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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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0026호명령을 하달하면서 최고사령관동지께서 줄것이란 명령서밖에 아무것도 없다고 하시였을 때 공사장의 책임일군들은 그 말씀을 그대로 믿었다. 시련을 겪고있는 국가가 더 이상 보장해줄것이 없다는것은 뻔한 일이였다.
최근 2개월동안 공사장에는 한대의 착암기도 한대의 스키프와 광차, 한대의 자동차와 한톤의 기름도 본래의 계획분외에 더 보충된것이 없었다. 공사를 책임진 지휘관들은 설비의 리용률을 최대로 높이는외에 몇곱으로 불어난 작업량을 해제낄 기본수단을 인력으로 보았다.
그들은 굴진 막장수, 말하자면 작업단면을 몇배로 늘이고 매 작업장들에서 3분의 1의 인원을 소환하여 새로운 굴진조를 뭇고 착암기대신에 정대와 함마에 의거하는 수굴을 시작하며 여기서 나오는 방대한 버럭은 등짐으로 져내기로 하였다. 그들의 타산은 모든 작업구간에서 매일 합계 50여메터의 굴진을 보장하는것이였다. 그렇게 되면 매달 1천 5백메터, 1년이면 이제부터 해야 할 총 굴진량인 1만 6천메터를 돌파할수 있고 여기에 콩크리트충진을 따라세우면 제0026호명령을 수행할수 있게 된다는것이였다. 이것은 모든 설비와 기계가 만부하로 돌고 모든 군인들이 한초의 여유도 없이 만가동할것을 전제로 한 타산이였다. 그들은 기계보다 군인들을 더 믿었다. 기계에는 한계가 있지만 인력에는 그것이 없다고 보았다. 그들이 타산한 예비는 사실상 그것밖에 없었다.
최고사령관명령 제0026호를 관철하기 위한 군정간부회의에서는 극단적인 대책을 취하기로 결정하였다.
매 작업장들에서 3교대 대신에 맞교대로 넘어가기로 했고 수굴을 하는 군인들이 단번에 1천 5백회의 함마질을 하며 두사람이 밀던 광차를 혼자서 밀기로 하였다. 경사각도가 30도이상에 길이가 수백메터가 넘는 작업갱으로 등에 버럭을 지고 한교대에 10회이상 오르내리기로 하였다.
비상회의는 이러한 결정을 채택하면서 모든 군인들에게 육탄이 될것을 호소하였다. 몸과 마음을 다 내대이라, 사상과 의지, 육체의 마력을 다 내라, 매개 군인들이 자기 몸에서 바칠수 있는것은 다 바치라, 한방울의 피도 한방울의 땀도 수억개 세포의 하나하나도 깡그리…
이것은 사실상 군인들의 사상을 예비로 보고 내린 조치였다.
헌데 심철범은 이미 사상에도 예비가 없다고 하였다. 최중권장령으로부터 공사지휘를 인계받은 후 첫 정황을 료해하고 내린 결론이였고 두달여에 걸치는 현지지휘과정에 그 결론은 더욱 굳어졌었다.
그가 보건대 군인들은 초인간적인 정신력으로 일하고있었다.
그러나 심철범은 이제 와서 자신이 속단했다는것을 절감했다.
어느날 그는 굴진막장에 들어갔다가 전사들과 함께 돌가루를 하얗게 뒤집어쓰고 일하는 사관 한명을 보게 되였다. 그런데 검댕이가 묻어있어 얼굴을 알아볼수 없었다. 사관의 아래우를 훑어보던 심철범의 눈길은 그의 한쪽발에 가멎었다. 신발이 없었다.
《중장동지, 소대는 지금 버럭을 처리하고있습니다.》 하고 사관이 보고했건만 심철범은 귀등으로 흘리며 허리를 구부리고 온통 상처투성이가 된 사관의 발등을 쓰다듬으며 성난 어조로 물었다.
《동문 신발을 어쨌어?》
사관은 쑥스러운듯 피멍이 지고 상처자리가 엉켜붙은 한쪽발등을 손바닥으로 슬며시 덮고나서 《장령동지, 거치장스러워서 버렸습니다.》 하고 대수롭지 않은투로 말했다.
