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페지로
날자별열람

 

4. 희망안고 걸어온 길 

 

 

밥조개에 기대를 걸고(1)

 

 

중국 료녕성 료동반도의 남쪽끝에 대련시가 자리잡고있다.

이 도시는 복잡한 력사를 거쳐왔다. 근대사만 놓고보아도 청일전쟁(1894-1895)이후에 일제가 강점하였다가 그후에는 다시 청나라에 반환되였다. 1898년에는 또다시 짜리로씨야의 강점에 의해 조차지로 되였다. 로일전쟁(1904-1905)후에는 두번째로 일제에게 강점되여 중국과 아시아침략의 요충지로 되였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제가 패망한 후에야 대련은 비로소 진정한 자기 발전의 길을 걸을수 있었다.

중국정부는 이 지역이 차지하는 위치의 중요성으로부터 대대적인 개척사업을 진행하였다.

하여 지금은 전국적의의를 가지는 기계, 야금, 선박, 석유화학, 원유가공, 방직, 전자공업부문의 공장, 기업소들이 수많이 건설되였다. 경치수려한 대련은 관광지로도 훌륭히 꾸려졌다.

특히 세 면이 산으로 둘러싸인 대련만에는 중국에서 상해 다음가는 큰 대외무역항인 대련항이 있다.

이 고장에서는 왕새우와 함께 밥조개가 유명하여 특산으로 사람들의 호평을 받고있다.

이 고장을 나는 둘째아들 영범이와 함께 2000년에 찾아갔다.

밥조개양식에서 크게 성공하여 《밥조개왕》으로 불리우는 사람을 만나보기 위해서였다.

조국에 나오면서 내가 계획하였던 업종은 목재가공업이였다.

그 분야에 어느 정도 파악이 있었고 또 가구에 대한 수요는 일본을 비롯하여 많은 나라들에서 날을 따라 높아가고있었기때문이였다.

그런데 조국에 나와 설비들을 차려놓고 기업을 시작하고보니 일이 뜻대로 진척되지 않았다.

하여 방향을 바꾸어 배를 사서 수산물중계업을 하게 되였다.

처음에는 그래도 물고기와 조개 등 해산물들이 많이 나서 기업이 흥하는것 같았다.

그러나 바다물도 퍼쓰면 줄어든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점차 바다자원이 고갈되면서 기업거래는 힘들어졌다.

수산물중계업을 하던 내가 대방과 신용을 지키기가 간단치 않았기때문이였다.

어느 회사에서 주문한 얼마만 한 수량의 수산물을 언제까지 어디로 운반해오라고 하여 여기저기를 다니며 간신히 마련한 물자를 싣고 출항하려 하면 이번에는 이상스럽게 바다가 기승을 부리군 하였다.

어느 하나도 뜻대로 되지 않아 여간만 속이 타지 않았다.

기업이란 신용이 생명인것이다. 바다날씨때문에 한주일이상이나 출항하지 못할 때면 상대측의 불만은 이만저만이 아니였다.

물론 계약기일을 지키지 못하여 물게 되는 액수도 적지 않았다.

이것도 아니로구나 하고 또다시 방향을 돌리기로 하였다.

그후에도 이런저런 일을 해보았으나 모두 나에게 실패로 인한 좌절감만을 안겨주었다.

초조감과 불안이 항시적으로 나의 몸을 휩싸고있었다.

기업이 흥해야 품은 뜻을 실현할수 있겠는데 이러다가는 정말 많은 자금을 투자만 하다 말지 않겠는가 하는 위구심이 시시각각으로 마음을 괴롭혔다.

《가서 3개월만 있다가 와도 손바닥에 장을 지지겠다.》고 하던 친구의 목소리가 자주 그리고 크게 울려왔다.

하여 언제인가는 해종일 넋없이 바다를 바라보기만 한적도 있었다.

나는 어릴 때 바다라는것을 모르고 자랐다. 내가 살던 지방은 바다와 너무 멀리 떨어져있었다. 그래서 해산물에 대하여서도 잘 알지 못하였다. 라선땅에 나와서야 바다를 마음껏 보게 되였다.

그런데 바다란 참 이상하였다.

기쁠 때 설레이는 바다를 바라보면 그 기쁨은 더욱 커지고 괴로움에 잠겨 바라보면 더 쓸쓸하게 안겨오는것이였다. 마치 인간의 마음을 알아주는것만 같았다.

