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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0 회)

 

10

(2)

 

멀리 시내 어디선가 12시 고동이 울리기 시작했을 때 원장의 안내를 받으신 김정일동지께서 들어서시였다.

오진우는 뒤에 따라선 최광을 보지 못했다.

문안인사가 오가고 김정일동지께서 환자앞에 가져다놓은 의자에 앉으시는것을 보자 원장은 자리를 피해 나갔다.

최광은 환자의 옆에 서있었다. 그는 오진우가 그이를 맞이하느라고 탁자우에 아무렇게나 집어던진 흩어진 약종이를 차근차근 겹쳐놓고있었다.

침묵이 흘렀다.

이때 오진우는 원장으로부터 불치의 병이라는 말을 듣던 순간을 되새기였다. 그의 머리에 피뜩 스쳐지나간 생각은 이젠 최고사령관동지를 다시 뵙지 못하겠구나 하는것이였다. 항일전에 치명상을 입고 쓰러지던 때와 비슷했는데 그때에는 이젠 고향에 두고온 어머니를 다 봤구나 하는 생각이 스쳐지나갔었다.

지금 그이께서 오진우앞에 마주앉아계시였다.

응당 기뻐야 할 이 순간에 오진우는 그이를 혼자 남겨두고가게 되였구나 하는 아픈 생각이 전류처럼 온몸에 뻗치는것을 느끼였다. 어머님을 일찌기 여의신 그이를 모신 때로부터 장장 반세기 그이보다 스무살이나 우인 오진우의 가슴속에 《령감님》이라고 친근하게 불러주실 때마다 무시로 갈마드는것은 혈육의 감정이였다. 이 감정은 나이가 들수록 더해졌고 수령님을 잃은후에는 참을수 없이 절절해졌다. 수령님은 안 계시는데 이젠 그이 혼자서…

오진우의 눈굽에 눈물이 고이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그 눈물을 리해하신듯 한손으로 가늘어진 환자의 팔을, 다른 한손으로 환자의 얼음처럼 찬 손을 꽉 잡고계시였다. 오진우의 사형선고와도 같은 병마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화제에 올리지 않으시였다.

그렇다고 오진우는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이께서 이미전에 알고계시였을것이고 원장이 그이의 승인을 받고 어제 말해주었을것이다. 바로 그래서 분망하신 그이께서 짬을 내시여 이렇게 걸음하시지 않았는가.

김정일동지께서는 어째서 점적을 떼고 환자복을 벗어놓았느냐고 묻지도 않으시였고 오진우는 군복을 입고 장군님앞에 나서고싶었다고 대답을 올리지도 않았다. 하지만 지금 그 모든 이야기가 맞잡은 손을 통해 오가는것이였다.

오랜 침묵끝에 김정일동지께서 최광이 만지작거리고있는 종이장들을 바라보며 《그건 뭘하는겁니까?》 하고 물으시였다.

《저 령감이.》 하고 최광이 직함대신에 이렇게 부르며 말하려 하자 오진우가 가로챘다.

《약을 쌌던 종이입니다. 휴지통에 던지려는것을 한장한장 모아둡니다. 우리 집 애들이 와보고 궁상스럽다고 하지요. 고생을 해보지 않은 애들이 뭘 압니까. 지금 구두쇠니 뭐니 하고 내 뒤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날더러 장군님앞에 손을 내밀라는건데… 내사 그럴수 없지요. 허허…》

《허허…》

김정일동지께서 그의 말에 가벼운 웃음으로 대답해주시였다.

《지금 애들이 호강스럽게만 자라다나니 속이 궁글었습니다.》 하고 최광이 비분강개한 어조로 끼여들었다.

《내가 전후에 애를 하나 데려왔는데 다 길러놓으니 돌아도 안봅니다.》

쓸쓸한 표정을 지었다.

최광이 일점혈육이 없이 늘 고독하게 지내고있다는것을 잘 알고계시는 김정일동지께서는 그를 위안해주어야겠다고 생각하며 한마디 하시였다.

《그래도 그 애들이 우리 혁명의 대를 이어가고있습니다.》

《그래서 하는 말입니다. 단단히 틀어쥐고 교양을 해야지요.》

최광이 여전히 비분강개해져서 계속했다.

《요새 군대에 영양실조증 환자가 더러 생기는데 나라형편이 어려우니 잘 먹지 못하는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건 사상병입니다. 우리가 산에서 싸울 땐 풀뿌리를 씹으면서도 영양실조증이란 말도 몰랐습니다.》

오진우가 동감인듯 턱을 떨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그의 마음속에는 이 어려운 때 장군님만 남겨두고가자니 눈을 감을것 같지 못하다는 말이 맴돌고있었다. 그래서 그 말을 꺼내려고 하는데 김정일동지께서 먼저 입을 여시였다.