이때였다. 한 전사가 심철범앞에 나섰다.
《장령동지, 제가 말해도 좋습니까?》
심철범은 전사의 목소리에서 어딘가 항변하는듯 한 느낌을 받으며 그를 유심히 뜯어보았다. 키는 거의 사관만큼 자랐으나 아직 코밑에 솜털이 보시시했는데 입술은 터갈라져 피가 내배여있었다.
《여, 호남이!》
사관이 엄하게 말하며 제지시키려 하자 전사는 사관의 팔을 뿌리쳤다.
(허, 당돌한 녀석…)
심철범의 입가에는 저도모르게 미소가 피여올랐다가 사라졌다.
《말해보라구.》
심철범은 머리를 끄덕였다.
《옛. 장령동지, 우리 부소대장동진 신발 한짝을 하늘로 〈정배〉를 보냈습니다.》
《하늘로 〈정배〉를 보내다니?!》
《갑자기 굴천정에서 크지 않은 붕락이 지며 조명등을 깨놓았습니다. 그래서 한 동무가 인차 조명등을 가지려 굴밖으로 뛰여나갔는데 글쎄 우리가 붕락을 다 처리할 때까지도 그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때 부소대장동지에게 불도 없는데 잠간 허리쉼을 하자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부소대장동진 자기의 신발을 벗어 불을 붙이고 계속 착암기를 돌렸습니다. 얼굴이 고무연기에 꺼멓게 그슬리는것두 모르구 말입니다. 그렇게 일하다보니 신을 벗은 한쪽발은 돌부리에 찔리우고 쓸리우면서 상처까지 입었습니다.》
부소대장에 대한 찬양이 아니라 《고소》였다.
심철범이 전사의 심정을 가늠해보려고 그를 다시한번 뜯어보자 그 전사는 막장 한쪽 귀퉁이로 가더니 밥그릇 하나를 들고 앞으로 다가왔다.
《부소대장동진 아침식사도 얼마 안들었습니다. 이게 제가 가지고왔던 운반식삽니다. 〈팥밥〉이 되고말았습니다.》
순간 심철범은 가슴이 짜릿해났다.
전사가 내보이는 식기에 담긴 밥은 몇술 뜨다 만것이였는데 돌가루가 뽀얗게 덮여있고 팥알 같은 돌부스레기까지 다닥다닥 덧놓여있어 전사의 표현처럼 《팥밥》이였다. 얼굴이 그을리고 발이 피터지고 끼니조차 잊고 일하는 전사들, 각급 참모부와 정치부들을 통해 보고받는것외에 심철범자신이 직접 목격한 사실만도 수없이 많았다.
도끼밥이라고 하면 도끼로 나무를 찍을 때 생기는 나무부스레기를 생각할것이다. 그러나 심철범이 본 도끼밥은 그런것이 아니였다. 어느 구분대 군인들이 대소한의 강추위를 박차며 수십도의 경사에 해발 수백메터를 헤아리는 눈덮인 산마루에서 송전선공사를 진행할 때였다. 그때 군인들은 줴기밥꾸레미를 하나씩 허리춤에 차고오르군 했는데 한나절 땅을 파고 전주대를 세우고 나면 어느새 그 줴기밥은 돌덩이처럼 땡땡 얼군 했다. 그래서 군인들은 점심시간만 되면 모닥불을 피워놓고 그 주위에 둘러앉아 꽁꽁 언 줴기밥을 통나무에 올려놓은 다음 도끼로 깼다. 이렇게 쪼갠 감알만한 크기의 언 밥덩이를 쇠꼬챙이에 꿰서 모닥불에 녹여 입에 넣군 했다. 아직 속이 채 녹지 않은 그 밥덩이들은 씹을 때마다 서걱서걱했다.
지휘관들이 그것이 마음에 걸려 군인들에게 언밥을 군용밥통에 넣어 푹 녹인 다음 식사하도록 엄하게 지시했지만 군인들은 한초가 귀한 때에 언제 그럴새가 있는가, 《도끼밥》이 더 별맛이라고 하면서 맛있게 먹군 했다. 그들은 먼 후날 이렇게 《도끼밥》을 먹던 오늘을 옛말처럼 이야기하게 될 때가 올것이라고 유쾌하게 말을 주고받는것이였다.
