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수기 《금강석》의 주인공을 찾아서 (1)
- 조국(직업; 연구사, 주소; 해외)독자의 요청에 대한 해답 -
《우리 혁명의 영광스러운 년대기에는
24살 꽃나이시절 다부작예술영화 《이름없는 영웅들》의 녀주인공으로 배우생활의 첫 걸음을 떼였고 일흔을 바라보는 오늘 모교인 평양연극영화대학에서 후비육성사업에 모든것을 다 바쳐가고있는 그는 얼마전 장편수기 《금강석》을 창작하여 내놓았다.
장편수기는 출판되자마자 인민들의 사랑속에 널리 애독되고있다.
우리는 《금강석》을 통하여 이 땅의 평범한 한 처녀가 품은 꿈과 희망이 어떻게 움트고 활짝 꽃펴났는가에 대하여 아니 이 나라 수많은 예술인들을 끝없이 아끼며 내세워주는 어머니 우리 당의 무한한 사랑의 세계에 대하여 감동깊이 느낄수 있었다.
전쟁이 끝난 이듬해에 평안남도 대동군 화성리(당시)에서 평범한 군인가정의 셋째딸로 태여난 김정화는 어려서부터 영화에 남다른 관심과 취미를 가지고있었으며 새 영화가 나오면 언제나 남먼저 달려가 보군 하였다고 한다.
그 나날 그는 영화배우가 되려는 꿈을 간직하게 되였다. 나라에서는 그의 소망을 헤아려 평양영화대학(당시)으로 불러주었고 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조선예술영화촬영소 배우로 내세워주었다.
김정화에게는 영화에서 맡아한 주역들의 이름으로 하여 본명외에 많은 이름이 있다.
《김순희》, 《홍수정》, 《신달래》…
김정화가 우리 인민들속에서 《김순희》로 불리우게 된것은 우리 나라의 첫 다부작정탐물예술영화 《이름없는 영웅들》에 출연하여 녀주인공역을 맡아 훌륭히 수행한 때부터였다.
영화부문사업을 지도하시던
그는 당의 높은 신임과 기대에 훌륭한 연기창작성과로 보답할 맹세를 안고 맡은 역형상수준을 높이기 위해 피타는 노력을 기울이였다.
그 과정에 제일 어려웠던것은 제5부 《금강석》에서 유림과의 접선이 끝난 후 순희의 감정세계를 생동하게 그려낼수 있는 자감상태에 빠져들어가는것이였다.
복잡한 감정세계의 심리변화를 생동하고 감동적으로 표현한다는것이 말처럼 쉽지 않았지만 그는 높은 목표와 불타는 열정을 안고 훌륭한 연기로써 순희의 감정세계를 잘 보여줄수 있었다.
이렇듯 김정화는 영화 한장면, 한장면에 자기의 지혜와 정열을 깡그리 쏟아부었다.
그의 미숙한 배우연기를 몸소 보아주시고 높이 평가해주신분은
김정화는
받아안은 사랑에 더 높은 창작성과로 보답할 일념안고 그후 그는 30살안팎의 젊은 나이였지만 예술영화 《길》에서
이 영화의 주인공역형상창조를 계기로 김정화는 배우를 예술가로 되게 하는것은 같은 형의 얼굴을 판에 박은듯이 되풀이하는데 있는것이 아니라 다양하고 풍부한 개성들을 형상해내는 창조적능력에 있다고 하신
본사기자