하겠다고 주장해온 그였지만 그는 전쟁에 대한 신중론자이기도 했다. 제2차세계대전과 윁남전쟁 참가자인 그는 현대전쟁에서는 사실상 승자도 패자도 없다는것을 알고있었다.

실지 현대전쟁에서 어느 한쪽이 전혀 손실을 당하지 않고 거의 완전하다고 할 정도로 승리를 거둔 일은 거의 없다. 사람들의 기억에도 새로운 1983년 3월부터 6월사이에 있은 포클랜드(말빈)분쟁, 1980년 9월부터 1988년 8월기간에 있은 이란-이라크전쟁, 1979년 12월부터 1989년 3월이라는 긴 기간에 있은 아프가니스탄전쟁을 돌이켜보면 승자도 패자도 적지 않은 손실을 입었다. 설사 이겼다 해도 패자보다 승자의 손실이 더 큰 경우조차 드물지 않았다. 그러나 석유우에 떠있는 자그마한 나라인 쿠웨이트를 둘러싼 이라크와 다국적군의 《만전쟁》은 실로 례외중의 례외였다.

《그 경우에도》 하고 보브 돌은 그 전쟁을 일으키기 위하여 이 밀실에서 노먼 에취 슈와르츠코프 미륙군대장을 만나던 일을 눈앞에 그려보면서 생각을 계속하였다. 다국적군을 지휘한 중앙군 사령관이였던 슈와르츠코프대장도 승리의 월계관을 썼지만 그 전쟁의 목적이였던 쿠웨이트해방과 후쎄인제거중 전자에는 성공했으나 후자의 경우에는 실패하지 않았는가. 이러한 사실을 놓고보면 겉으로 보기에는 완전한것처럼 보이는 슈와르츠코프에 의한 《만전쟁》의 승리에도 그늘진 부분이 뒤따르고있지 않는가. 부쉬가 차기 대통령선거에서 클린톤에게 패했을 때 이라크주민의 대부분은 《〈만전쟁〉의 진짜 승리자는 우리 싸담 후쎄인이였다》고 확신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보브 돌은 지금 이러한 생각때문만에 주저하는것은 아니였다. 그는 바로 지난밤 유엔조선대표와 비공식접촉을 가졌던 일을 생각하며 그때문에 주저하는것이였다.

그 접촉은 미공화당이 전세를 내고있는 뉴욕의 중앙호텔에서 보브 돌의 요청에 의하여 있었다. 비공식접촉이긴 해도 국가관계가 없는 조건에서 서로 자기 정부의 위임을 받은 대표가 만난다는것은 이례적이였다.

그러나 서로의 절실한 필요에 의해서 이 접촉이 이루어지게 되였다.

먼저 보브 돌이 노린것은 국제적인 식량지원을 요청한 조선의 실상을 정확히 파악하며 그에 기초하여 유엔인권위원회 회의에서 내대기로 한 정치적주패장의 효과성을 가늠해보자는것이였다.

조선측은 큰물에 의하여 분계선 남쪽으로 떠내려간 두명의 인민군군인들의 송환을 요구하고있었다. 그들은 이 문제를 판문점 인민군대표부를 통하여 미군측과 협의하고있었다. 그러나 그 협의가 쉽게 이루어지지 않고있었다. 미군부의 강경보수세력이 제동을 걸고있는것이 분명하였다. 여기로부터 공화국정부는 보브 돌에게 직접 압력을 가하기로 하였다.

보브 돌이 조선대표를 기다리며 앉아있는 방은 그가 차지한 쏘파 하나와 손님용 쏘파 하나 그리고 그가운데 놓인 탁자 하나외에는 다른 가구가 없는 휑뎅그렁한 방이였다.

보브 돌은 북조선이 입은 큰물피해는 우리측의 보도와 자기측이 찍은 위성사진을 통하여 충분히 알고있다는것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이러한 큰물피해는 지구의 어느 지역에서도 있어본적이 없는것이다. 그러니 북조선이 세계공동체에 긴급지원을 요청한것은 응당하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보브 돌은 지친 목소리로 말했지만 마치 미리 작성한 원고를 앞에 놓고 말하듯 더듬지도 않았다. 아마도 그는 자기 말에 그 어떤 감정표현도 뒤섞지 않음으로써 자기가 하는 모든 말은 공리라는것을 강조하려는것 같았다.