심철범은 《3일천하신발》도 보았다.
군인들은 막장에서 일할 때 칼끝 같은 돌부리들과 쇠꼬챙이가 신바닥을 꿰뚫고 올라오는것을 막기 위해 통졸임통의 앞뒤뚜껑을 따낸 《통졸임통덧신》을 신어보았다. 그런데 이 《덧신》도 3일이 지나자 밑이 째지고 구멍이 뚫리여 판이 나군 했다. 군인들은 기대를 걸고 만들었던 이 《통졸임통덧신》이 자기의 《전투사명》을 3일밖에 수행하지 못하였다고 하여 그 《덧신》을 《3일천하신발》이라고 불렀다.
바로 지난 밤에도 심철범은 우리 군인건설자들의 정신력이 어떤것인가를 뼈에 사무치도록 느끼였다. 그는 19갱의 막장에서 현장지휘를 하고있었다. 밤 10시가 되였을 무렵이였다.
조구통옆에서 지레대로 큰 돌들을 들춰내고있던 구분대장은 갑자기 돌덩이들이 무데기로 굴러내려오는 바람에 불길한 예감이 들어 버럭무지 꼭대기를 피뜩 올려다보았다. 그러자 너무도 뜻밖의 광경에 소스라치도록 놀랐다. 경사면을 타고 한립방메터정도의 큰 바위돌이 막 굴러내려오고있었다. 그 돌은 조구통에 버럭을 밀어넣느라 부지런히 호미질을 하고있는 서너명의 군인들을 겨누고있었다. 초를 다투는 그 위급한 순간 구분대장은 《뒤를 보라!》 하고 웨치며 비호같이 몸을 날려 앞의 군인을 냅다 걷어차면서 량옆에 있는 전사들을 오른손과 왼손으로 콱 밀쳐냈다. 이어 한옆으로 몸을 빗서려던 그는 돌부리에 걸리여 조구통을 가로질러댄 동발목들우에 나딩굴었다. 바로 그때 바위돌이 쿵하고 떨어지면서 그가 타고 넘어진 동발목들을 때렸다. 그 충격에 몇개의 동발목들이 세차게 튀여올랐다. 그것에 실려 허궁 떴던 구분대장은 다시 떨어지며 공교롭게도 오른다리가 허벅다리부위까지 동발목짬에 끼였다. 이와 거의 동시에 바위돌이 지쳐내리며 그의 다리가 끼인 동발목들을 사정없이 내리눌렀다. 동발목짬에 끼운 그의 허벅다리군복바지자락은 순식간에 선혈로 화락하니 젖어들었다.
구분대장의 발길에 채워 한쪽으로 나딩굴었던 전사가 그 몸서리치는 광경을 보고 사람이 다쳤다고 다급하게 웨쳤다. 그 소리에 놀란 군인들이 돌부리를 걷어차며 조구통이 있는쪽으로 달려왔다.
엎드린채 두손으로 버럭을 꽉 움켜쥐고 고통을 참고있던 구분대장은 그들을 보며 힘겹게 상반신을 일으켰다. 그리고 자기에게 모여드는 군인들을 향해 한손을 내저으면서 부르짖었다.
《동무들! 오지 말고 전투를 계속하라! 이건 명령이요.》
달려오던 군인들은 주춤 멈춰섰다. 그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망설이였다.
구분대장의 목소리가 재차 그들의 귀전을 때렸다.
《내 말을 들었는가?! 0026호명령은 무조건 관철해야 하오. 전투를… 계속하라!》
현장지휘부에 있던 심철범이 군의와 함께 다급히 달려온것은 바로 이무렵이였다.
새까맣게 죽은 얼굴, 꽉 다문 입새로 흘러내리는 피, 버럭을 움켜쥔채 부들부들 떠는 손… 구분대장의 그 모습은 심철범의 가슴에 못을 박는것 같았다.
