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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희망안고 걸어온 길 

 

경모의 마음

 

조국에서의 체류의 나날은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의 위대성을 날마다 가슴깊이 새겨안는 뜻깊은 나날이기도 하였다.

내가 공화국에 들어온지 몇달 안되던 1996년 11월 어느날 나는 위대한 장군님께서 판문점을 시찰하시였다는 너무도 놀라운 소식에 접하게 되였다.

판문점이 어떤 곳이라는것은 그곳을 참관하면서 잘 알고있는 나였다.

중앙분리선을 사이에 두고 적아가 서로 총구를 겨누고있는 곳, 언제 적들이 도발을 걸어올지 모르고 언제 적들의 총탄이 날아올지 모르는, 이 세상 그 어느 열점지대보다 더 첨예한 분위기가 흐르는 판문점을 조선민족의 운명을 한몸에 지니신 우리 장군님께서 시찰하시다니…

정말 상상도 할수 없는 일이여서 심장이 금시 얼어드는것만 같았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격찬이 터져오름을 억제할수 없었다.

그야말로 우리 장군님께서만이 내리실수 있는 강철의 령장의 용단이였고 장군님께서만이 지니실수 있는 백두의 담력과 배짱이였다.

나는 천만대적도 눈아래로 굽어보며 일거에 무서운 타격을 가하여 적들을 옴짝 못하게 만드시는 위대한 장군님의 백두산호랑이기상을 보았다.

그 기상은 해방전 김일성주석님께서 일제의 북부국경지대 주요군사요충지로 되여있던 보천보를 들이쳐 놈들을 혼비백산케 하셨던 그 백두산호랑이의 기상 그대로였다. 말하자면 백두산호랑이이신 주석님께서 일제의 간담을 서늘케 하신 그 보천보의 홰불을 위대한 장군님께서 판문점의 통일서광으로 지펴올리시여 온 겨레에게 통일조국의 밝은 앞날을 활짝 열어주셨던것이다.

인민들은 누구나 환호성을 터쳤고 적들은 발밑에서 원자탄이라도 터진것처럼 아우성을 쳤다.

미국에 있는 K. J. I연구소는 북조선군수뇌부의 령도적특징을 연구하는 과정에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이 결론에 대하여 미국의 관계당국자들이 주의를 돌리기를 바란다. 북조선의 김정일군최고사령관의 령도특징은 첫째로, 판단이 정확하고 둘째로, 결심이 단호하며 셋째로, 타격에서 무자비한것이다.》

2000년 10월당시 미국무장관 알브라이트는 국무성의 고위관리 200여명을 거느리고 공화국을 방문하였다.

《유일초대국》이라 떠들던 미합중국의 거두의 한사람인 그가 조미관계상 처음으로 공화국을 방문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세계를 놀래우기에는 충분하였다.

그런데 그의 행동거지를 초점에 넣고 주시하던 세계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더 큰 놀라움에 빠져들었다. 그것은 여러번이나 바뀌여지는 알브라이트의 브로치를 통하여 본 그의 심리변화가 너무도 예상을 초월하였기때문이였다.

도착 첫날 금수산기념궁전(오늘의 금수산태양궁전)을 찾아 위대한 김일성주석님께 경의를 드린 그를 친히 만나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저녁에 조선로동당창건 55돐경축 집단체조와 예술공연 《백전백승 조선로동당》을 함께 관람하시였다.

다음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알브라이트와 오랜 시간 담화를 진행하시면서 조미관계를 비롯하여 복잡하고 첨예한 국제문제들, 아시아태평양지역과 조선반도의 정세, 미국이 가장 우려하고있는 미싸일문제 등 그가 관심하는 모든 문제들에 대하여 즉석에서 명쾌한 대답과 결론을 주시였다.

알브라이트는 공식석상이라는것도 잊고 《위원장님이 너무나 거침없이 대답을 주시니 막 매혹됩니다.》라고 탄복하였는데 이것은 외교적례찬이 아닌 진심의 토로였다.

위대한 장군님을 위하여 자기가 차린 연회때 그가 달고나온 심장형브로치(그것은 상대에 대한 무한한 존경과 흠모를 의미한다고 한다.)가 그것을 말해주고있었다.

원래 알브라이트의 가슴에는 성조기브로치가 달려있었다.

