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위인의 초상을 보다
매혹의 분출
어느날 나는 인터네트를 통하여 2009년 4월에 공화국에서 진행한 인공지구위성 《
공화국은 그해 2월에 인공지구위성 《
그것도 미국의 위성이 다 감시할수 있는 지상에서 내놓고 발사를 진행하겠다는것이였다. 이것은 미국에게 가장 유리한 요격방법을 알려준것이나 같았다.
《어디 한번 요격할테면 해보라.》
이런 당당한 배짱과 요격당할 경우 가차없이 보복타격을 안길 완벽한 준비가 없다면 불가능한 발표였다.
인공지구위성 《
그러나 그 어떤 뢰성벽력에도 끄떡하지 않는 강철의 담력과 기질을 지니신
미국과 남조선의 언론들은
공화국의 인공지구위성 《
만일 그때 그것을 요격하겠다고 미국과 일본 등이 실지행동을 하였더라면 결과는 어떻게 되였겠는가.
저들은 마음내키는대로 인공지구위성을 쏘아올리면서도 조선이 두번째로 인공지구위성을 쏘아올리는것을 눈에 든 가시처럼 여기며 무력으로 저지하겠다고 오만방자하게 날뛰는 미국의 코대를 꺾어놓기 위해 전쟁까지 결심하시였다는
전쟁은 담력과 배짱의 대결이며 지략의 대결이라고 볼수 있다.
동서고금 세계전쟁사에 기록된 큰 승리들을 분석해보면 전쟁승리의 결정적요인은 방대한 무력동원이 아니라 전쟁지휘관의 담력과 배짱, 지략이였음을 어렵지 않게 알수 있다.
《워싱톤 타임스》의 2009년 4월 15일 보도에 의하면 미국의 북미항공방위사령관은 《은하2》호를 추적하기 위해 해상에 배치한 최신형레이다를 동원하자고 요청했으나 미국방장관 게이쯔는 그 동원요청을 기각했다.
미군관계자는 그 레이다를 동원하면 북을 자극하게 될것이 우려되여 미군수뇌부가 북미항공방위사령관의 동원요청을 기각했다고 밝혔다.
최신형레이다 동원요청을 기각한 게이쯔는 3월 29일 미국 TV방송 《폭스뉴스》에 출연하여 《북이 발사한 미싸일이 하와이를 향해 날아오거나 하와이 등 미국령토로 날아오는것처럼 보인다면 요격을 고려할수 있겠지만 현재로서는 요격계획을 세워두지 않고있다.》고 말하며 발뺌을 하였다.
군사패권을 틀어쥐고 전세계에 큰소리를 치던 미국의 《백전로장》들이 패기와 열정이 넘치는
2009년 2월초부터 4월 5일까지 50여일동안 인공지구위성발사를 둘러싸고 초긴장상태에서 치렬하게 벌어진 조미대결전은 이렇게
공화국은 예정된 날 당당히 《
공화국의 인공지구위성 《
중국 춘추시기말 오나라의 저명한 군사가였던 손자는 싸움에서의 가장 큰 승리는 피를 흘리지 않고 이룩하는 승리라고 하였다.
공화국이 바로 미국과 이런 무혈전쟁에서의 승리를 이룩한것이다.
나의 입가에서는 《정말
일본신문 《아사히신붕》(1994년 6월 7일부)에 실린 《저 목에 방울을…》라는 제목의 잊을수 없는 만화가 불현듯 떠올랐다.
만화에는 위엄있는 호랑이가 참대숲속에 비스듬히 누워 앞을 노려보고있는데 그앞에는 초췌한 세 사나이(클린톤과 하따, 김영삼)가 《제재》방울을 들고 벌벌 떨며 서있었다. 호랑이의 눈치를 흘끔흘끔 보며 일본수상 하따더러 빨리 《제재》방울을 호랑이목에 걸라고 뒤에서 부추기는 클린톤, 하따의 뒤에 숨어 덜덜 떨면서 그의 등을 두손으로 간신히 떠밀고있는 남조선집권자 김영삼, 참대숲속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르고 미국이 쥐여준 《제재》방울을 들고나섰다가 호랑이를 보고 질겁하여 《저게 호랑이가 아닌가.》 하고 비명을 지르며 비실비실 물러서는 하따.
그 호랑이는
참으로 내 마음을 후련하게 해준 통쾌한 만화였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백두산호랑이》 하면 먼저 떠오르는것이
그 위엄과 담력, 기상과 배짱을 그대로 지니신
진정
어떤 선물을 마련할것인가.
나의 사색은 끝없이 이어졌다. 걸으면서도 앉아서도 일을 하면서도 그리고 회사에서나 집에서도 줄곧 생각은 거기에만 가있었다.
무슨 선물을 준비하여 위대하신
(지금 세계는 공식무대에 나서신
나에게는 백두산호랑이의 《따웅-》 하는 천둥을 깨치며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오면서 그 자태까지도 생동하게 떠올랐다.
선물의 상을 나는 이렇게 잡았다.
지구의와 호랑이를 형상하자. 호랑이가 한발을 들어 지구의를 짚고있는데 그 짚은 자리는 미국의 땅덩어리로 하자. 재료는 황옥으로 하되 색갈이 호랑이의 질감이 나게 얼룩줄이 가로질러간것으로 하자!
