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준비를 하며

 

며칠전이였다.

학교의 교원들이 다 퇴근하였으나 나는 다음날수업준비를 위해 그냥 분과실에 남았다.

신임교원인 나에게 있어서 다음날수업준비는 여간만 품을 들이지 않으면 안되는 중요한 공정의 하나였다.

다음날 진행해야 할 수업은 불후의 고전적명작 《축복의 노래》에 대한 강의였다.

(어떻게 하면 《축복의 노래》에 담겨진 심원하고도 숭고한 충정의 세계를 학생들의 가슴속에 더 뜨겁게 새겨줄수 있을가.)

이런 생각속에 나는 조용히 강의안을 펼치였다.

수업의 첫 체계는 《축복의 노래》가 나오게 된 경위에 대한 해설이였다.

불후의 고전적명작 《축복의 노래》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어버이수령님께 한자한자 써서 보내신 축복의 편지를 내용으로 하고있다.

주체42(1953)년 5월하순 어느날 아침 우리 조국의 도시와 농촌, 공장과 학교, 병원, 저수지들이 적들의 무차별적인 폭격을 받았다는 보도가 나왔다.

보도를 들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어버이수령님께서 계시는 최고사령부가 념려되여 도저히 마음을 진정할수가 없으시였다.

어버이수령님을 그리는 마음과 수령님의 안녕을 바라는 간절한 소원을 담아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한자한자 편지를 쓰시였다.

《항상 그리운 아버지에게

아버지 그동안 안녕하십니까?

가렬한 조국해방전쟁에서 미국양코배기를 때려부시느라고 얼마나 수고하십니까?

이렇게 서두를 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학원에 오신 이후의 학습정형과 앞으로의 결의에 대하여 쓰시고 다음과 같이 계속하시였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부탁으로서 아버지에게 말씀드릴것은 아버지는 개인의 몸인것이 아니라 전체 조선인민의 수령입니다.

…아버지께서 건강에 류의하고 항공에 주의하고 항상 몸조심함은 전체 조선인민의 행복이며 또한 우리들의 행복입니다.

아무쪼록 건강에 많이 노력하실것을 멀리서 축복합니다.

1953년 6월 1일

김정일 올림》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어버이수령님께 삼가 보내시였던 이 편지의 내용을 그대로 주옥같은 명가사와 명선률로 완성하여 불후의 고전적명작 《축복의 노래》 창작하시였다.

주체50(1961)년 5월 어버이수령님의 구상을 높이 받들고 김일성종합대학 학생들과 함께 와산동-룡성사이 도로확장공사장에로 달려나가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어느날 점심시간에 주변의 한 유치원을 찾으시여 잊지 못할 추억을 더듬으시며 풍금으로 《축복의 노래》 타시였다.


어둡던 강산에 봄을 주시고

조선을 빛내신 아버지장군님

저멀리 하늘가 포연이 서리면

인민은 안녕을 축복합니다

...

《축복의 노래》가 나오게 된 경위에 대해 되새겨보며 조용히 노래를 불러보는 나의 가슴은 절세위인들에 대한 한없는 그리움으로 세차게 끓어번지였다.

부를수록 전사는 자기 수령, 자기 령도자를 어떻게 모시고 받들어야 하는가를 심장으로 뜨겁게 받아안게 하고 새길수록 어버이수령님께 바치신 위대한 장군님의 숭고한 충정과 도덕의리의 세계가 파도처럼 밀려와 흥분을 걷잡을수 없게 하는 노래였다.

어둡던 강산에 봄을 주시고 세계지도우에서 빛을 잃었던 조선을 온 세상에 찬연히 빛내여주신 어버이수령님은 한가정의 아버지이시기 전에 전체 조선인민의 위대한 수령이시며 수령님의 안녕과 건강에 온 나라 가정의 행복도, 찬란한 조선의 미래도 달려있다는것을 력사상 처음으로 밝힌 노래.

진정 불후의 고전적명작 《축복의 노래》어버이수령님에 대한 우리 장군님의 순결무구한 충정의 마음과 혁명적수령관이 집약되여 빛나는 전인민적송가였다.

사연깊은 이 노래를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한평생 사랑하시며 마음속으로 부르고부르시였다.

오늘 불후의 고전적명작 《축복의 노래》위대한 수령님들의 숭고한 뜻을 이 땅우에 찬란한 현실로 꽃피워가시는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 안녕을 간절히 바라는 온 나라 인민의 절절한 념원을 담아 더 높이 울려퍼지고있다.

이런 생각속에 수업준비를 해나가는 나의 마음속에서는 학생들을 수령께 끝없이 충실한 앞날의 역군들로 훌륭히 키워갈 결의가 더욱 굳어졌다.

김형직사범대학부속 평천구역 미래소학교 교원 강금향

 


감상글쓰기

보안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