《그런 의미에서 당신측이 전례를 깨뜨리고 국제공동체에 지원을 호소한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입니다. 나는 이것을 환영합니다. 당신들은 필요한 원조를 받게 될것입니다. 당신들은 지원을 받아야 합니다. 국민을 굶겨서는 안됩니다. 그렇습니다. 굶겨서는 안되지요.》

그는 좀 초조해하며 이 말을 되뇌였다. 《굶겨서는 안된다》라고 할 때 조선대표의 얼굴에 알릴듯말듯 한 조소의 빛이 스쳐지나간것 같았기때문이였다.

그러나 보브 돌은 곧 초조감을 누르고 마음을 다잡았다.

《이것은 인도주의적견지에서 보아도 그렇습니다. 국민의 생사존망과 관련한 문제에서 당국의 정치적자존심 같은것은 아무것도 아니지요. 이것은 어느 나라 정부나 마찬가지입니다.》

그가 숨도 쉬지 않고 떠벌이다가 정 숨이 차서 할수 없이 잠간 말을 끊었을 때 조선대표의 나직한 말소리가 들려왔다.

《그 문제는 국제기구들에서 론의되고있습니다. 당신이 걱정안해도 될것입니다.》

보브 돌은 전속으로 냅다달리다가 갑자기 절벽에라도 부딪친듯 한 기분이였다. 그는 신경질적으로 바싹 마른 입술을 추기고 어쩐지 야릇하게 머리를 떨구었다.

조선대표는 보브 돌의 기분에는 아랑곳없이 지금까지 있은 이야기에는 아무런 흥미도 가지지 않는다는것을 로골적으로 드러내보이면서 말했다.

《나는 우리 정부가 제일 관심을 가지는 문제에 대하여 언명하고저 합니다.》

조선대표는 여전히 조용히 말했다.

그는 본의아니게 분계선 남측지역으로 넘어간 군인들을 돌려보내는 문제야말로 인도주의적문제라는것, 그런데 미군부의 일부 불순세력들이 이 문제에 끼여들어 제동을 걸고있다는것, 우리는 당신이 이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위치에 있음을 알고있다는데 대하여 오금을 박았다.

보브 돌은 무엇인지 말을 하려고 마치 공기를 들이키는듯 소리없이 입을 열었다 다물었다 하였다. 그러나 조선대표는 그에게 한마디도 말할 여유를 주지 않았다.

《그래 당신이 영향력을 행사해주리라고 믿어도 되겠습니까?》

그의 질문은 돌팔매처럼 맵짰다. 조선대표는 이렇게 질문을 제기하고는 잠시 말을 끊었다가 보브 돌의 표정을 슬쩍 살펴보고는 화제를 바꾸었다.

《이젠 당신이 아까 한 말에 내가 좀 대답하겠습니다. 자연재해를 입었을 때 나라들 호상간에, 지역들 호상간에 서로 도와주고 도움을 받는것은 국제적인 관례로 되고있습니다. 지난 시기 우리는 이러한 견지에서 1995년 일본의 〈한신대지진〉때에 120만딸라의 협조를 준바있습니다. 미국도 지난해에 〈프랜〉이라는 태풍피해를 입고 16억딸라의 보험금을 받은것으로 우리는 알고있습니다. 때문에 큰물피해를 입은 우리가 국제적으로 협조를 받는것은 자연스럽고 응당한 일로 되고있습니다. 그것이 참다운 인도주의적인 선의에 기초한것일 때 우리 정부는 그것을 환영할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이 문제를 가지고 온당치 못한 일을 꾸미고있습니다.》

조선대표는 담배를 붙여물며 지나가는 말처럼 한마디 덧붙였다.

《우리 군대는 이에 대해서도 몹시 신경을 쓰고있습니다!》

그는 또다시 말을 끊었다가 짤막하고 단호하게 말했다.