외교에서 그 어떤 《미묘한 정치적메쎄지》를 갖가지 브로치로 표현하며 상대를 조정하는 특기를 가지고있다는 알브라이트에게 있어서 성조기브로치는 미합중국의 《위엄》을 상징하는것이였다. 김정일장군님앞에서 알브라이트는 완전히 압도당하였다.

세계《유일초대국》의 국무장관이 머리를 숙인것이다.

평양에서의 짧은 체류기간 14시간동안이나 위대한 장군님을 만나뵙는 행운을 지닌 알브라이트가 공화국을 떠나기 위해 비행장에 나왔을 때에는 가슴에 평화를 상징한다는 목동브로치가 해빛에 반사되여 반짝이고있었다.

이에 대하여 대표단의 한 성원은 《알브라이트는 김정일위원장에게 완전히 반했다.》고 실토하였다.

알브라이트는 귀국하여 미국대통령에게 제출한 보고서에서 자기가 북조선에 체류하면서 장시간에 걸쳐 북조선령도자와 직접 회담하였다는것, 김정일장군은 지금까지 자기들이 생각하여오던 그런 형의 인물과는 완전히 다르다는것, 북조선령도자는 리론이 체계정연하고 매우 론리적이며 복잡하게 뒤엉킨 현 국제문제들을 환하게 꿰들고있을뿐아니라 그에 대한 분석과 판단이 정확하고 모든 문제처리에서 통이 크고 대범하며 명철하다는것, 대화상대방의 발언을 매우 신중하고 주의깊게 끝까지 들어주며 아량이 있으므로 대화할 재미가 있고 따라서 대화과정에 자연히 그이의 리론과 주장에 깊이 끌려들어가게 된다는것, 총체적으로 북조선령도자는 정치, 경제, 문화, 군사, 외교 등 광범한 모든 문제들에서 리론이 명백하고 신심이 확고하며 대범하고 주도세밀한 매우 다재다능한 령도자이시라는것을 자인하지 않을수 없었다고 하였다.

이런 격동적인 사실들은 나의 심장을 쾅쾅 울려주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계시지 않았더라면 우리 조선의 운명은 어떻게 되였겠는가.

제국주의련합세력의 전대미문의 정치군사적압력과 가혹한 경제적봉쇄책동으로 이미 숨졌을것이다. 우리 민족은 또다시 노예의 슬픔을 강요당하며 떼거지가 되였을것이고 삼천리강산에는 겨레의 피눈물이 차고넘칠것이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계심으로 하여 우리 인민은 가장 위력한 선군의 보검을 높이 들고 주체의 사회주의를 굳건히 고수할수 있었고 세계를 놀래우는 기적을 련이어 창조할수 있었으며 가장 존엄높고 행복한 생활을 누릴수 있게 되였다. 격동적인 6. 15통일시대가 펼쳐지고 《김정일열풍》으로 행성이 들끓어 친선의 사절들이 끊임없이 조선으로 찾아오는 놀라운 현실이 펼쳐지게 되였다.

그럴수록 그이의 위대성에 대한 탄복을 금할수 없었다.

그런 위대하신분, 내가 가장 존경하고 온 민족이 하늘처럼 믿고 따르는 위대한 장군님께 나의 열렬한 존경과 흠모의 마음이 깃든 선물을 올리고싶었다.

만민의 위인칭송의 보물고인 국제친선전람관에서 보았던 진귀하고 값진 선물들이 떠올랐다.

나는 어떤 선물을 올릴것인가.

이런 생각은 앉으나서나, 자나깨나 머리속을 떠나지 않았다.

위대한 장군님께 선물을 올리려고 결심한 2000년도 흘러가고 2001년도 절반이나 지나갔으나 나는 그때까지도 확고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있었다.

다음해는 위대한 김일성주석님의 탄생 90돐과 조선인민군창건 70돐이 되는 공화국력사에서 참으로 의의깊은 해였다.

세상에서 제일 아름답고 훌륭한 선물을 마련하여 우리 장군님께 올리고싶었으나 그렇게 할수 없는 자신이 한스러웠다.

그러던 어느날 나는 TV에서 《장군님 백마타고 달리신다》라는 노래를 듣다가 불현듯 말안장에 대하여 생각하게 되였다.