나는 즉시 가족들과 마주앉았다.
그들도 누구나 기뻐하며 나의 착상을 적극 지지하였다.
나는 선물을 최대의 성의를 다하여 마련하면서도 그 기간을 최대로 당겨 2011년 1월에 올리자고 하였다. 역시 모두가 찬성이였다.
그날부터 재료를 해결하기 위해 여기저기로 알아보았다.
지구의와 호랑이를 형상할 옥을 두개의 옥으로 하여 붙이자는 의견도 있었다.
그렇게 하면 돈도 적게 들고 또 가공하기도 쉬울것이기때문이였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반대하였다. 그렇게 되면 선물에 나의 성의가 부족하게 고여질것 같이 여겨졌기때문이였다.
그리고
선물재료의 크기를 정하고 그에 필요한 황옥원석을 찾기 위해 여러곳에 주문하였다.
콤퓨터로 그에 대한 회답들이 왔는데 어떤것은 너무 붉은색에 가까웠고 어떤것은 또 너무 연하였다.
그런가 하면 줄이 가지 않은것도 있었다.
이렇게 해서는 아무래도 안되겠다고 생각하였다.
기간은 석달밖에 없는데 언제 올지 모르고 기다리기만 할수 없었다. 그리고 과연 마음에 드는 재료가 나타나겠는가 하는것도 문제였다.
나는 내가 직접 현지들을 찾아다니며 확인하기로 결심하였다.
인터네트망을 통하여 대체적인 옥생산기지들을 료해한 나는 지체없이 떠났다.
그리하여 어느 한 곳에서 그렇게 찾고찾던 황옥원석을 찾게 되였다.
20t이 넘는 원석이였는데 내가 바란것처럼 누런 바탕에 거무스레한 줄들이 줄줄이 건너가있었다.
아마 하늘도 내 마음을 알아준것만 같았다.
눈물은 슬플 때만이 나오는것이 아니라는것을 다시한번 체험하였다.
이제는 가공이 문제였다.
나는 거듭 생각을 굴리던 끝에 이미 여러번이나 선물제작을 의뢰한바 있는 이름있는 공예품제작소를 그 가공장소로 정하였다.
그 제작소에는 유능한 조각가들이 많았다. 특히 세계적으로 명망높은 위인들의 인물상을 많이 제작해온 이름있는 대가들도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나의 착상과 의도를 구체적으로 설명하면서 주의할 점들에 대하여 특별히 강조하였다.
선물제작사업이 긴장하게 벌어졌다.
그 제작기간에 나는 숙소로 정하였던 호텔에 거의 가지 않았다.
제작자들은 돌가루를 들쓸 필요가 있는가고 하면서 마음놓고 호텔에 가서 편히 있다가 련락을 하면 오라고 하였다.
호텔에 왔으나 마음은 제작장소에로만 쏠려있었다.
문득 백옥으로 된
그때 나는
하여 2007년 9월부터 여러곳들을 찾아다니며 옥중의 옥인 티없이 정갈하고 우아한 백옥원석을 구하려고 하였다.
그 길은 천리였던가 만리였던가.
끝내 나는 어느 한 지방에서 내가 바라고바라던 희한한 7t짜리 백옥통돌원석을 구하게 되였다.
그때 내가 찾아온 사연을 듣게 된 제작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조선은 나라가 작아도
그들에게 나는 말하였다.
《나는 비록 이국땅에서 태여난 몸이지만
그러자 제작자들은 저마다 엄지손가락을 내흔들었다.
마침내 나는 공화국창건 60돐을 맞는 2008년 9월에
그때를 돌이켜볼수록 가슴은 커다란 긍지로 부풀어올랐고 또 그럴수록 이번의 선물도 최상최대의 명품으로 만들고싶었다.
하여 나는 그날로 다시 제작소에 찾아가 아예 눌러앉고말았다.
나는 왜 이것을 제작하며 그 용도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았지만 제작자들은 분명 매우 중요하고 의의있는 제작품이라고 짐작하고는 온갖 성의를 다하였다.
마침내 선물이 완성되였다.
처음 보는 순간 나는 너무도 매혹되였다.
나의 의도가 그대로 반영되였기때문이였다. 아니, 내 생각보다 더 잘된것 같았다.
20t이였던 원석이 가공되여 5. 8t으로 되였다.
하나의 황옥으로 지구의와 호랑이를 형상하였는데 호랑이의 잔등에는 검은 줄까지 줄줄이 건너가 마치 살아있는것만 같았다.
호랑이가 내가 정해준 지구의의 위치(미국땅)를 제대로 밟고있는가를 살펴보자 그들은 머리를 끄덕이며 호랑이가 조선인민의 마음을 담아 정말 통쾌하게 행동하고있다고 말하는것이였다.
그들이 저 《백두산호랑이》가 바로 온 세상이 우러르는, 백두산호랑이의 기상으로 미국의 면상을 호되게 후려갈기며 련속 다불러대고계시는
나는 이렇게 웨치고싶었다.
《그렇다! 우리의
선물을 정히 운반해가던 도중 나는 주재국의 조선령사관에 들렸다.
령사관의 성원들 누구나 나를 진심으로 축하해주었다.
나는 기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