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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희망안고 걸어온 길 

 

 

더 크게 내짚은 보폭

 

 

《용감한 심장은 못해내는 일이 없다.》는 말을 누가 하였던가.

애국의 길을 걸으면서 나의 심장도 점점 커졌다. 그 심장의 박동소리에 나의 보폭도 더욱 넓어졌다.

나는 밥조개양식을 대대적으로 진행하면서 한편으로는 홍심이양식에 관심을 가지고 그에 대한 사색을 깊이 하였다.

그것은 밥조개양식은 한번 시작하면 련이어 생산물이 계속 이어지는것이 아니였기때문이였다.

몇해동안 양식을 하면 종자가 퇴화되여 생산이 떨어지고 그러면 다시 시작해야 하였으므로 생산물판매의 《련결고리》가 끊어진다.

그것을 막자면 종묘기르기부터 생산에 이르는 모든 일들을 립체적으로 해야 하였는데 나에게는 그것이 힘에 부치는것이였다.

홍심이양식은 조국에서 아직 누구도 해보지 않은것이였다.

그래서 더 관심이 갔다.

내가 더욱 홍심이양식에 눈길을 돌린것은 공화국주변의 나라 사람들속에서 그에 대한 수요가 매우 높았기때문이였다.

나의 몸은 늘 바다에 있었고 생각은 언제나 홍심이에로 쏠려있었다.

양식장의 물온도와 깊이, 빛투과률과 먹이조건 등에 대하여 따지고 또 따지였으며 오랜 양식공들의 말도 들어보는 과정에 라선앞바다가 홍심이양식에도 적합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기뻤다. 애국을 위한 큰걸음을 또 내짚을수 있게 되였기때문이다.

나는 더 지체할수 없었다.

가슴에 큰뜻을 품은 나는 며칠후 홍심이종묘를 구입하기 위해 남조선 경상남도의 어느 한 지역을 찾아갔다.

그곳에는 할아버지대부터 홍심이양식을 해오면서 많은 경험과 기술을 가지고있는 한 기업가가 있었다.

그는 나를 매우 반갑게 맞이해주면서 마치 구면처럼 대해주었다. 알고보니 그는 국제시장에서 밥조개양식으로 파문을 일으키던 나에 대하여 여러 경로를 통해 어느 정도 알고있었다. 특히 그는 내가 녀성의 몸으로 양식에 몸을 잠근데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가지고있었다.

그의 형제는 남자 3명이였는데 한명은 원양업을 하고 다른 한명은 무역을 한다고 하였다. 내가 만난 양식업자는 둘째였다.

그도 기업활동과정에 많은 곡절을 겪었다. 홍심이양식을 위해 중국에 들어갔을 때에는 적지 않은 자금을 투자하였다가 빈털터리로 나앉은적도 있었다고 했다.

그때를 회상하며 그는 그때 자살하고싶은 심정이였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그의 말을 듣는 나의 마음도 매우 심중해졌다.

처음에 그는 내가 밥조개양식을 하여 어느 정도의 돈이 있긴 하겠지만 과연 홍심이양식을 할만 한 돈이 있긴 있는가 하는 눈치였다. (이것은 후날 나에게 그가 한 말이였다.)

《멍게양식이 그리 간단치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높은 수요와 값에 현혹되여 이 길에 나섰다가 눈물을 쏟으며 돌아섰습니다.》

이것은 내가 다시한번 심중히 생각해보라는 뜻의 말이였다.

나를 위해주는 그의 마음이 고마웠다.

그와 함께 일순 동요감도 일어났다.

물론 그에 대하여 생각지 못한것은 아니였다. 열백번도 더 생각해본 문제였다.

그런데 그의 말을 들으니 다시금 걱정이 생겨나는것이였다.

기업파산으로 몸부림칠 나의 정상도, 집에 있는 어머니와 남편, 자식들과 형제들의 얼굴도 가슴이 섬찍하게 떠올랐다.