어느날 나는 또 바다가에 나가 출렁이는 물결을 점도록 바라보았다.

날아예는 갈매기들과 동무하며 일하고있는 양식공처녀들의 모습이 부럽게만 보였다. 아마도 그들은 코노래를 흥겹게 부르며 일하고있을것이라고 여겨졌다.

저 처녀들처럼 바다가양식을 해볼가 하는 생각이 떠오른것은 바로 그 순간이였다.

제손으로 바다가양식을 진행하면 다른 누구를 바라볼것도 찾아다니지도 않을것이다. 그리고 농사는 큰비가 오거나 왕가물이 들면 피해를 받을수 있지만 바다에서야 흉풍을 모르지 않겠는가.

하기에 김일성주석님께서는 전쟁이 끝난 다음해 7월에 이곳을 찾아주시였을 때 바다가에 사는 사람은 바다를 뜯어먹도록 하여야 한다고, 저 앞바다가 무척 욕심이 난다고 하시지 않았는가.

위대한 장군님께서도 바다가양식을 장려할데 대하여 많은 가르치심을 주시였다는것을 나는 이미 알고있었다.

그런데 여기에 너무도 주의를 돌리지 않았던 나였다.

바다가양식을 하자! 하여 많은 외화도 벌고 놀고있는 바다를 수산자원이 풍부한 《복덩이》로 만들자!

세계가 21세기의 《백색농업》이라고 중시하는 바다가양식이 아닌가.

앞이 환히 트이였다. 왜 그때에야 이런 궁냥이 솟아났는지.

나는 새로운 결심을 가지고 사색을 펴나갔다.

제일 관심을 끈것은 밥조개였다.

단백질이 많고 맛이 좋은 밥조개는 투자는 좀 많이 들지만 더우기 라선앞바다는 오염되지 않아 밥조개의 서식에 유리한 적지였고 국제시장에서의 수요도 높았다.

여러가지 준비사업을 긴장하게 진행하고 최종적으로 확인하기 위해 어느 한 나라에서 살고있는 바다가양식부문의 박사선생을 초청하였다.

그는 웅상바다가를 비롯한 여러곳을 돌아보면서 수질과 먹이상태를 알아보고 충분히 가능하다는것을 확언하였다.

밥조개양식에 대한 결심이 더욱 굳어진 나는 많은 자료들과 참고서들을 보면서 양식기술을 높여나갔다.

그 과정에 밥조개양식에서 크게 성공하였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는것도 알게 되였다.

그가 바로 대련에 있었다.

그리하여 그를 만나 양식장을 직접 보고 경험도 듣고 실무적인 문제들을 배우기 위해 대련으로 찾아가게 되였던것이다.

《밥조개왕》은 료동반도에서 조금 떨어진 대련의 어느 한 섬에서 밥조개양식을 하고있었다.

이미 련락을 한 상태여서 그는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성이 손씨인 그는 나이가 나보다 좀 적어보이는 남자였는데 원래는 어부생활을 하면서 매우 어렵게 살았다고 하였다.

그러던 그가 3~4년만에 밥조개양식에서 성공하여 일약 《밥조개왕》으로 명성을 날리게 되였고 몇억이나 되는 구좌를 가지고있는 부자로도 되였다.

드넓은 바다우에 양식장이 가없이 펼쳐져있었다. 이렇게 큰 기업을 펼치느라 그가 얼마나 고군분투하였겠는가 하는것이 가늠이 갔다.

손씨가 타고 다니는 승용차는 매우 값비싼것이였고 생활수준도 여간만 높지 않았다.

그의 몸에서는 《샤넬》5호 향수냄새가 풍기고있었고 화장실에는 이름난 프랑스의 《란콤》화장비누와 크림, 미국의 《카발리에》살결물, 《숄레》비누 등 최고급의 화장품과 위생도구들이 위세를 돋구며 《정렬》해있었다.

우리가 왔다고 환대하며 식사에도 초청하였는데 식탁에는 이름난 흰철갑상어알과 게사니간을 가공하여 만든 료리, 훈제한 스코틀랜드연어, 상어지느러미료리 등과 프랑스산 샴팡주, 미국산 맥주 《부드와이저》도 올라있었다.

손씨는 자기의 능력과 수완에 자부를 가지고있었고 축적된 재부에서 긍지를 느끼고있었으며 차례진 생활에 크게 만족하고있었다.

