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학교앞에서
나는 지금 창덕학교앞에 서있다.
우리
흙매질을 한 바람벽이며 나무살창에 창호지를 바른 나들문, 쪼각쪼각의 작은 돌기와를 서로 맞물려 얹은 키낮은 지붕이며
학교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소박하고 수수한 이 창덕학교에서 우리
일제와 싸워이기고 나라를 찾으려면 조선을 잘 알아야 한다고 하신 아버님의 뜻을 받아안고 어리신
바로 창덕학교에 다니실 때
그리고 왜놈순사의 탄압에도 견결히 맞서 공연을 진행함으로써 민족의 넋을 지켜주시였으며 학교에 못 다니는 가난한 집 아이들을 방학기간 모여놓고 우리 글과 력사, 지리, 산수, 노래까지 배워주시였다.
동무들을 이끄시고 산세험한 룡악산에도 자주 오르시여 몸과 마음을 더욱 억세게 단련하시며 나라찾을 애국의 큰뜻을 키우시였다.
가지가지의 가슴뜨거운 일화들을 무수히 남기신 창덕학교시절의 우리
옛 창덕학교옆의 오른쪽에 웅장화려하게 치솟아 배움의 글소리 랑랑히 울려퍼지는 현대적인 창덕학교의 모습은 누구에게나 깊은 생각을 불러일으키게 하고있다.
100여개가 넘는 교실이며 실험실과 강당, 기숙사, 그쯘한 후방시설은 물론
너무나도 엄청나게 대조적으로 안겨오는 창덕학교의 두 교사,
아마도 우리
바로 그 아름다운 꿈과 희망을 안으시고 저 작은 학교에서 조국해방의 큰뜻을 키우시였으리라.
5천년민족사에서 가장
참으로 하많은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력사의 학교이다.
리 명 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