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에 비낀 민족의 넋

 

- 사회과학원 민속학연구소 소장과 평양모란봉편집사 기자가 나눈 대담 -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소나무는 조선의 기상입니다.》

기자; 옛글에 《소나무에서 나서 소나무속에서 살다가 소나무속에 죽는다.》라는 말이 있다. 이런 말이 생겨날 정도로 우리 민족은 소나무에 각별한 애착을 가지고있다고 본다.

소장; 그렇다. 소나무는 력사적으로 우리 인민들의 생활에 참으로 많은 영향을 주었다. 사철푸른 바늘잎키나무인 소나무는 그 약용가치가 높아 일찌기 선조들은 소나무를 소중히 여기였다. 솔잎만 보아도 비타민C결핍증, 신경통, 관절통, 잠장애, 고혈압을 비롯하여 많은 병치료에 쓰인다.

그런가 하면 우리 선조들은 푸른 소나무가 숲을 이룬 수려한 정경이나 백사청송(흰모래밭사이에 소나무가 드문드문 섞인 바다가의 아름다운 경치)을 자연미의 전형으로, 으뜸가는 경치로 일러왔다.

이러한 경치는 나라의 가는 곳마다에 펼쳐져있어 소나무가 많은 곳을 가리키는 황해북도의 송림시, 강원도의 송도원, 개성시의 송악산과 같은 지명들도 태여나게 되였다.

기자; 솔숲으로 우거진 그 자연의 경치들은 그대로 많은 미술작품들에 옮겨졌다. 날아가던 새들이 벽에 그린 나무가 진짜인줄 알고 앉으려다가 부딪쳤다는 일화도 신라시기의 화가 솔거가 그린 소나무와 관련되지 않는가.

소장; 그렇다. 우리 인민의 민족문화유산들가운데는 소나무를 소재로 한 우수한 작품들이 많다.

그가운데는 조선봉건왕조시기의 화가들인 리상좌와 리인문의 그림 《달밤에 소나무밑을 거닐며》, 《소나무밑에서 물소리 듣다》도 있다. 이밖에 16세기말- 17세기초에 창작된 수예작품 《송학자수》 그리고 《소나무와 호랑이》, 《소나무와 꿩》 비롯한 많은 명작품들이 있다.

기자; 선조들이 소나무를 특별히 사랑한것은 비단 그 어떤 약리작용이나 그 아름다움때문만이 아니다.

임진조국전쟁시기 의병장으로 싸운 사명당은 전쟁의 불길속에서 꿋꿋이 서있는 한그루의 소나무를 보고 유명한 시 《청송사 써서 후세에 남기였으며 여러 의병장들도 사랑하는 조국산천을 지켜 싸울 애국의 마음을 소나무의 굳센 모습에 비겨 노래하였다.

《송죽같은 절개》, 《겨울이 되여야 솔이 푸른줄 안다》와 같은 속담들에도 있듯이 우리 선조들은 나라를 지켜 싸울 애국의 마음을 주로 소나무의 모습에 비겨 노래하지 않았는가.

소장; 옳은 말이다. 하기에 19세기말 한 외국인은 자기의 저서에서 조선에서는 버들이 녀성의 아름다움과 우아함의 상징이라면 소나무는 남자다운 힘센것의 상징으로 일러온다고 하면서 소나무에 비껴있는 우리 민족의 정서에 대하여 서술하였다.

선조들이 소나무를 강인한 민족적기상의 상징으로 내세운것은 소나무가 사시장철 푸르고 생활력이 강하기때문이다.

소나무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폭풍이 몰아칠 때나 고요할 때나 항상 자연과 아주 잘 어울리는 특성을 가지고있다.

하기에 우리 인민들은 어려움에 부닥칠 때마다 항상 푸르른 소나무앞에서 맹세를 다지며 의지를 굳히군 하였으며 순결하면서도 굳세게 살려는 지향과 정서를 소나무를 통해 소리높이 구가하군 하였다.

해방전 우리 인민들은 일제침략자들의 가혹한 폭압속에서 눈속에서도 자기의 푸른 빛을 잃지 않는 소나무의 기상으로 민족의 절개를 굽힘없이 끝까지 싸웠다.

그 어떤 광풍에도 끄떡없는 바로 이 소나무의 기상으로 지금 우리 인민은 적대세력들의 책동속에서도 흔들림없이 자기의 길을 따라 사회주의강국을 건설해가고있다.



기자; 정말이지 소나무에는 우리 민족의 넋과 기상이 깃들어있다고 볼수 있다.

소장; 그래서 우리 인민들은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이 소나무를 정히 가꾸고있다. 그리고 전통적인 풍습대로 명절이나 결혼식날과 같은 의의있는 날들에는 의례히 소나무를 심고있다.

오늘날 소나무는 경애하는 원수님의 현명한 령도아래 더욱 양양한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민족의 새 력사와 더불어 우리 인민의 더욱더 강렬한 사랑을 받는 조선의 국수로 자기의 이름을 더욱 빛내이고있다.

기자; 좋은 이야기를 들려주어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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