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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11(2022)년 11월 21일
 

《마안산》담요가 태여난 사연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장군님의 애국의 마음에는 언제나 인민이라는 두 글자가 꽉 차있었습니다.》

우리 공화국의 박천견직공장은 《마안산》상표를 단 담요와 여러가지 질좋은 옷감들을 많이 생산하는 공장으로 유명하다.

박천견직공장에도 인민들에게 행복한 생활을 안겨주시려 마음쓰신 절세위인의 불멸의 업적이 뜨겁게 깃들어있다.

우리를 반겨맞아준 공장의 일군이 제일먼저 안내한것은 1직포직장이였다.

국가경제발전 5개년전략목표수행기간 1직포직장에서는 여러명의 다년분계획완수자들이 배출되였는데 그속에는 26년분계획을 완수한 직포공도 있었다.

26년분계획완수자, 전국적으로도 정말 쉽지 않은 혁신자였다.

무척 놀라와하는 우리에게 직포공은 이렇게 말했다.

《제가 걷는 순회길에는 위대한 장군님의 발자취가 뜨겁게 어려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20여년전 6월 공장을 찾아주신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1직포직장에도 령도의 자욱을 남기시였던것이다.

그 직포공의 가슴속에는 위대한 장군님의 땀젖은 야전복이 소중히 간직되여있었다. 그래서 하루에도 100리가 넘는 순회길을 달리면서도 늘 자기가 흘리는 땀방울이 적다고 생각하는 그였다.

자나깨나 어버이장군님을 그리는 그 마음이 곧 혁신의 비결임을 느끼며 우리가 다음으로 찾은 곳은 비로도직장이였다.

우리 녀성들이 좋아하는 치마저고리감인 비로도를 생산하는 이곳에서 직장일군이 선참으로 내세운 혁신자는 놀랍게도 총각직포공이였다.

취재길에서 처녀직포공들은 많이 보아왔지만 총각직포공을 마주하기는 이번이 처음이여서 우리는 호기심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어떻게 되여 직포공이 되였는가고.

총각직포공은 잊지 못할 그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제품견본실에서 천견본품들을 보아주시며 시집갈 처녀들의 첫날옷감부터 먼저 걱정하시였다고, 그리고 한해에 시집을 가는 처녀들의 수까지 헤아리시며 공장의 비로도생산목표를 정해주시였다고 하면서 이렇게 덧붙이는것이였다.

《우리 장군님의 뜻을 천만분의 일이라도 받들고싶어 천짜는 법을 배우게 되였습니다.》

그만이 아닌 공장의 종업원들모두가 어버이장군님께 자기가 만든 제품을 보여드리는 심정으로 일해나가고있었다.

담요직장으로 안내한 공장의 일군은 우리에게 이런 가슴뜨거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지금으로부터 수십여년전 어느날 박천견직공장 일군들과 로동계급은 어버이장군님께서 보내주신 한장의 담요를 받아안게 되였다

그것은 한 해외동포가 어버이장군님의 안녕을 바라며 삼가 올린 고급담요였다. 그런 고급담요를 우리 인민모두에게 안겨주고싶으시여 그것을 견본으로 보내주신 어버이장군님께서는 몸소 4. 15기술혁신돌격대도 뭇도록 해주시고 걸린 문제도 풀어주시면서 시제품생산을 다그치도록 손잡아 이끌어주시였다. 어버이장군님의 그 믿음에 무한히 고무된 공장로동계급은 두달도 못되는 짧은 기간에 10여종의 아닐론담요시제품을 생산하여 장군님께 올리였다.

만져도 보시고 쓸어도 보시고 무게도 가늠해보시고…

시종 만족을 금치 못하시던 어버이장군님께서는 아주 잘 만들었다고, 손맛도 좋고 가벼우면서도 더울것이라고, 박천견직공장에서 만든 아닐론고급모포가 제일 마음에 든다고 거듭거듭 높이 치하하시였다.

이때 한 일군이 그이께 모포이름을 지어주셨으면 하는 청을 드리였다. 한동안 깊은 생각에 잠기시였던 어버이장군님께서는 그럼 자신께서 안을 내놓겠다고 하시며 박천견직공장 로동계급이 새로 만든 모포의 이름을 《마안산》으로 하는것이 좋겠다고 뜨겁게 교시하시였다.

《마안산》담요는 이렇게 세상에 태여났다.

이 땅에 시련의 파도가 어디라없이 들이닥치던 고난의 행군, 강행군시기에도 공장을 찾으신 어버이장군님께서는 앞으로 《마안산》담요를 꼭 생산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현대적인 담요생산설비들을 마련하도록 은정깊은 조치를 취해주시였다.

깊은 감동에 젖어있는 우리에게 공장일군은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 인민들에게 질좋은 〈마안산〉담요를 안겨주기 위하여 마음쓰시던 위대한 장군님의 높은 뜻을 받들어 우리 공장 종업원들은 담요생산에 필요한 날염풀을 자급자족할수 있는 확고한 전망을 열어놓았답니다.》

참으로 그 어느 일터에 가보아도, 그 누구를 만나보아도 어버이장군님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이 넘쳐나는 공장이였다.

공장을 떠나는 우리의 귀전에는 공장일군의 목소리가 절절하게 울려왔다.

《우리는 앞으로 위대한 장군님의 인민사랑의 뜻을 더욱 활짝 꽃피워나가렵니다.》


본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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