그는 군인들에게 빨리 바위돌을 굴려내라고 지시하고나서 구분대장앞에 무릎을 꺾고앉으며 그의 두손을 꽉 그러쥐였다.
그에게 구분대장은 몹시 힘겹게 말했다.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께서 결심하신 일이 언제 한번 안된적이 있습니까. 최고사령관동지께서 결심하시면 병사들은 무조건 합니다!》
당이 번개치면 우뢰로 대답할줄 아는 군인건설자들은 바로 이런 억척의 신념을 가슴속에 굳히며 횡포한 자연과 맞서 결사전을 벌려나갔다. 그들은 분당 수십톤의 압력으로 쏟아지는 차디찬 석수를 한가슴으로 밀막으며 착암전투를 벌렸고 하루에도 몇번씩 무너앉는 붕락에 치명상을 입고 쓰러졌다가는 열번, 백번 다시 일어나 수천립방메터의 버럭들을 밖으로 끌어내면서 굴뚫기를 중단없이 밀고나갔다. 군인건설자들은 굴속에 물이 차면 떼목우에서 착암을 하고 함마질을 했으며 바로 그 막장속에서 쪽잠을 자고 줴기밥을 먹으며 낮에 밤을 이어 천공작업, 발파작업을 벌려나갔다. 뜻하지 않은 일로 두손을 쓸수 없게 되면 어깨로 착암을 했고 어깨로 물속에서 버럭광차를 밀었다. 오염된 물에 중독된 발이 퉁퉁 부어올라 더는 운신조차 할수 없게 되였을 때나 그리고 붕락에 두발이 심한 부상을 입었을 때도 무릎걸음으로, 등으로 광차를 밀군 하였다. 그들의 소박한 념원은 담배 한대를 꼬나물고 깊숙이 들이빠는것이였다.
하지만 석수로 허리까지 물이 차고 공기마저 젖어있던 갱내에서 그것은 바라볼수 없는 일이였다. 갱내에 들어가는것이 엄금되고있던 군인가족들과 녀성군인들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달라붙었다. 그들은 밖에서 담배에 불을 붙여가지고 빨면서 갱으로 들어가 자기 남편과 병사들의 입에 물려주었다.
금강산발전소건설에 달라붙은 군인들과 그 가족들의 가슴속에 간직된것은 최고사령관동지의 명령을 관철하기전에는 조국의 푸른 하늘을 보지 말자는 신념이였다. 그러기에 폭파작업중 뜻하지 않게 열손가락이 잘리워도 《그래도 내가 할 일이야 있지.》라고 하며 한 손목에 고리가 달린 끈을 감아매고 온종일 정대를 잡아주며 막장을 떠나지 않는것이였다.
비장한 열의가 고조되는 작업장을 돌아보는 심철범은 가슴이 떨리였다.
비상군정간부회의가, 아니 바로 자기가 취한 극단적인 조치는 이미 초인간적인 정신력을 발휘하고있는 군인들에게 더 높은 요구, 엄격하고도 무자비한 요구를 제기하고있는것이다. 그러나 벌써 결정은 채택되였고 관하 구분대들에 하달되였다.
그 결정은 100리 작업장에 널려있는 수만명 군인들을 하나같이 놀래웠고 긴장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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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전대미문의 결정앞에서 주저하는 군인도 있었다.
전사 김남철은 질통을 허리에 깐채 버럭더미우에 누워있었다. 금방 3백메터의 작업갱(사갱)을 50키로그람의 버럭(그는 현장 군의소의 몸무게를 재는 저울에 그것을 떠보았다.)을 지고올라온 그는 버럭을 다 쏟지 못한채 질통을 벗을 새도 없이 까딱 않고 생각에 잠겼다.
지난 밤 꿈자리가 뒤숭숭하였다. 고등중학교시절에 한책상에서 공부하던 딱친구가 민경이 되였는데 침입하는 간첩일당을 잡고 영웅이 되여 모교에 돌아와서 상봉모임을 하고있었고 어찌된 일인지 땀에 절고 돌가루투성이 된 색바랜 군복을 입은 자기는 제일 뒤줄 한쪽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고개도 들지 못하고 있었던것이다.
