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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붉은 감

김 영 희

 

( 제 1 회 )

 

1

 

흐무러지게 익은 빨간 감알들이 다래다래 매달려 땅우에 휘늘어진 나무아지사이로 아담하고 산듯한 중대건물들이 언듯언듯 보였다.

(드디여 감나무중대에 왔구나!)

신입대원 최명옥은 잦은가락으로 다듬이질하는 가슴에 작은 주먹을 꼭 모아붙이고 안도의 숨을 내불었다. 그렇게도 애타게 갈망하던 인생의 새로운 장이 마침내 막을 연것이였다.

승용차가 마당에 멈춰서며 경적을 울리자 이게 웬일인가?!… 아래쪽에서, 웃쪽에서, 산자드락에서 녀병사들이 두주먹을 부르쥐고 달려오는것이였다.

식당에서 저녁식사준비를 하다가 달려온듯 국자를 쥔 동무도 있고 회관에서 예술소조련습을 하던중인듯 하모니카며 북을 들고나온 병사들도 있었다. 무슨 작업중이였던지 삽을 쥐고온 녀병사도 있었다.

(어마나 ― 나같은게 뭐라고?!…)

신병훈련을 마치고 남들보다 뒤늦어서 중대에 도착한 이름없는 신입병사에 대한 예상외의 환영에 다소 옹색해진 그는 콩당콩당 뛰는 가슴을 더위잡으며 가까스로 차문을 열고 첫발을 내디디였다.

어둠속의 전조등빛마냥 중대원들의 눈길이 일시에 그에게로 쏠렸다.

의아해하는 눈빛, 실망하는 눈길…

가뜩이나 작고 체소한 명옥은 저도모르게 몸을 옹송그렸다. 엄마는 왜 나를 요렇게 조그마하게 만들었담.

수십번이나 곱씹어본 첫인사도 입속에서만 맴돌뿐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꼭 감나무중대에 보내달라고 한달이나 떼를 쓴 애꾸러기병사를 데려왔소.》

인솔군관이 하는 말에 가벼운 웃음소리가 일더니 이어 박수소리가 짜락짜락 울렸다. 감나무중대에 오려고 떼를 썼다는 사실이 중대원들에게 남다른 친근감을 준듯싶었다. 노래에도 있지 않는가. 위훈을 꿈꾸는 처녀이라면 흰 파도 설레이는 해안포진지로 오라고…

중대장과 정치지도원의 안내를 받으며 중대를 돌아보고 식사까지 한 후 병실에 오니 중대원들이 기다리고있었다. 모두 뼈대가 굵고 검실검실한게 진짜녀장부들이였다.

그들에 비하면 체소하고 가냘프고 해말쑥한 명옥은 꼭 갓 까난 햇병아리같아보였다.

구대원들이 먼저 자기 소개를 하였다. 류달리 몸이 다부지고 목이 밭은 분대장이 일어섰다.

《내, 분대장 방금별이요.》

《어마나, 우리 할머니가 군대 나가면 분대장 눈에부터 들어야 한다고 했는데…》

《이 방금별의 눈에 들기가 쉽진 않을거요. 한데 영 애리애리하구만.》

명옥은 째는듯 한 소리로 씩씩하게 노래 한구절을 불러제꼈다.

 

        연약한 팔뚝에 장수힘 키워

        육중한 강철대포 우리는 길들였다네

 

명옥이 야멸차게 《녀성해안포병의 노래》 한구절을 불러제끼자 분대장은 어랍쇼, 록록치 않은데 하는듯 실눈을 짓더니 신중하게 물었다.

《목소린 신통치 않아. 손풍금은 탈줄 알아?》

명옥은 노래도 신통치 않았지만 악기도 어느 하나 자신있게 탈줄 아는게 없었다. 그는 소학교나 중학교때 음악소조에 다니는 애들을 같잖게 여기며 부피두터운 소설책만 끼고다녔었다.

《체육은 어느 종목을 잘하나? 배구? 롱구?》

체육은 더욱 난감하였다. 체육종목은 무엇이나 흥미가 없었다. 명옥은 울상이 되였다.

