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여나 처음으로 안긴 품은
태여나 처음으로 눈에 익힌 어머니얼굴
아기가 반기는 이 세상 기쁨이라네
아 어머니 있으면 아기는 언제나
어머니 있으면 마음을 놓네
…
늘 즐겨 불러온 노래이지만 오늘에 와서는 더더욱 사랑하게 되는 노래이다.
그 직접적계기로 된것은 내가 딸 세쌍둥이의 어머니가 된 그때부터였다.
무릇 어머니란 자식의 맑은 눈동자에 비끼는 이 세상의 첫모습이라고 하지만 우리 딸 세쌍둥이의 눈동자에 비낀 첫 모습은 내가 아니다.
세쌍둥이의 막내가 태여난 후 우리 가족들은 물론 나
태여날 당시 체중이 1. 2kg밖에 안되는 미숙아인데다가 복합심장기형에 좌측페가 검사상에서 인정되지 않는, 심장기형환자들중에서도 보기 드문 최중증환자인 딸애는 바람앞에 선 초불처럼 시시각각으로 생명이 가물가물 꺼져가고있었기때문이였다.
혈액의 산소화가 제대로 되지 않아 까맣게 죽은 얼굴, 할딱거리는 숨결…
너무도 치명적인 아기의 상태앞에서 부모들조차도 맥을 놓고있을 때 세쌍둥이들의 귀중한 생명을 기어이 지켜내자고 떨쳐나선 사람들이 있었으니 그들이 바로 평양산원과 옥류아동병원의 의료일군들이였다.
그들은 요람을 돌보는 어머니의 모습으로 수시로 변하는 아기의 생명지표를 주시하였다.
애의 병상태에 적합한 수술방안을 확정하느라 뜬눈으로 새운 밤은 그 얼마이고 갓난애기의 심장수술을 위해 초시계를 놓고 진행한 모의훈련만 해도 몇십차례나 되는지 모른다.
그 정성, 그 절절한 기대가 기적을 낳아 셋째의 수술은 성공적으로 진행되였다. 하지만 의사들모두가 여전히 긴장을 풀지 않고 깊은 밤에도 셋째의 머리맡을 지키며 끝없는 정성을 바쳐갔다.
따뜻한 정성의 날과 날이 흐르는 속에 드디여 우리 셋째는 기형적인 심장에 눌리워 자라지 못했던 좌측페를 회복하고 인공호흡기마저도 떼여놓게 되였다.
그날 애를 둘러싸고 너무 기뻐 환성을 터뜨리던 의료일군들의 모습은 아마도 우리 셋째가 본 이 세상의 첫 모습이였을것이다.
태여나 엄마품이 아니라 고마운 사회주의조국의 품에 먼저 안긴 우리 세쌍둥이들.
아니, 태여나기 전부터 그애들은 이 제도에 안겼다.
다태자임신부로 확진된 그때부터 내가 받아안은 사회주의제도의 혜택은 과연 그 얼마였던가.
최상급의 의료상혜택이며 특별히 제정된 공급기준에 따른 영양가높은 식사, 근 30명의 의료일군들의 해산방조, 세쌍둥이를 담당한 의사, 간호원만 해도 10여명…
이 모든 비용을 돈으로 계산한다면…
이 모든것을 국가가 전적으로 부담하였다.
황금만능의 자본주의사회라면 과연 상상이나 할수 있는 일이겠는가.
학교갈 나이가 될 때까지 우리 세쌍둥이들은 국가의 각별한 관심속에 육아원과 애육원에서 자라나게 된다. 어머니도 다시 줄수 없는 생명을 준 고마운 그 《어머니》는 애들이 다 자라도록 보살피는것이다.
그렇다.
세상에 태여나 처음으로 눈동자에 새긴 모습, 자라면서 간직하는 어머니의 모습은 진정 고마운 어머니
엄마품을 떠나선 살수 있어도 그 품을 떠나서는 정녕 살수 없기에 우리 인민모두가 한목소리로 이렇게 노래하는것 아니랴.
우러러 볼수록 당은 어머니의 그 모습
아기가 엄마 찾듯이 내
아 그곁에 있으면 이 몸은 언제나
그곁에 있으면 행복에 겹네
…
오늘은 내가 부르고 래일은 우리 세쌍둥이들이 부를 이 노래는 고마운 사회주의제도와 더불어 영원불멸할
- 평양산원에서 퇴원하는 세쌍둥이들(자료사진) -
한 선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