다음순간 그러면 나는 이제는 무엇으로 내 조국에 기여하겠는가 하는 생각이 떠오르면서 도리머리를 저었다. 이제 더는 물러설수도, 주저할수도 없다는 결심이 굳어졌다.

나의 회사 사무실에는 정말 마음에 드는 구호가 정면에 걸려있다.

그것은 《장군님따라 천만리》라는 구호이다.

나는 이 구호를 자주 보며 우리 장군님을 받드는 천만리길을 영원히 가리라는 결심을 굳히군 하였다. (조국의 어느곳에 가나 볼수 있는 《가는 길 험난해도 웃으며 가자!》, 《조선은 결심하면 한다!》구호도 정말 마음에 들었다. 언제인가 종업원들앞에서 흥분되여 말하던 내가 《이런 구호도 있지 않는가, <조국은 결심하면 한다!>》 하고 말하자 와- 하고 웃음판이 터졌다. 《조선》이라고 해야 할것을 《조국》이라고 말했기때문이였다.)

적의 화구를 막는것만 영웅적인 행동이라고 할수 없다.

생명의 위험도 아랑곳않고 화구를 향해 돌진하다가 총탄에 맞아 희생된다 해도 그의 정신세계는 얼마나 영웅적인것인가.

(비록 내가 홍심이양식을 하다가 좋은 결과를 볼수 없다고 해도 우리 장군님께서는, 어머니조국은 애국의 길을 걸으려는 내 마음을 알아주실것이다. 그리고 시작도 해보지 않고 어떻게 실패한다고 볼수 있는가. 시작은 절반성공이나 같다. 무엇이 불가능하다면 그것은 조선말이 아니라고 우리 장군님께서는 가르쳐주시였다.)

나는 내가 3년간에 걸쳐 진행한 라선앞바다(내가 양식장으로 정한)의 월별, 깊이별 온도자료들과 유리한 먹이조건 그리고 수질조건 등을 그려보면서 이 모든것들은 얼마든지 홍심이양식에 부합되기때문에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하였다.

절대로 물러서지 않을 나의 마음을 알게 된 그는 정 그렇다면 자그마하게 시험삼아 해보고 확신이 생긴 다음에 크게 해보는것이 좋을것이라고 하는것이였다.

할바에는 크게 하고싶었다.

그때 나에게는 작게 시작한다는것은 그만큼 신심이 없기때문이라고 생각되였다.

그리고 쪼물짝한것은 질색인 나였다. 내가 일판을 벌릴 때면 남자들도 입을 벌리군 하였다. 하여 어떤 사람들은 내가 남자로 태여났다면 더 좋았을것이라고 하였었다.

나는 양식업자에게 이번에 왔던김에 홍심이종묘(유생)들을 사가려 한다고 말하였다.

잡도리를 하는 품이 다르다고 여겨졌던지 그는 나에게 홍심이양식과 관련한 많은 경험들과 기술적문제들에 대하여 그림까지 그려가며 차근차근 설명해주었다.

대체적인것은 나도 알수 있었지만 종묘들을 양식줄에 심는 문제는 처음 듣는 매우 기술적인 문제였다.

한줄에 얼마만 한 간격으로 어떻게 그리고 얼마나 심어야 하는가, 어느 정도의 바다깊이에 양식줄을 어떻게 늘여야 하는가 등.

그에 따라 양식의 전망이 달려있을 정도로 매우 중요한 문제였다. (이것이 매우 중요한 문제여서 나는 후날에 사람들을 데리고 가서 더 구체적으로 기술전습을 받도록 하였다.)

종묘를 붙이는 줄은 유럽의 어느 한 나라에서만 생산되고있었다. 그 줄에만 종묘를 심을수 있었으니 가격 또한 매우 비쌌다. (그 줄에 드는 원가를 줄여보려고 이 나라, 저 나라들에서 수입도 해보았고 자체로 만들어보려고 적지 않게 투자해보았으나 실패하고말았다.)