《이야기들을 하십시오. 항일투사동지들은 그때 고난의 행군을 어떻게 견디여냈습니까?》

그이께서는 이 질문을 일부러 최광을 바라보며 하시였다. 환자의 부담을 덜고싶으시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별로 어려웠던건 아닙니다.》 하고 최광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사면팔방에서 왜놈들이 진드기처럼 달려들고 눈보라가 사나왔습니다. 풀뿌리를 캐먹고 그것마저 없으면 생눈을 움켜먹으면서 100여일을 싸우다나니 지쳐 쓰러진 때도 있었지요. 하지만 머리를 쳐들고 보면 언제나 앞장에는 김일성장군님께서 몸소 붉은기를 들고계시였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쓰러졌다가도 다시 일어섰습니다.》

《장군님.》 하고 오진우가 그이의 시선이 자기에게로 돌아오기를 기다려서 말씀올렸다.

그는 앉아있기가 힘들었지만 될수록 그것을 감추면서 많은 말을 하려고 애썼다.

《지금의 〈고난의 행군〉은 그때보다 더 어렵습니다. 그때는 수년간의 싸움에서 단련된 혁명군대원들이 했지만 지금은 이 나라 남녀로소가 다 참가하는 전인민적인 행군입니다. 게다가 고생을 모르고 살아온 새 세대가 주력군이 아닙니까!》

오진우는 그럴수록 김정일동지를 더 받들어드리지 못하고 가게 되였다는 생각에 또다시 가슴이 아팠다.

《이렇게 로투사동지들이 있는데 무슨 걱정이겠습니까.》

김정일동지께서는 마디마디에 힘을 주시며 말씀을 이으시였다.

《무력부장동지, 어서 병을 털고 일어나십시오. 설날에 약속하지 않았습니까. 견디여내야 합니다.》

이때 원장이 기척이 없이 들어와 누구에게라 없이 《10분이 되였습니다.》 하고 알리였다.

오진우가 원장을 쏘아보았다.

원장은 그의 시선을 외면한채 김정일동지를 바라보았다. 오진우는 그 10분이 그이께서 정하신 시간임을 알아차렸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일어서시였다.

그리고 자신이 낚은 산천어를 가져왔다고 하시자 오진우는 언젠가 그이께서 산천어탕을 끓여놓고 비행기로 부르시던 사실이 떠올라 눈물을 흘리였다.

(낚시질을 즐겨하지 않는 그이께서 이 엄동설한에 낚시질을 다 하시다니…)

잠시후 점적을 달고 다시 병상에 누운 오진우는 그이와 나눈 10분간의 대화를 상기하면서 이마살을 찌프렸다. 새 세대가 어쩌고저쩌고 주책없는 말만 한것 같았다. 그는 깊은 한숨을 쉬였다.

오진우를 남겨두고 돌아서신 김정일동지의 발걸음은 무거우시였다. 환자를 더 도울수 없고 완쾌시킬수 없는것이 가슴저리고 안타까우시였다. 어쩌면 그를 다시는 못 볼것만 같으시였다.

그러나 김정일동지께서는 애써 마음을 다잡으시였다. 우리 혁명의 로세대들의 근심을 덜어주고싶으시였다. 그것을 자신의 의무로 감수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새 세대를 더 잘 키우고 단련시켜야겠다는 결심을 더욱 굳게 하시였다.

특출한 령도자이신 김정일동지께 있어서는 결심이자 곧 실천이였다. 그이께서는 병원문을 나서시자 곧 병사들을 찾아 전선길에 오르시였다.

 

11

 

그날 밤 남철은 아빠트의 인조대리석계단에서 미끄러지지 않도록 란간을 잡고 어두운 층계를 천천히 내려갔다.

그의 귀전에는 아직도 돌아가라고 같은 말을 여러번 되풀이하던 목소리가 생생히 울렸다.

(아니, 아닐거야!)

남철은 아직도 자기 처신의 후과를 생각못하고 미련을 품고있었다.

(아버지에게서 어떤 일시적착란이 일어난것이다. 이제 아버지는 틀림없이 나를 불러서 멈춰세우고 다시 돌아오게 하려고 달려나올것이다.)

몇걸음 내려간 그는 걸음을 멈추고 귀를 강구었다.

그러나 문은 열리지 않았다.

