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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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광의 명령랑독이 끝나자 김정일동지께서 마이크를 앞으로 끄당겨놓고 다음과 같이 강조하시였다.

《이 공사는 수령님의 유훈입니다. 동무들이 금방 장의식에 참가하였지만 오진우동지는 그것을 부탁하였습니다. 정세를 운운할건 없습니다. 공사를 하다가도 달려나가 답새기면 됩니다. 그만합시다!》

금강산발전소건설을 최단기간에 끝낼것을 결심하시면서 이미 그이께서는 무엇이 불가능하다면 그것은 조선말이 아니라고 하시였다. 이것은 공사지휘를 새로 맡게 된 심철범장령에게 하신 말씀이지만 사실은 자신의 신념과 의지에 대한 피력이였다.

당시로서는 가능한것이란 하나도 없었다. 공사는 고사하고 사회주의조국의 운명자체가 문제로 되고있던 때였다. 몇해가 지나서 불가능이 가능으로 전변되여 공사도 완공되고 사회주의의 운명도 수호되였을 때에야 사람들은 자기들의 모든 승리와 성과의 근저에 령도자의 신념과 의지가 놓여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될것이였다.

그러나 아직은 누구도 그것을 모르고들있었다.

사람들은 최중권과 심철범의 갑작스런 교체를 두고 공사지휘《능력》을 론했고 지어는 최고사령관동지의 신임도를 운운했다. 여기에 대해서는 당사자자신들도 그러루하게 생각하고있었다.

그러나 최고사령관동지 자신께서는 이 인사변동에 별다른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시였다. 전쟁로병인 최중권장령은 전선동부에 필요해서 소환했고 심철범장령은 그의 후임으로 군사대학 최우등졸업생인 젊은 장령이 배치됐기때문에 공사지휘로 돌려놓았을뿐이다. 이 인사교체에서 류의한 점이 있다면 그들의 경력을 다시 좀 알아보신것이였다.

그것도 최중권에 대해서는 현재 생활에 대해서만 알아보시였는데 그에 의하면 8남매의 자녀들이 매달려있어서 《고난의 행군》이 시작된 이래 생활이 매우 어렵다는 사실이였다. 간부일군이 그의 집으로 찾아갔을 때 장령은 금방 아침상을 물리고 출근한 후여서 방안에 그가 받았던 아침상이 그대로 놓여있었는데 거기에는 시루에서 썰지 않은채 그대로 꺼내놓은 큼직한 강냉이빵 한덩이와 김치와 콩나물종지 하나가 놓여있었다고 했다. 이 보고를 받고 그와 식사를 함께 할 때마다 느끼군 했던 감정이 살아나서 마음이 좋지 않으시였다. 그는 언제봐도 줴기밥이면 줴기밥, 강냉이국수면 강냉이국수 가리지 않고 달게 들군 했던것이다.

심철범은 량강도 풍산내기였다. 풍산이라면 김형권동지와 김정숙동지의 활동지역으로서 항일혁명의 영향을 많이 받던 고장이였다. 강건너에서 울려오는 항일의 총소리를 들으며 자란 그는 열혈청년이 되자 총을 잡을것을 열망했다. 그의 이 열망은 광복후에 이루어졌다. 그는 보안간부훈련소를 거쳐 인민군대의 지휘관이 되였으며 조국해방전쟁시기에는 최고사령부 련락군관으로 하루에도 수십수백리를 그야말로 갈범처럼 달리였다. 전략적인 일시적후퇴시기 적후에 떨어졌던 그는 단신으로 사선을 넘어 최고사령부가 자리잡은 고산진으로 찾아왔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키가 작고 애티가 나는 그를 매우 용맹하다고 하면서 품에 안고 어깨를 쓸어주시였다. 수령님의 관심속에 련대, 사단의 책임적인 작전일군으로 자랐으며 대련합부대 참모장이라는 장령급의 중책을 맡게 되였다. 그는 근 20년간 이 중책에 있으면서 부대관리와 방어축성물구축, 지휘관들의 작전지휘능력을 높이는데 특출한 실력을 보여주었다.

