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아가 아닙니다》
《사회생활의 모든 분야에서 서로 돕고 이끌며 단합된 힘으로 전진하는 우리 사회의 본태와 대풍모를 적극 살려나가야 합니다.》
남을 위해 자기를 바치는것을 미덕으로, 미풍으로 여기며 남의 기쁨을 함께 기뻐하고 남의 아픔을 함께 아파하면서 서로 의지하고 방조하며 이끌어 덕과 정으로 맺어지는
얼마전 우리 본사편집부앞으로는 한통의 편지가 날아왔다.
그 편지의 일부를 여기에 적는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평양외국어학원에서 공부하고있는 김영조입니다.
우리모두가 안겨사는 품이 얼마나 고맙고 따뜻한가를 제가 실지 체험한것을 통해 전하고싶어 이렇게 펜을 들었습니다.
얼마전 나는 평양의학대학병원 소아과병동에서 입원치료를 받게 되였습니다.
다 알다싶이 병원에서 제일 즐겁고 흥성이는 때는 아마도 일요일일것입니다.
하지만 나는 병원에 입원했을 때 처음에는 일요일이 하루하루 다가오는것을 두려워했습니다.
나에게는 면회올 아버지, 어머니가 없었기때문입니다.
일찌기 아버지, 어머니를 잃은 나는 평양초등학원에서 마음껏 배우며 자랐고 희망대로 평양외국어학원에 입학하게 되였습
학원에 입학한 후 선생님들과 동무들은 제가 초등학원에서 왔다는것을 알고 얼마나 따뜻이 대해주었는지 모릅니다.
항상 나의 곁에는 동무들이 있었고 그들의 방조와 따뜻한 사랑, 우정속에서 나는 부모없는 설음을 잊고 살았습니다.
하지만 병원에서는…
그런데 그것은 괜한 걱정이였습니다.
글쎄 제가 어려서부터 량부모를 잃고 초등학원에서 자랐다는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호실환자들의 아버지, 어머니들이 자기 친자식을 대하듯 나를 따뜻이 위로해주고 맛있는 과일과 음식들을 권하는것이 아니겠습니까.
병에는 약절반, 마음절반이라고, 힘을 내여 빨리 치료하고 퇴원하여 집에 놀러오라고 다심히 이르기도 하였고 자기 아들에게 주려고 마련했던 특식도 통채로 안겨주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네가 어찌 남이겠는가,
나는 참고참았던 눈물을 왈칵 쏟고야말았습니다. 설음에 겨워서가 아니라 행복에 겨워서 울었습니다.
소아과 과장선생님과 의사선생님들, 간호원누나들도 왼심을 써가며 나의 병치료에 있는 지성을 다했습니다.
지금도 우리 담임선생님은 그때의 일에 대해 이야기하며 너희들은 정말 좋은 세상에서 살고있다고, 이처럼 훌륭한 우리의 사회주의제도를 더욱 빛내이기 위해 공부를 더 잘해야 한다고 말하군 합니다.
나는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우리모두의 삶의 터전이고 행복의 보금자리인 우리 조국, 세상에서 가장 우월한 사회주의제도를 온 세상에 더욱 빛내이는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해 날마다 10점꽃을 활짝 피워가겠습니다.
나는 심장의 목소리로 이렇게 웨칩니다.
사람들 누구나 한가정을 이루고 화목하게 살아가는 이 땅에서 나는 결코 고아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