그는 자기가 어떻게 되여 밥조개양식에 눈을 돌리게 되였고 생산량을 늘이기 위해 어떤 기술을 도입하였으며 어떤 마음을 가지고 어떻게 일하였는가에 대하여 장시간에 걸쳐 이야기해주었다.

성의를 다하여 자기의 양식경험과 기술실무적문제들에 대하여 일일이 알려주었다.

기업가들이라면 누구에게나 남들에게 공개하지 않는 《영업의 비밀》이라는것이 있다.

그런데 그는 나와의 대화에서 그런 관념이 거의 없었다.

그것이 나에게 《아무리 그래도 선생은 성공하지 못할것》이라고 암시하는것만 같이 느껴지는것은 왜서인가.

내가 잘못 보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밥조개양식을 남들은 성공시킬수 없는 자기만의 독점물처럼 여기는것 같았다.

득의연한 기색이 그것을 잘 말해주고있지 않는가.

내가 조선족이라는것을 알고는 그 기색이 더 짙었다.

그는 수확한 생산물도 보여주면서도 만족한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그러면서 나를 가엾게 바라보며 걱정어린 말까지 해주었다.

겉으로 보고 말로 듣기에는 쉽게 생각되는데 실지로는 헐치 않다, 남성들도 힘든 일이므로 녀성의 몸으로서는 이 업종에서 성공하기 어렵다, 정 하겠다니 말리지는 않겠는데 그렇다면 시험삼아 자그마하게 시작하라는 등의 충고 절반, 위로 절반의 말이였다.

고맙기도 하였지만 고깝기도 하였다.

돌아오는 길에 그가 한 말들을 다시금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물론 헐한 일은 아닐것이다. 그래서 밥조개양식에서 성공하였다는 사람이 별로 없을것이다.

그러나 무슨 일이든 마음먹기탓이 아닌가. 녀자라고 해도 남자들보다 더 심신을 바치고 꾸준히 노력하면 반드시 성공할것이다. 손씨는 자기의 처지를 개변하기 위해 무진 애를 쓰며 기업을 활성화하였다면 나는 내 조국, 내 민족을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할것이다. 어제날의 어부도 저렇게 성공하여 돈을 꽝꽝 버는데 나라고 왜 못하겠는가.)

자신심이 굳어졌다.

조선동해는 대련앞바다보다 더 맑으면 맑았지 못하지 않다.

오염이 전혀 없어 밥조개의 먹이조건을 풍부하게 해주고 생태환경에도 유리한 조건이 주어져있다.

그가 말한 조건이 혹시 정세와 환경 즉 전쟁과 어려운 경제사정을 념두에 둔것은 아닌지?

그에 대해서 나는 이미 락관하고있었다.

조선사람들은 힘들다고? 이것은 머리가 나쁘다는 말일가? 정말 그런 념두에서 말하였다면 나는 절대로 그것을 인정할수 없었다.

내 자존심을 제일 자극한것은 바로 이것이였다.

나는 원래 조선사람들을 업수이 보거나 리익을 침해하는데 대하여서는 참지 못하는 성미였다.

내가 총경리사업을 할 때이니 30살이 좀 넘었을 때의 일이다.

어느날 나는 한씨라는 농민이 다른 족 사람에 의해 논두렁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였다. 별로 큰 문제도 아닌것을 가지고 시작된 싸움이였는데 가해자는 제가 잘한것처럼 기승을 부리다가 삽날로 그를 내리쳐 실신하게까지 만들었던것이다.

그 소식을 듣고 나는 격분하였다.

나는 친구들과 함께 그 집을 찾아갔다.

우리가 도착하니 한씨는 이미 숨이 진 뒤였다.

사건전말에 대하여 들은 우리는 치를 떨었다.

그런데 이런 상황을 뻔히 알면서도 동포농민들은 어쩌지 못하고있었다. (당시 이 지방의 조선족농민들은 단결력이 부족하여 무맥하게 살고있었다.)

그날 나는 한씨의 집앞에 있는 한그루의 나무를 보며 쓸쓸한 마음을 금할수 없었다.

마가을철이여서 잎이 진 나무는 한산한감을 주었는데 놀랍게도 몇개의 황이 든 잎이 그때까지 남아있었다.

그러나 언제 가지에서 떨어져나갈지 모를 그 가랑잎들은 애처롭게 그리고 간신히 가지에 매달려 미풍에도 떨고있었다.

한씨의 안해와 자식들의 앞날을 보는것만 같아 마음이 몹시 불안해졌다.