(사실일지도 모른다. 하다면 나는 이게 뭔가?…)
눈을 들고 주위를 돌아보니 다른 구분대가 퍼낸 아찔한 버럭산이 앞을 막았고 린접갱의 권양기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저 버럭산을 쌓는데 10년이 걸렸다는데 어떻게 1년사이에 저런 버럭산을 또 하나 쌓는단 말인가? 틀림없이 그만한 시간이 더 걸릴는지 모른다. 그렇게 되면 나의 군사복무에서 남는것은 무엇인가?…)
그는 벌떡 일어났으나 마음은 개운치 못하였다.
그날로부터 하루 이틀 시간이 흘렀으나 착잡한 생각은 눈덩이 굴리듯 커만지면서 점점 무겁게 가슴에 매달렸다.…
남철은 갱막장에 질통을 진 허리를 구부리고 서있었다. 담는 조가 질통에 버럭을 채워주기를 기다리면서 고개를 비틀듯이 돌리고 눈을 치뜨며 굴천정을 쳐다본다. 그의 눈길이 미친 아찔한 (이 굴의 직경이 10메터이다. 군인건설자들은 4층 아빠트높이만한 대형물길굴을 100리나 뚫어야 하는것이다.) 천정에는 《이슬》이 돌기 시작한다. 붕락이 오기전 바위에 짐이 실리면서 껍데기가 가마치처럼 일어나는 그 무시무시하고 끔찍스러운 현상이 일어나는것이였다. 남철은 질통이 버럭으로 다 차자 당장 붕락이 덮치지 않는다 해도 바위쪼각이 숫구멍에 내리꽂힐듯 한 아찔한 감을 느끼며 서둘러 막장을 떠났다.
다음은 허리치는 석수를 헤염치듯 건느며 《황색노다지》구간을 지난다. 《황색노다지》란 말은 남철이가 지어낸 말이다. 그들이 맞다드는 암석층들중에는 누르스름한 황색암반이 있었다. 돌굳음세기가 청색암반보다 낮은 이 황색암반은 발파구멍을 뚫기는 쉬웠으나 그 대신 붕락위험이 많았다. 군인들은 황색암반이 비록 위험성은 있으나 공사속도를 높이는데서는 그저 그만이라고 하면서 좋아하였다. 남철은 그러한 황색암반을 《황색노다지》라고 랑만적으로 표현하였다.
《황색노다지》구간을 지나온 남철의 질통에 눌리운 잔등은 진땀으로 즐벅하였다. 힘이 들어서가 아니라 긴장했던탓이였다. 참말 이상한 일이였다. 어느새 《황색노다지》판이 무섭게 여겨지니 말이다. 전에는 굴천정에 《이슬》이 돋고 매 쪼각이 치명상을 입힐수 있는 포탄의 파편과도 같은 바위부스레기가 우박처럼 쏟아지는것도 여기저기서 집채같은 바위가 쿵쿵 소리를 내며 내려앉는것도 전혀 위험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때때로 병사로서는 영웅적최후를 장식할수 있는 《행운》이 차례질수 있다는 생각으로 은근히 흥분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요즘은 그것이 두려웠다.
그는 무거운 마음으로 경사갱의 계단을 밟고 오르기 시작한다. 아니 계단이 아니라 무수한 발길에 매끈매끈하게 닳고 다져 진 걸음마다 발끝에 쥐가 일어나도록 힘을 주지 않으면 안되는 얼음판과도 같은 길을 따라 늘여놓은 쇠바줄을 손으로 잡아당기면서 한발자욱, 한발자욱 힘들게 오른다.
하나, 둘, 셋… 그는 자기의 발자국을 세기 시작한다. 300메터의 경사갱은 1 200개의 발자국을 찍어야 돌파할수 있다.
처음 얼마간은 수자를 불러가는 자기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1 200개라는 셈세기가 끝나면 질통끈에 짓눌린 어깨의 아픔도 발끝에 힘을 줄 때마다 쥐가 일어나는 다리의 켕김도 쇠비린내가 나는 힘든 호흡도 끝나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걸었다. 그러나 얼마 못가서 자기의 목소리도 듣지 못하게 되고 l 200은 고사하고 다문 열개도 세기 힘들어하면서 다리보다 쇠바줄을 잡은 팔에 더 힘을 주며 철봉에 매달려 현수를 할 때처럼 팔, 다리와 배와 어깨, 온몸의 힘을 깡그리 소모하면서 한치한치 톺아올랐다.