박력있는 선률을 타고 흐르는 노래가사를 음미하느라면 온 세상이 보란듯이 백두의 룡마, 태양의 준마를 타시고 선군의 붉은기를 휘날리시며 진두에서 질풍같이 달려가시는 백두령장의 모습이 선히 어려왔던것이다. (나는 언제나 갈기를 날리며 달리는 말을 그려볼 때면 세상에서 가장 용맹하고 남아다운 기마수의 모습을 그려보군 하였다.)

온 나라를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빨찌산식으로 주름잡으시며 찾으시는 그이의 승용차동음과 야전렬차의 차바퀴소리도 백두의 말발굽소리로 들려오면서 심장을 쾅쾅 울려주었다.

바람세찬 전선길과 비오는 공장길, 눈오는 농장길을 쉬임없이 찾고 또 찾으시는 장군님의 그 걸음 순간도 멈추신적이 있었던가. 조국과 민족의 번영과 행복을 위하여 쉼없이 달리시는 그이께서 정하신 길을 한걸음도 에돌아가신적이 있었던가.

그이의 건강과 안녕을 바라는 마음이 담긴 말안장을 올리면 그이께서 아름다운 산천경개를 부감하시면서 잠시나마 만시름을 푸실것만 같이 생각되였다.

그리고 백마에 박차를 가하시며 질주하실 때의 그이의 모습은 얼마나 위풍당당하고 그 기상 또한 얼마나 억세보일것인가. 이렇게 되여 나는 오래동안 고심하다가 말안장을 선물로 올리기로 결심하였다.

즉시 나의 마음이 집과 친구들에게 전해졌다.

누구나 나를 지지하며 적극 도와나섰다.

인터네트에서 말안장을 제일 잘 만든다고 하는 이름있는 회사들을 다 찾아 련계를 가지였으며 실지 확인하려고 여러차례나 찾아가보았다.

하여 2002년 1월에는 드디여 세계에서 질이 제일 좋다고 하는 어느 한 나라의 이름있는 회사에서 만든 짙은밤색의 말안장을 마련할수 있었다.

해당 부문을 통하여 선물과 함께 나의 소박한 진정이 담긴 편지를 올린 그날 밤 나는 너무도 기뻐 잠을 이를수 없었다.

위대한 장군님께 올리는 내가 마련한 첫 선물이였고 내가 올리는 첫 편지여서 좀처럼 흥분을 눅잦힐수 없었기때문이였다.

어느새 잠이 든 나는 꿈속에서 백마에 얹은 내가 올린 말안장에 앉으시여 눈덮인 백두광야를 달리시는 그이의 모습을 뵈웠다. 말발굽소리가 얼마나 요란했는지 그 소리에 놀라 잠에서 깨여나기까지 하였다.

얼마후인 2월에 공화국주재 로씨야대사관에서는 위대한 장군님을 모시고 로씨야련방 대통령 뿌찐이 보내온 축전과 선물을 전달하는 의식이 진행되였다.

신문에 게재된 그 소식을 보고 또 보았다.

뿌찐이 보내온 선물은 거세하지 않은 오를로브종 3필의 말이였다.

오를로브종의 말은 로씨야의 특산종으로서 령리하고 용맹하며 힘이 세서 세계적으로 가장 우수한 경마용말중의 하나로 그 명성이 대단하다. 하여 로씨야에서는 이 말이 다른 나라에 퍼져나가지 못하도록 엄격히 통제하고있으며 설사 다른 나라에 보내준다고 해도 수컷에 한해서는 철저히 거세한다고 한다.

우리 장군님과 3차에 걸쳐 평양과 모스크바, 울라지보스또크에서 상봉하면서 출중한 위인적풍모에 완전히 매혹되였던 뿌찐은 그이의 탄생일을 맞으며 축전과 함께 말들을 선물로 올리기로 하였다.

이것은 지난 수십년간의 조쏘, 조로관계력사에서 처음으로 되는 경이적인 사변이였다.

선물전달의식에서 로씨야대사는 로씨야에서 개선장군은 백마를 타게 되여있다고 하면서 자기네 대통령이 오를로브종 말들을 선물로 마련하여 올린데는 김정일최고사령관동지께서 모든 일에서 승리와 성과만을 거두시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져있다고 정중히 말씀올리였다.