그는 수치감을 느끼며 달리듯이 아래로 급히 내려갔다. 그는 쫓겨난것이다. 자기를 낳아주고 길러준 친아버지가 아들을 쫓아냈다. 군공메달이 든 배낭을 집어던지며… 다른 부모라면 군공메달을 안탔대도 그 어려운 건설장에서 찾아온 아들의 잔등을 두드려줄것이다. 그런데 아버지는 이 밤중에 친아들을 쫓아냈다.

남철은 단번에 계단을 세개씩 건너짚으며 헐떡이였다. 현관문까지 내려왔을 때는 그 수치감이 어느새 원망으로 번지였다. 그는 아버지가 자기를 탈주병으로 여기고 쫓아냈다는것을 깨달았다.

(아니다. 나는 탈주병이 아니다. 나도 전쟁판에서라면 얼마든지 영웅적으로 싸울수 있다. 총쥔 병사로서 죽음을 겁낼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인간에게는 누구에게나 적재적소가 있는 법이다. 그러니 나는 해병이 되여야 한다. 나는 바다를 지키고싶다. 그 소원이 어떻게 잘못으로 되는가?)

그는 아버지에게 도전하고싶었다.

(과연 내가 아버지만 못한 시라소니자식인가. 매 순간순간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일해오지 않았단 말인가? 《황금노다지》란 말은 내가 지어내지 않았는가, 이것이야말로 죽음도 불사한 병사의 랑만이며 노래이다. 그래 아버지가 지은 노래만이 병사의 노래인가? 아버지는 왜 나의 군공을 헌 발싸개만큼도 여기지 않는가?) 사실 말이나 군공이 병사의 성실성을 다 표현하는것은 아니다. 남철이도 신입병사로서 공로가 있는것만은 사실이였다. 그러나 새로운 명령이 떨어지자 그는 겁을 먹고 동요하기 시작했다. 결국 병사생활의 첫 발자국을 뗄 당시 그의 기세는 허장성세였고 명예심의 표현에 지나지 않았다는것이 드러났다. 남철의 군공메달은 깨끗한것이 못되였다. 그래서 아버지가 그런것은 필요없다고 소리쳤던것이다.

지금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격분으로까지 변해가고있는 남철은 그것을 느끼지 못했다. 그뿐인가? 그는 보다 중요한것 자기가 장군님께 다진 아버지의 맹세를 헛되이 되게 했고 그것으로 하여 격분한 아버지가 자기를 쫓아냈다는 사실을 느끼지 못한것이다.

남철은 흥분하고 격한 나머지 자기를 뉘우치고 성실한 군인이 될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있었다.

(나는 비겁하지도 도망치지도 않았다. 나는 전투부대로 가려고 했을뿐이다. 전투부대로, 전투부대로! 그것이 왜 잘못이란 말인가.)

남철은 아버지에 대한 원망에 사로잡혀있었다. 그 원망은 이동작업을 끝내고 부대로 돌아올 때까지 계속되였다.

그런 감정은 어머니를 생각할 때 더욱 불같이 일어났다. 그는 그때 어머니만은 문밖으로 쫓아나와 자기 팔을 끌어당길줄 알았다. 그는 상원세멘트공장에 와서도 어머니를 기다렸다. 아버지의 처사에 대하여 대들며 아버지가 막아나서도 뿌리치고 자기에게로 달려나올줄 알았다. 그러나 알고보니 어머니는 아버지편이였다.

남철은 수치와 모욕감에 사로잡혀 변변히 먹지도 자지도 못하면서 며칠간을 보내고 자기부대로 돌아왔다. 다시 질통을 지고 붕락구간을 뚫고 석수를 헤치며 경사갱을 오르내려야 했다. 남철은 자기 중대가 일하는 19갱이 바라보이는 고개길에 하염없이 서있었다.

이때 어디선가 무슨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노래소리 같기도 하고 울음소리 같기도 하고 웅얼거리는 말소리 같기도 했다.

그 목소리가 곡조없이 웅얼거리는 빨찌산추도가의 한대목이라는것이 분명해졌을 때 남철은 그것을 자기 마음속에서 울리는것으로 착각하였다.

그러나 그 소리는 다른데서 들려왔다.

산비탈을 타고 좀 올라가 마른 잔디가 한벌 깔린 공지에 세개의 봉분이 솟아있었다. 그 무덤앞에 유치원또래의 남자아이 하나가 청솔가지를 꺾어놓고 서있었다. 그 아이는 중대장 김철종의 아들 영남이였다.

남철은 새로 생긴 무덤을 첫눈에 알아보았다.

