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애의 일기장을 보며
며칠전 나는 밤늦도록 불이 켜져있는 딸애의 방앞을 그저 지날수 없어 살며시 문을 열고 들어갔다.
고급중학교졸업을 앞둔 요즘은 자기도 세상을 놀래우는 세계기억력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의 영예를 지니고 람홍색공화국기발을 세계의 창공높이 휘날린 나어린 처녀대학생처럼 되겠다고 하며 책을 펴놓고 밤늦게까지 공부를 하다가 불도 끄지 못한채 잠들군 하는 딸애였다.
방에 불이 꺼지지 않은것을 보니 또 책상우에서 아름다운 꿈을 꾸고있을것이다.
꿈도 많고 포부와 리상도 많은 저 시절에야 왜 그렇지 않으랴.
과연 딸애는 원주필을 손에 쥔채로 팔베개를 하고 어떤 달콤한 꿈속을 헤매고있었다.
책상우에는 여러장의 신문들과 학습장들이 그대로 펼쳐진채 놓여있었다.
나는 딸애가 깨여날세라 조심히 책상우의 책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외국어사전이며 각종 참고서, 학습장 등을 차례로 다 거두고나니 이제는 딸애가 잠들기 전까지 마주하고있은 책 한권이 눈에 띄여 살며시 딸애의 팔에서 책을 빼냈다.
그것은 딸애의 일기장이였다.
나는 천천히 일기장의 글을 읽어내려갔다.
《주체112(2023)년 3월 18일 날씨 개임
오늘도 여전히 날씨는 맑다. 하늘에서는 희망찬 우리 앞날을 축복이나 하듯이
수업이 끝난 후 앞으로 고급중학교를 졸업하고 무엇을 할것인가 하는 자기들의 꿈이야기로 자연히 화제가 옮겨졌다.
꾀꼴새목소리를 가진 은주는 예술인, 학교축구소조원인 현수는 세계적인 축구명수가 되겠다고 하는가 하면 세상을 놀래우는 발명가가 되겠다고 하는 동무들도 있었다.
마지막으로 초급단체위원장인 인해가 조용히 일어섰다. 그로 말하면 학교적으로도 우수한 최우등생이였다.
그러니 그의 꿈과 리상은 우리보다 더 높을것이라는 생각에 우리는 숨을 죽이고 말을 떼기를 기다렸다.
〈요즘 너희들 신문을 보았니? 수도 평양에 웅장화려하게 일떠서는 새 거리건설에 탄원해나선 언니, 오빠들이 공사장에서 기적과 혁신을 일으키고있는 소식들을…
우린 마음만 먹으면 돈한푼 들이지 않고 대학에도 갈수 있고 예술인도 체육인도 될수 있어. 이건 다 고마운 우리의 사회주의제도가 있기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해. 그래서 난 태여난 곳과 사는 곳은 서로 달라도
인해의 말은 끝났으나 그의 말은 아직도 나의 귀전에 쟁쟁히 울려왔다.
그렇다. 고마운 우리 제도, 고마운 우리 당의 사랑만을 받으며 자라난 우리들의 청춘을 꽃피울 자리가 어디인가를 나도 그때에야 비로소 찾았다.》
딸애의 일기는 여기서 끝났다.
조용히 딸애의 방문을 닫고 나와 잠자리에 들었으나 오래도록 잠이 오지 않았다.
고급중학교 3학년, 17살.
세상리치를 다 알기에는 아직도 어린 저애들이 얼마나 대견하고 장한 모습으로 내 눈앞에 다가서는것인가.
인생에서 꿈도 많고 리상도 많은 청춘시절에 정든 고향을 떠나 어렵고 힘든 부문에 탄원하고 군사임무수행중 뜻하지 않게 특류영예군인이 된 사람과 서슴없이 한가정을 이루는것도 우리 청년들이다.
덕과 정으로 화목한 사회주의 내 조국땅 그 어디에서나 들려오는 청년들의 아름다운 소행, 그 장한 모습들을 꼽자면 열백밤을 패도 모자랄것이다.
저도모르게 생각이 깊어져 잠 못 이루고 뒤척이는데 어느덧 푸름푸름 새날이 밝아왔다.
(저런 자랑스러운 새 세대들을 위해 나도 더 많은 일을 하자.)
이런 불같은 마음을 안고 일터로 향하는 나의 발걸음은 저도모르게 청춘의 기백이 살아나 더욱 빨라졌다.
김 현 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