《동무 정말 어떻게 돼서 우리 중대에 오게 됐어?》

분대장의 실눈엔 의혹이 비끼고 목소리도 다소 언짢게 울렸다. 군대나올 때 할머니가 직속상관인 분대장한테 잘 보여야 한다고 몇번이나 말했는데 그는 분대장을 만족시킬수 없는것이 여간 안타깝지 않았다.

울가망이 된 그에게 정치지도원이 지원포를 쏴주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우리 중대를 현지지도하시였을 때 명옥동무의 어머니가 이 중대에서 군사복무를 하였답니다. 그래서 명옥동문 사단군의소에 가게 되였지만 기어이 어머니가 섰던 초소에서 군사복무를 하겠다고 떼를 써서 우리 중대에 오게 됐어요. 다시한번 최명옥동무를 축하합시다.》

열광적인 박수소리가 병실을 울리였다. 녀병사들의 초롱초롱한 눈빛엔 선망의 빛이 어렸고 장한 일을 한 동생을 대하는것처럼 더없이 따스하였다.

첫 대면부터 두려웁게 느껴지던 분대장의 투실투실한 얼굴에도 함박웃음이 넘실거리고 대견해하는 빛이 어렸다.

하지만 명옥은 몰래 나쁜짓을 한 아이처럼 속이 켕겨 마음이 서늘해지고 오마조마하기 그지없었다. 그는 어머니가 군사복무를 한 감나무중대에 자기도 꼭 가야 한다고 우겨댔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였다. 그의 어머니는 해안포중대에서가 아니라 사단군의소에서 간호원으로 군사복무를 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녀성해안포중대를 현지지도하실 때 꽃다발을 드렸던 엄복순녀성의 딸 손경실이 어머니가 섰던 초소에서 경애하는 장군님을 만나뵈옵고 기념사진까지 찍은 소식이 신문과 텔레비죤에 소개되였을 때 어머니는 아픈 후회의 눈물을 흘리며 가슴에 묻어두었던 생각을 내비쳤다.

《신병훈련때 난 갓 조직된 녀성해안포중대에 가게 될가봐 몹시 마음을 조였단다. 어린 처녀들이 대포를 드다룬다는게 좀 힘들겠니. 그래서 사단군의소에 떨어졌을 때 호 하고 안도의 숨을 내쉬였지. 그런데 수령님께서 녀성해안포병들을 찾아주시고 기념사진까지 찍어주셨을 때 난 조국을 위한 복무의 길에서 제 뼈를 아낀 자신을 얼마나 타매했는지 모른다. 명옥아, 새겨둬라. 영예는 저절로 오지 않는 법이란다.》

그때 명옥은 어머니가슴에 파고들며 속살거렸다. 엄마, 너무 속쓰지 마, 내 꼭 군복을 입고 녀성해안포병이 될테야, 그래서 엄마의 아픈 마음을 씻어드릴게 하며 명옥은 손경실언니처럼 커다란 붉은 감을 들고 경애하는 장군님곁에 서서 기념사진을 찍는 자신의 모습을 그려보았었다.

할머니는 늘쌍 입버릇처럼 한숨을 쉬며 말하군 하였다.

《다른 집들에 가보면 다 위대한 수령님과 장군님을 모시고 찍은 기념사진들이 있는데 우리 집엔 여적 한상도 모시지 못했구나.》

건설사업소에서 일하는 아버지도 아직 그런 영광을 지니지 못하였고 약초연구사인 어머니도 한발 잘못 디딘탓에 행운의 기회를 놓쳐버렸다.

군복을 입는 날 명옥은 할머니에게 굳게 약속했었다. 감나무중대는 장군님께서 자주 찾으시는 인연깊은 구분대이니 집안의 막냉이인 이 명옥이가 제일먼저 기념사진을 찍어 가문의 첫 기념사진을 우리 집에 모실것이라고.