중대에서 사고가 있었구나! 이러한 육감이 전류처럼 온몸에 쭉 뻗치는 순간 그는 손에 들고있던 배낭을 마구 내동댕이치고 잔디에 발을 걸채이면서 무덤에 달려들었다. 그리고 석재로 다듬어 세운 묘비를 쓸어안고 헤덤비면서 이름을 찾아보았다.

《고 김철종…》

그는 묘비를 끝까지 읽지 못하고 미친 사람처럼 벌벌 기여서 오른쪽, 왼쪽묘비를 들여다보았다. 그 다음 갑자기 뒤로 벌렁 자빠졌다. 세개의 무덤이 힘을 합쳐 그를 밀어던진듯 하였다. 그는 뒤로 자빠진채 딩굴면서 몸부림쳤다.

한참 그러다가 벌떡 일어나서는 앉은 걸음으로 영남이앞으로 다가와 아이의 손목을 잡고 중대장의 무덤을 턱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이거 누구 무덤이지?》

《남철아저씨거야…》

아이가 대답했다.

《누구?》

뻔한 질문을 한 남철은 아이의 말을 새겨듣지 않고 또 물었다.

《남철아저씨거야…》

아이가 되풀이했다.

뗑해서 듣고있던 남철은 비로소 귀를 도사렸다. 그때에야 아이의 목소리를 똑똑히 들었다.

《남철아저씨가 죽었어. 굴이 무너졌대… 우리 엄마가 그랬어!》

《엉?》

남철은 다시 뗑해졌다.…

남철이가 속한 중대에서 사고가 났다는 소문이 사택마을에 전해진것은 군관안해들이 저녁밥을 지어놓고 남편들을 기다리고있던 어슬녘이였다.

그러나 중대장의 안해 복순은 그 소문을 전혀 남편과 련관시켜 생각하지 못하였다. 그것은 남편이 대대부에 회의가 있어 갔다온다면서 집에 들렸다 나간것이 한시간도 못됐기때문이였다.

복순은 장례준비에 발벗고 나섰다.

군대식장례가 돼서 조총을 쏘고 군악대가 추도곡을 울리기는 하겠지만 어쨌든 제상도 차려야 하고 술도 몇병 구해야 하며 령구에 덮을 붉은 천도 마련해야 하는것이다.

중대에서 제기되는 크고작은 일에 언제나 앞장서온 그는 이번에도 자기집 부엌에다가 일판을 벌려놓고 어째서인지 몸을 빼려고 하는 이웃들을 성을 내가며 불러들였다.

복순은 그들의 남편들은 이미 저녁밥을 먹으려 집에 왔다가 나갔으며 그래서 모든것을 알고 자기를 마주보기를 꺼려한다는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였다. 그는 자기 남편이 저녁을 먹으러 들어오지 않는것을 중대장이기때문에 그러려니 여기고있었다.

그는 자기 집에 남편의 상관인 대대장과 그보다 더 높은 상관인 부대 정치위원이 왔다간 사실에 대해서도 별다르게 느끼지 않았다.

밤에 중대사관장이 찾아와 할 일 없는 사람처럼 방안에서 영남이와 마주앉아 사진첩을 보고있는것을 부엌에서 사이문으로 올려다보았을 때에도 남의 일처럼 물었다.

《희생된 셋중에 한 아저씨는 누구라오? 두 아저씨는 알만한데…》

《한 아저씨요?》 이렇게 반문한 사관장은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그 말을 또 되풀이했다.

《한 아저씨 말이지요?》

때마침 영남이가 사관장의 무릎을 잡아흔들며 《아저씨, 이거 우리 아버지야!》 했다.

난처한 처지를 모면할수 있게 된 사관장은 일부러 큰소리로 《야, 멋있구나!》 하며 중대장의 독사진에 눈길을 돌렸다. 그러나 그는 꿀먹은 벙어리처럼 언제까지나 입을 봉하고만 있을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이제 당장 사실을 말해줄수도 없었다. 적어도 붕락에 치여 험상하게 된 중대장의 시신을 군의들이 본래의 모습대로 만들어놓을 때까지는 시간을 끌어야 하는것이다.

그런데 사람의 심리란 참 이상한것이였다. 복순이가 제먼저 지레짐작하면서 요새 중대에서 보이지 않는 남철의 이름을 대였다. 딱한 처지에 빠져있던 사관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광경을 보고 부엌에서 떡을 빚던 녀인들이 가루가 묻은 손으로 얼굴을 싸쥐며 흐느꼈다. 그러자 복순이도 흐느꼈다. 그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사관장에게 물었다.

《그 아저씨가 무엇을 좋아했다오?》

사관장은 기막힌 표정을 짓고 앉았다가 중대장이 생전에 좋아하던 음식을 대주었다.

