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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하고싶은 말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품에 안긴지 1년이 지난 오늘 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생각을 정리하여 조그마한 책자로 엮을 기회를 갖게 된 나의 감회는 남달리 새롭다.

우리 민족이 한강토우에 살면서도 둘로 갈라져 서로 다른 운명의 길을 걸어온것이 이제는 반세기를 넘기였다.

지금 세계에서 분단민족으로 살고있는것은 우리 민족뿐이다. 민족분렬의 비극과 고통을 이제 더는 허용할수 없다. 우리 민족은 너무 오래동안 헤여졌고 너무 많이 울었고 너무 많이 고통당했다. 21세기의 좋은 출발을 위해서도 이런 비극과 작별해야 한다. 국토분단과 민족분렬의 아픔이 이제 더이상 허용되여서는 안된다는 생각이다.

조국통일문제를 외면하면서 민족분렬을 고착시키고 영구화하려는 반민족세력의 책동을 분쇄하는 길만이 우리 민족이 사는 길이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조선은 둘이 아니라 영원히 하나입니다. 조선은 하나다! 이것은 나의 확고한 의지입니다.》

국토가 분렬되고 민족이 갈라진 현시점에서 통일을 떠난 애국이란 없다. 조국통일이야말로 최대의 애국이다. 통일이 애국이고 통일의 구심점이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이실진대 통일에의 헌신이야말로 장군님에 대한 최대의 충성임을 나는 확신한다.

필자는 공화국에 와서 이 하늘아래 이 땅에서 우리 민족이 온 세상이 부러워 할 사회주의강성대국을 건설하고 모두가 행복을 향유하게 하시려는것이 장군님의 필생의 사명이고 의지임을 보았으며 다가오는 21세기에 우리 민족이 통일된 조국에서 존엄높고 강성부흥하는 민족으로 살아나갈수 있도록 이끌어주시는분이 바로 김정일장군님이시라는것을 재삼 확인하였다.

조국과 민족이 강도 일제에 의하여 식민지노예의 운명에 처했을 때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님께서 온 민족을 항일광복성전에로 불러일으키시여 일제를 타승하시고 조국과 민족을 구원해주시였다. 그이는 민족의 구세주이시였고 절세의 애국자이시였다.

주석님께서 개척하시고 령도하여오신 민족자주위업은 오늘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에 의하여 빛나게 계승되고있다.

장군님의 숭고한 민족자주정신과 민족애는 온 겨레의 앞길을 밝혀주는 홰불로 되고있다. 장군님께서 계시여 우리 민족이 지닌 영광은 온 우주공간에 광휘로운 빛을 뿌리고있다.

필자는 남조선에서 한때 투쟁의 전도를 확신성있게 내다보지 못하고 방황하면서 번민하였다. 한때는 《로씨야혁명사》에서 그 어떤 《비결》을 발견해보려고도 하였지만 그 어느 갈피에서도 앞길을 밝혀주는 진리를 찾지 못하였다. 맑스-레닌주의야말로 혁명의 진리라고 그 명제를 암기하면서 행세한적도 있었으나 운동실천과정에서 나는 그것이 남조선변혁운동앞에 제기되는 문제들에 정답을 주지 못함을 깨닫게 되였다.

오직 위대한 김일성주석님과 그 위업을 그대로 계승하신 김정일장군님의 불후의 고전적로작들만이 향도의 홰불이 되여 앞길을 환히 밝혀주었다. 투쟁속에서 두분의 태양의 위대성을 심장으로 느끼게 되였고 주체사상의 정당성과 생활력을 터득하게 되였으며 신념화하게 되였다. 1990년대초 이전 쏘련과 동유럽사회주의가 붕괴되는 《20세기 최대의 이변》속에서도 공화국에 수립된 인민대중중심의 사회주의만은 추호의 동요도 없이 승승장구하고있는 현실을 보면서 위대한 주체사상의 진리성과 생활력에 대한 확신을 더욱 굳게 가지게 되였다.

위대한 령도자이시며 불세출의 위인이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을 모시고있고 수령을 목숨으로 받드는 인민대중이 하나로 일심단결되여 사회주의강성대국을 건설해나가고있는 공화국의 현실에 나는 무한히 감동되였다.