바라던 소원대로 힘들게 감나무중대로 오긴 했지만 거짓말을 한것때문에 그는 먹지 말아야 할것을 삼켰을 때처럼 속이 께름해났다. 혹 누가 어머니이름을 물을가봐 조마조마해졌다. 중대에는 이전 병사들의 명단이 있을지도 모르니 아무래도 후련히 실토정을 해야겠다고 벼르는데 누군가 불쑥 묻는것이였다.

《동무 이름이 최명옥이라 했지요?》

제 생각에 옴했던 명옥은 얼결에 머리를 끄덕거렸다.

《예술도 못한대, 체육도 소질이 없다지만 이름 하나만은 기딱차구나.》

그의 맞은켠에 앉은 얼굴이 꼭같이 생긴게 쌍둥이인듯싶은 병사 둘이 무슨 큰 발견이나 한듯 맞손벽을 치며 야단이였다.

흔한 명옥이란 이름이 뭐가 좋다고 저럴가싶었는데 중대장이 얼떠름해진 그에게 놀라운 사연을 들려주었다.

《명옥동무, 1972년 3월 21일 위대한 수령님께서 우리 중대를 처음 찾아주시였을 때 수령님을 모시였던 중대장의 이름이 최명옥이였구 1995년 2월 중대에 찾아오신 위대한 장군님을 만나뵈온 중대장의 이름도 최명옥이였어요.》

명옥은 석달 장마에 해를 본것처럼 얼굴도 마음도 환히 밝아졌다.

어머니가 자기에게 유독 명옥이란 이름을 달아준것이 우연인것 같지 않았다. 꼭 최명옥중대장들처럼 살라는 말없는 당부를 담았는지도 모른다.

명옥은 가슴이 뭉클해나며 자기가 그 최명옥중대장의 딸인듯싶어지고 감나무중대에 온것은 너무도 당연한것처럼 여겨졌다.

그는 이제 한가정이 되여 살아야 할 중대원들을 더는 속이고싶지 않았다.

《사실 난 감나무중대에 오려고 거짓말을… 우리 어머닌 사단군의소에서 군사복무를 했는데 해안포병이 되지 못한것을 일생의 한으로 남겼답니다. 난 사실 어머니의 한을 풀어드리자구…》

중대원들이 별안간 깔깔 웃어대였다.

《귀여운 거짓말쟁이가 또 하나 늘었구나. 최명옥중대장의 <딸>이 있는가 하면 <조카>, <막내동생>… 어쨌든 동무도 그 유명짜한 명옥이란 이름을 가졌으니 운이 트일지 몰라.》

분대장이 성수가 나서 장담하는 말이였다.

《저도 그 중대장들처럼 될수 있을가요?》

명옥은 마음속 생각을 조심히 내비쳤다.

중대장이 웃으며 말했다.

《될수 있지 않구요. 장군님의 한량없는 사랑을 받는 크림일화의 주인공 최명옥중대장도 이곳 초소에서 하전사생활부터 한 감나무중대출신이랍니다. 나와 정치지도원동무도 맨첨부터 여기서 병사생활을 하였어요. 동무도 군사복무를 잘하여 이곳 감나무중대 중대장으로 복무할 꿈을 가지라요. 아마 10대중대장쯤 될가.》

중대장의 말에 명옥은 마음이 둥 뜨고 채색무지개 어린 창공으로 훨훨 날아가는것만 같았다.

잠자리에 누웠을 때 명옥은 곁에 누운 쌍둥이형제중 동생에게 물었다.

《그런데 내가 온다는걸 어떻게 알고 그렇게들 달려왔어요?》

《동무도 참, 우린 자동차 경적소리만 울려두 장군님께서 오시는것만 같아 그렇게 달려오는데 버릇됐어요.》

《그랬군요.》

그날 밤 명옥은 제집에 온듯 한 행복감에 잠겨 깊은 잠에 들었다.

그는 자면서 방실거렸다. 오매에도 그리던 장군님을 만나뵙고 커다란 붉은 감알을 들고 장군님곁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꿈을 꾸었던것이다.