홍심이양식에 투자할 때의 심정은 정말 말로 다 표현할수 없을 정도였다.

밥조개투자보다 몇배나 더 들었기때문이였다.

그러나 나는 크게 결심하고 대담하게 투자하였다.

그리하여 나는 한배에 2천 700~2천 800섭정도씩 사가지고 들어왔다.

그것들이 죽으면 거대한 자금이 하늘로 날아나기때문에 운반대책을 얼마나 철저히 세웠는지 모른다.

늘 나의 몸은 물론 마음도 홍심이종묘에 가있었다. 하루도 번짐이 없이 종묘들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수십일이 지난 어느날이였다.

그날도 종묘를 바라보던 나는 탄성을 올렸다.

가져올 때에는 눈에도 잘 안 보이던것들이 해빛에 반사되여 오골오골 움직이고있었던것이였다.

얼마나 기뻤는지 몰랐다. 그리고 신심이 생겼다.

내가 사랑하며 즐겨 읊던 시 《희망》의 구절구절이 절로 입에서 새여나왔다.

 

                         어느 선원인가 말하였다

                         떠오르는 닻이 일으키는

                         하얀 물보라 물보라…

                         아 그 순간 출항의 기쁨을

                         무슨 말로 이야기하랴

 

                         또 다른 선원은 말하였다

                         물우에 닻이 떨어지는 그때

                         수면에 퍼져가는 쇠사슬의 절그덕소리

                         아 그때의 넘치는 환희를

                         무슨 말로 표현하랴

 

                         출발은 희망!

                         도착 또한 희망!

 

나는 희망을 가지고 홍심이양식에 온넋을 쏟아부었다.

내가 낮에는 계속 바다에서 살고 밤에는 책과 자료속에 묻혀있으니 한 회사직원(사업상필요로 회사에는 중국에서 데려 온 여러명의 사람들이 있었다.)은 언제인가 이렇게 말했다.

《사장님은 언제 봐야 일밖에 모르는데 무슨 재미로 삽니까. 다른 사장님들처럼 휴식도 하고 즐거운 시간도 좀 보내십시오.》

나는 웃으며 이렇게 말해주었다.

《사는 재미라는거야 사람나름이지.》

어떤 사람들은 먹고 마시는것을 사는 재미로 여긴다. 화려한 생활속에 잠겨 온갖 즐거움을 누리는것을 재미로 보는 사람도 있으며 한장한장 돈을 쌓는데서 사는 재미를 찾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나는 품은 뜻을 실현해가는데서 사는 재미를 찾는다.

우리 장군님께서 기뻐하실 순간을 마련해가는 과정이 인생의 재미이고 즐거움이며 보람이다.

자기 민족을 모르는자는 이것을 영영 리해 못할것이다.

나는 남조선의 양식업자와 수시로 련계를 가지면서 오늘은 어느 정도로 컸다, 지금 어느 정도의 깊이에서 자라고있다, 물온도는 얼마이다 등에 대하여 알려주면 그는 그에 해당한 조언과 기술자료들을 확스로 보내주었다.

날을 따라 홍심이들은 점점 커갔고 나의 마음도 기뻤다.

양식줄에는 홍심이가 주렁주렁 《열리》였다.

2008년 6월초 어느날 회사는 첫 홍심이생산을 진행하였다.

배를 타고 양식장으로 나가던 나는 배머리에서 바다물을 한동안이나 바라보았다.

푸른 바다물은 마치도 어린시절에 보았던 힘센 황소에 메운 보습날의 부드러운 흙처럼 량옆으로 스르르 갈라지며 물결을 일으켰다.

늘 보아오던 바다였고 물결이였지만 이렇게 정답고 기쁘게 안겨온것은 아마도 첫 홍심이수확때문이였을것이다.

그날 회사안의 로동자들은 밤을 새우며 일하였지만 조금도 지친 기색이 없었다. 힘들기는커녕 신바람이 나서 코노래를 부르며 흥에 겨워 일하였다.