남철은 머리속으로 매 걸음마다에서 소모될 카로리량을 계산해본다. 어릴때부터 수재라고 불리워 온 그는 고등중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으로 가게 되였지만 해군에서, 대좌로 있는 아버지의 힘을 빌어서 군대에 입대하였다. 아버지처럼 해병이 되여 우리 령해를 침범하는 적들의 함정과 싸워보고싶었던것이다. 아들의 자립성을 키워주느라고 웬간한 부탁은 다 막아치우던 아버지 김동환은 인민군대입대를 도와달라는 부탁만은 기꺼이 들어주었다. 그러나 그 이상의것은 도와주지 않았으니 남철은 지망하던 해군이 아니라 《건설부대》에 배치되였다.
그는 카로리소모량이 엄청나다는것을 쉽게 계산하였다. 병사의 공급량으로는 어방 없는것이였다.
그러나 좋다. 체중이 한두키로그람 내린다고 죽기야 하랴. 그는 이렇게 결심하고 묵묵히 걸어갔다.
앞에는 다부지게 생기고 얼핏 보아서는 전혀 힘들어하는 기색이 없는 문학수분대장이 걸어가고 뒤에는 중대장 김철종이 다른 사람보다 한뽐 더 긴 길다란 팔을 내밀어 자기 질통을 밀어주면서 따라오고있었다.
왜 작업대렬이 이렇게 되였는지 모를 일이였다. 대체로 분대장과 자기사이에는 두서너명의 대원이 끼워있었고 중대장은 자기로부터 수십명 건너서 중대대렬의 맨 끝에서 움직이군 했던것이다.
남철은 은근히 속이 켕기였다. 그들이 자기의 속마음을 알아차리고 곁에 붙어있는것처럼 생각되였다. 그는 곧 마음속으로 화를 내며 자기를 질책하였다.
분대장이나 중대장은 그저 너그럽게 《힘을 내라구. 남철이!》 하고 말할뿐이였다.
남철은 마음을 다잡았다.
저기 갱입구만을 생각하자. 거기만 나서면 버럭을 쏟아버리고 시원한 공기를 마음껏 들이키게 된다. 그러나 그다음은 한숨 쉬고나서 또 갱으로 들어가야 하지 않는가? 그리고 또 래일은? 그는 또다시 생각하였다. 나의 희망은? 해병이 되여 망망대해에서 위훈의 나래를 활짝 펼치려던 그 황홀한 꿈은 정녕 이루어질수 없단 말인가? 건설을 하다가 나의 복무가 끝나고 만단 말인가?
생각은 갱을 떠나서 아버지에게로 날아갔다.
그는 아버지가 장군님을 만나뵙게 된데 대해서도 유명한 노래를 지었다는데 대해서도 소식을 들었다. 그 유명한 노래는 자기 남철이도 유명하게 만들어주었다. 중대동무들은 대렬합창으로 그 노래를 부를 때마다 자기를 부러워하며 영웅처럼 떠받들어주었다.
아버지는 육탄이 될것을 맹세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하고 중얼거리며 그는 생각을 계속했다. 전쟁판에서 그렇게 할것이다. 전쟁판에서… 나도 전쟁판에 서자, 그러자면 전투부대로 가야 한다! 가야 한다! 가야 한다! 남철은 말라드는 입술을 혀로 핥으면서 고집스럽게 이 생각을 계속했다.
가까스로 사갱을 다 올라온 남철은 질통을 깔고 맥없이 누워있다가 문득 떠오르는 생각에 버럭무지를 차고 벌떡 일어섰다.
버럭우에 놓여있던 수지로 만든 안전모가 데굴데굴 굴러 아래로 내려갔다. 남철은 그것을 집어올 생각도 안하고 질통마저 던져버리며 두리번거리였다.
( 다음호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