 

×

 

솨- 처절썩, 파도는 밤에도 자지 않고 쉼없이 밀려와 방파제를 때리며 비수같은 흰 비말을 보초소에 들씌웠다. 마치 졸지 말라고 경종을 울리고 눈을 똑바로 뜨고 밤바다를 살피라고 채찍질을 하는듯싶었다.

해안경계보초근무에 나온 최명옥은 휘뿌려진 비말에 젖고 금시 꽁꽁 얼어들었지만 밀려드는 졸음을 어찌할수 없었다. 온몸은 물먹은 솜처럼 나른해지고 그대로 퍼더앉아 자고만싶었다.…

천만뜻밖의 위대한 장군님의 서거소식은 그의 작은 몸과 마음속에 팽배했던 희망과 용기를 깡그리 뽑아간듯싶었다.

녀병사들은 땅을 치며 통곡하였다. 믿어지지 않았다. 아니, 믿을래야 믿을수 없었다. 감이 익는 계절에 다시 오겠다고 하시던 장군님께서 녀성해안포병들과의 약속을 두고 어떻게 가실수 있단 말인가. 너무나 믿을수가 없어 평양으로 가보자고, 감나무중대병사들이 왔다고 아뢰면 그이께서 일어나실것이라고 중대장의 가슴을 두드려댔다. 그때 중대장이 눈물을 흘리며 그들을 타일렀다.

《동무들의 마음을 내가 왜 모르겠어요. 하지만 평양에 다 가면 초소는 누가 지키겠어요. 이 초소를 잘 지키라고 장군님께서 얼마나 당부하셨어요.》

모두 소리쳐울면서 포사격훈련을 했으며 눈이 퉁퉁 부어 보초근무에 나섰었다.

명옥의 마음속에서 무지개빛으로 아롱거리던 꿈은 물거품마냥 스러지고말았다. 희망이 스러지니 병사생활은 별스레 힘겨워졌다.

이즈음 그는 따뜻한 집생각이 무척도 났다. 추운 겨울날 학교에서 돌아오면 《이크, 우리 막내가 꽁꽁 얼었구나.》하며 명옥의 찬 손발을 품에 꼭 껴안고 녹여주시던 할머니 생각이 못 견디게 났다. 지금 할머니는 어떻게 지낼가? 이 추운날 우리 명옥인 뭘 하고있을가 하고 내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 아버지는 노상 건설장에 나가있고 약초연구사인 어머니도 늘 출장나가있다보니 명옥은 할머니손에서 자랐다. 밤에 잘 때도 할머니품에 꼭 안겨 잤으며 할머니손을 잡고 유치원에도 가고 소학교에도 입학했다.

그는 소르르 밀려드는 졸음속에서 할머니의 팔베개를 베고누워 옛이야기를 듣고있었다. 할머니의 이야기는 한가지뿐이였다.

…성녀(할머니이름이다.)라는 처녀가 최씨집안에 시집을 간 그해 가을이였다. 분여받은 땅에서 농사를 잘 지어 마당에 산같이 쌓아놓은 벼낟가리를 보시며 시아버님께서 말씀하시더라.

《하늘같은 김일성장군님은덕을 무엇으로 다 갚누.》

그때 시어머니가 봄내, 여름내 누에를 쳐서 장만한 하얀 고치를 담은 광주리를 들고나오며 여쭙는 말인즉 《령감, 이 누에고치로 실을 뽑아 명주를 짜서 그분께 명주바지저고리를 해올리는게 어떻수?》라고 말하자 시아버님이 《로친이 그 생각 하나만은 잘했소. 명주는 4촌까지 덥다는데 햇솜을 두툼히 두고 김일성장군님께와 김정숙녀사께 명주옷을 해드립세다. 백두산의 혹한속에서 스무해나 싸우시느라 얼마나 힘드셨겠소. 두툼한 솜버선도 곁들여야겠소.

며늘아가, 그 고운 손으로 네가 명주천을 짜고 바느질을 하거라.》

그래서 성녀는 시어머니와 함께 가마에 고치를 삶아 실을 뽑고 밤을 지새우며 부드러운 명주천을 짜냈지. 그 천으로 정성들여 명주바지저고리와 치마저고리를 지었단다. 물론 두툼한 버선도 기웠지.