선물말들을 호송해온 사람들도 자기들은 대통령의 명령에 따라 로씨야의 특산종인 오를로브원종말들가운데서 제일 우수하고 새로운 환경에 길들이기 가장 편리한 나이인 3살, 4살짜리의 말들을 특별히 고르느라 고심하였고 선정한 후에는 정성다해 관리하였다고 하면서 일생 말관리에 종사하는 자기들이지만 이번과 같은 영예로운 명령을 받고 수행해보기는 처음이라고 흥분을 금치 못해하였다.

그 소식을 접하면서 나는 우연적인 일치에 놀라움을 금할수 없었다.

말과 말안장!

이것은 결코 우연이겠는가.

위대한 장군님의 위인상에 대하여 더욱 깊이 받아안을수 있었으니 그이의 안녕과 성과를 바라는 마음은 우리 조선민족성원이나 다른 민족성원이나 꼭 같았다.

그러니 이 사실은 필연이라고 보아야 옳을것이였다.

나는 이런 위대하신분에게 바치는 내 성의가 부족한것만 같아 김일성주석님의 탄생 90돐과 조선인민군창건 70돐 경축행사준비위원회에 여러가지 설비들도 품들여 구입하여 기증하였다.

그런데 나의 이 소박한 지성이 위대한 장군님께 기쁨을 드릴줄 어떻게 알았겠는가.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조국과 민족을 위해 살려고 노력하는 애국충정의 마음을, 끝없는 경모의 마음으로 마련한 선물을 귀중히 여기시여 아직 이렇다하게 해놓은 일이 없는 나에게 자신의 은정어린 감사를 보내주시였으며 조선인민군창건 70돐 경축행사에 불러주시고 온 세상이 들썩하게 한 장엄한 열병식과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도 관람하도록 해주시였다.

나는 이때 처음으로 위대한 장군님의 출중한 모습을 제눈으로 직접 뵈옵게 되였다.

(저분이 바로 불세출의 선군령장이시며 내 조국의 위대한 령도자, 인민들이 하늘처럼 믿고 따르는 민족의 위대한 어버이, 그토록 뵙고싶던 우리 장군님이시로구나! 혹시 내가 꿈을 꾸는것은 아닐가.)

천지를 진감하며 울리는 인민들의 폭풍같은 환호성속에서 꿈결에도 그리던 위대한 장군님의 모습을 우러르는 나의 눈가에는 눈물이 샘솟듯 솟구쳐올랐다. 만세의 환호소리를 목청껏 올리고싶었지만 크나큰 격정때문에 더 터칠수 없었다.

그이의 활달하신 몸가짐과 주위를 밝히는 환하신 영상을 나는 오래도록 우러르고 또 우러렀다.

열광적인 환호에 손을 흔들어 답례하시는 그이의 모습을 우러르노라니 꼭 나에게 태양의 축복을 보내시는것만 같아 저도 모르게 몇걸음 앞으로 나서기까지 하였다.

그렇게도 간절히 품고있던 소원이 풀린 그날은 나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하고 영광스러운 날이였다.

그날 저녁 나는 위대한 장군님께서 우리 해외동포들을 위하여 특별히 마련해주신 연회에도 참가하게 되였다.

숙소로 정한 평양고려호텔의 방에 들어서니 그날 뵈웠던 우리 장군님의 환하신 영상이 더더욱 못견디게 떠올랐다.

그때 내가 든 방은 2호동 23층 6호실이였는데 1985년 8월 9일에 위대한 장군님께서 김일성주석님을 모시고 친히 돌아보신 방이였다.

그분들께서 어디에 서계시여 무슨 말씀을 하시였을가 하고 그려볼수록 방안의 모든것을 무심히 대할수 없었다.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평양역에서 은은한 노래소리가 울려왔다.

나는 그 노래가 공화국의 인민들 누구나가 언제나 마음속에 간직하고 힘겨울 때도 기쁠 때도 부르는 《어디에 계십니까 그리운 장군님》이라는 노래라는것을 알고있었다.

노래의 구절구절을 따라부르는 나의 마음은 위대한 장군님께로 끝없이 날아가고있었다.

나에게는 또 다른 영광과 행복이 기다리고있었으니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우리 가족일행을 조국에 불러주시여 평양과 여러 명승지들을 참관하면서 휴식하도록 은정깊은 배려를 돌려주시였던것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신 우리 장군님, 우리 조국의 운명을 구원해주시고 우리 민족을 승리와 영광의 한길로 이끌어주신 위대한 장군님께 민족의 한 성원임을 늦게나마 자각한 내가 조국인민들과 나란히 고난의 행군대오에 서서 한푼이라도 보탬을 주고저 노력하는것은 너무도 응당한것이 아니겠는가.

