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국수 - 소나무 (1)
- 사회과학원 민속학연구소 연구사와 평양모란봉편집사 기자가 나눈 대담 -
《사시장철 푸름을 잃지 않고 그 어떤 풍파에도 끄떡없이 억세게 자라는 소나무에는 우리 민족의 기상, 우리 국가의 강인성이 그대로 비껴있습니다.》
기자: 조선의 국수 소나무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알고싶어하는 독자들을 위하여 오늘 이 자리를 마련하였는데 먼저 소나무의 생태학적특성에 대하여 이야기를 부탁한다.
연구사: 소나무는 우리 나라에서 기원된 수종으로서 우리 나라 산림수종들가운데서 분포면적과 개체수가 가장 큰 몫을 차지하고있는 나무이다. 우리 나라 북부의 높은 산지대를 제외한 해발높이 800m아래의 넓은 지역에서 자라며 토양에 대한 요구성이 높지 않다.
이런것으로 하여 소나무는 대동강문화의 발생초시기부터 우리 나라의 자연풍경을 대표하였다.
기자: 소나무는 예로부터 우리 인민의 생활과 밀접히 련관되여 조선민족의 지나온 행로에 지울수 없는 뚜렷한 자욱을 남기지 않았는가.
연구사: 그렇다.
우리 인민은 푸른 잎새 변치 않고 설한풍을 꿋꿋이 이겨내는 소나무의 굳세고 대바른 모습에 민족의 의지와 기개를 비추어보았으며 소나무를 만난을 이겨내고 오래 사는 장수의 상징의 하나로 꼽아왔다.
고구려시기의 무덤인 력포구역 룡산리 1호무덤과 4호무덤의 벽화, 고려시조왕 왕건의 무덤벽화에 소나무가 그려진것을 놓고봐도 우리 선조들이 소나무를 좋아하였으며 신성시되였다는것을 잘 알수 있다.
이름난 화가 솔거가 황룡사의 벽에 그린 로송이 얼마나 생동하였던지 날아가던 새들도 진짜 소나무로 여기고 거기에 앉으려다가 벽에 부딪쳐 떨어졌다는 설화가 오늘도 옛말처럼 전해지고있는 사실이나 《해동역사》에 발해사람 대간지가 소나무풍경을 잘 그렸다는 기록이 적혀있는것은 소나무가 산수풍경의 기본묘사대상이였음을 잘 보여주고있다.
기자: 소나무를 사랑해온 우리 인민의 사상감정은 문학작품들을 비롯한 문화생활유산에도 비껴있다고 본다.
연구사: 임진조국전쟁시기 이름난 의병장이였던 사명당은 《청송》이라는 시에서 《소나무 푸르구나 초목의 군자로다. …슬플 때나 즐거울 때나 변함이 없구나. 겨울, 여름 항상 푸르구나》라고 소나무를 격찬하였다.
이밖에도 많은 사람들이 《설한풍이 있은 뒤에 송백의 정절을 알겠노라.》, 《우리도 청송처럼 변하지 않겠다.》고 하면서 민족의 넋과 기개를 푸른 소나무에 비겨 노래하였다.
우리 나라에는 소나무와 관련된 지명들도 많은데 대표적으로 송도(옛 개성이름), 송도원, 송천리, 송암동, 송악산, 솔섬 등을 들수 있다.
이밖에도 우리 인민은 자식들이 태여나면 이름에 소나무의 기상을 닮으라는 뜻에서 《솔 송》자를 많이 달아주었다.
우리 인민은 민속명절을 비롯한 기쁜 날들에 소나무가지들을 꺾어다 마을에 솔대문을 만들어 세워놓고 경축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력사적자료들은 예로부터 우리 인민이 소나무를 매우 사랑하여왔다는것을 잘 보여주고있다. (계속)
본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