《두명의 우리 군인들에 대한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들지 말기를 바랍니다.》

그의 말은 총알처럼 보브 돌의 가슴에 뜨끔하게 박히였다.

그리하여 지금 그는 벅적 떠드는 측근부하들의 론의를 귀등으로 흘리면서 그 두명의 인민군군인들을 생각하는것이였다. 그의 눈앞에는 그 군인들을 심문한 남조선안기부의 록화자료에서 본 장면들이 떠올랐다.

금시계와 승용차, 호화주택과 미인으로 유혹한데 대해 두명의 군인은 《더 말시키지 말라!》고 대꾸했다. 인민군군인들은 자기의 최고사령관을 부를 때 존칭을 붙이라고 무섭게 요구했다. 그들의 몸은 유혹과 협박은 고사하고 총탄도 뚫고들어가지 못할것 같았다. 보브 돌은 은근히 전률을 느끼였다.

그들은 장마철에 북한강의 물속에서 설비들을 구출하다가 홍수에 밀리여 적측지역으로 넘어갔었다.

보브 돌이 이들을 생각하면서 전률을 느낀것은 참으로 상징적이였다. 후날 그는 그들에 의하여 건설된 금강산발전소완공이 선포되였을 때 자기의 참패를 인정하고 스스로 정계에서 물러나게 되였던것이다.

그러나 그때까지는 아직도 1년이라는 기일이 남아있었다.

지금 그는 자기의 승리를 믿어의심치 않고있었다. 세계《유일초대국》의 시점으로 볼 때 조선은 한주먹으로 눌러버릴수 있는 자그마한 반도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는 결론을 서두르지 않았다. 대대적인 탈북현상을 학수고대하며 거기에 자기의 운명을 걸고있는 그로서 위협과 회유에 단호히 도전하고있는 두명의 조선인민군 군인들의 행동이 상서롭지 못한 징조로 느껴졌던것이다.

그는 회의를 잠시 중지하였다. 그는 나중에 결심을 채택할것이라고 말하고 그동안 조선의 큰물피해를 촬영한 위성필림을 보자고 제의했다. 모두 비데오가 설치된 방으로 자리를 옮기였다.

수만메터의 고공에서 찍은 조선반도의 화폭이 펼쳐진다. 바둑쪽만 한 땅덩어리이다. 화면이 당겨진다. 온통 물천지인 땅이 눈앞에 다가왔다. 어느것이 물이고 어느것이 강이고 어느것이 바다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대홍수이다. 들판마다 산골짜기마다 홍수에 쫓긴 사람들이 갈팡질팡한다. 집과 가장집물이 둥둥 떠내려간다. 철교가 끊어지고 도로가 뭉청 잘리웠다. 물속에 잠긴 기차와 자동차들이 오도가도 못하고 서있다. 물에 잠긴 곡식들이 부평초처럼 떠다닌다. 해설자는 말한다. 노아의 홍수이다. 불은 물로 다스린다고 하지만 물은 무엇으로 다스린단 말인가? 김일성주석은 6. 25동란이후 100년이 걸려도 못 일떠설것이라던 이 나라를 다시 일쿼세웠지만 그의 후계인 김정일령도자가 과연 그러한 기적을 다시 이룩할수 있을것인가? 지금 세계는 심심한 우려속에 조선반도의 재난을 지켜보고있다. … 비데오의 스위치가 꺼졌다.

보브 돌을 내놓고는 모두가 일어섰다. 그들은 미친듯이 박수를 쳤다. 보브 돌은 까딱않고 조용히 생각에 잠겨 앉아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여전히 손벽을 치고있었다. 그것은 벌써 박수가 아니였다. 그것은 요구였다. 자기들의 두목에게 기회를 놓쳐서는 안된다는 경고였다.

보브 돌은 천천히 걸어서 밀실의 자기 자리에 와앉았다. 그리고는 송수화기를 들었다. 뉴욕의 유엔인권위원회 회의에 참가하고있는 안해를 찾아내자 그는 지그시 눈을 감고 선전포고라도 하듯이 말했다.

《엘리자베스, 계획대로 하시오!》

송수화기에서 환희에 찬 녀자의 챙챙한 목소리가 울렸다.

