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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위인의 초상을 보다

 

 

무엇을 보았는가

 

 

나는 우리 민족의 어버이이시고 불세출의 선군령장이시며 위대한 태양이신 김정일장군님의 뛰여난 정치실력과 만민을 경탄케 하는 놀라운 령도력, 한없이 자애로운 인간미와 호탕한 모습에 끝없이 매혹되여 장군님의 참된 딸이 되리라는 결심을 안고 조국의 따뜻한 품에 안긴 사람이다.

나는 어떻게 하면 그이께 기쁨을 드릴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으로 근 15년간의 하루하루를 애국의 길을 걸어왔다.

진정 그이는 내 신념의 기둥이였고 희망의 등대였으며 인생의 전부이시였다. 그이는 우리 조국과 민족의 상징이시고 조선의 힘이였으며 백두산대국위대한 영상이시였다.

그러던 내가 피눈물의 2011년 12월을 맞게 되였으니 그때의 심정을 어떻게 표현할수 있을가.

이 세상이 모두 끝장나 천지만물의 생명이 사라질것만 같았다. 하늘이 졸지에 와르르 무너진것만 같았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눈앞이 아찔하고 심장이 조여든다.

세계가 무거운 침묵속에 잠겼다.

장군님을 목메여 부르며 라선시인민위원회 회의실에 꾸려진 조의식장에서 추모의 화환을 드리며 비통한 마음 참을수 없고 그리운 마음 억제할수 없어 통곡하고 또 통곡하며 가슴을 치고 몸부림쳤다.

나는 장군님의 령구를 찾아 금수산기념궁전(오늘의 금수산태양궁전)으로 갔다.

그곳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부인 리희호녀사와 현대그룹 회장 현정은선생도 조문하러 온것을 보았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야전복(잠바)차림으로 누워계시는것을 보니 쏟아져내리는 눈물을 억제할수 없었다.

(아! 그렇게도 만나뵙고싶던 우리 장군님, 언제 한번 잊은적 없는 어버이장군님, 이 딸의 충정이 부족하여 그렇게도 일찍 가셨습니까. 이 딸은 인제는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그러던 나는 정신을 번쩍 차리였다.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픔이 크실 김정은원수님께서 마음속아픔을 애써 누르며 서계시는것을 뵈온 순간이였다.

그이께서는 자주 손수건을 눈가로 가져가군 하시였다.

그런 모습을 뵙는 순간 더더욱 눈물이 솟구쳤으나 애써 씹어삼켰다.

그이께로 다가간 나는 우리는 원수님만 믿는다는 말밖에 더 하지 못하였다.

사실 하고싶은 말이 너무 많았었으나 그 순간에는 슬픔이 앞을 가리고 비애가 차고넘쳐 더 말씀을 올릴수가 없었던것이였다.

그이께 위로의 말도 변변히 올리지 못한것을 두고 나는 지금도 뼈아프게 후회하고있다.

그이께서는 해외동포조문단의 성원들을 한명한명 만나주시다가 나의 손을 잡아주시고 등도 어루만져주시며 따뜻이 위로해주시였다.

위로를 받아야 하실분은 과연 누구신가.

그이가 아니신가.

그런데 오히려 그이께서 나를 위로해주시는것이였다.

그날 밤 나는 잠을 이를수 없었다.

우리 장군님께서는 사랑하는 민족과 인민을 위해서 정말 분과 초를 쪼개가시며 세월을 바쁘게 보내시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혹시 그이께서는 자신의 앞날을 미리 짐작하고계셨던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조선의 앞날인 김정은원수님을 위하여, 후대들을 위하여 무엇 하나라도 더 이루어놓으시려고 시간의 촉박감마저 느끼시면서 그렇게 애쓰시였던것이 아닐가.

후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이께서는 서거하시기 얼마전에도 초인간적인 의지로 함경남도에 대한 현지지도를 진행하시였다고 한다.