시아버님은 지은옷과 함께 애국미를 달구지에 싣고 평양으로 떠났단다.

그런데 며칠후에 시아버님은 그 옷을 도로 가지고오지 않았겠니.

시아버님이 하는 말씀이 김일성장군님께서는 나야 젊은 사람이니 베옷을 입은들 추위를 타겠습니까, 이 명주옷은 년로한 로인님내외분이 입으십시오, 온 나라를 먹여살리는 농민이 응당 좋은 옷을 입고 복을 누리셔야 합니다라고 하시며 사양하셨다질 않니. 부모자식사이에나 있을법 한 일이지.…

명옥은 지금에야 그 이야기의 의미를 어렴풋이 알것 같았다. 그에겐 내가 사는 따스하고 포근한 집에 대한 새로운 개념이 눈을 뜨던 잊지 못할 날이 있었다.

그것은 어머니가 감나무중대를 또다시 찾아오신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의 모습을 뵈오며 한생의 후회로 남은 남모르는 아픔을 털어놓았던 날이였다.

그때 할머니가 어머니에게 질책하듯 말씀하셨다.

《그런 후회나 해서 뭘하니. 우리 장군님을 더 잘 받들 생각을 해야지. 내 보기에도 장군님신상이 좋아뵈질 않누나. 수령님의 서거이후 여북 고생을 많이 하셨니. 네가 고려약연구사로서 박사론문까지 썼다는데 무슨 마련이 있어야잖겠니?》

그때 어머니는 이미전부터 속에 품어왔던듯 얼른 대답올리는것이였다.

《어머님, 그새 저는 사슴이 먹는 풀이 아주 좋은 약초라는걸 알아냈어요. 백가지 약초에다 백가지 꽃으로 보약술을 만들어볼가 해요.》

《용한 생각을 했구나.》

어머니는 몇해째 봄내, 여름내, 가을내 북부고산지대에서 살다싶이하였다. 명옥이 군대에 나올 때에 어머니는 그에게 큰 비밀이라도 알려주듯 소곤거렸다.

《담그어놓은 보약술독에서 얼마나 향기가 진동하는지 뭇짐승들이 자꾸만 모여드는구나. 엄만 그곳에 가서 보초를 서야 한다.》

명옥은 이제 초소에서 장군님을 뵈오면 할머니옛말이랑 어머니의 이야기랑 다 말씀올려야겠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장군님께선 그 마음을 받지 못하고 가시였다. 70돐 탄생일을, 고대하던 위대한 수령님 탄생 100돐을 앞에 두시고…

바다도 한스러워 몸부림치며 격랑을 일으키는듯싶었다. 갈기를 일으키며 달려오던 파도가 방파제어방에서 태를 치고 날아넘어 꿈에 취한 명옥의 온몸을 차디찬 물갈기로 채찍마냥 후려쳤다.

정신이 번쩍 든 명옥은 소스라쳐놀라 눈을 흡뜨며 컴컴한 바다를 바라보았다.

거창한 슬픔을 속깊이에 간직한듯싶은 바다는 짙은 어둠속에서 망망하고 장엄하게 흠실흠실 술렁거리고있었다.

저게 무엇일가? 거밋한 형체가 굼니는 파도속에 묻혔다 솟구었다 하며 기슭으로 야금야금 다가오고있었다. 오래전에 이곳에서 보초를 서던 녀병사가 머구리를 쓰고 기여들던 적간첩놈을 잡았다더니 저게 그런 머구리가 아닐가?

머리칼이 쭈뼛해진 명옥은 추위때문인지 아니면 무서움때문인지 와들와들 떨리는 몸을 가까스로 진정시키며 눈을 더 크게 뜨고 어둠속을 노려보았다. 저건 또 뭐야? 머구리들뒤로 군함같은 큰 형체가 늠실늠실 다가오고있었다. 이제는 앞쪽에 삐죽 솟은 굴뚝인지 돛대인지 하는것까지 보이는것 같았다.