언제인가 내가 한참이나 부러워 바라보던 양식공처녀들처럼.

30t이 넘게 수확하였다.

2006년 11월에 투자한 홍심이를 2008년 6월에 벌써 수출하게 되였으니 나는 자지 않고 먹지 않아도 살것만 같았다.

가슴에서 넘쳐나는 기쁨이 그 모든것을 얼마든지 대신할수 있었던것이다.

(우리 장군님께 이 소식을 알려드리면 얼마나 기뻐하시랴. 양식장에서 홍심이를 생산하는 우리들의 모습을 보시면 또 얼마나 만족해하시랴.)

조국인민들이 즐겨 부르는 노래 《장군님생각》이 절로 흘러나왔다.

 

             바람에 나무잎이 날려도 그리워지고

             저 하늘 흰구름을 보아도 더욱 그립네

             구름아 나를 실어가주렴 아버지장군님 품으로

             달려가 안기고픈 이 마음 그리움에 불타네

             오늘도 안녕을 바라며 기다립니다

 

나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아뢰였다.

《아, 그립고그리운 아버지장군님! 장군님의 딸 정옥이의 성공소식 기다려주십시오.》

2008년 6월 8일 시험생산과 판매를 위해 홍심이를 실은 배가 남조선에 도착하였다.

큰 관심이 되여 우리를 찾아왔던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내놓은 홍심이는 규격은 작지만 맛과 향은 너무도 좋다, 일본산보다 더 좋다, 조금만 더 키운다면 분명 시장을 독점할것이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하였다.

어느덧 가을이 되자 가늘던 양식줄은 홍심이로 하여 70~80cm정도로 굵어졌다.

홍심이 한개한개가 주먹만큼 컸다. 눈에도 보이지 않던 작은 종묘가 말이다.

남조선의 양식업자에게 전화하였더니 자기 일처럼 몹시 기뻐하며 앞으로 계속 련계를 가지자고 하였다.

다음해의 종묘구입을 위해 그에게 갔을 때는 공화국의 해양조건이 그렇게 좋은가고 하며 다음번에는 자기가 투자하겠다고도 하였다.

이것은 내가 홍심이양식에서 성공하였다는것을 말하는것이였다.

조국의 인민들은 명절이나 중요계기들을 높은 정치적열의와 빛나는 로력적성과로 맞이하기 위하여 전투를 벌리군 하였는데 나도 그들을 따라배워 2009년 6월 중순부터 김일성주석님의 탄생 100돐이 되는 2012년 4월 15일까지 《충정의 1 000일전투》를 선포하고 목표달성을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하였다. (물론 이것은 내가 스스로 정한것으로서 그에 대하여 아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러던 2009년 12월 16일, 온 나라에 새로운 혁명적대고조의 불길을 지펴주시고 정초부터 쉬임없는 강행군현지지도길을 이어오시며 일대 비약을 안아오신 위대한 장군님께서 라선대흥무역회사를 찾아주시였다.

이 회사는 1996년 4월에 착공하여 2002년 4월에 조업한 수산물종합가공기지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회사의 경영과 생산실태를 구체적으로 료해하시고 이 회사의 일군들처럼 자기 부문 사업을 깊이 연구하고 완강하게 전개한다면 모든 단위에서 더 많은 수출품을 생산할수 있을것이라는데 대하여 강조하시였다고 한다.

그리고 라선시안의 경제무역사업과 전반실태에 대하여서도 료해하시고 라선시를 특별시로 만들데 대한 조치도 취해주시였다고 한다. (2010년 1월 라선시를 특별시로 제정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이 공포되였다.)

그 소식에 접한 나는 너무도 감격하여 라선대흥무역회사가 있는 곳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내 조국을 세상에서 가장 존엄높고 부강한 나라로 하루빨리 일떠세우기 위해 온 한해를 변이 나는 경이적인 기적과 혁신으로 빛내주시고 한해가 다 저물어가는 12월에도 북변의 찬바람을 맞으시며 헌신의 로고를 바쳐가고계신다고 생각하니 우리 장군님에 대한 열렬한 존경과 흠모심이 가슴을 뜨겁게 달구어주었다.