그의 경력에는 재미나는 일화도 있어 김정일동지께서는 혼자서 미소를 지으시였다. 그중 하나의 이야기는 귀밀밥만 먹다가 입대한 그가 무드기 담긴 흰쌀밥그릇을 보자 《야, 흰쌀밥이다!》 하고 소리쳐서 식사대렬을 웃기였다는것이였고 다른 하나는 소위의 군사칭호를 받던 때의 이야기였다.

그는 열여덟살에 소위로 되였는데 하늘을 날것만치나 기뻤다. 간부부에 불리워가서 새끼별 하나가 박힌 금빛령장을 타가지고 나온 그는 한시가 급해서 중대로 돌아오던 도중 강냉이밭속에 들어가서 그것을 어깨에 달고나왔다는것이였다. 웃음속에 이러한 사실을 읽어가던 김정일동지께서는 극히 최근의 생활자료 하나에 깊이 류의하시였다. 자기 차 운전사를 두명이나 연거퍼 갈아치웠다는것이다. 찌링그에 뭘 좀 실어서 사택으로 가져갔다는것이 리유였다. 심철범은 《수만대군을 먹여살릴 책임을 지고있는 나다. 그런데 너희들은 날 뭘로 만들자는거야?》라고 소리쳤다고 했다.

그의 집생활은 같은 풍산내기인 부인이 터밭농사를 해서 유지하고있었다.

생활비와 식권을 내놓는 법이 없기때문이였다. 노상 관하부대에 내려가 사는 심철범은 병사식당에서 식사를 하는 경우 어김없이 식권을 떼놓았다. 그것도 실지 소비한 끼수보다 여러장씩 더 내놓군 하였다. 그러니 집에 내놓을 식권이 있을리 없었다.

그의 집에 평양에 사는 유치원또래의 손자애가 와있었는데 솜저고리의 팔꿈치와 신발을 기워신고 다니였다. 사택마을의 아이들이 《야, 〈꽃제비〉가 왔구나!》 하고 놀려주어 본의아니게 애를 울렸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이러한 자료를 놓고 해당 일군들은 최중권이와 마찬가지로 그에게도 《생활이 청렴결백하다》 라는 한마디를 달아놓았다.

그러나 김정일동지께서는 《당의 령군체계가 확고히 섰다》던가 《군사과업수행에 무한히 충실하다》는 평정보다 그 한마디를 더 무겁게 여기였고 그것으로 해서 그들에 대한 믿음이 더해지시였다. 이 어려운 때 장령들이라고 특전을 바라지 않고 병사들과 생사고락을 같이하는 그들이야말로 그 어떤 역경속에서도 운명을 같이 할 참다운 동지들이 아닌가! 최중권이나 심철범을 옮겨놓으면서 그들의 경력을 알아본것은 단지 미더운 동지들에 대하여 더 깊이 알자는데 목적이 있었을뿐이였다. 인민군대의 모든 병사들이 일당백인것처럼 모든 지휘관들 역시 무슨 임무나 다 수행할수 있는 만능당이였다.

그이께서 보건대 특히 그들의 생활은 눈물겹도록 청렴하고 결백했다. 조국해방전쟁이 끝난 때로부터 지금까지 전사들의 병영은 달라진것이 많지만 지휘부건물들만은 그렇지 못했다.

최중권이 새로 가게 된 대련합부대만 해도 그 지휘부건물이 1960년대에 지은 낡은 건물이였고 대장이라는 가장 높은 급의 장령이 들게 될 (최중권은 대련합부대 사령관으로 발령받으면서 대장의 군사칭호를 수여받았다.) 그의 방에는 그 시기에 만든 책상과 투박한 철궤가 그대로 놓여있었으며 나무문틀에는 부대자체로 만든 불투명한 유리가 끼여있었다. 그가 들 사택은 그때에 지은 목조건물, 소박한 서너칸짜리 단층이였다. 이러한 집에서 이름있는 장령들이 살았다. 하지만 그들은 사생활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사실상 그들의 집은 전사들의 땀내가 나는 병실이였고 지휘처는 전호속이였다. 사무실에서만 맴도는 평양의 책상주의자들이 인민군지휘관들의 이 생활기풍, 투쟁기풍을 따라배워야 할것이였다. 당일군도 행정경제일군도 누구나가 다… 그리하여 온 사회를 정예화, 강군화해야 할것이였다.

