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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05(2016)년 3월 19일
 

거목을 자래우는 뿌리

 

평양시 중구역 동안고급중학교라고 하면 사람들은 먼저 이 학교에 있는 조기성악반을 생각한다.

사람들의 기억속에 살아있는 이 학교 조기성악반의 졸업생들중에서 지난 시기 수많은 예술인들이 배출되였기때문이다.

이 학교에는 근 30년을 조기성악교단을 지켜오는 조기성악반 분과장 겸 부교장 인민교원 리인희녀성이 있다.

그가 뛰여난 음악적소질과 재능을 가진 싹을 찾아내여 품을 들여 조기성악교육을 준 졸업생들가운데는 국제, 국내음악콩클수상자, 인민배우, 공훈배우들이 여러명이고 5대혁명가극의 주단역배우들, 나라의 주요예술단체들에서 중견으로 활동하는 재능있는 독창가, 음악예술인들이 수십명이나 된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예술교육은 주체예술의 미래를 가꾸는 영예롭고 보람찬 사업입니다.》

함경남도 장진에서 산골마을 아이들을 가르치는 음악교원의 가정에서 태여난 리인희녀성은 어려서부터 노래를 잘 불렀다.

어머니조국은 산골소녀의 재능의 싹을 소중히 여기고 평양예술학교(당시)로 불러주었고 대학을 졸업시켜 우리 나라에서도 손꼽히는 중앙예술단체의 예술인으로 키워주었다.

위대한 장군님의 현명한 령도밑에 우리 나라에서 주체예술의 대전성기가 펼쳐지던 주체62(1973)년 3월 22일, 그날은 리인희녀성의 일생에서 가장 크나큰 행복과 영광이 안겨진 날이였다.

그날 어버이장군님께서는 피바다가극단의 음악무용종합공연에서 인희녀성이 부르는 민요2중창을 들어주시고 가수들을 친히 몸가까이 부르시여 목소리가 참 곱다고 분에 넘치는 평가를 주시였다.

그러시고는 새싹을 찾은것이 참 기쁘다고, 새싹을 잘 키우자고 하시며 그들에게 《도라지》, 《조선팔경가》, 《노들강변》 등 민요곡목들을 지정해주시고 노래형상까지 친히 지도해주시였다.

아직은 미숙하기 그지없는 애어린 싹이 그리도 소중하시여 그토록 크나큰 믿음과 뜨거운 사랑을 베푸시는 어버이장군님, 어버이장군님의 믿음과 사랑은 그의 한생의 삶과 투쟁의 활력으로 되였으며 교육사업의 원동력으로 되였다.

음악예술의 새싹들을 수많이 키워 어버이장군님앞에 내세우는것으로 장군님의 믿음과 사랑에 보답하리라 굳게 결심한 인희녀성은 1987년 1월부터 자기의 초소를 당의 조기성악교육방침을 관철하기 위한 교단으로 옮겼다.

하지만 모든 일이 생각했던것처럼 뜻대로 되지 않았다.

사범교육을 받긴 했지만 교단에 서본적 없는 자신이 꽤 학생들을 가르칠수 있겠는지,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연하였다. 거기에다 교수안, 직관물, 교구비품, 조기성악교육을 위한 설비 등 어느것이나 걸리지 않은것이 없고 누구에게 방조받을데도 없었다.

그러나 이 길에서 그는 물러설수가 없었다.

교육경험이 풍부한 성악교수들을 찾아다니면서 조기성악교육에서 중점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두고 진지하게 토론도 하고 이비인후과 전문의사들과의 상담을 통하여 변성기에 이른 학생들의 성대의 생리적특성을 파악하고 그에 맞게 성악교육을 주기 위한 교수방법을 분과교원들과 토론도 하고 연구하면서 교육방법을 하나하나 세워나갔다.

재능있는 새싹을 고르는 사업은 추천제에 의해서가 아니라 선발하는 원칙에서 해야 한다신 어버이장군님의 교시를 지침으로 삼고 수도교외의 산골학교, 작은 농촌마을학교까지 모든 학교들을 빠짐없이 찾아다니며 뛰여난 음악적소질과 재능을 가진 학생들을 선발하는 사업에 많은 품을 넣었다.

하루종일 피아노건반을 두드리면서 말을 하고 노래를 불러야 하는 성악교수는 다른 과목교수보다 몇배로 성대에 부담을 주고 육체적으로 힘들었다. 하루일을 마치고 저녁에 집에 들어가면 목이 꽉 쉬고 온몸이 물먹은 솜처럼 되여 수저를 들 힘도 없었다.

그래도 쓰러지지 않고 다음날에는 또 밝은 얼굴, 단정한 모습으로 학생들앞에 나섰다.

인희녀성이 분과교원들과 함께 모래속에서 금싸래기 고르듯 선발하여 티끌만 한 사심도 없이 온넋과 열정을 깡그리 쏟아부어 키운 수많은 제자들속에는 국제콩클수상자이며 인민배우인 리향숙, 인민배우 장영옥, 공훈배우 김일황, 공훈배우 리봄순, 재능있는 영화음악가수 홍선화, 김설미, 임지성, 유봉미를 비롯하여 우리 인민이 사랑하는 가수들이 수십명이나 된다.

거목의 억센 줄기와 무성한 잎새, 아름다운 꽃과 충실한 열매는 보여도 거목을 받들어올린 뿌리의 모습은 보이지 않듯이 극장무대에서 맑고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가수들의 우아한 모습과 이름은 누구나 다 알고있어도 훌륭한 가수를 키운 교육자의 이름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누가 알아주건 말건 땅속에서 거목을 위하여 쉬임없이 영양분을 빨아들이는 뿌리와 같이 리인희녀성은 재능의 싹을 찾아내고 그 새싹들을 주체음악예술의 화원을 아름답게 장식할 거목으로 무성하게 자래우기 위하여 한생토록 자신을 묵묵히 바쳐간다.

제1차 전국학생청소년예술개인경연부터 18차에 이르는 전기간 조기성악반은 1등 34명과 2등, 3등입상자를 포함하여 125명의 입상자들을 배출하여 전국적으로 단체 1등상을 수여받았다.

1998년 제7차 전국학생청소년예술개인경연에는 리인희녀성이 직접 교육한 4명의 학생들이 양성, 민요, 대중가요 등 성종별로 모두 1등을 하여 심사위원들과 경연참가자들을 놀래웠다.

조기성악반은 27기에 걸쳐 1 700여명의 졸업생들을 김원균명칭 음악종합대학을 비롯한 예술교육기관들에 입학시켰으며 수많은 졸업생들이 인민군대예술선전대원으로 활동하고 김일성종합대학, 김책공업종합대학을 비롯한 여러 대학들에 입학하여 학생기동예술선동대원으로 활약하였다.

어머니당에서는 오직 어버이장군님께 기쁨드릴 한마음 안고 음악수재들을 키우는 밑거름, 뿌리가 되여 수십년동안 조기성악교단을 지켜온 리인희녀성의 공로를 높이 평가하여 인민교원의 명예도, 선군시대 공로자의 높은 칭호도 안겨주었다.

그의 소원은 주체음악예술의 화원을 만발하게 하는 음악예술인후비들을 더 많이 키워 경애하는 원수님께 기쁨을 드리는것이다.

리인희녀성은 60을 훨씬 넘긴 나이이지만 오늘도 어버이장군님의 세심한 지도를 받으며 주체예술의 대전성기를 열어나가던 1970년대 그때처럼 청춘의 활력과 열정에 넘쳐 살고있다.

 

- 리인희녀성(왼쪽에서 세번째) -

 

본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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