현지지도를 마치고 떠나시기에 앞서 그곳 일군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시던 그이께서는 의사선생들이 나에게 특별히 건강에 주의해야 한다고 하면서 이번에 함남도로 떠날 때 울면서 못 간다고 하는걸 겨우 왔다고 교시하시였다고 한다.

일군들이 작별인사를 올리며 건강을 꼭 돌보실것을 거듭하여 아뢰일 때에도 그이께서는 고맙다고, 이렇게 일하는데 습관이 돼서 일없다고 하시며 자신께서는 아직 가야 할 곳이 많다고, 자신께서 가야 온 나라에 승리의 불길이 타번진다고 절절하게 말씀하시였다고 한다.

장군님께서는 이처럼 한평생 자신을 초불처럼 깡그리 태우시며 인민의 행복을 위해 크나큰 공적을 쌓아올리시였지만 인민들은, 자식들은 그이께 해드린것이 너무나도 적었다는것을 누구나 더욱 통절히 느끼고있었다.

그이께서 달리는 렬차에서 순직하시였다는 너무도 뜻밖의 비보를 받아안고 어디 가서 가슴을 꽉 채우는 비분이라도 터쳐보려고 했지만 장군님동상 하나 모시지 못하여 모두가 수령님동상앞에 달려가 가슴치며 통곡한 인민들이였다.

장군님께서 인민을 위해 그토록 많은 대기념비적건축물들을 일떠세워주시였지만 자신의 동상은 절대로 세울수 없게 하시였던것이다.

여러해전에 항일혁명투사들을 비롯해서 인민들이 위대한 수령님께서 서거하신 이후 준엄한 조미대결전에서 불멸의 공헌을 세우신 장군님의 업적을 기리여 동상을 모시자고 많이 제기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장군님께서는 인민들을 위해서는 하늘의 별이라도 다 따다주셨지만 자신을 위한 일은 일절 허용하지 않으셔서 비보를 접한 그 시각까지 그이의 동상을 어디에도 모시지 못하였던것이다.

나를 비롯하여 인민들이 흘리는 눈물은 결국 어버이에게 자식된 도리를 다하지 못한 자책의 눈물이였다.

드디여 12월 28일 위대한 장군님과 영결하는 날이 왔다.

민족의 태양이시고 어버이이신 위대한 장군님과 영결하게 되는것을 하늘도 알아서인가 송이송이 내리는 흰눈이 내가 밤새우며 정성껏 준비한 화환에도 앉았다.

나는 이날 장군님은 정말 조선민족의 위대하신 어버이이시라는것을 다시금 절감하게 되였다.

인산인해를 이룬 도로마다에서 장군님의 령구가 오게 될 방향을 바라보던 사람들이 내려쌓이는 눈을 쓸고는 거기에 이불과 모포뿐아니라 저들의 목도리와 솜옷까지 펴놓는것이 아닌가.

마지막으로 가실 장군님의 길, 마지막으로 바래드려야 할 령구길이였다.

한평생 인민들의 행복을 위해 찬눈비를 다 맞으시며 걷고걸으신 장군님께서 마지막길까지 눈덮인 길을 가시게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 조국의 인민들이였다.

그래서 누가 시키지도 조직하지도 않았지만 남녀로소모두가 눈물을 삼키며 말없이 행동하는것이였다.

령구차가 들어서자 수많은 사람들이 가시지 못한다고 하며 에워쌌기때문에 쉽게 전진할수 없었다.

나는 마지막길마저 인민들에게 환한 미소를 지으시며 앞날을 축복해주시는듯 한 장군님의 태양상을 우러르며 눈물을 쏟고 또 쏟았다.

령구차가 지나가자 수많은 사람들이 그뒤를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인민복에 대하여 말씀하시던 장군님의 자애로운 영상이 떠오르면서 이런 충정스러운 인민을 키워주신 그이의 위대함이 더욱 깊이 가슴에 새겨졌다.

그날 저녁 대국상기간에 조국에 와서 조의를 표시한 해외동포들을 위한 연회가 있다고 통보되였다.

그곳은 외국의 국가수반들에게 연회를 차려주는 목란관이였다.