《시루떡이지요. 시루떡을 차리라요!》

흥분한 사관장은 이 말을 성난듯 한 어조로 하였다.

《자, 그럼 나머지가루로는 시루떡을 만들자요!》

복순이가 울음을 그치고 아주머니들에게 말했다. 그러나 아주머니들은 그의 말에 더 큰 울음소리로 대답할뿐이였다.

《자, 그만들 진정하세요. 그런다구 죽은 사람 살아오겠어요? 자요, 자!》

복순은 이튿날 아침 남편의 령구앞으로 불리워갔을 때에도 일어난 사태를 전혀 믿지 않았다. 그는 령구앞에 남편의 사진이 놓여있는것을 보고도 남편이 죽지 않았다고, 지금 어디서 아저씨들의 장례때문에 바삐 뛰여다닐것이라고 생떼를 썼다.

그는 넋없이 중얼거렸다.

《나는 사진을 주지 않았어요. 내가 주지 않은 사진이 어떻게 여기에 놓여있어요? 그럴수 없어요! 그럴수 없어요!》

그러다가 그는 자기를 위로하는 사람들가운데서 사관장의 얼굴이 눈에 띄자 갑자기 놀란듯 눈을 크게 뜨고 허공을 쳐다보며 입술을 피터지게 깨물더니 뒤로 벌렁 넘어졌다. 지난 밤 사관장이 사진첩을 펼쳐놓고 보던것을 상기하고 자기의 생떼가 부질없는 일이라는것을 깨달았던것이다.

그는 의식을 잃은채 군의소로 실려갔다.

중대장의 장례에는 어린 영남이가 참가했다. 어린것은 아버지에게 마지막인사를 하라는 말에 끝내 도리질을 하였다.

《아니야, 우리 아버지가 아니야. 이건 남철아저씨야! 우리 엄마가 그랬는데 뭐!》

남철이가 묘지에서 중대장의 이름을 보고 처음에 본능적으로 느낀 감정은 아버지 김동환이가 전화로 중대장이 희생되였다는 말을 듣고 느끼였던 감정과 같은것이였다.

그것은 그 어떤 죄의식이였다. 중대장의 희생에 대한 슬픔이 아니였다. 그 무슨 만회할수 없는 일을 저질렀는데 그 죄가 남철이 자기에게 있다는 죄의식이였다. 사관장에게서 영남이가 죽은것이 아버지가 아니라 남철이라고 듣게 된 사연과 중대장의 안해가 졸도하여 입원하게 된 사실을 알게 된 다음에는 정말 자기를 죽은 사람으로 여기기 시작했다. 그는 어려운 정황에 부딪칠 때마다 어린 전사들이 그러하듯이 순식간에 자기의 감정과 행동을 조절할 능력도 의지도 다 잃어버렸다.

그는 죽은 사람처럼 얼굴이 해쓱하게 질려서 빈 병실에 혼자 우두커니 앉아있었다.

그는 자기가 공사장의 면모를 다 알고있다고 여긴것이 잘못이였다는 생각이 갑자기 떠올랐다. 지하수천척의 갱막장, 숨막히는 폭파가스, 귀청을 째는 착암기소리, 발과 다리를 퉁퉁 붓게 하는 오염된 석수, 덜커덩거리며 서서히 굴러가는 광차, 무시로 떨어지는 붕락, 삑삑거리는 권양기소리와 감겨돌아가는 쇠바줄, 무시로 일어나는 사고, 희생… 이러한것이 자기가 알고있는 공사장의 면모였다. 아니다. 공사장의 면모는 더 다양하다. 지금 그앞에는 또 하나의 공사장의 면모가 있다. 아버지의 무덤가에서 추도가를 부르는 영남이와 병원에 실려간 중대장의 안해의 모습이 그것이다. 그들은 아버지없는 아들로, 남편이 없는 안해로 한생을 살아갈것이다.

남철은 멍청히 뜨고있던 눈을 감았다. 그러자 자기가 그려보고 앉아있던 모습들이 자기로서는 범접할수 없는 높고 아름다운 세계로 분식되면서 눈앞에서 사라지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남철을 뒤에 남겨두고 점점 더 멀리 떠나가버리는것이였다. 이상한 일이였다. 그 세계가 멀리 가면 갈수록 남철은 그 세계가 그리워지는 자신을 의식하였다.…

남철은 한숨을 내쉬였다. 그 세계는 더는 자기를 받아주려 하지 않을것이다. 그는 이전처럼 일하고 또 죽을수 있는 자격마저 잃었다. 그는 벌써 죽은것이다.…

 

( 다음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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