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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11(2022)년 11월 29일
 

복받은 교예배우들

 

얼마전 나는 가족들과 함께 평양교예극장에서 국립교예단 예술인들의 종합교예공연을 관람하였다.

처녀시절 내가 공연무대에서 바라보던 객석에 앉아 공연을 관람하고보니 정말 생각도 깊어진다.

황홀감과 신비함을 안겨주는 공중교예와 인연을 맺던 시절이 어려와서였다.

나는 9살부터 교예를 배웠는데 평양교예학원에 입학하던 날 보았던 한상의 뜻깊은 기념사진을 잊을수가 없다.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을 모시고 평양교예학교(당시) 제1기 졸업생들이 찍은 영광의 기념사진이였다.

잊을수 없는 력사의 그날은 주체65(1976)년 3월 12일이였다.

어버이수령님의 사랑의 품에 안겨 전쟁의 포화속에서 성장한 주체교예의 첫 세대들이 30대, 40대에 들어서던 1970년대였다.

이 땅에 문학예술혁명의 일대 전성기를 펼쳐주신 위대한 장군님의 령도아래 주체교예도 위대한 새 력사를 맞이하게 되였다.

평양교예단의 예술창조사업을 정력적으로 지도하시던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후비양성사업을 추켜세우기 위한 중요한 대책을 취해주시였다.

교예예술인후비를 전망성있게 잘 키우는것은 교예단의 운명과 관련되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며 우리 나라 교예의 세계적수준을 계속 유지하려면 교예배우후비양성사업을 잘하여야 한다고 하신 위대한 장군님의 간곡한 가르치심을 지침으로 하여 평양교예학교(당시)가 태여났고 그때로부터 몇해후에는 첫 졸업생들이 나오게 되였다.

당의 품속에서 자라난 주체교예의 새 기둥감들인 제1기 졸업생들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영광의 시각을 맞이하게 되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평양교예학교 제1기 졸업생들의 종합공연을 지도하여주시려고 평양교예단에 나오신것이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오늘 출연한 동무들은 당의 조치에 의하여 교예배우로 자라난 새 세대들이라고 하시면서 신인교예배우들이 공연을 아주 잘하였다고, 정말 기특하다고 거듭 치하해주시였다.

그러시면서 신인을 양성하려면 평양교예단에서처럼 양성해야 한다고, 평양교예단의 경험은 힘을 들여 교육을 잘하면 후비를 얼마든지 양성할수 있다는것을 증명해주고있다고 교시하시였다.

이날의 공연을 《평양교예학교 제1기 졸업생종합공연》이라는 이름을 달아서 크게 소개할데 대한 은정어린 조치도 취해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어린 녀배우들이 무랍없이 드리는 간절한 청을 너그럽게 받아주시여 졸업생모두를 한품에 안아 사랑의 기념사진도 찍으시였다.

이렇게 되여 창립된지 불과 몇해밖에 안된 평양교예학교는 위대한 스승의 축복을 받은 영광의 학원으로 그 이름을 빛내이게 되였다.

나도 위대한 장군님의 사랑이 어린 평양교예학원을 졸업하고 공중교예배우로 성장하게 되였으며 그 과정에 공중교예의 밑재주를 하는 남편을 만나 사랑도 약속하게 되였다.

위대한 장군님의 따사로운 품속에서 자라난 우리의 새 세대 교예배우들은 주체교예의 존엄과 영예를 온 세상에 남김없이 과시하였다.

국제교예축전들마다에서 최우수상을 받아안은 주인공들은 모두 평양교예학원에서 성장한 배우들이다. 어머니당은 우리들이 국제무대에서 성과를 거둘 때마다 온 나라가 다 알게 내세워주었으며 높은 국가수훈과 김일성청년영예상수상자, 인민배우, 공훈배우의 값높은 칭호도 안겨주었다.

정말이지 온 나라가 다 아는 공중교예배우로 내세워주고 크나큰 사랑만을 거듭 안겨주는 어머니당의 품이 있어 우리 교예배우들의 빛나는 삶도 있는것이다.

나는 우리 교예배우들을 아끼고 사랑하시는 절세위인들의 크나큰 은정을 언제나 심장깊이 새기고 새 세대 교예배우들을 훌륭히 키워내는것으로써 그 사랑과 믿음에 꼭 보답하겠다.


김 춘 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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