필자는 오늘 공화국이 복잡다단한 국제정세하에서도 오직 승리만을 거듭하고있는것은 민족의 대성인이시며 조국통일의 구성이신 김정일장군님의 현명한 령도가 있기때문이라는것을 페부로 느끼면서 자기의 생각을 정리하여 감히 붓을 들었다.

장군님의 품에 안긴지 얼마 안된 필자가 미흡하고 부족한 능력으로 하나의 책자를 펴낸다는것이 외람된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다만 이 책이 조국통일위업실현에 다소 도움이라도 되였으면 하는 기대를 가져본다.

 

주체89(2000)년 3월

저자

 

 

1. 백두산정의 해돋이

 

사람은 길지 않은 한생을 살아오면서 제 나름대로 자기 삶의 무게를 깊이 느끼게 되는 순간들을 되새겨보게 된다.

이제 내 나이 60이 넘어 《한평생》이란 말이 그닥 어색하게 들리지 않는 석양무렵에 서있는 나에게 있어서도 그러한 순간들이 여러차례 있었던것 같다.

누가 나에게 그중에서도 가장 잊혀지지 않는 순간이 있었을텐데 그것이 언제였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서슴없이 이렇게 대답할것이다. 그것은 주체88(1999)년 9월 17일 조종의 산 백두산에 올라 백두의 장엄한 해돋이광경을 부감한 그 감격의 순간이라고.

이글거리는 불덩이마냥 서서히 솟아오르는 태양, 그것은 정녕 주체형의 뜨거운 피를 세차게 내뿜으며 약동하는 조선의 심장인듯 했고 분명 통일을 갈망하는 7천만겨레의 정열 그대로였다.

누리를 밝히며 서서히 떠오르는 붉은 태양, 타오르는 해살로 붉게붉게 물들어져가는 태고연한 천지와 백두의 천리수해, 전설처럼 들어오던 백두산의 해돋이광경은 말그대로 장관중의 장관이였다.

볼수록 장엄하고 다시 볼수록 마음을 더 끓어번지게 하는 성스러운 백두산의 해돋이 그 장엄한 광경은 조국의 강성부흥의 휘황찬란한 미래를 안아오시는 천출명장 백두산의 아들이신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의 무비의 담력과 기상을 그대로 옮겨놓은 하나의 대화폭이였다. 아니 그이의 위인상을 온몸으로 느끼게 하는 숭엄한 감동 그자체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님께서는 다음과 갈이 교시하시였다.

김정일동지는 백두산의 아들입니다. 백두산은 김정일동지의 고향이며 그의 담을 키워준 요람입니다. 김정일동지의 사상이나 성격을 보아도 그렇고 취미와 습관을 보아도 그렇고 그는 신통히 백두산을 닮았습니다. 백두산의 정기와 기상이 그의 온 정신과 온몸에 차넘치고있습니다.》

백두산의 해돋이를 감동속에서 바라보는 순간 나의 머리속에는 어느 책을 통해 학습한 어버이수령님의 이 교시가 삼삼히 떠오르면서 마음이 한층 숭엄해졌다. 위대한 장군님에 대한 흠모심으로 가슴이 막 부풀어오르면서 과시 위인을 탄생시킨 백두산은 천하에 둘도없는 명산이며 백두산형의 위인이신 김정일장군님이시야말로 무적필승의 장군, 온 겨레가 믿고사는 위대한 장군이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민족의 넋과 기상이 아로새겨진 력사의 산정에서 주체조국의 이 아침을 맞이한 나는 이름할수 없는 격정에 휩싸이였다. 우리 민족이 영명하신 김일성주석님을 위대한 수령으로 모시여 태양민족으로 각광을 받은데 이어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을 새 세기를 밝게 비칠 위대한 태양으로 높이 모시였으니 이것이 반만년의 민족사에서 특기할 대경사가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이 뇌리에 력력히 갈마들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 민족만이 향유하고있는 행운이라고 생각하니 더없는 민족적긍지가 가슴뿌듯이 넘쳐났다. 남녘에 있는 나의 혈육들이며 벗들이여, 동지들이여, 여기 백두의 상상봉에서 《위대한 김일성주석님 만세!》, 《위대한 김정일장군님 만세!》를 목청껏 부르는 내 목소리를 듣느냐, 이렇게 웨쳐대고싶은 심정이였다.