선군정치를 펼쳐가실 결심이신 김정일동지의 군대의 모든 장병들에 대한 믿음은 거의 절대적이며 무조건적이였다. 이것은 그이의 온 생애를 통하여 이루어진것이였다.

조국해방전쟁이 터진 날 한낮에 김정일동지께서는 내각청사 옥상에 올라가시였다. 거기에는 몇명의 인민군전사들이 쌍신고사총 한대를 걸어놓고있었다. 그것이 정부청사를 지키는 대공무력의 전부였다. 하지만 무섭지 않으시였다. 어리신 그이의 귀전에는 그날 새벽 미제침략군이 공화국북반부에 대한 침공을 개시했다는 내무상의 전화를 받고 《미국놈들이 우리 조선사람들을 잘못 보았소.》라고 하신 수령님의 말씀이 떠나지 않고있었다. 이틀후에는 청소한 우리의 항공대가 황주계선으로 날아들던 미제의 《하늘의 요새》라는 《B-29》를 격추하였다. 그 비행기를 떨군것이 나어린 비행사였다. 그는 자기의 비행기가 변변치 않아 남의 비행기를 빌려타고 올라가 그처럼 장한 일을 하였다.

련이어 인민군대의 서울해방, 주문진앞바다에서 미제의 중순양함 격침, 어느날엔가는 새로 개발한 미제의 직승기를 나포하였다. 청소한 인민군대였지만 그 위력은 실로 대단한것이였다. 그때 그이께서는 정규무력건설을 기념하여 진행된 첫 열병식을 눈앞에 그려보며 그 위력의 원천에 대하여 생각하시였다.

열병광장에서 터져오르던 김일성장군 만세!》의 함성, 그것은 항일의 전통을 이어받은 수령결사옹위정신의 힘있는 시위였다. 그때로부터 수십년이 지난 조선인민군창건 60돐에 최대규모의 력사적인 열병식이 진행되였다. 최고사령관이 되시여 처음으로 진행된 이 열병식은 수령님으로부터 일체 무력을 인계받으시는 이관식이기도 했다. 여기서도 기본정신은 혁명의수뇌부결사옹위였다.

같은 날 금강산발전소건설장 지하갱도에서도 하나의 이채로운 열병식이 있었다. 앞뒤가 붕락으로 막힌 한키로메터 구간에는 한개의 련대가 갇혀있었는데 밖으로 나올수 없었던 그들은 평양에서 진행되는 열병식을 시청할수 없었다. 련대지휘부에서는 토의끝에 평양과 같은 시각에 자체로 열병식을 진행하기로 하였다. 열병대오를 편성하였다. 중대마다 광차를 앞세우고 기수가 붉은 기발을 들고 그우에 섰다. 총대신에 착암기와 정대, 함마를 어깨에 멨다. 련대에 와있던 군부대 선전대원들이 취주악을 울리고 노래를 불렀다. 그들은 칼날같은 청돌이 깔린 갱도바닥을 쾅쾅 밟으며 보무당당히 행진해나갔다. 공기가 희박한 갱내는 숨이 턱턱 막히였으나 아랑곳없이 《결사옹위》, 《결사관철》이라는 구호를 웨치였다. 광차 몇개를 맞붙여놓고 널판을 깐 《주석단》우에 서있던 련대장과 정치위원이 열병대오를 축하하였다. 지휘관들은 손을 들어 건군절을 맞는 그들을 축하해주고 그들자신이 고동구호를 웨치였다.

김정일동지를 수반으로 하는 혁명의 수뇌부를 결사옹위하자!》 그러면 《주석단》앞을 지나는 대오가 그 구호를 받아웨쳤다. 이렇게 행진을 한 대오는 곧장 작업장으로 향하였다. 그리고는 착암기로 구멍을 뚫고 발파를 하였다. 꽝꽝! 하는 폭발소리는 그대로 《축포》소리였다. 격동된 군인들의 입에서는 《혁명의 수뇌부를 결사옹위한 오중흡7련대를 따라배우자!》는 웨침소리가 울려나왔으며 어떤 군인들은 자기 련대를 오중흡7련대라고 자랑스럽게 부르기도 하였다. 그후 전군에 《오중흡7련대칭호쟁취운동》의 불길이 일어났는데 이들의 련대가 그 선구자들중의 한개 련대로 된것은 두말할것도 없다.

