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과 차별

 

특별과 차별.

글자로 따지면 비록 한글자 차이이지만 그것으로 사람의 인격과 존엄, 운명이 결정된다면 거기에는 심각하고도 극적인 차이가 있다.

특히 신체상약점을 가지고있는 장애자들에게 있어서 사회적으로 어떤 대우와 취급을 받는가 하는것은 생사와 관련되는 심각한 문제이다.

하다면 우리 공화국에서 장애자들은 어떤 대우를 받는가.

아래에 공화국의 한 장애자녀인이 쓴 수기의 일부분이 있다.

《… 내가 과연 누구란 말인가. 가정과 사회의 짐외에는 아무것도 아니였다. 더우기 사회와 집단을 위해 땀을 바치다가 불구가 된것도 아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주의제도는 자그마한 차별도 없이 나의 생을 꽃피워주고 가꿔주고있다.

나는 지난날 다리를 잃고 흘렸던 슬픔의 눈물, 잠시나마 밝고 따뜻한 주위를 보지 못하고 잃어진 두 다리만 멍청히 바라보며 쏟아놓았던 서글픈 그 눈물이 부끄러웠다.…》

17살때 뜻하지 않은 사고로 두 다리를 잃은 때로부터 삼륜차와 함께 서른해를 살아온 장애자녀성의 진정의 고백이다.

그 녀인이 토로한 국가와 사회의 보살핌과 혜택은 과연 무엇이였던가.

인상좋고 인심후한 이웃들속에서 정답게 불리워지던 《우리 3층집처녀》는 시집을 가서 숱한 《친정어머니》들속에 살았다.

도와줄 일이 없는가고 하루에도 몇번씩이나 찾아오군 하는 인민반장어머니, 상점에서 공급되는 상품을 타오는것은 물론 사소한것까지도 다 도맡아해주는 주민들의 인정은 진정 친어머니의 사랑과 정보다 더 뜨거운것이였다.

어찌 이뿐이랴.

귀여운 딸애를 임신하였을 때에는 장애자라고 하여 일반 녀성이 국가로부터 받는 산전산후휴가와는 다르게 거의 9달전부터 평양산원에 입원하여 검진과 치료를 받았다.

그 리유는 오직 하나, 그가 신체장애자이기때문이였다.

바로 그래서 국가와 사회의 보살핌이, 사람들사이에 부어주는 사랑과 정이 그에게는 다른 누구보다 먼저 스며들었고 사회적혜택의 맨 앞자리에도 항상 그의 이름이 먼저 오르게 되였다.

장애자의 인격과 그들의 사회정치적권리와 자유, 리익이 법적으로 담보되여있고 사람들모두가 친혈육이 되여 서로 돕고 이끌어주는것이 국풍으로 되고있는 우리 공화국에서 이런 특별한 대우속에 보람찬 삶을 꽃피워가는 장애자들은 얼마이던가.

《특별》, 이 말과 더불어 사회의 당당한 성원으로 인간의 존엄과 권리를 행사하며 바로 그것으로 행복과 영광의 단상에도 오른 장애자들은 그 얼마이던가.


- 한가지이상의 기술을 소유해가고있는 장애자들(자료사진) -


- 체육과 예술활동을 활발히 벌리는 장애자들(자료사진) -


《특별》,

진정 이 말은 우리 나라 사회주의제도하에서 장애자들모두가 누리고있는 보람찬 삶의 대명사라 해야 할것이다.

장애자들이 사회의 관심과 보호속에 사는가, 아니면 사회의 쓸모없는 존재로 버림받는가 하는것은 그 사회의 진보성과 반동성을 가르는 명백한 기준의 하나라고 할수 있다.

하다면 세계최악의 인권불모지로 화하고있는 남조선에서 사회의 취약계층으로 되고있는 장애자들에 차례지고있는 사회적대우는 과연 어떤것인가.

그것은 갖은 천대와 멸시, 차별이다.

문건에 《장애》라는 딱지만 붙어있으면 그 어디에도 취직할수 없어 초보적인 생존의 권리마저 빼앗기고 대학입학시험에 응시하면 《신체상조건》이라는 리유로 불합격되고 지어는 낳아준 부모들에게서조차 외면당하고있는것이 남조선의 장애자들이다.

신체장애자들이 받고있는 대우에서의 하늘과 땅같은 차이, 《특별》과 《차별》이라는 두 단어를 통해서도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락원과 지옥의 차이를 가늠해볼수 있지 않는가.

본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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