분명 적구축함이다. 명옥은 당황한 속에서도 격발기를 찾아 더듬거렸으나 언손이 과다들어 움직여낼수 없었다. 창황중에 그는 비단을 찢는듯 한 째지는 비명을 질렀다.

《할머니!-》

보초장인 방금별분대장이 뛰여나오고 이어 중대장과 정치지도원도 달려나왔다.

《무슨 일이예요?》

《저기 구축함이…》

《그게 구축함일게 뭐예요, 극도지.》

중대정치지도원이 안타까이 하는 말이였다.

극도란 포진지에서 수천메터 떨어져있는 곳에 있는 크지 않은 바위섬이였다. 희붐히 밝아오는 새벽빛속에 여겨보니 그가 돛대로 본것은 바위짬에 자라난 소나무였다.

《내 여직껏 신입대원을 수태 받아보았어두 보초를 서다가 할머니를 찾는 대원은 정말 처음 보는군요.》

중대장이 기막혀하자 성미마른 분대장이 격해서 소리쳤다.

《명옥이, 할머니품에서 응석이나 부릴게지 군대엔 뭘하러 나왔어. 저런 어린애가 어떻게 신성한 감나무중대에 다 왔담.》

그때부터 분대장은 모질게도 요구성을 높였다. 아침달리기로부터 시작하여 포사격훈련, 장탄수훈련, 행군과 장애물극복훈련, 어느 훈련에서나 명옥은 몇번씩 반복동작을 해야 했다. 아니, 열번, 스무번 다시 반복하는 때도 있었다. 어쩌다 저렇게 인정사정없는 분대장을 만났을가. 명옥은 자신이 가엾어져 자주 쿨적거렸으나 속에서는 굴뚝같은 반발심이 치받쳐올랐다.

 

2

(1)

 

김정은동지께서는 이곳 감나무중대와 남다른 인연을 맺으신 대원수님들의 현지지도표식비앞에서 이윽토록 발걸음을 떼지 못하시였다.

표식비는 크지 않아도 거기에 담겨진 대원수님들의 뜻은 하늘에 닿을듯싶었다.

몇줄 안되는 글발들에는 또 얼마나 하많은 사연이 깃들어있는가.

감나무중대, 유정한 그 이름 그대로 구내에는 감나무가 많기도 하였다. 1972년 3월 이곳 중대를 찾으시였던 위대한 수령님을 만나뵈온 첫 세대 녀성해안포병들이 심은 감나무는 40년의 년륜을 새기며 실하게도 자라 무수히 드리운 가지에 푸릿푸릿한 감알들이 다래다래 열렸다. 그곁에는 갓 심은듯 호리호리한 나무들도 있었다.

중대에 배치되여오는 신입병사들은 구내에 감나무를 심는것으로부터 복무의 첫걸음을 뗀다고 하니 그새 얼마나 많은 감나무가 심어졌을가.

감나무는 늘어나고 초소에서 녀장부로 자란 구대원들은 떠나가고 빨간 령장의 신입병사들이 오기를 몇십번이나 거듭했던가. 마치 감나무에 새움이 트고 꽃이 피고 풋감이 열렸다가 가을이면 빨갛게 익어가듯이…

김정은동지께서는 표식비옆으로 휘늘어진 가지에 형제처럼 오롱조롱이 열린 풋감알들을 정겨이 쓰다듬으시였다.

그이께서 타신 차가 마당에 들어서자 훈련하던 병사들이 만세를 웨치며 멀기치는 파도처럼 와―달려오던 모습이 다시금 떠오르시였다.

옷자락에 매달려 발을 동동 구르며 애들처럼 울음을 터뜨리던 모습, 저 파란 감알들처럼 싱싱하고 순결하고 애된 병사들이였다. 기뻐서 울고, 가슴저려서 울고… 그 눈물의 진하디진한 의미가 지금도 그이의 가슴을 보슬비처럼 적셔주고있었다.