그럴수록 내가 하는 일이 너무도 작게만 여겨졌고 내가 바친 노력이 부족하게만 생각되였다.

그날 나는 일기장에 이런 글을 남겼다.

《오늘은 라선시가 들끓은 력사의 날이다. 나는 오늘 나자신이 너무 행복한 사람이라는것을 다시금 느끼였다.

라선경제무역지대에서 양식사업과 무역사업을 한다는 행복과 긍지로 하여 오늘밤은 잠을 이룰것 같지 못하다.

높은 사업성과로 우리 장군님께 기쁨을 드린 대흥회사의 일군들처럼 나도 더욱 분발하여 꼭 장군님께 기쁨을 드리겠다는 결심이 더욱 굳어진다.

장군님께서 라선땅을 현지지도해주신 오늘, 12월 16일을 영원히 기억할것이다.

위대한 김정일장군님, 부디 건강하십시오. 당신의 딸 김정옥은 멀리서 당신의 건강을 바라고 또 바라옵니다.

그리고 이 딸의 기쁜 소식을 기다려주십시오.》

기쁨과 행복, 소원과 결심으로 깊어간 밤이였다.

나는 마음의 탕개를 더욱 조이며 양식에 전심전력을 기울여 그해에 1 000t이상이나 판매를 실현시켰다.

그리고 근 70정보의 양식장에서의 계단식생산을 위하여 4년농사 준비사업을 진행해놓았다.

당시는 2000년에 진행된 력사적인 북남수뇌분들의 력사적인 평양상봉으로 6. 15자주통일의 가슴벅찬 시대가 펼쳐지면서 얼어붙었던 북남사이의 교류와 협력사업이 활발하게 벌어졌으며 특히 민간교류도 활력을 가지고 진행되고있었다.

그 흐름속에서 나의 기업도 6. 15의 혜택을 단단히 보게 되였다.

어찌 나뿐이랴.

만나는 기업가들마다 이구동성으로 6. 15만세를 불렀으며 성수가 나 하였다.

멀지 않아 펼쳐질 민족최대의 숙원인 통일을 그려보는 온 민족의 심장은 세차게 끓고있었다.

그러나 나의 기쁨은 오래가지 못하였고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말았다.

《잃어버린 10년》을 되찾는다고 하면서 리명박《정권》은 2010년 3월 26일에 발생한 《천안》호사건을 공화국과 억지로 련결시키고 얼마후에는 북남교류협력과 인적, 물적교류를 모두 중단하는 5개의 조항으로 된 《5. 24조치》를 강행하였다.

그리하여 나의 홍심이판로는 완전히 막혀버리게 되였다.

(2014년 11월 남조선의 현대경제연구원은 《5. 24조치》에 따른 북남경제협력사업의 중단으로 직접적피해액이 15억원으로 추산하였다.)

나는 《5. 24조치》가 정말로 밉고미웠고 그것을 강행한 리명박《정부》에 대해서도 커다란 원한을 품게 되였다. 어쩌면 우리 민간무역조차도 못하게 하는것인가. 크게 오염된 다른 나라들의 수산물을 보통가격보다 더 비싸게 수입하여 먹으면서 말이다. 하기에 국민들은 얼마나 그를 욕하고있는가.

2010년 여름부터 민간교류는 완전히 차단되여 나는 더는 남조선에 갈수 없었고 남조선기업가들과의 거래도 진행할수 없었다.

그토록 심혈을 기울였던 나의 넋이 깃들어있는 양식장이 생기를 잃게 되였다.

나의 꿈, 나의 희망, 나의 소원이 가증스러운 《5. 24조치》에 의해 무참히 짓밟혔다고 생각하니 치솟는 격분을 금할수 없었다.