풍전등화와 같은 그들의 뻔한 앞날을 두고 외면할수 없었다.

우리는 조선족농민들을 불러일으켜 죽음을 초래하게 한 범인을 법정에 내세우고야말았다.

그리고 피해자의 유가족들의 생활상문제를 정부에 강력히 제기하여 어느 정도 해결도 받았다. (한씨의 집은 생활형편이 몹시 어려웠다. 장례를 지낼 돈도 변변치 못하였다. 한창 커야 할 아이들의 영양상태도 좋아보이지 않았다. 그애들의 이름은 《수》자돌림이였다.)

생때같은 남편, 아버지를 잃은 그들의 상처입은 마음을 그것들로 모두 아물게 할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위안은 되였다.

한씨의 집에서는 자기들의 억울한 한을 풀어준 나를 비롯한 사람들을 정말 은인처럼 대해주었다.

나를 붙들고 한씨의 안해가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무릎꿇고 절을 하며.

그날 나는 《밥조개왕》에게서 민족적멸시감을 느꼈지만 즉석에서 말로 대항하는 낮은 수의 방법을 택하지 않았다.

밥조개양식에서 성공하는것이야말로 가장 드센 《타격》이며 천만마디의 말보다 더 위력한 《대답》으로 된다고 생각하였기때문이였다.

나는 밥조개양식에서 기어이 성공하리라는 결심을 굳히며 조국으로 돌아왔다.

 

이전페지   다음페지

[돌아보는 인생길] 편집자의 말 [돌아보는 인생길] 왜 펜을 들게 되였는가 (머리말을 대신하여) [돌아보는 인생길] 1. 넋을 따라서 -지나온 인생길- [돌아보는 인생길] 1. 넋을 따라서 -선 택- [돌아보는 인생길] 1. 넋을 따라서 -《푸른 신호등》- [돌아보는 인생길] 1. 넋을 따라서 -출발- [돌아보는 인생길] 2. 내 조국 삼천리 -조국땅에서의 첫날- [돌아보는 인생길] 2. 내 조국 삼천리 -라선땅은 어떤 곳인가(1)- [돌아보는 인생길] 2. 내 조국 삼천리 -라선땅은 어떤 곳인가(2)- [돌아보는 인생길] 2. 내 조국 삼천리 -화창한 봄날에- [돌아보는 인생길] 2. 내 조국 삼천리 -백두산정에서- [돌아보는 인생길] 2. 내 조국 삼천리 -더 하고싶은 이야기(1)- [돌아보는 인생길] 2. 내 조국 삼천리 -《황금의 삼각주》- [돌아보는 인생길] 2. 내 조국 삼천리 -두만강은 무엇을 말하는가- [돌아보는 인생길] 2. 내 조국 삼천리 -낯설은 대지- [돌아보는 인생길] 3. 바다물은 한모금만 맛보아도 -녀성기업가의 이야기를 들으며- [돌아보는 인생길] 3. 바다물은 한모금만 맛보아도 -원천- [돌아보는 인생길] 3. 바다물은 한모금만 맛보아도^bb -오늘의 기적을 보려거든- [돌아보는 인생길] 3. 바다물은 한모금만 맛보아도^bb -공원에서 만난 처녀- [돌아보는 인생길] 3. 바다물은 한모금만 맛보아도^bb -더 하고싶은 이야기(2)- [돌아보는 인생길] 3. 바다물은 한모금만 맛보아도^bb -《아리랑》소감- [돌아보는 인생길] 4. 희망안고 걸어온 길^bb -첫걸음- [돌아보는 인생길] 4. 희망안고 걸어온 길^bb밥조개에 기대를 걸고(1) [돌아보는 인생길] 4. 희망안고 걸어온 길^bb밥조개에 기대를 걸고(2) [돌아보는 인생길] 4. 희망안고 걸어온 길^bb경모의 마음 [돌아보는 인생길] 4. 희망안고 걸어온 길^bb더 크게 내짚은 보폭 [돌아보는 인생길] 5. 위인의 초상을 보다^bb충격과 경탄 [돌아보는 인생길] 5. 위인의 초상을 보다^bb매혹의 분출 [돌아보는 인생길] 5. 위인의 초상을 보다^bb무엇을 보았는가 [돌아보는 인생길] 5. 위인의 초상을 보다^bb젊어지는 내 조국 [돌아보는 인생길] 내 인생의 주제가 (맺는말을 대신하여)
←되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