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은 나의 곁에 있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에게 있어서 어머니품은 바로 당입니다.》

조선로동당이 창건된 뜻깊은 10월은 나로 하여금 고마운 당과 조국의 품속에서 다시 태여난 못 잊을 추억을 감회깊이 돌이켜보게 한다.

우리 부모들은 해방전에 살길을 찾아 현해탄을 건넜다.

아버지는 우리 자식들의 입에 풀칠이나마 해주기 위해 갖은 고생을 다하였다.

그러던 아버지가 류달리 환한 얼굴로 집에 들어선것은 1960년 어느날이였다.

《조국으로 가자. 그곳에서는 교육도 무료교육, 병치료도 무상치료라더라.》

그때 14살이였던 나는 아버지가 하는 꿈같은 이야기가 잘 믿어지지 않았다. 세상에 그런 나라도 있단 말인가. 그렇게 좋은 나라가 나의 조국이란것이 정말로 기쁘고 자랑스러웠다.

조국은 우리가 상상하였던것보다 더 따사롭고 정다운 손길로 우리를 품에 안아주었다. 나들이옷을 넣은 가방 하나씩밖에 가져온것이 없는 우리들에게 나라에서는 가장집물이 다 갖추어진 훌륭한 살림집을 무상으로 안겨주었고 다정한 이웃들은 그 차디찬 이국땅에서 얼마나 많은 고생을 하였는가고 하면서 따스한 정을 부어주었다.

그때 아버지와 어머니가 나누는 말속에는 자주 당이라는 말이 올랐다.

당, 아직은 그 의미를 다 알수 없었으나 우리에게 집을 주고 학교문을 열어주고 뜨거운 사랑과 정을 안겨준 고마운 손길로 안겨왔다.

그 품을 위해 무엇을 할것인가 하고 생각을 굴리는 속에 제일먼저 떠오른것은 미용사직업이였다. 하지만 자본주의일본땅에서 리발사나 미용사들은 까까쟁이로 놀림받고 천대받던것이 생각나 그만두려고 하였었다.

그런데 한 동무가 우리 나라에서는 미용사들도 사람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는다고 하면서 내 생각을 적극 지지해주는것이였다.

이렇게 되여 나는 미용사가 되였다.

그때로부터 근 50년간 나는 변함없이 미용사로 일하고있다.

이 나날 내가 더욱 깊이 깨달은것은 우리 나라에서는 인민을 위해 헌신하는 근로자들을 끝없이 아끼고 내세워주며 하늘처럼 떠받든다는것이다.

다른 나라에서는 아무리 근면하게 헌신적으로 일하여도 돈과 권력이 없으면 노예처럼 취급당하게 된다.

미용사로 일하던 초기 손님들의 머리를 정성들여 해주었을뿐인데 그들이 길을 가다가도 만나면 반갑게 인사하고 고마와하는것을 보고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응당 할 일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훌륭한 미용사라고 사랑하고 존경하였다.

그후 나는 높은 국가수훈을 받아안게 되였다. 그리고 귀국한지 20여년이 되던 해에는 공훈리발사칭호를 받았으며 그 다음해에는 평양시인민회의 대의원으로 선거받았다.

평범한 미용사인 나의 사진이 선거장에 나붙은것을 보고 온 가족이 눈물을 흘리였다. 조국방문차로 평양에 왔던 언니들은 네가 주권기관의 대의원이라는것이 믿어지지 않는다고 하면서 감격스러워하였다.

몇해전 나는 유럽을 비롯한 여러 나라들과의 미용교류사업에 참가하였다.

경애하는 원수님의 크나큰 은정속에 마련된 이 사업을 통하여 나는 우리 당과 사회주의조국의 고마움을 더욱 가슴뜨겁게 절감하였으며 미용봉사를 세계적인 안목으로 보고 대하게 되였다.

지금 나의 가슴속에는 당에 대한 고마움과 함께 당이 안겨준 포부와 열정이 세차게 끓어번진다.

오늘도 당은 나의 곁에서 행복과 미래를 안겨주고있다.

 

                                                                  

                                                                        중구역편의봉사사업소 대동교미용원  김 만 선

 

 

감상글쓰기

보안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