《돌! 당신은 하느님의 축복을 받을거예요!》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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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튿날 미국의 강경파와 온건파가 손을 잡고 우리 나라에 도전한것으로 된 《유엔인권결의》가 채택되였다.

이 도전이 2년전 《특별사찰》을 강요함으로써 우리 나라에서 긴장상태를 야기시켰던것처럼 새로운 대결상태를 몰아오게 되리라는것은 누구에게나 명백하였다.

이 소식을 옥천휴양소에서 듣게 된 드미뜨리 야조브는 첫순간에 김정일동지를 생각하였다.

그분은 어떻게 하고계실가? 물론 눈섭 하나 까딱하지 않으시리라는데 대해서는 믿어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그것이 시련임이 틀림없을진대 조선인민은 또 한번의 비싼 대가를 치르게 될것이 아닌가.

그날 한밤중에 뜻밖에도 그분의 전화가 걸려왔다.

《소식을 들었습니까?》

《예… 김정일동지!》

대답하는 목소리는 련민의 정으로 떨리였다.

《별로 걱정하실건 없습니다.》

그의 심정을 헤아리신 김정일동지의 목소리는 대범하였다.

그 말씀에 늙은 원수는 마음이 대번에 젖어들었다. 그는 송수화기를 틀어쥔채 잠시 잠자코있었다.

김정일동지께서 물으시였다.

《지금 뭘하고계십니까?》

《이 생각 저 생각 … 통 잠을 들수가 없습니다.》

《그럼 좀 기다리십시오.》

야조브는 그이를 만나게 되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흥분으로 떨리는 다리를 바지가랭이에 겨우 끼고 원수복을 차려입은 다음 덤비면서 현관으로 달려나갔다. 이제 저기 솔밭속으로 난 도로로 그이께서 보내신 승용차가 달려올것이다.

야조브는 벌써 몇번인가 그 차를 타고 그이를 만나뵙군 하였던것이다.

잠시후에 차가 나타났다. 그 차는 종전처럼 경적을 울리지 않고 곧추 울타리정문으로 들어오더니 현관앞에 와서 멎었다. 발동을 끄지 않은 차에서 사륵사륵 기관이 돌아가는 소리가 났다.

앞차문이 열리고 웬 사람이 아스팔트포장을 한 바닥에 내려섰다.

야조브가 부관이 아니면 자기의 안내를 맡은 그런 사람이겠거니 여기고 서서 기다리는데 우렁우렁한 귀에 익은 음성이 들리였다. 눈앞으로 성큼 다가오신 그분은 뜻밖에도 김정일동지이시였다.

《왜 나와계십니까?》

《아니?!》

《함께 바람을 좀 쏘이자고 합니다.》

김정일동지께서 모자채양에 올려붙인 야조브의 손을 잡아내리우며 차있는데로 이끄시였다.

《이거 황송해서…》 하며 야조브는 순박한 얼굴에 어줍은 미소를 띄우고 차에 올랐다.

그사이 금테안경을 낀 통역은 차에 싣고온 자그마한 지함을 휴양소관리원에게 넘겨주고있었다. 차에 올라앉은 야조브는 눈이 휘둥그래졌다. 차안에는 운전사도 부관도 없었던것이다. 그는 김정일동지께서 친히 차를 몰고오시였다는것을 알았다. 통역이 마지막으로 차에 오르자 김정일동지께서 제동변을 풀고 조향륜을 돌려 바깥쪽으로 방향을 잡더니 정문으로 차를 몰아가시였다.

휴양소건물이 멀리 뒤쪽에 남게 되였을 때 그이께서는 야조브를 뒤돌아보며 말씀하시였다.

《우회도로로 갑시다. 이제 운전사와 부관이 소동을 일으키며 쫓아올겁니다. 조용히 좀 소풍을 할래도 모두 법석을 떠니 원! 허허…》

김정일동지께서 허구프게 웃으시더니 혼자말씀처럼 계속하시였다.