이렇게 전군에 수령결사옹위정신이 나래치게 되였으며 이것은 인민군대의 사상정신적지주로 되였다. 김정일동지께서 믿으신것은 인민군대의 이 정신이였으며 이 정신이 선발된 한두 군인들속에서가 아니라 대중적인것으로 되리라는데 대하여 믿어의심치 않으시였다.

이러한 믿음은 1990년대에 들어와 더욱 확고한것으로 되였다. 터지는 수류탄을 몸으로 덮어 전사들을 구원한 90년대의 첫 영웅 김광철, 수령님의 초상화를 구원하기 위하여 불속에 뛰여든 전사, 구호나무를 화재로부터 보호하기 위하여 자기 몸이 그대로 숯덩이가 된 수십명의 군인영웅들의 자폭정신, 육탄정신은 무엇을 보여주는가.

비행사였던 길영조는 불붙는 비행기에서 탈출만 하였더라면 얼마든지 살수 있었지만 자폭으로써 수령결사옹위정신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영웅들의 정신이 오늘 금강산발전소건설장에서 바로 대중적인 영웅주의로 되고있는것이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금강산발전소건설장에서 새로운 시대정신을 창조하여 온 나라를 들끓게 하려는 자신의 전략적의도가 백번 가능하며 반드시 현실로 되리라는데 대하여 믿어의심치 않으시였다. 그이께서는 명령서하달을 끝내고 심철범을 따로 만나 무엇이 불가능하다면 그것은 조선말이 아니라고 다시한번 강조하면서 그를 믿는다고 고무해주시였다.

집무실로 돌아오신 김정일동지께서는 문득 잠시 쉬시려고 앉았던 창곁의 쏘파에서 일어나 집무탁우에 놓여있는 몇건의 문건중에서 하나를 집어드시였다. 그것은 총정치국에서 올려온 지휘관들의 당생활자료를 묶은것이였는데 그이께서는 이미 한번 보고 접어놓은듯 한 페지를 펼쳐드시였다.

이해의 첫날 자신에게 큰 고무를 주었던 김동환의 당생활자료가 주목되여 다시 읽으시였다. 문건에는 이런 구절이 있었다. 《김동환은 자기 아들이 입대한지는 불과 반년밖에 되지 않지만 군복을 입은 이상 비겁하게 행동한것은 용서할수 없다고 하면서 그 책임은 어려서부터 아들의 의지를 단련시켜주지 못한 자기에게 있다고 비판하였습니다.…》

대책적의견으로 총정치국은 신입병사들의 의지단련에 각별한 주의를 돌리겠다고 하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김동환의 아들을 만나보고싶은 생각이 불쑥 드시였다. (약자를 강자로 만들면 되는것이지.)라고 마음속으로 뇌이시며…

잠시후 김정일동지께서는 만수대예술극장으로 가시였다.

《고난의 행군》과 함께 독자적인 정예단으로 탄생한 조선인민군공훈합창단은 돌격의 나팔수가 되여 준엄한 영웅적돌파전에로 사람들을 불러일으키고있었다.

그들의 공연을 한번 보고나면 적의 아성을 무자비하게 들부시며 한바탕 불을 토하는 군단포의 세찬 포성을 듣는것처럼 심장이 쿵쿵 뛰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늦은 밤이였다.

그러나 합창단의 전체 성원들은 아직 퇴근하지 않고 새로 나온 노래를 련습하고있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객석 한가운데 조용히 앉아 그들이 부르는 노래에 귀기울이시였다.

 

우리가 틀어잡은 총검마다엔

장군님 보위해갈 맹세가 비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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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환의 당생활자료는 여러부로 복사되여 인민무력부문의 책임적인 장령들에게 배포되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자료원본을 서기실에 넘기면서 배포대상을 한사람한사람 찍어주시였다.

