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페지로  손전화홈페지열람기
날자별열람
주체104(2015)년 10월 29일
 

세월의 푸른 이끼를 털어버린 민족문화유산을 찾아서

 

예로부터 조선의 5대명산의 하나로 불리워온 구월산,

이 구월산에서 두번째로 높은 아사봉 동쪽면 절골에는 구월산의 4대사찰중의 하나인 월정사가 자리잡고있다.

얼마전 우리는 황해남도 안악군 월정리에 있는 이곳 월정사를 찾았다.

수십년세월 대를 이어 구월산 월정사보존관리에 애국의 땀방울을 묵묵히 바쳐가는 안악군민족유산보호관리소 길병호동무가 우리를 맞았다.

월정사로 말하면 지금으로부터 1 000여년전에 지은 절이다.

울창한 수림과 너럭바위들을 정갈하게 씻어내리며 흐르는 협곡의 맑은 시내물을 좌우에 낀 곳에 자리잡고 갖가지 꽃들과 열매주렁진 감나무들, 수백년 묵은 느티나무들에 둘러싸여있는 월정사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마치 고전소설의 한 대목을 읽는듯 한 느낌을 받았다.

월정사에는 그 이름과 관련하여 이런 전설도 깃들어있었다.

먼 옛날 아산이라는 한 스님이 아사봉에서 잠을 자고있었는데 꿈속에 백발의 할아버지가 나타나서 꾸짖기를 나라에 외적이 쳐들어오고 사람들은 먹을것이 없어 죽어가고있는데 여기서 잠만 자면 어쩔셈이냐고 하였다고 한다.

그러면서 손에 무슨 단자를 쥐여주며 동쪽으로 가라고 하였는데 스님이 소스라쳐 깨여나 손을 살펴보니 정말 박달단자가 손에 쥐여져있었다.

그는 너무도 신비스러워 할아버지가 가리켜준대로 동쪽으로 가고 또 갔다.

그러다가 쑥대가 무성한 곳에 이르렀는데 거기에는 한상의 부처가 있었다. 부처의 잔등에는 신기하게도 월정이라고 씌여있었다.

(이것은 부처님이 있는 곳에 사찰을 지으라는 단군님의 계시다.)

이렇게 생각한 스님은 그 자리에 사찰을 짓고 부처를 모시였으며 자기 이름을 월정이라고 고치였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월정이라는 스님이 지은 사찰이라고 하여 이 사찰을 월정사라고 부르게 되였다는것이다.

전설이 전하는바와 같이 월정사 현판과 《재령군지에는 이 사찰을 월정대사가 846년에 처음 세운것으로 되여있다.

정사에는 현재 극락보전을 중심으로 만세루, 명부전, 수월당, 료사가 있으며 석조물로서 존사리탑과 비, 석교비(1707년), 석인, 부도, 월정사영비가 있다.

구월산을 찾는 사람들은 월정사를 보지 않고 구월산을 다 보았다고 말하지 말라고 이야기하군 한다.

그것은 월정사가 한폭의 그림을 방불케 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가지고있을뿐만아니라 력사가 오래고 건물의 구조와 형식이 치밀하게 잘 째여져있어 우리 나라 옛 건물을 연구하는데서 매우 큰 의의를 가지고있기때문이다.

천연이끼 오른 태고적의 유적, 월정사가 어떻게 되여 세월의 푸른 이끼를 털어버리고 그 이름을 세상에 빛내이게 되였는지 우리는 길병호동무를 통해 자세히 알게 되였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민족유산보호사업은 선조들이 이룩한 귀중한 정신적 및 물질적유산을 계승발전시켜 민족의 력사와 전통을 고수하고 빛내이기 위한 애국사업입니다.》

이 땅의 수많은 유적들이 그러하지만 월정사에도 민족의 문화재를 제일로 사랑하시는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의 불멸의 자욱이 력력히 새겨져있다.

주체86(1997)년 9월 어느날,

서해명승 구월산을 인민의 유원지로 더 훌륭하게 변모시키기 위해 명승지일대를 현지지도하시던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오랜 력사유적인 월정사를 몸소 찾으시였다.

