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생하는 공화국의 첫 물리학원사
- 새별(직업: 학생, 주소: 심양) 독자의 요청에 대한 회답기사 -
우리 공화국의 발전행로에 뚜렷한 자욱을 남긴 수많은 과학자들중에는 물리학자 도상록선생도 있다.
도상록선생은 1903년 10월 13일 함경남도 함흥시의 빈농의 가정에서 출생하였다.
어렸을 때부터 남달리 과학적재능이 비상하였던 그는 극심한 가난속에서도 불타는 열정을 가지고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마쳤으며 주체21(1932)년 3월 일본 도꾜대학을 졸업하였다.
도꾜대학에서 고학을 하던 때에 그는 세계적인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이 출연하는 강연회에 참가한적이 있었는데 일본에서 한다하는 학자들이 다 모여들었으나 그 강의를 리해하는 사람이 한명도 없었다.
그런데 강연이 끝나자 학생이였던 도상록선생이 일어나 질문을 하였다.
그후 아인슈타인은 《나의 강연을 누구도 리해하지 못했지만 영특하게 생긴 한 청년만이 리해하고 어려운 질문을 하였다, 너무도 관심이 가길래 알아보았더니 바로 그 청년이 조선사람이였다.》고 하면서 그때를 감회깊이 추억하였다고 한다.
이런 비상한 인재였지만 일제의 가혹한 민족차별정책으로 자기의 희망을 실현할수 없었던 도상록선생은 조국으로 돌아와 개성 송도중학교 물리교원으로 일하였다.
그후 주체27(1938)년 4월 중국 장춘공업대학 교원으로 사업하면서 여러건의 물리학론문들을 완성하여 발표하였다.
하지만 일본물리학계는 식민지조선청년학자의 론문이라는것을 구실로 이 론문을 통과시키지 않았다.
해방후 도상록선생은 남조선에서 서울대학 교수로 일하면서 조선의 물리학을 발전시키려고 노력하였지만 미제와 반동들이 살판치는 속에서는 그것을 도저히 실현할수 없었다.
그 꿈은
그러시면서
그후에는 서울에 있는 도상록선생의 가족들을 평양으로 데려오도록 크나큰 배려를 돌려주시였으며 가족들이 도착한 후에는 불편없이 생활할수 있도록 생활의 구석구석을 친어버이심정으로 따뜻이 보살펴주시였다.
하늘같은 그 사랑과 믿음에 보답하기 위하여 도상록선생은 온갖 지혜와 열정을 다 바쳐 후대교육사업과 과학탐구사업에 전력하였다.
당의 크나큰 사랑과 은정에 의하여 도상록선생은 주체39(1950)년에 물리학교수로, 주체41(1952)년에 공화국의 첫 물리학원사로, 주체75(1986)년에 인민과학자칭호를 받았으며 《
이처럼
본사기자
공화국의 초대수학원사였던 김지정선생에 대해서도 소개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