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명산 - 칠보산을 찾아서 (1)
《칠보산은 경치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예로부터 산좋고 물맑아 금수강산이라 불러온 우리 나라의 북변 동해기슭에 보물이 가득찼다고 하여 보물산, 보석처럼 빛난다고 하여 보석산으로 자랑높은 명산이 있다.
우리 인민들속에 《함북금강》으로 널리 알려진 칠보산!
웅장하고 독특한 산악미와 계곡미, 수려하고 황홀한 수림미와 바다가경치가 한데 어울려 다른 명산들에서는 찾아볼수 없는 이채로운 자연절경을 펼쳐보이고있으니 과시 명산중의 명산이라 하지 않을수 없다.
아아한 산발들과 천태만상의 기암괴석들이 각양각색의 명소를 이룬것도 절승이지만 거기에 담겨져있는 구수하고 흥미있는
우리는 아름다운 조국산천에 대한 크나큰 긍지와 자부심을 안고 칠보산에로의 기행길에 올랐다.
그는 칠보산의 관문인 박달령기슭에 들어서자부터 구수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먼 옛날에 박달령은 생김새가 반달모양으로 생겼다고 하여 반달령 또는 반월령으로 불리웠다. 그러던것이 언제부터인가는 박달령으로 불리우게 되였는데 그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다.
그중 하나는 령에 박달나무가 많이 자란다는데서부터 유래되였다는것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 인민들이 이 령에서 단군제를 자주 지낸데로부터 생겨난 이름이라는것이다.
박달령에 들어서니 도로량옆으로 수려한 소나무림이 무성하게 펼쳐져있었는데 나무들이 하나와 같이 미끈하게 곧추 자라는것이 특별히 우리의 눈길을 끌었다.
유명한 칠보산송이버섯밭이 여기서부터 시작되였다.
맛과 향기, 약효에 있어서 으뜸인 칠보산송이버섯의 독특한 향기가 우리 나라는 물론 대양과 대륙을 넘어 풍기고있다 하니 명물이 많기로 자랑높은 명산을 찾아가는 우리의 걸음에 어찌 날개가 돋지 않을수 있으랴.
흥얼흥얼 노래소리가 절로 흘러나왔다.
…
칠보석이 빛을 뿌려 그 이름 칠보산
우리 당의 해빛 안아 칠보산일세
한번 보면 넋이 끌려 갈길을 잃고마는
칠보산은 바위풍치 천하명승이라오
천하의 명승일세
어느덧 칠보산관광안내도가 세워져있는 박달령정점에 이르렀다.
안내도에는 내칠보, 외칠보, 해칠보지구와 구역별탐승도로들, 칠보산의 명소와 기암들이 표식되여있었다.
본래 안내도는 유화로 그려져있었다고 한다.
주체85(1996)년 11월 2일 칠보산을 찾으신
박달령정점을 지난지 얼마되지 않아서 문바위가 나졌는데 묘한 천연바위는 마치 칠보산의 문주같았다.
이곳에서 잠간 휴식하는동안 학술연구사는 우리에게 칠보산이라는 지명의 유래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었다.
칠보산이라는 이름은 오래전부터 불리워졌는데 7가지의 보석과도 같이 산이 하도 아름답고 보배롭다는 뜻에서 유래되였다. 칠보산의 지명유래와 관련하여서도 여러가지
대표적으로는 옛 문헌에 씌여져있는 칠보매장설, 지각변동설, 칠보단장설이다.
칠보매장설은 칠보산에 7가지 보물이 묻혀있다는데서부터 유래되였다고 한다. 그 7가지 보물로는 여러가지 설이 있는데 대표적으로 금, 은, 마노, 차거, 진주 등을 들수 있다.
지각변동설은 먼 옛날 조선동해의 북부기슭에 묘하게 생기고 보물이 많은 7개의 산이 불쑥 솟아올랐다가 6개의 산은 바다에 잠기고 지금의 칠보산만이 남게 되였는데 그 7개의 산을 통털어 불리워진 이름이라는것이다.
칠보산의 지명유래들가운데서 류달리 우리의 흥미를 끈것은 칠보단장설이였다.
예로부터 우리 인민은 아름다움을 상징할 때 《칠보》라는 말을 많이 써왔다.
실례로 칠보단장, 칠보반지 등과 같이 《칠보》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희귀하고 진귀한것을 가리키는 말로 되여왔다. 이로부터 우리 선조들은 자연의 일만경치를 다 안고있는 이 산을 칠보단장을 한 첫날 새색시에 비겨 칠보산이라고 불러왔다는것이다.
철따라 아름답게 단장되는 칠보산의 경치를 두고서도 봄이면 백화만발한 《꽃동산》, 여름에는 록음우거진 《록음산》, 가을이면 단풍이 붉게 피는 《홍화산》, 겨울에는 흰눈으로 은빛단장한 《설백산》이라고 불러왔다.
지명의 유래와 력사를 통해서도 우리는 칠보산이야말로 독특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인민들의 마음속에 친근하게 자리잡고있다는것을 잘 알수 있었다. (계속)
본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