만면에 환한 미소를 지으시며 월정사 관리원을 만나시여 사찰의 래력이며 보존실태에 대해 일일이 알아보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월정사는 1 000여년전에 지은 사찰로서 력사가 오래고 비교적 큰 사찰이라고 하시면서 1 000여년전에 지은 건물을 지금까지 원상대로 보존하고있는것은 대단한것이라고, 월정사를 잘 보존관리하였다고 높이 평가하시였다.

이어 극락보전으로 걸음을 옮기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그곳에 보존되여있는 그림들을 몸소 보아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신중탱화》는 200년전에 그린것이고 《칠성탱화》는 100년전에 그린것인데 얼마 퇴색되지 않았다고, 《칠성탱화 금색은 아직 생생하며 그림을 섬세하게 잘 그렸다고, 사람들의 수염은 진짜수염 같다고 하시면서 이 그림만 보아도 우리 선조들이 얼마나 슬기롭고 재능이 있었는가 하는것을 잘 알수 있다고 교시하시였다.

이날 극락보전과 명부전 불상의 얼굴에 금으로 박아넣었던 기미를 일제놈들이 뽑아간 사실을 관리원으로부터 전해들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일제놈들은 수십년동안이나 우리 나라를 강점하고 귀중한 력사문화재부들을 많이 강탈하여갔다고 분격을 금치 못해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월정사를 잘 보존관리하여야 하겠다고 강조하시며 명부전을 보수하면서 못과 꺾쇠를 썼는데 그렇게 하면 안된다고, 절에 못과 꺾쇠를 마구 박아놓으면 오랜 고적다운 맛이 나지 않으며 사람들에게도 좋지 않은 인상을 줄수 있다고, 력사문화유적은 력사주의적원칙에서 원상대로 보존관리하여야 한다고 이르시였다.

위대한 장군님의 말씀을 받아안는 순간 월정사 관리원은 옛 건축물에 남긴 자그마한 부족점을 순간에 알아보시고 력사유적의 보존관리에서 나서는 원칙적인 문제들을 명철하게 밝혀주시는 그이의 비범한 예지와 식견에 경탄을 금할수 없었다.

사실 수많은 참관자들이 이곳을 돌아보았지만 옛 건축물에 못과 꺾쇠가 있는가 하는것은 눈여겨보지도 않았으며 력사유적보존관리사업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조차도 이것이 고적의 품위를 떨구고 사람들에게 그릇된 인식을 줄수 있다는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있었다.

오직 민족의 슬기와 창조적재능이 깃든 문화재라면 그 무엇이라도 귀중히 여기고 대를 이어가며 빛내이시려 그토록 마음쓰신 우리 장군님께서만이 자그마한 허물도 허용하지 않으시고 력사주의적원칙에서 옛 건물을 보존관리할수 있도록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신것이였다.

이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력사유적을 복구할 때에는 력사가 외곡되지 않도록 특별히 주의하여야 한다고, 력사문화유적보존관리사업에서는 력사주의적원칙을 지키면서 허무주의와 복고주의경향을 다같이 경계하여야 한다고 강조하시면서 참된 혁명가가 되자면 자기 나라 력사와 문화에 대하여 잘 알아야 한다, 자기 나라 력사와 문화를 모르고서는 민족적긍지와 자부심을 간직할수 없다고 절절히 교시하시였다.

이렇듯 위대한 장군님의 세심한 지도와 가르치심이 있었기에 월정사를 비롯한 구월산의 력사문화유적들은 나라의 귀중한 재보로 더 잘 보존관리될수 있게 되였다.

가꾸어주는 원예사가 있어 아름다운 꽃을 바랄수 있는것처럼 하나의 력사유적유물도 귀중히 여기고 민족의 자랑으로 내세우는 공화국의 옳바른 민족문화유산보존정책이 있기에 오늘 월정사만이 아닌 이 땅의 수많은 력사유적유물들이 민족의 국보로 자랑떨칠수 있는것이다.

 

 

본사기자

 

이전 제목   다음 제목

봉산탈춤 제1부

[소개기사] 월정사

[상식] 법운암

[기사] 민족문화유산 《리조실록》

[위인의 명언] 《민족의 운명이자 개인의 운명이며 민족의 생명속에 개인의 생명이 있다.》

facebook로 보내기
twitter로 보내기
cyworld
Reddit로 보내기
linkedin로 보내기
pinterest로 보내기
google로 보내기
naver로 보내기
kakaostory 로 보내기
flipboard로 보내기
band로 보내기
←되돌이 추천하기

감상글쓰기

보안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