김정일동지께서 리용하시는 응접실로 두사람의 장령이 들어섰다. 총정치국과 총참모부의 장령들인 오기철과 리국현이였다. 뒤따라 조선인민경비대 리길남장령과 당중앙위원회 책임일군인 리웅걸이 도착했다. 그들은 모두 장군님께서 보내주신 자료사본을 받아본 사람들이였다. 그러나 리웅걸이를 내놓고는 그 누구도 이 부름이 그 자료와 관련되여있다는것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 자료를 가볍게 취급해서가 아니였다. 그들은 자료를 보는 순간 인민군대안에서 비록 신입병사 한명에게 한한 문제이지만 그러한 현상이 나타난데 대해 총정치국과 총참모부의 책임일군으로서 심한 죄책감을 느끼였고 최고사령관동지로부터 심려의 말씀이 있으리라고 보았다. 인민경비대를 관할하고있는 리길남장령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인민경비대도 어려운 공사를 맡아하고있으며 어느때 어떤 일이 있을지 모르는것이였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보다 큰 문제, 최고사령관동지께 보고드리고 결론을 받아야 할 긴급하고도 무거운 문제들이 있었다. 이 부름이 없었더라도 이러한 문제로 하여 그들은 그이께 접견요청을 하였을것이였다.

사실 응접실의 문지방을 넘어서기 전까지 그들은 부름을 받은것이 자기 혼자이며 최고사령관동지께서 자기 부문에서 제기된 긴급한 문제때문에 찾으신것으로 여기고 그 문제만을 줄곧 생각하고있었다.

그러한 문제는 매 사람에게서 한두가지가 아니였다. 그들은 곽무선으로부터 전화를 받고 이리로 떠나기까지의 짧은 시간에 많은 문건을 준비하였다. 례컨대 오기철장령이 준비해가지고온 서류철에는 적어도 몇가지 중요한 문건들이 들어있었다.

그중 한 문건은 전연지대에서 우리 군대에 대한 적들의 교란작전과 관련한 보고였다. 적들이 우리측 지역에 삐라를 비롯한 각종 유인물을 들여보낸다는것은 이미 놀라운 일이 아니였다. 놈들은 수십년동안 그 놀음을 계속해오고있었다. 그러나 최근에 더욱 발광적인 단계에 이르렀다.

놈들은 우리의 식량사정이 어렵다는것을 알고 식료품을 들여보내기 시작했다. 그것도 순수한 식료품이 아니였다. 사탕과 과자, 빵, 쌀, 고추장 등에 세균과 독성물질을 발라서 기구로 여기저기에 떨구었다. 피해를 본것은 우리 군인들이 아니라 그들이 방목하고있던 소들이였다. 덩지 큰 짐승이 그 자리에서 펑펑 쓰러지거나 며칠 지나서 네다리가 까드라들고 눈알이 튀여나오며 형체가 보기도 끔찍하게 돼가다가 죽어버리였다.

우리 군인들은 독뱀을 잡아족치듯 맛스러운 그 식료품을 보는 족족 발로 짓뭉개고 구뎅이를 파고 묻어버리던가 모아놓고 불을 질렀다. 어떤 병사는 격분한 나머지 화염방사기까지 휘둘러댔다. 그러자 놈들은 이번에는 독뱀을 수백, 수천마리씩 상자에 넣어 들여보냈다. 뱀이 지나간 자리에 있는 풀을 뜯어먹은 소들이 또 죽어넘어졌다. 독뱀에 방사성물질을 묻혀 들여보냈던것이다. 우리 군인들은 눈에 불이 일어 펄펄 뛰면서 독뱀을 찾는 족족 때려 잡아치웠다. 그러나 놈들은 집요하게 그 놀음을 계속하였다. 그들은 우리 군대를 정신적으로 말살하려다가 안되니 육체적으로 말살하려고 날뛰는것이였다.

며칠전에 있은 일이였다.

전연지대의 깊은 산중에서 애처로운 울음소리가 들렸다. 순찰중에 있던 군인 하나가 그 소리를 쫓아가보니 이제 겨우 걸음마를 타기 시작한 어린 아이가 혼자서 겁에 질려 울고있었다. 어찌나 겁에 질려있었던지 온몸을 바들바들 떨고있다가 순찰병을 보자 와락 안기며 품에 파고들었다. 순찰병은 어린애가 너무도 애처롭고 불쌍하여 전후사연을 따져볼 사이없이 병실로 안고왔다.