김정은원수님께서 친히 해외동포들을 위해 취해주신 은정어린 조치였다.

나는 결심하였다.

위대한 장군님께 다 바치지 못한 충정을 김정은원수님께 바쳐가리라고, 조국에서 계속 기업활동을 하면서 애국의 길을 변함없이 걸어나가리라고.

우리 가족일행은 그 마음을 담아 12월 30일 조국과 민족의 운명을 한몸에 지니신 김정은원수님께 결의편지를 올렸다.

그날은 경애하는 원수님을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으로 높이 모신 뜻깊은 날이였다.

편지에서 나는 그이의 따뜻한 사랑과 배려에 대하여 그리고 장군님을 잃은 비통한 마음을 힘과 용기로 바꾸어 애국의 길을 꿋꿋이 걸어감으로써 조국의 부강번영을 위한 길에 모든것을 바쳐나갈것이라는데 대하여 피력하였다.

피눈물의 12월에 나는 조국인민들의 얼굴에서 그들이 흘리는 눈물이 상실의 아픔과 추억의 그리움의 눈물, 자책과 회억의 눈물만이 아니라는것을 체험할수 있었다.

인민들의 가슴가슴은 부강조국건설을 위해 애국헌신의 한평생을 바쳐오신 위대한 장군님의 념원을 기어이 실현할 결사의 맹세로 불타고있었다.

사람들의 얼굴에서 웃음발은 사라졌지만 눈빛에는 공허와 방황의 빛이 없었고 걸음은 더욱 빨라졌다.

조국의 모든 사람들이 못다한 충정을 김정은원수님께 백배, 천배로 바치자고 하면서 불같이 살고있었다.

인민들모두가 이런 모습이였다.

선군조국의 태양은 꺼지지 않았다는것을 나는 온몸으로 느낄수 있었다.

기다리던 뜻깊은 광명성절이 하루하루 다가오자 조국인민들은 민족의 어버이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을 담아 2월의 송가를 울리고 절세위인에 대한 다함없는 흠모심을 담아 태양의 꽃 김정일화의 진한 향기를 온 세상에 풍기고있었다.

빨찌산의 아들이신 위대한 장군님의 불멸의 업적을 만방에 전하며 2월의 축포가 백두산 정일봉상공을 아름답게 수놓았다.

우리 해외동포들도 지구촌의 곳곳에서 광명성절을 뜻깊게 기념하였다.

나도 광명성절을 맞으며 예전보다 더 정성껏 키운 김정일화를 김정일화축전장에 출품하였다.

많은 외국의 진보적인 벗들도 평양을 방문하여 경의를 표하였다.

이 숭엄하고 열렬한 경모의 화폭에서 나는 2월의 봄은 영원하다는 철리를 다시한번 심장으로 느꼈다.

우리 장군님에 대한 김정은원수님의 충정은 뜨겁기 그지없었다.

그이께서는 장군님의 탄신일을 광명성절》로, 장군님께서 생전의 모습그대로 계시는 금수산기념궁전《금수산태양궁전》으로 명명하도록 하시였으며 전국 각지에 영생탑을 모시도록 하시여 선대수령들에 대한 숭고한 도덕의리의 새 력사를 펼쳐가시였다.

국제사회가 2012년 새해에 들어와 공화국의 향방에 대하여 커다란 관심을 가지고 주시한것은 다 알려진 사실이다.

대국상을 당하고 맞이하는 첫해에 과연 공화국에서 어떤 정치적립장을 표명하고 어떤 로선을 제시하겠는가 하는것이 커다란 관심사였던것이다.

그런데 《로동신문》 1면에 《조선의 힘》이라는 송가가 실리고 공동사설을 통하여 김정일장군님의 유훈을 받들어 강성부흥을 기어이 이룩할 의지를 과시하였다.

김정은원수님께서 금수산태양궁전에 계시는 장군님께 삼가 인사를 드리고 제일먼저 찾으신 곳도 장군님께서 성스러운 선군혁명령도의 첫 자욱을 새기신 근위 서울류경수제105땅크사단이였다.