그이께서는 이곳 감나무중대에 처음 오시는 걸음이였지만 어쩐지 첫 상봉처럼 느껴지지 않으시였다. 오래동안 헤여져 자나깨나 그리워하던 친혈육을 만나는듯 가슴이 뭉클해나시고 이름할수 없는 기꺼움이 샘처럼 보글보글 솟구치시는것이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가슴속에 뜨거이 품으시고 늘 잊지 못해하던 녀병사들이고 너무나 그리워하시던 중대여서 그런지… 그게 어느해 마가을이였던지. 정원의 감나무에 빨갛게 익은 감알들이 주렁졌던 때였다.

감나무를 정겨이 바라보시던 장군님께서 나직이 말씀하시였다.

…내가 감나무중대를 처음으로 찾았던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10년이 넘었구만. …감나무중대 군인들이 다 익은 감을 아직도 따지 않고 내가 오기를 손꼽아 기다린다고 하는데 나도 그들이 보고십습니다.…

젖어있던 그 음성이 아직도 그이 마음속에서 물밑의 종소리마냥 울리고있었다.

참으로 장군님의 정깊은 추억의 세계에 뜨겁게 자리잡은 녀성해안포병들이였다.

김정은동지께서는 유정한 감회에 잠기시여 해안가 좁은 길을 따라 포진지가 있는 바다가쪽 돌출부 끝단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기시였다.

하얀 잔자갈이 촘촘히 깔린 먼지 한점 일지 않는 정갈한 길이였다. 장군님께서 이곳 포진지를 찾으실 때 걸으신 길이 이 길이였을것이다.

그때에도 녀병사들은 그이의 옷자락에 매달려 울음을 터뜨렸었다. 붙잡고 너무나 울기에 장군님께서 애써 타이르시였다.

울지 말아, 동무들이 보고싶어 이렇게 찾아왔는데 자꾸 울기만 하면 나도 수령님 생각으로 눈물이 나오는걸 어쩔수 없어, 어서 포사격훈련을 보자구.

력사는 반복된다더니 지금 김정은동지께선 그때의 장군님의 뼈저린 심중을 속속들이 느끼며 그이의 발자취를 따르시는것이였다. 범상한 길에 맺어진 인연이라면 그렇듯 가슴에 사무치지는 않았을것이다.

1995년 2월은 평범한 때가 아니였다.

민족의 어버이를 잃은 대국상을 당했던 피눈물속에 1994년을 보내고 맞은 새해, 온 나라 인민에게 위대한 수령님의 전사, 수령님의 제자답게 내 나라, 내 조국을 더욱 부강하게 하기 위하여 우리모두 한마음한뜻으로 일해나가자는 친필서한을 보내신 장군님께서는 다박솔중대를 찾으시는것으로 선군의지를 더욱 굳히시였다. 잊을수 없는 그 격동의 해에 장군님께서 다박솔중대 다음으로 찾으신 곳이 바로 이곳 감나무중대였다.

2월의 그날엔 류달리 날씨가 춥고 야속하게도 바다바람이 세차게 불어쳤다. 방파제를 때린 파도가 길길이 뛰여올라 휘뿌려진 포좌지로 가는 좁은 길은 온통 얼음버캐가 앉아 미끄러운데다 질적거리기까지 하였다.

《수령님께서 오시였던 포진지에 가봅시다.》

장군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며 그 길로 천천히 걸으시였다.

수령님의 발자취를 따라 걸으시는 장군님의 심중에선 분명 그이의 곡진한 음성이 고패쳤으리라.

우리가 녀성해안포중대를 조직하는것은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는 녀성들이 혁명의 한쪽수레바퀴를 억세게 밀고나가면서 나라를 방위하는데서도 한몫 맡아수행하도록 하여 녀성들도 무장을 잡고 적과 싸울수 있다는 신심을 안겨주자는데 있소.

어버이수령님의 웅심의 뜻이 어린 중대는 그대로 수령님에 대한 못잊을 추억을 불러일으켜주는 정든 집이였고 세대는 끊임없이 바뀌였어도 바다바람에 그슬은 얼굴로 강철대포를 척척 다루어내는 녀병사들은 모두가 어버이수령님께서 품들여 키워오신 사랑하는 딸들, 내 조국의 끌끌한 녀장부들이였다.