해살이 조용히 퍼지는 속에서 만리창파인양 그대로 굽이치는 조국의 산 줄기줄기가 한눈에 안겨온다. 조국광복직후 어린 시절에 저기 남쪽 고향마을의 송아지 친구들과 어깨겯고 뛰놀며 부르던 노래가 삼삼히 머리에 떠올랐다. 《백두산 뻗어내려 반도 삼천리》라는 소절로 시작되고 《복되도다 그 이름도 조선이로세》라는 소절로 끝나는 그 노래.

과시 백두산에서 뻗어내려간것이 삼천리 조국강산이고 과시 장한것이 백두산의 기상, 조국의 기상이다.

얼마나 찾고싶은 백두산이였더냐. 물론 백두산을 찾고싶은것은 나만이 아닌 남녘겨레모두의 심정이기도 하다고 해야 옳으리라.

내 수첩의 한갈피에는 이런 시 한편이 적혀있다.

 

백두산에 못 가게 하네

백두산에 내가 가리라

물이란 물은 다 내 물이고

산이란 산은 다 내 산인데

백두산에 내 어찌 못 가리

 

내 손으로 이 깊은 밤을 으스러지게 찢고

백두산에 내가 가리라

백두산이 나를 부르니

남과 북의 말뚝 뽑은 꽃피는 길을

손벽치며 다리절며 내가 가리라

백두산에 내가 가리라

백두산에 못 가게 하네

백두산에 내 어찌 못 가리

내 손으로 이 칼날의 숲을 태우고

살아서 저 백두산에 내 가리라

 

백두산을 향해 달리는 남녘민심의 도도한 흐름을 반영하여 주체74(1985)년 봄, 다시말하면 조국광복 40돐을 앞두고있던 시기에 남조선의 중요일간지들은 약속이나 한듯이 일제히 백두산에 관한 천연색사진특집을 냈다. 백두산특집이 배포되기가 바쁘게 그날 오후부터 각 신문사 편집국들에서는 련속 울어대는 전화사태로 편집성원들이 넋이 나갈 지경에 처했었다.

그때 《동아일보》지상에는 백두산특집에 감동한 독자의 다음과 같은 시 한편이 실렸다.

 

백두산 얼마나 그리웠던가

민족의 혼 간직한 백두삼천리

태고의 신비 가득한 겨레의 백두산

뭉클한 감격으로 온몸의 혈관이 박동치듯 하다

 

그렇듯 그립고 보고싶던 백두산에 내 기어이 올라 평생소원을 풀었으니 나는 이남사람들치고 많지 않은 행운아중의 하나가 아니겠는가.

해살이 더욱 넓게 퍼지여 푸르른 천지를 한품에 안은 웅장한 백두밀림의 자태가 신비경을 이루어 한눈에 확연히 안겨오자 전설적영웅 김일성장군님께서 내리신 항일의 구령소리가 태고의 밀림을 찌렁찌렁 울리며 막 가슴을 두드리는것 같았고 조선인민혁명군대원들이 부는 돌격의 나팔소리, 적진을 육박해들어가는 복수의 총폭탄소리, 돌격의 함성이 가슴을 뒤흔드는것 갈은 감을 느꼈다. 더 거슬러올라가 먼 옛날 애국기개에 넘친 한 장수가 《백두산돌 칼 갈아 다 없애고 두만강물 말 먹여 다 말리리》 하며 시를 읊조리던 소리도 귀전에 울린듯 했고 백두산에 올라 대동여지도의 작성을 구상한 지리학자 김정호의 뜨거운 숨결도 느껴지는듯 했다. 백두산의 민족사적의미가 이렇듯 넓고도 깊기에 이남애국민중의 마음이 끝없이 이곳으로 달려오고있는것이다.

그런데 비분을 금할수 없게 하는 일도 있다. 남조선에서는 백두산에로 향한 민중의 흐름에 차단봉을 내리는 력사의 반동들이 있는것이다.

여러 민중미술가들이 진달래꽃 만발한 백두산을 배경으로 하여 자주, 민주, 통일념원을 표시한 그림 《백두산의 산자락아래 밝아오는 통일의 새날이여》라는 제목의 그림을 출품했다가 탄압을 받은 사실이 기억에 생생하다.

백두산을 배경으로 하여 련공통일애국지향을 반영한 《모내기》라는 제목의 그림도 탄압의 대상이 되였다.