판로가 막혀 생산이 중단되자 사람들은 나를 보고 저 녀자의 심장은 뛰는거야 안 뛰는거야, 몇백만US$의 돈이 바다에서 녹아떨어지는데 아무 소리없이 있는것을 보면 분명 사람심장이 아니라고 말하였다.

사실 내 심장은 보통사람보다도 약하다. 항시적으로 심장약을 복용하고있는 상태이다. 그리고 나는 녀성이였다.

왜 안타깝지 않았겠는가. 심장은 졸아들대로 졸아들고 속은 탈대로 탔었다.

그때 나의 심장을 강하게 두드리는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이 행성에 유일하게 존재하면서 삼천리강토를 갈라놓고있는 원한의 분계선을 하루빨리 없애버려야 한다는 생각이였다.

정녕 우리 민족의 분렬력사에는 얼마나 많은 가슴아픈 사연들이 슴배여있는것인가.

북과 남이 분렬과 대결이 아니라 민족화해와 협력의 길로 나간다면 얼마나 가슴벅찬 현실이 펼쳐질것이고 얼마나 놀라운 번영의 기적들이 창조될것인가.

이런 생각을 거듭할수록 분렬주의세력들에 대한 증오와 함께 민족을 위한 애국의 길을 변함없이 걸어 통일의 날을 앞당겨오는데 기여할 의지가 바위처럼 뿌리내리게 되였다.

나는 시련과 난관이 가로막았다고 하여 한탄속에 맥을 놓고 그대로 주저앉을수 없었다.

(일상생활에서도 돌부리에 걸채여 쓰러질수 있다. 하물며 애국의 길에서 무슨 일인들 없겠는가. 약차한 손해를 보며 실패할수도 있고 정신적타격으로 쓰러질수도 있다. 그러나 열백번 다시 일어나 끝까지 자기가 정한 길을 걸어가는것이 참인간의 모습이 아닌가.)

어느날 나는 라선시의 한 일군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내가 해야 할 새로운 일감을 잡게 되였다.

라선경제무역지대개발에 깊은 관심을 두고계시던 위대하신 주석님과 장군님께서는 여러차례에 걸쳐 라선시를 현대적인 도시로 건설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면서 고층살림집들을 많이 건설할데 대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현대적인 도시는 현대적인 살림집을 떼여놓고 생각할수 없는것이다.

어느날 나는 사향산에 올라갔다. 김일성주석님과 김정숙녀사께서 라진해방작전을 위해 오르시였던 이 산을 나는 자주 찾군 하였다.

사향산에서 내려다보니 온 라선시가 안겨왔다.

한폭의 그림같이 아름다운 라선시의 자연풍치에 현대적인 고층살림집들까지 즐비하게 늘어서면 그 모습은 또 얼마나 아름답게 될것인가.

그날 나는 주석님의 탄생 100돐을 맞으면서 100세대의 살림집을 일떠세울 결심을 다지게 되였다.

그리하여 2011년 4월 29일에는 여러동으로 된 100세대살림집건설 착공식이 온 시의 깊은 관심하에 성대히 진행되게 되였다.

살림집건설전투를 위해 밤낮이 따로없이 뛰고 또 뛰였다.

우리 장군님께서 안겨주신 선물시계의 초침소리가 내 심장의 박동을 높뛰게 하였고 그이께서 베풀어주신 크나큰 사랑과 믿음, 배려가 나에게 힘과 용기를 안겨주었다.

(쓰러져서는 안된다. 장군님께 맹세다진대로 애국렬녀가 되기 위해 나의 심신을 깡그리 바치자.)

하여 나는 라선시의 나지막한 산기슭에 100세대의 현대적인 살림집을 훌륭히 일떠세우고야말았다.

시련과 난관은 인간을 더욱 강하게 만드는 법이다.

나의 애국의 발걸음은 순간도 멈춤을 몰랐고 그 보폭은 더 넓어지게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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