그런데도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소박한 지성이 어린 선물에 담겨진 이러한 애국의 마음을 깊이 헤아리시며 이렇듯 분에 넘친 영광과 행복을 거듭거듭 안겨주시였으니 진정 그이의 품은 하나를 바치면 열, 백을 안겨주는 친어버이의 사랑의 품이였다.

나는 정말이지 너무도 행복한 사람이였다.

꿈만 같이 받아안은 사랑에 대하여 나는 중국의 훈춘과 베이징, 연길과 룡정 등의 친구들에게 그대로 이야기해주었다.

그들중에는 조선에 석달만 가있어도 손바닥에 장을 지지겠다고 장담했던 친구도 있었다.

그들은 좀처럼 내 말을 믿으려고 하지 않았다. 어떻게 한 나라의 령도자가 나 같은 평범한 기업가까지 알고 그런 배려를 돌려주시였겠는가 해서였다.

내가 그것을 담은 사진들까지 보여주어서야 그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나를 몹시 부러워하였다.

(그이께 말안장과 함께 승마복을 일식으로 올렸더라면 얼마나 좋았으랴.)

얼마나 후회가 되던지 그때처럼 나자신을 타매해보기는 처음이였다.

후회란 거기에서 교훈을 찾고 분발하기 위해 필요한것이다.

나는 즉시 인터네트를 통하여 세계에서 승마복을 제일 잘 만든다고 하는 나라의 회사들에 수소문하였으며 수차에 걸쳐 거듭 확인해보았다.

이렇게 되여 2003년 4월초 세계적으로 이름있는 회사들에서 최고급으로 제작한 승마조끼와 모자, 승마장화와 장갑을 비롯한 승마복일식과 말에 씌울 굴레를 비롯하여 장식물들을 최고급으로 제작완성한 나의 두번째 선물을 위대한 장군님께 올리게 되였다.

그후에도 나는 수십차례에 걸쳐 많은 물자들과 자금을 조국의 강성국가건설을 위해 기증하였고 인민군대원호사업에도 적극 참가하여 조선민족의 한 성원으로서의 의무를 적으나마 수행하게 되였다.

내 사무실에는 위대한 장군님의 사랑과 믿음이 꽉 채워져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 그렇게 말하는가.

나의 손목에는 그이께서 선물로 안겨주신 백금시계가 채워져있다.

나는 이것을 천만금에도 비기지 못할 더없이 소중한 재보로, 우리 가정의 귀중한 가보로 여기고있다.

그것은 그 시계에 존귀하신 김일성주석님의 존함이 새겨져있고 우리 장군님의 크나큰 사랑과 믿음이 어려있기때문이다.

그리고 내 가슴에는 조국의 높은 급의 훈장들이 빛나고있다.

또한 벽장들에는 그이께서 보내주신 귀중한 선물들과 많은 중요국가행사들에 참가하였던 증서들, 애국표창장들이 정히 보관되여있다.

내 사무실을 찾아오는 사람들은 누구나 이 모든것을 보며 부러움을 금치 못하였다.

그럴 때면 나는 생각이 깊어졌다.

과연 내가 무슨 큰일을 하였기에 이런 영광과 행복을 누리고있는것인가.

내가 한 일이란 조금만 노력하면 누구나 할수 있는 그렇게 요란한것이 아니며 또 조선민족성원이라면 너무도 마땅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 장군님께서는 그렇게 보시지 않으시였다.

그이께서는 내가 한 일의 크기보다도 조국의 부강번영에 무엇인가 바치려 하는 그 마음을 더 귀중히 여겨주신다. 그리고 끝없이 내세우고 또 위해주고싶으시여 주실수 있는 온갖 사랑을 다 베풀어주시였다.

마치 자식들의 자그마한 아름다운 소행을 두고 더없이 기뻐하고 대견해하며 다정한 품에 꼭 품어안는 친부모의 심정그대로.

지나온 나날을 돌이켜볼수록 그이에 대한 경모의 마음은 더욱 뜨겁게 달아올랐으니 그것은 지칠줄도 굴할줄도 모르는 나의 힘과 용기의 원천으로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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