경각성높은 지휘관이 지난 밤에 공중에서 아이울음소리가 들렸던 사실을 상기하고 곧 화학병들을 불러 아이의 몸을 검측해보았다. 놈들이 락하산으로 떨군 아이는 방사능덩어리였다. 아이와 순찰병은 전문병원으로 후송되였다.

놈들이 우리 병사들의 인정을 약한 고리로 보고 흉계를 꾸민것이였다. 후안무치한 행위였다.

성미가 조용한 편인 오기철은 이 보고를 받고는 노발대발하여 책상을 쳤다.

《개놈들!》

그는 놈들의 이러한 행위를 우리에 대한 선전포고로 인정하고 대응책을 취하기로 결심하였다. 지금 그의 서류철에는 그와 관련한 무력부대변인 담화초안도 들어있었다.

참모일군인 리국현은 긴급한 군사문제들을 가지고왔다. 그가 준비한것은 뉴욕에서 진행되고있는 경수로제공을 위한 실무회담의 지연은 우리에 대한 군사적압력의 일환임을 증명하는 자료, 미, 일, 남조선의 군사적결탁과 일본의 우리 나라에 대한 군사적개입가능성을 시사하는 자료, 금강산발전소건설에 추가로 부대들을 동원한것과 관련하여 전투서렬을 재정비한데 대한 보고 등이였다.

그는 이러한 보고를 서면으로 준비한외에 한가지 문제만은 구두로 직접 보고드리기로 하였다. 그것은 적들이 무인조종정찰기와 군사위성을 통한 우리 전연지대에 대한 정찰을 비상히 강화한 반면에 일체 군사적도발을 중지한데서 오는 분계선상의 이상한 정적이였다. 놈들이 저들무력의 실전배비상태를 고착시키고있다는 정찰국의 보고와 우리에 대한 교란작전으로 심리적압박을 계속하면서도 군사적도발만은 중지한것을 보면 그 어떤 결정적인 기회를 노리고있는것이 분명하였다. 그것이 무엇이겠는가. 그는 이 문제를 오기철과 협의했으며 최고사령관동지께 직접 말씀 올리기로 작정하였다.

또한 그는 부모형제들이 식량난을 겪고있는것과 관련한 군인들의 반영도 구두로 보고드리기로 하였다. 부모형제들이 고통을 받고있는데 그들의 아들딸들인 병사들이 더 참을수 있는가! 병사들의 총은 막대기가 아니다! 그들은 적들을 그냥 보고만 있을수 없다고 윽윽거리고있었다.

오랜 군인인 리국현도 그들과 같은 심정이였다. 그는 그 자신이 보총을 틀어잡았던 병사시절의 혈기가 살아나서 참을수 없었다. 그 혈기대로 할수만 있다면 먼저 총성을 울려 전연지대의 숨막히는 고요를 깨뜨려버리고싶었다. 그러나 이러한 감정과 충동을 활자로서는 다 표현할수 없는것이였다.

최고사령관동지의 부름을 받고오는 그에게 있어서 좀 특별한것이 있다면 전호진의 통보를 이미 그이께 서면으로 올렸다는 사실이였다. 그에 대한 결론을 받아야 하는것이다.

리길남이 가지고온것은 금릉2동굴과 청류다리2단계, 평양-향산관광도로건설과 관련한 보고인가? 아니다. 한시가 바쁘게 보고해야 할 문제를 가지고왔다. 그는 그 보고를 단독으로 보고해야 했다. 경비대가 이동작업에 나가있는 북부국경일대에서 밀출입자들을 단속했는데 그들속에 남조선《정보원》의 첩자들이 끼여있는것과 관련된 보고였다. 그 간첩들은 우리 혁명의 수뇌부를 노리고 기여든 놈들이였다. 이미 해당 기관에 통보했지만 그는 이 문제를 그이께 직접 보고드릴 필요를 느꼈던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 무력의 지도급 인물들인 오기철과 리국현, 리길남은 한 병사의 비정상적인 행위를 결코 소홀히 대하지는 않았지만 어깨에 실린 무거운 짐으로나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로는 보지 않고있었다.

 

( 다음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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