류달리 맵짠 날씨였으나 장군님께선 바람세찬 방파제우에 모자도 쓰지 않으신채 서계시였다. 수행원들이 모자를 받쳐올렸지만 녀성군인들이 혹한속에서 바다바람을 맞으며 근무를 서고 훈련을 하는데 내가 모자를 쓰고가면 전사들이 욕한다고 하시며 마다하신 장군님이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선 세찬 바다바람에 심신을 맡기신채 방파제우에 거연히 서시여 녀성해안포병들의 화력복무훈련을 보아주시였다.

갱도에서 나온 1포가 순식간에 포좌지를 차지하였다.

감시소에서 중대장이 기발을 들며 대화기로 구령을 웨친다.

《포 주의!》

메아리처럼 울리는 목소리 《포 주의!》, 《포 주의!》

《목표 적구축함, 거리 3 200…》

《목표 적구축함, 거리 3 200…》

짱짱 되받아울리는 목소리들…

탄약수가 넘겨주는 파갑탄을 장탄수가 페쇄기에 힘차게 밀어넣으며 소리친다.

《장탄 끝.》 끝 ― 끝 ― 여무진 메아리.

《발사!》

나어린 처녀들이 하나같이 재빠르고 기계처럼 움직인다.

장군님께서는 아주 잘한다고, 모두 동작이 하나같고 순식간에 해치운다고, 이런 녀성해안포병들이 조국의 바다를 지켜섰으니 적들이 범접을 못한다고, 자신께서는 마음을 놓겠다고 못내 기뻐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이 추운 겨울에 녀성해안포병들이 수고를 많이 한다고 중대장의 어깨를 두드려주시며 그의 얼굴을 유심히 여겨보시였다.

혹한에 얼고 바다바람에 튼 중대장의 얼굴에는 소금꽃이 희끗희끗 피여있었다.

그날 해안포진지에서 돌아오신 장군님께서는 종시 잠을 이루지 못하셨다.

바람세찬 추운 겨울에 녀성군인들이 조국의 방선을 지키느라고 수고를 많이 한다고 하시며 중대장의 얼고 튼 얼굴이 종시 마음에 내려가지 않으시여 그들의 애로를 자상히 알아보라고 녀성일군들을 다시 중대에 내려보내시였다. 그리고 녀성군인들의 얼굴이 튼것을 보고서도 대책을 취하지 않는 일군들을 목석같은 사람들이라고 나무람하시며 녀전사들의 튼 얼굴에 바를 크림을 보내주시였다.

철따라 고운 옷을 차려입고 유보도를 걷는 처녀들이라면 장군님께서 그토록 잊지 못해 하셨으랴. 따가운 해볕, 눈바람을 가리며 온실에서 피여나는 꽃들이라면 그이께서 그처럼 사무친 정으로 가슴에 뜨겁게 간직하셨으랴.

연약한 팔뚝에 장수힘 키워 육중한 강철대포를 길들인 녀장부들,

장군님의 구령에 따라 울리는 명중의 포성을 가장 아름다운 노래로 여기며 최고사령관의 전우로 사는 녀병사들이기에 그이의 마음속에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새겨지고 그리도 못 잊어하시고 그리워한것 아니시랴.

지금 그날에 장군님께서 서시였던 자리에서 중대의 화력복무훈련을 보고계시느라니 장군님의 체험의 세계가 더욱 뚜렷해지고 그것이 자신의것으로 심신에 새겨지고 슴배여드는것을 김정은동지께서는 저릿이 체감하고계시였다.

수령님께서 내세워주시고 장군님께서 애모쁜 정으로 사랑하시고 애면글면 키워주신 병사들을 이제 자신께서 맡아안으셨다는 가슴뻐근한 책임감이 그이의 심중을 쿵 울리시였다.

(령도자와 맺은 정 피줄처럼 지닌 우리 인민, 나의 병사들을 과연 어떻게 무엇으로 책임져야 할것인가?)

아득히 펼쳐진 바다는 끝없이 흰 파도를 밀고오며 뒤설레이고있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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