민중이 어찌해서 백두산을 마음의 고향으로 삼고 못 견디게 백두산을 그리워하느냐, 반민족분자들이 어찌해서 백두산을 그토록 무서워 하며 그 이름만 들어도 전기에 닿은것처럼 전률하느냐 하는 까닭을 나는 백두산에 올라 똑똑히 깨달았다.

물론 백두산은 예로부터 조종의 산으로 우리 민족의 가슴가슴에 자리잡고있었던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옛적에 백두산은 겨레에게 있어서 어디까지나 아리숭한 신화적존재였다.

백두산이 민족의 성산으로 진정 칭송을 받게 되고 겨레의 마음의 고향으로 된것은 그 품에 3대장군을 맞이한 때부터이다.

우리 조국의 참된 력사의 첫페지는 백두산에서 주체의 봉화가 타오른 그때로부터 시작되였다고 나는 긍지높이 웨치는바이다. 우리 나라의 아침도 백두산에서 밝아오고 주체시대의 려명도 백두산에서 시작되였다.

백두산은 항일의 준엄한 시기에 민족의 태양 김일성장군님께서 주체사상의 기치를 높이 드시고 멸적의 장검을 뽑아드신 그 력사의 순간부터 시대와 조국의 중심에 한층 높이 솟은 혁명의 성산으로 그 위엄을 높이 떨치게 되였다.

백두산은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 조국의 미래를 휘황히 밝혀주는 백두광명성으로 탄생하신 그 순간부터 온 겨레로부터 마음의 고향으로 더욱 숭상을 받게 되였다. 그것으로 하여 백두산은 오늘 온 남녘인민들의 진정한 희망의 표대로 되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배려로 백두산일대를 답사하는 동안 그것이 짧은 기간의 참관이였으나 이 기간에 내가 배운것은 실로 평생을 두고 배워왔던것보다 훨씬 더 많은것이였다.

무엇보다도 나는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의 그 철의 담력이 어디에서 키워진것인가에 대해 더욱 똑똑히 알았다고 말해야 할것이다.

사실 어버이수령님께서 서거하신 후 남녘인민들은 초조한 마음을 안고 북을 지켜보았다. 자기들의 운명을 공화국과 련결시키고있는 그들이였으니 어찌 그러하지 않을수 있었겠는가.

어버이수령님을 잃은 아픔도 더없이 큰데 제국주의자들의 봉쇄와 고립압살책동은 한층 강화되고 거기에다 사상 류례없는 자연재해가 거듭 겹치였으니 북의 형제들이 그 난국을 어떻게 극복해나가겠는가 하는것은 남녘인민 누구나가 가지고있었던 우려였었다.

물론 이런 우려는 다 부질없는것이였다.

북을 지켜보는 남녘겨레의 눈앞에 펼쳐진것은 그 어떤 좌절이 아니라 보다 힘찬 진군이였던것이다. 《고난의 행군》에 뒤이은 최후의 승리를 위한 강행군끝에 온 세계를 진감시킨 인공지구위성 《광명성 1호》의 발사와 같은 경이적인 사변과 사회주의강성대국건설에 대한 선포와 같은 격동적인 사변이 바로 그것이였다.

위대한 장군님의 고향집인 백두산밀영에 대한 참관은 나에게 특히 큰 감명을 주었다. 여기서 강사로부터 이런 해설을 들었다.

언제인가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유서깊은 백두산밀영을 찾으시였다. 그때 동행한 일군들은 록음짙은 8월의 고향집에서 력사에 남길 사진한장을 찍어주실것을 청하였다. 그러나 그이께서는 그 청을 가벼이 물리치시면서 백두산지구에 와서 사진을 찍는것은 숲이 무성한 여름철보다 설경이 펼쳐진 겨울철이 더 좋다고 하시며 자신께서는 눈덮인 백두산에서 태여나 자라서 그런지 겨울이 마음에 든다고 의미깊은 말씀을 하시였다는것이다.

이 순간 나는 희세의 대장군으로서의 그분의 정서를 가히 알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이런 정서를 안고 혁명을 하고 인민을 이끄는 장군만이 《유일초대국》으로 자처하는 미국과 같은 강적도 쥐락펴락할수 있는 담력을 가질수 있는것이 아니겠는가.

