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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11(2022)년 12월 5일
 

탄원​

 

며칠전 하루수업을 끝마친 후였다.

똑똑똑 문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내가 담임한 학급의 학생들이 분과실로 들어섰다.

(웬일일가?)

나의 가슴속에는 이름 못할 예감이 스며들었다.

초급단체위원장인 철이학생이 한발 나서며 자기들은 머지않아 정든 모교를 떠나 사회에 진출하게 된다고 하면서 흰 종이장을 나에게 내미는것이였다.

그들의 말을 듣는순간 나의 가슴속에는 뜨거운것이 울컥 치밀어올랐다.

나는 서운한 감정을 애써 누르며 종이장을 들여다보았다.

순간 나는 깜짝 놀랐다. 나의 눈앞에 광산으로 진출하겠다는 탄원서가 안겨들었기때문이였다.

물론 탄원이라는 이 말이 우리 사회에서는 평범한 말로 되고있지만 정작 당하고보니 어리둥절하지 않을수 없었다.

아직은 철부지로만 여겼던 학생들, 이제 이들이 사회에 나가면 맡은 일을 꽤 잘해낼가 은근히 걱정도 많았던 나로서는 천만뜻밖의 일이기도 하였다.

그들은 탄원서에 이렇게 썼다.

《…우리들은 벅찬 시대를 가슴에 소중히 간직하고 석탄전선으로 용약 달려나가려고 합니다. 그 길에서 우리들은 청년전위의 영예를 값높이 떨치겠습니다.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아시는 참된 애국청년이 되겠습니다.》

학창시절 꿈도 많고 희망도 컸던 나의 제자들이다.

누구는 과학자가 되고 누구는 미술가가 되고 누구는 장령이 될것이라고 서로서로 꿈과 희망을 꽃피워온 이들이다.

그런데 오늘 이들은 자기들의 꿈과 희망을 꽃피울 곳을 조국이 바라는 어렵고 힘든 초소로 정했던것이다.

저도모르게 생각이 깊어졌다.

돌이켜보면 지나온 년대들에 얼마나 많은 청년들이 어머니 우리 당이 바라는 어렵고 힘든 초소들로 용약 달려나갔던가.

이것은 누리는것보다 바치는것을 더없는 인생의 락으로 여기는 우리 청년들의 숭고한 인생관의 발현이였다.

그런데 이제는 나의 학생들도 그 자랑스러운 대오속에 들어서려고 하지 않는가.

이제 이들도 청춘의 구슬땀을 아낌없이 조국에 바쳐가며 값높은 위훈의 소식들을 나에게로, 모교로 전해오리라.

이런 생각을 하느라니 탄원라는 이 두글자가 평범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어머니 우리 당이 지어준 세상에 둘도 없는 우리 청춘의 이름, 우리 청년들의 인생의 자서전으로 뜨겁게 안겨왔다.

서로서로 어깨겯고 랑만과 희열에 넘쳐 학교정문을 나서는 미더운 제자들의 모습을 보며 나는 확신했다.

이렇듯 장한 나의 학생들, 아니 이 나라 청춘들모두의 순결한 애국심에 떠받들려 내 조국은 더더욱 약동하는 젊음으로 광명한 미래를 향해 비약해갈것이라고.

김 미 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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