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페지로  손전화홈페지열람기
날자별열람
주체105(2016)년 3월 8일
 

녀성교육자의 영예를 더욱 빛내이겠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 나라 녀성들은 당에 대한 충성심이 높으며 혁명과 건설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있습니다.》

수십년전 홍안의 처녀시절 교원대학을 졸업했었던 나는 몇해후에 가정을 이루고 살면서 사회주의 우리 제도가 얼마나 고마운가를 새삼스럽게 느끼게 되였으며 한생을 교육자로 살기로 결심하였다.

사실 전쟁로병들인 시부모와 영예군인인 남편, 철없는 자식까지 돌보며 교원생활을 한다는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였다. 더우기 교장사업을 할 때부터는 시간이 더 모자랐다. 가정의 주부라는 생각은 항상 머리에서 맴돌았지만 한개 단위를 책임진 일군이라는 자각이 늘 어깨를 무겁게 하였다.

학교교장사업은 참으로 할 일이 많았다. 교육의 질을 높이는 문제, 학생들의 도덕교양문제, 교육환경을 그쯘히 꾸리는 문제, 교원들과의 사업…

어느 하나도 놓쳐서는 안될 사업들이였다.

학교일을 마치고 밤늦게 돌아올 때마다 시부모와 남편에게 미안한 생각이 마음한구석을 무겁게 누르군 했었다. 학교일이 잘되여 한쪽으로는 기쁘기도 하였지만 며느리로서, 안해로서의 도리를 다하지 못하는 송구스런 마음은 가셔지지 않았다. 이런 나를 대신하여 우리 가정의 행복을 꽃피워준것은 고마운 사회주의제도였다. 나라에서는 전쟁로병들과 영예군인들을 자그마한 불편이 있을세라 세심히 돌봐주었다.

그때마다 이 고마움에 보답하기 위해 더 많은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강렬해졌으며 세상에서 제일 훌륭한 우리의 사회주의제도를 빛내이는 앞날의 역군들을 더 많이 키워내야 한다는 신념을 굳게 가다듬군 하였다.

인생의 좌우명을 변함없이 이어가도록 나를 걸음걸음 손잡아 이끌어준 어머니당의 은정은 또 얼마나 뜨거웠던가. 교육자로서 응당 해야 할 일을 했건만 당에서는 나를 공훈교원으로, 시인민회의 대의원으로, 10월8일모범교수자로 내세워주었고 여러차례에 걸쳐 뜻깊은 대회장에도 불러주었다.

나는 심장으로 웨치고싶다. 고마운 어머니당의 품, 고마운 사회주의제도에서 사는 우리 조선녀성들보다 행복한 녀성들은 세상에 없다고. 이런 위대한 나라를 위해 지혜와 힘과 열정을 다 바치며 교육자의 영예를 빛내이겠다고.

 

 

사리원시 영광소학교 교장  장 경 숙

 

이전 제목   다음 제목

facebook로 보내기
twitter로 보내기
cyworld
Reddit로 보내기
linkedin로 보내기
pinterest로 보내기
google로 보내기
naver로 보내기
kakaostory 로 보내기
flipboard로 보내기
band로 보내기
←되돌이 추천하기

감상글쓰기

보안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