세상이 다 알고있는바와 같이 1930년대말 일제침략군을 뒤에 달고 설한풍 휘몰아치는 엄혹한 겨울철에 고난의 행군이 진행되였다. 그때 조선인민혁명군대원들이 그 고난의 행군을 이겨내고 북대정자에 이르어 새로운 조국진군의 길에 나설수 있었던것은 그 고난의 행군대오의 진두에 위대한 김일성장군님께서 서계시였기때문이다. 그런 정서와 그런 랑만을 지닌 령장은 무적인것이며 필승불패인것이다. 그런데 그 설한풍의 정서와 혁명적랑만을 천출령장이신 우리의 김정일령도자께서 그대로 계승하신것이다. 하기에 그이의 담력은 무비의것이며 철석같은것이다.

워낙 《고난의 행군》과 최후승리를 위한 강행군에 이은 강성대국건설에 대한 장엄한 선포자체가 위대한 장군님의 무비의 담력을 과시한 력사적인 사변이였다. 그것은 1930년대말 북대정자에서 고난의 행군을 승리적으로 총화하고 조국진군을 선포하신 위대한 김일성장군님의 그 백두의 담력을 그대로 련상시켜 공화국을 희망의 등대로 바라보고있는 남녘인민들을 무한히 격동시키고 크게 고무하였다.

한마디로 말해서 조종의 산, 혁명의 성산 백두산은 그대로 어버이수령님과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장군님의 상징이고 백두산의 기상과 위용은 그대로 어버이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의 기상이고 위엄이다.

원래 우리 삼천리 조국강토는 백두대간으로 이루어지고있다. 백두에서 출발한 산줄기가 태백산, 지리산을 거쳐 제주의 한나산에 이른것이 백두대간이리라. 백두에서 한나에까지 이른 백두대간을 하나의 줄기로 이루어진것이 우리 겨레가 태줄을 묻은 삼천리 조국강토인것이다. 이처럼 우리의 조국강토는 백두에서 한나까지 한지맥으로 이루어지고있다.

그러나 백두대간을 한갖 지리적개념으로만 풀이할수 없다고 본다. 삼천리 조국강토가 백두대간으로 하여 한지맥으로 이어지고있다 함은 북과 남의 겨레가 백두에서 출발한 혈맥으로 련결되여있음을 말하는것이다. 남조선항간에서는 백두산마루에 안개가 걷히면 한나산마루에도 푸른 하늘이 열린다는 말이 있는데 나는 이번에 백두산에 올라가보니 이 말의 참의미를 곱씹어보게 되고 과연 옳은 말이라고 생각했다.

이에 대한 실례를 들자면 끝이 없을것이다.

우선 한 실례를 들어보자.

조국이 광복되여 불과 몇해밖에 되지 않은 주체37(1948)년 어버이수령님께서 력사적인 남북조선 정당, 사회단체대표자련석회의에서 《단선단정》을 반대하고 자주적인 통일국가창립방침을 제시하시자 남녘의 내륙지대에서뿐아니라 멀리 남해 한나산이 솟아있는 제주도에서까지 인민들이 즉시 그에 화답하여 분기하였다.

외세에 의하여 조국은 비록 분단되였으나 백두에서 한나까지 겨레의 숨결도 생각도 지향도 꼭같이 하나라는것을 보여준 충격적인 사변이였다.

그 이후에도 세상사람들은 어버이수령님께서 제시하신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의 조국통일3대원칙과 련방제통일방안에 대한 남녘인민들의 적극적인 지지와 호응을 통해서도 한혈맥으로 이어진 북과 남의 실상을 다시금 절감하였다.

다시말해서 백두산의 숨결은 곧 어버이수령님과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의 뜨거운 숨결이며 북의 인민들뿐아니라 이남의 인민들도 그 숨결로 숨쉬며 통일에로 나아가고있는것이다.

주체의 태양이 솟아 시대를 밝히는 백두산, 백두산은 자주, 민주, 통일을 위해 투쟁하는 남녘민중의 가슴속에 필승의 신념으로 간직되여있다. 남녘민중은 백두산만 생각하면 그 어떤 두려움도 없고 그 어떤 좌절도 모른다.