1월의 나날에 진행된 현지지도단위들도 장군님께서 찾으셨던 단위들로 보도되였다.

세계는 숭엄한 현지지도화폭들에서 장군님의 한평생에 관통된 성스러운 선군혁명령도를 꿋꿋이 이어가며 그이의 사상과 위업을 한치의 드팀도 없이, 한걸음의 양보도 없이 그대로 실천해나가시려는 김정은원수님의 굳건한 의지를 보았다.

날이 갈수록 조국인민들은 그이의 위인상에 끝없이 매혹되였다.

그이로부터 조국을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가를 배웠다.

유희장구내길에 돋아난 잡초들을 손수 뽑으시며 그처럼 가슴아파하시던 그이, 오랜 시간 땀을 흘리시며 손수 구뎅이를 파고 정성껏 나무를 심으시던 그이, 나라의 방방곡곡을 종횡무진하시며 강성국가건설을 위한 리상의 기준을 매일 매 시각 가르쳐주시는 그이를 우러르며 인민들은 절세의 애국자의 거룩한 위인상을 보았다.

마음만 먹으면 실용위성도 쏴올리고 핵시험성공의 통장훈도 부르시는 담대한 기상, 적들이 공화국의 령토에 단 한발의 포탄이라도 떨군다면 즉시적인 섬멸적반타격을 안기고 조국통일대전으로 이어가라는 단호한 선언으로 침략자들의 간담을 서늘케 만드시는 드세찬 배짱, 세계적수준의 창조물들을 련이어 일떠세우시며 우리 조국을 사회주의문명국에로 힘차게 이끌어가시는 비범한 령도력…

그 모든것에 공화국의 인민들은 완전히 매혹되였다.

2012년을 맞으며 세계정치계와 언론계의 이목은 김정은원수님께로 집중되였다.

나와 만났던 한 해외교포는 그 말은 과장된 표현이 아니라고, 확인하려면 《구글》(Google)에서 검색해보라고 하였다. (이에 대하여서는 미국에서 발간되는 재미교포신문인 《민족통신》도 같은 내용으로 전하였다.)

인터네트검색싸이트인 《구글》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검색기능을 가지고있다고 한다.

내가 그것을 검색해본 날이 2012년 1월 6일이였다.

그 시점에서 《구글》에는 세계 각국의 수많은 언론매체들이 김정은원수님과 관련하여 게시한 영문보도자료가 6 740만건(2011년말부터 단 10여일동안에)이나 되였다. 그야말로 폭발적인 기록이였다.

이것은 영문사용언론계의 보도자료가 시간당 약 23만건씩이나 게재되였다는것이며 영문을 사용하지 않는 언론계의 보도자료까지 합하면 그 수는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그런 정도이니 2012년 한해만 해도 1억건이 훨씬 넘을것 같았다.

이것은 경애하는 원수님에 대한 세계정치계와 언론계의 관심이 상상을 뛰여넘어 최고수준에 이르렀음을 충분히 짐작케 하는것이였다.

공화국의 인민들은 흐르는 시간과 더불어 더욱더 뜨겁게 불타오르는 그 열화같은 매혹으로부터 경애하는 그이께 스스럼없이 운명을 의탁하였고 조국의 미래를 통채로 맡기였다.

김정은원수님에 대한 조국인민들의 절대불변의 믿음, 그것은 위대한 어버이, 위대한 인간에 대한 믿음이고 위대한 혁명가, 절세의 애국자에 대한 믿음이며 강철의 령장, 탁월한 령도자로서의 높은 자질과 실력, 무한한 헌신성에 대한 믿음이였다.

순간도 떨어져선 살수 없는, 운명도 미래도 다 맡길 삶의 요람이 바로 김정은원수님의 품이라는것을 이 나라의 모든 사람들이 가슴깊이 새겨안았던것이다.

아, 저분이시다! 우리에게는 또 한분의 위대한 어버이가 계신다!

이것이 조선인민이, 세계가 본 김정은원수님의 모습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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