《밤에 좀 오래앉아 일을 하재도 모두가 내방에서 불이 꺼지기를 기다린단 말입니다. 먼저들 들어가라고 되게 굴어도 막무가내니 통 야단이 아닙니까? 그러니 나로 말하면 우리 나라에서는 누구나 누리는 마음대로 일할 권리, 마음놓고 쉴 권리를 억제당하고있는셈이지요.》

통역이 그 말씀을 옮겨주었을 때 야조브는 뜨거운 바람을 쐬였을 때처럼 온몸이 숨가쁘게 달아올랐다.

그는 짐짓 목소리를 누르고 말씀올렸다.

《귀국의 작가들이 쓰기를 그걸 가리켜 수령의 숙명이라고 했더군요.》

《우리 작가들이? 허허…》

순안비행장도로로 해서 평양시내쪽으로 달리던 승용차는 우측으로 꺾어들어간 소로에 접어들었다. 포장을 하지 않고 하얀 석비레를 깐 농촌길이였다. 그 하얀 빛이 전조등을 켜지 않아도 길의 륜곽을 알아볼수 있게 했다.

김정일동지의 운전솜씨는 대단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전방을 별로 살피지 않고 자주 야조브를 뒤돌아보군 하시였는데 그러면서도 차를 안전하고도 자신있게 몰아가시였다.

《아까 그 물건말입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통역이 휴양소에 부리워놓은 지함을 상기시키면서 말씀하시였다.

《한 이름없는 의학자의 한생이 바쳐진 약이 들어있습니다.》

《예… 그런가요?》

야조브가 흥미를 가지며 다음말씀을 기다렸다.

《우리 수령님께서는 한평생 건강하게 지내시였습니다. 그러니 별로 필요한 약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한 촌의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차는 속도를 좀 늦추었다. 차안에서는 김정일동지의 낮으나 격정에 깔린 음성이 은은히 울리고있었다. 그이의 화제에 오른 사람은 강원도 석왕사 약수터의 한성규라는 의사였다.

한성규가 의학대학을 졸업하고 이 약수터에 배치되여왔을 때는 1960년대 초였다. 그때에도 수령님께서는 매일과 같이 현지지도의 나날을 보내고계시였다. 영원히 그렇게 젊어계시였으면 얼마나 좋으랴. 그때부터 한성규는 자기 의학의 목표를 수령님의 장수를 보장할수 있는 약을 만들어내는데 두었다.

그러나 한갖 촌구석에 박혀있는 의사로서는 수령님을 진맥해볼수도 없거니와 가까이 모실수도 없었다. 하지만 그는 순전히 잠간잠간 비쳐지는 기록영화들의 화면에 매달려 수령님의 체질을 판단했으며 그에 알맞는 약처방을 얻어냈다.

촌에서 기록영화인들 자주 볼수 있었겠는가?

그는 읍거리의 영화관들을 찾아다니며 기록영화를 돌려달라고 했고 수령님의 영상이 나오는 화면을 보고 또 보았다. 그러느라니 이상한 사람치부도 당했다. 하지만 자기가 무엇때문에 그런다는 말을 일체 입밖에 낼수 없었다.

만일 그 말을 입에 낸다면 그땐 이상한 정도가 아니라 그 어떤 심중한 오해도 받을수 있었다. 그는 나라의 방방곡곡을 찾아다니며 약초와 약돌을 채집했다. 말그대로 와신상담의 고생끝에 세포의 로화를 막고 만년장수를 보장할수 있는 《연수환》이라는 명약을 얻어냈다. 이러는 사이에 어느덧 그의 청춘기와 장년기가 흘러갔다.

김정일동지께서 이쯤 말씀하시였을 때 야조브가 참지 못하고 물었다.

《그래 그 약이 어떻게 되였습니까?》

수령님께서 약을 쓰시였는가 하는 물음이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애석한 표정을 지었다가 머리를 저으시였다.

《학계의 시비를 거치느라고 그래… 또 우리에게 올려보내느라고 그래 기일을 끌었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그만 …》

《저런!》

야조브는 자기도 모르게 혀를 찼다.

《그 의사는 수령님께서 서거하시자 땅을 치며 통곡하였습니다. 우리가 인민들의 그 지성을 한데 모아 수령님을 더 잘 모셨더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 다음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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