미국의 이전 국방장관인 대북정책조정관 윌리암 페리는 공화국을 다녀가서 가진 한 기자회견석상에서 《북정권이 붕괴될것이라고 전제하면 안된다는것이 우리의 결론이다. 우리는 북〈한〉정부를 있는 그대로 대해야 한다. 붕괴위기를 바라는 희망섞인 눈으로 보아서는 안된다. 이런 결론에 따라 미국은 북〈한〉과 정상적인 관계로 나가야 한다.》고 말하였다.

그리고 이남의 삼성경제연구소의 한 연구위원은 《이라크와 유고슬라비아에 대해서는 수천대의 항공기로 수만톤의 폭탄을 투하해 다른 나라의 외교공관까지 페허로 만든 서방이 북에 대해서는 수십만톤의 량곡을 제공해 주목을 끈다.》고 말했다. 남조선인민들은 이 두 사람이 한 말을 무심히 듣는것으로 넘어가지 않고있다. 요컨대 공화국은 자주성을 생명같이 옹호고수하는 우리의 조국이라는것이다.

우리 나라는 자고로 대국의 등살에 시달려왔다. 그간에 우리 민족이 당한 수모는 얼마나 큰것이였는가. 궁궐안에 앉아있던 한 나라의 왕비가 한밤중에 외국 망나니들의 시퍼런 칼날에 찔려 참살분신 당해도 항변 한마디 못하고 국왕의 아버지가 백주에 이국병정들의 손에 랍치당하여 남의 나라에 가서 귀양살이를 해도 한마디 항변을 못했으며 국왕이란것이 한 침략자의 서슬퍼런 칼날을 피해 다른 침략자의 공관에 피신하여 숨어살았던 일은 멀지도 않은 근세말에 있었던 치욕의 사변들이였다.

그뿐만이 아니다.

《시일야방성대곡》이 온 강산에 울려퍼진 이후 참혹했던 일제식민지통치기간의 노예살이에 대하여서는 더 구구한 설명이 필요없겠거니와 조국이 광복된 후 오늘까지의 남조선의 사회정치상을 랭철한 시선으로 돌이켜보자.

《상해림시정부 주석》 김구선생은 어렵게 마련한 환국비행기를 타고 조국으로 달려왔으나 김포비행장을 점령한 미군에 의해 착륙이 불허되였고 결국 김구선생은 강제로 쫓겨가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러한 미군정으로부터 현시점에 이르는 50여년의 그 세월 남조선의 그것은 《광복》이 아니였다. 매국노가 오히려 활개치고 애국자는 탄압당하는 이상하게 거꾸로 된 력사였다.

여기서 나는 자주권이 무엇인지 뼈저리게 돌아보지 않을수 없다. 민족의 자주권, 그것은 정치한다는 사람들이 그 무슨 때마다 거드는 행사용 언어가 결코 아니다. 그것은 유식한 사람들이 습관처럼 외우는 공허한 요구가 절대 아니다.

자주 없이는 민족의 생명도 번영도 없다는것을 똑똑히 알고있다.

남조선인민들은 자주 없이는 민주도 통일도 실현할수 없다는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있다.

자주 없이는 생명도 없고 민족의 부흥도 없다는 진리를 조국인민들이 력사에서 가장 견디여내기 어려웠던 고난의 시기에 가슴에 새기고있다.

남녘의 민심은 백두산을 안고사는 북에로 더욱더 쏠리고있다. 그것은 력사의 필연이다. 민심의 이런 지향을 막을 힘은 이 세상에 없다.

7천만겨레의 민족의 성지로 이름높은 백두의 메부리를 밝히며 솟아오르는 태양, 그것은 정녕 21세기를 밝게 비치시는 우리의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의 거룩하신 위인상인것이다.

백두산의 해돋이의 성스러움을 음미하면 음미할수록 위대한 장군님을 모신 공화국의 공민이 된 자부가 한가슴에 넘쳐났다. 나도 위대한 품에 안겼으니 통일성업에 한몸 바치게 되였다는 자각으로 피가 끓어번졌다.

백두산의 장엄한 해돋이, 이 해돋이는 멀지 않아 통일조국을 밝히는 해돋이로 되리라는것을 굳게 믿어마지 않는다. 그 감격의 날에 북, 남, 해외의 7천만겨레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대원수님 만세!》,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장군님 만세!》를 웨치고 또 웨치며 함께 백두산에 올라 그 장엄한 화폭을 같이 부감하게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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